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간을 내서 인생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그러니까 공부하기도 바빴던 시절에 영어, 수학이 아닌 '사색'이라는 자족自足적 과목이 있었던거다. 얼마나 진지했는지 단순히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표나 도형, 그래프까지 동원하며 체계화, 이론화 시켜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 덕분에 성적은 곤두박질쳤고, 늦은 밤 부모님은 격려반 감시반의 목적으로 독서실 방문하셨지만, 난 언제나 독서실을 지키고 있었다. 뚜렷한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성적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야단칠 수 없었던 부모님은 그냥, 그냥 바라보셨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나와 함께 했던 그 노트는, 나락으로 추락했던, 그래서 더이상의 바닥은 없을 거라 생각했던 당시의 나에게 찢겨져 버렸다. 공들여 쌓은 모래성이 한순간의 파도로 흔적없이 사라지듯, 처절하게 고민하고 번뇌했던 자취들은 철저하게 찢겨졌다.
이제와서 생각하지만, 난 더 치열했어야 했다. 더 미치도록 생각하고 적었어야 했고, 한두번쯤은 완전히 자아상실했어야 했다. 그리하여 지금 이 시간, 사유思惟와 발현發顯의 괴리를 줄였어야 했다.
무당벌레 한 마리가 플라타너스 나무 위를 올라가고 있다. 얼마나 높은 나무인지도, 얼마나 많은 가지가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위를 향해 올라갈 뿐이다. 이미 수천 개의 갈림길을 지나왔기에 무당벌레가 갈 수 있는 나뭇가지는 한정되어 있다. 땅과 멀어질수록 경우의 수는 줄어들고 기력은 쇠약해진다. 운이 좋게 그는 5693번째 갈림길에서 아름다운 부인을 만났고 7364번째 갈림길에서는 자신을 쏙 빼닮은 아들도 낳았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나뭇가지, 그러니까 14693번 나뭇가지에 올라왔을 때 6개의 다리 중 4개는 이미 그 기능을 하지 못 했고, 젊은 시절 새빨간 등껍질에 또렷하게 찍힌 새까만 점은 그 경계선마저 불분명할 정도로 뿌옇게 번져버린지 오래다. 사력을 다해 나뭇가지 끝에 선다. 바람이 거칠다. 이제 가야할 시간이 왔음을 실감한다. 다리에 힘이 풀려 온전히 균형을 잡는 것마저 힘겹다. 천천히 눈을 감고, 중력에 몸을 맡긴다. 자연과 한몸이 된 그는 철저히 v=gt ,라는 자유낙하 속도를 준수하며 떨어진다. 그렇게 하나의 생이 마감된다.
그 노트에 적혀진 희미하게 기억나는 하나의 이론으로 당시 난 그림까지 그렸었다.
확실한 과거를 거쳐 더 확실한 현재를 살고 있지만, 아직까지 많은 갈림길이 남아있고 과연 몇 번째 나뭇가지에 서게될지 도무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지금의 내모습.
사랑한다.
여전히 불확실한 내 삶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