전출처 : poptrash > 생활의 발견
문득 '홍상수 이야기가 사라진 영화를 발명하다'라는
홍상수식 영화미학에 대한 예찬론을 읽다가.
영화적 현실과 말그대로의 현실에 대해 생각.
이를테면 이런 것.
나는 오늘도 오뚜기에서 나온 블루베리 쨈을 먹었지.
언젠가 열어본 사무실 냉장고에 살포시 들어있던 그것을,
딱히 누가갖다 놨는지 알수도 없고 난생처음 보는
블루베리 쨈이라 도대체 무슨 맛일까 한입 물어보고는
그후로도 종종 당분이 부족할때마다 한입 한입 꺼내먹는,
여전히 먹는 이는 나밖에 없는 듯한 정체불명의, 그것.
그래, 오늘도 나는 블루베리 쨈을 먹었다.
딱히 먹고 싶지도, 그렇다고 와 정말 맛있는것도 아닌데,
단지 그것이 거기에 있고 나는 달리 할 것도 없기에
그냥 집어 먹는 것이다.
요컨대 블루베리 쨈을 집어먹는 나의 행위는
나의 퍼스낼러티에 어떠한 영향도, 또한 그것을 표지하는
어떠한 기표도 되지는 못한다는 것.
물론 그것이 내가 '아무거나 별 생각없이 집어먹을 수 있는놈'
정도라는 사실은 말해 줄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영화에서, 주인공의 하루를 잔잔히 잡아준다면,
그리고 거기에서 주인공이 블루베리 쨈을 꺼내 먹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것은 그의 퍼스낼러티와 관련이 있다.
이를테면 남들이 잘 먹지 않는 블루베리 쨈을 먹을만큼
독특한 취향이라던지, 아무 이유없이 쨈을 그냥 먹을만큼
특이한 성격이라던지, 뭐 이런 것들.
것도 아니라면 여자친구가 블루베리 쨈 공장에 다닌다던지,
그의 아버지가 블루베리 쨈 공장으로 해서 벌어먹은 돈으로
그가 놀고 먹는거라던지, 등등 이루 말할 수도 없겠지.
그야말로 무한하다. 말이 되는건 물론 한정되어 있겠지만
그래도 많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에서라면 거기에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의미는 무한하다. 하지만 의미 그 자체에서는
그 무엇도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블루베리 쨈을 먹는 이유는
전적으로 무의미하다.
말그대로 자의적인 만남일 뿐이다.
그곳에 블루베리쨈이 아닌 오렌지 마멀레이드가 있었다면
나는 그것을 먹었을 것이니까.
설령 블루베리쨈이 사라진다 하여도 나는 그냥
의아하게 생각할 뿐 그것을 그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너무 말이 길다.
하지만 차라리 영화는 조금 자유로울 뿐이다.
영화는, 단 한프레임이라고 할지라도 철저히 그것을
의도대로 담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때때로 의미를 벗어난 그 무엇이 담길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런데 문학은?
일찍이 체호프가 '총이 나왔다면, 그 총은 반드시 쏘아져야 한다'
는 식의 말로 천명하였듯이,
훨씬 더 의미의 그물망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그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손에 달린 것이므로.
취사선택의 과정에서 내가 굳이 블루베리 쨈 이야기를 쓴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를 지녀야만 한다.
의미의 압박.
사실 의미란 것은 얼마든지 비껴갈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것은 단지 가능성의 영역일 뿐 실제적인 그 압박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광대한 바다에 빠진 한마리의 파리처럼
그저 허우적대다가, 아무도 알아챌 수조차 없는 사이에
죽어가는 것이다.
문학이 죽어가고 있는건 아니다.
문학이란, 마치 바다처럼 그저 그자리에 있을 뿐이다.
사실이지 사람들이 진짜 바다를 오염시키듯 문학을
오염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정신의 영역이다. 갈수 조차 없다.
단지 문학을 하는 인간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파리처럼 작은 그들이.
아무도 알아보지 않는게 아니라, 일반 사람들이 무지한게
아니라, 그들이 너무 초라한거다.
아무리 인내심을 갖고 동정심을 갖고 찾아보려해도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위에서 똥파리의 반짝이는 엉덩짝,
따위를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은 누구에게도 없으니까.
원래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건 아닌데?
그래. 한가지 간과하여서는 안될 사실은,
문학이란 결국 한 개인이 모든 것을 창조하지만
때론, 아니 종종 그 창조물이 그 개인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신비한 고대 마법의 주문을 외우는 것 처럼,
마법의 강렬함은 그 시행자를 압도한다.
물론 제대로 되었을 때 얘기다.
아무튼,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마치 홍상수의 영화가 '그래보이듯이'
이 현실을 철저하게 그저 재현할 수는 없는가 하는 것이다.
문학으로서.
이 무의미를, 이 우연을, 이 온갖 비루함을.
그저 펼쳐보이는 거다.
전적으로 무의미하게.
오늘도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