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라시보 > cry
요즘은 나도 늙었는지 좀처럼 안그러지만. 한때 나는 음악을 듣고 무척 잘 울었다. 상황 때문에 운적은 거의 없고. 그냥 뭐랄까 음악이 나를 울게 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감수성도 예민해주시던 시절의 내가 아닐 수 없다.
우선 나를 울린 음악들.
015B / 그녀의 의자.
아. 공일오비. 할말 겁나게 많은 그룹이다. 신해철의 무한궤도 부터 시작해서 그 무한궤도에서 떨어져 나온 아해들이 만든 공일오비까지 참 지극 정성을 다해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공일오비의 5집인가? 거기에 저 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약간 짱깨풍에다가 무지하게 발음 어눌한 정석원이 노래를 부른 곡이다.(용기백배이기도 하지. 그러나 지도 양심이 있었던지 보코더로 목소리를 많이 건드렸다.) 별 내용 없는 노래인데 그냥 뭐 내 마음속에는 니 의자 즉 니 자리가 있다. 넌 갔어도 나는 니 의자를 놔두겠다 그런 것이다. 근데 저게 어찌나 슬프던지. 정말 들으면서 펑펑 울었었다.
모노크롬 / It's allright
신해철이 넥스트를 결성했다가 해체를 하고 영국에 가서 이름이 겁나게 어려운 주다스프리스트의 기타리스트와 함께 만든 앨범 홈메이드 쿠키에 수록된 곡이다. 언제 한번 언급을 했던것 같은데 저 음악을 들을 당시 나는 무척 어려운 상황이었다. 모든게 다 뜻대로 안되어서 정말 '죽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 그때 저 음악을 들었는데 제목 부터가 잇츠 올라잇이니... 나는 내 모든 고통과 시름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저 음악을 들으며 그야말로 엉엉 목놓아 울었었다. 약간 빠른 템포의 곡이지만 신해철의 음산한 목소리 때문인지 그다지 밝지만은 않은 노래다.
관숙이 / 망기타
아... 한때 이 감독 영화에 우리 모두는 미쳤더랬다. 왕가위. 그의 영화는 모두 감각적인 영상과 끝장나는 음악들이 특징이었는데 나는 왕가위 영화 중에서도 타락천사에 나왔던 관숙이의 망기타를 가장 좋아한다. 여자 주인공이 주크박스에 돈을 넣고 몽롱한 표정으로 1818을 누르면 저 노래가 나왔다. 어떻게 보면 약간 뽕필이 나기도 하지만 나는 아무튼 저 음악은 뽕필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음악은 가사도 원래 그렇지만 남자 문제로 울기 딱 좋은 곡이다.
Cleo Laine / he was beautiful
이 음악은 뭐랄까 약간 고급스럽게 처량하다. 비가올때 들으면 더더욱 좋다. 언젠가 내 친구가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재즈 카페에서 이 노래를 듣다가 울었다. 많이는 아니고 눈물 두 어방울 정도. 그때 친구도 나도 이 노래 때문에 무척 우울한 기분으로 진토닉을 거푸 들이켰었다.
Christina Aguilera / beautiful
이 노래는 비교적 최근에 나온 노래인데. 가사가 괜히 눈물이 났다. 혼자 사무실에 앉아 몇번을 리피트해서 들으면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었다. 이 노래는 내 노래방 18번이기도 하다. 물론 아길레라 아줌마처럼 부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좋아한다. 아. 근데 부르다보면 중간에 합창 비슷하게 나오면서 아길레라가 악을 쓰며 뒷북치는 스타일로 부르는 대목이 있는데 거긴 대체 합창부분을 불러야 할지 아길레라 부분을 불러야 할지 몰라서 그냥 가만히 있는다.
Sade - by your side
이 노래도 죽여주게 슬픈 노래이다. 언젠가 남자랑 헤어지고 좀 힘이 들었을때 집으로 가는 길에 이 노래를 들었다. 그래서 질질 짜면서 집으로 갔다. 울고싶은놈이 뺨 맞은 격이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때 길에서 날 본 사람들은 왠 미친 여자가 시커먼 선글라스끼고 이어폰 꼽고 막 울면서 지나가더라며 자기 친구들에게 얘기 했을것 같다. 시커먼 원피스에 머리도 풀어서 산발을 하고 있었으니 볼만했을 것이다.
Sting / shape of my heart
가을에 이 노래를 들었었는데. 원래 알고 있었던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들리면서 눈물이 났다. 그때 나는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해 일종의 두려움 비슷한걸 느끼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는 충분히 어렸었는데 벌써부터 늙을 걱정을 하고 있었다니...참 걱정도 팔자란 소리가 절로 나는 대목이다. 아무튼지간에 나는 내가 감성이 무뎌져가고 있고 그게 나이탓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길에는 낙엽 뒹굴지 나이는 먹어가지 얼굴은 가을 타느라 까칠하지 이 음악은 흐르지... 대체 내가 우는 것 이외에 뭘 할수 있었겠는가.
이 외에도 마음먹고 찾아보면 많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기억이 잘 안난다. 아무튼지간에 음악을 듣고 울 수 있는건 그리 나쁘지는 않은것 같다. 맨날 현실적인 일로만 울고 짠다면 얼마나 사는게 초라하겠는가. 가끔은 내가 살아가는 현실과 전혀 상관없는 일에도 울어줄 수 있어야 사는게 조금은 덜 비참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