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쎈연필 > 아벨 서점

  헌책방에 일주일마다 가려고 노력한다. 헌책방 가기를 즐기고 헌책방 가는 수고 못지않게 많은 것들을 얻고 배운다. 그중의 하나가 아벨서점이다. 동인천 배다리에 위치하고 있다. 예전 직장은 송내역 근처여서 자주 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독산동에 살고 있어서 다소 거리가 멀어져 수월히 가기에는 좀 부담스럽게 되었다. 그래도 틈나면 즐겨찾는 곳이다. 혼자놀기의 진수, 나에게는 헌책방 가기다.

  아벨 서점에 가려면 꼭 지나는 길이 중앙시장 골목이다. 한복거리로 죽 이어져 있는데 내가 디카를 장만하게 되면 꼭 올리고 싶은 풍경이다. 지금은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해서 상권이 죽어가고 있기에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지만 사무치는 풍경을 종종 본다. 도시에서 시골의 애잔함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삭아가는 시멘트 건물마다 무수히 자라고 있는 식물들과 화초의 풍경이 지금도 생생하다.

  헌책방 다니면서 나름대로의 대박을 많이 찾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한권 한권이 다 대박이다. 절판본이나 구하기 어려운 책들을 운명처럼 그 많은 책 가운데 순간적으로 눈에 띄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의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도록 행복하다. 아벨 서점에서 가장 많이 대박을 찾았다. 서가별로 종류별로 잘 정리되어 있어서 찾아보기 편하다. 주인 아주머니께서 책을 닦으시는 모습을 종종 보는데 너무나 정성스럽게 닦고 계신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인다. 저번 주에는 사람들이 제법 많이 계셔서 기분이 참 좋았다. 사실 보물 같은 헌책방을 발견하게 되면 입소문이 나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솔직히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순간적인 소망일뿐이고, 많은 사람들이 저렴하고 좋은 가격으로 자신과 인연이 맞닿는 책을 발견하고 사람과 책이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내일도 한번 들러봐야겠다. 헌책방에 들렀다가 우연히 아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면 너무나 행복한데, 그런 경우는 별로 없다. 앞으로 자주 책과 사람이 만나는 풍경이 많아지길 희망한다. 나는 헌책을 사고 나올 때 반드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드린다. 그건 싼 값으로 책을 샀다는 흐뭇한 마음 때문이 아니라 그분들의 책에 대한 애정과 따스하고 정성 담긴 손길과 헌신적인 마음에 대한 인사다. 세월이 오래 지나도 그분들과 헌책방을 볼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 힘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많은 분들의 참여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래의 글은 아벨 서점 주인 아주머니께서 쓰신 글이다. 오마이뉴스에서 옮겼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쥐뿔도 모르는 행정과 무책임하고 한심스러운 지원이 오히려 독이 되는 상황이다.



저희는 인천시 동구 금곡동 배리에서 헌책방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저희 '배다리 헌책방 상가 연합'은 몇 십 년 전부터 한 곳에 머무르면서 헌책을 팔고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면서도 언제나 어렵고 고달픈 상황이었지만, 헌책에 대한 애정 하나만으로 지금까지 왔습니다.


저희들은 힘든 상황에서도 상가 임대료, 인건비, 창고세를 비롯해 각종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하면서 장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은 보이게, 보이지 않게 아주 많습니다. 책을 수거해 오는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 중간상인들과 그들의 가족, 직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포함해서 배다리만 해도 약 100여명의 생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최근 들어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중구 자활후견기관이 새로운 사업의 일환으로 이 거리에 서점을 개설할 예정에 있다고 합니다. 저희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아 무어라 말하기 힘들 지경입니다. 불경기의 직격탄을 받아 가뜩이나 힘든 저희는 어찌 살아야 하는지 참으로 갑갑하고 막막한 일입니다.


헌책방거리나 책마을을 만드는 일은 신중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국가 예산이 생겼다고 해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헌책방 단지를 만들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책을 읽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헌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은 헌책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파는 가게에서 책을 고를 수 있길 바랄 것입니다. 단언컨대, 헌책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있는 사람만이 헌책을 팔 수 있습니다.


저희는 50여 년 동안 책에 대한 애정을 끌어안고 헌책방을 힘겹게 지켜왔습니다. 다른 장사도 그렇겠지만 특히 저희 헌책 장사는 책 한 권 한 권이 몸의 노동으로 되어진 책몸들이라는 걸 말씀드립니다. 처음에는 두 손으로, 그 다음에는 자전거로, 지금은 겨우 오토바이 정도나 개인 용달을 이용하여 책을 나르면서 장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구 자활후견기관의 거대 자본과 차량, 후원받은 책과 유급인력이 이 거리를 누빈다니, 그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난 50여 년을 오직 두 손과 두 발로만 노동했던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매몰시킬 수 있다는 것을 중구 자활후견기관은 모르고 있습니다.


보기에 하찮을지 모르지만 저희는 책에 녹아 있는 혼을, 선인들의 숨결을 팔고 있는 것입니다. 물건이 고여지는 절차와 돈이 고여지는 절차, 이것은 세월이고 혼의 고임입니다. 이 모든 것을 뚝 건너뛰어서 기관의 차량과 후원받은 차량으로, 또한 지원받은 유급인력과 자본으로 사업을 한다고 하는 것은 혼이 빠진 상행위인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정부가 어떤 기관을 갑자기 만들어 놓고, 머리로 사는 사람들의 소산물인 서민 자활을 내걸고 또 다른 서민을 죽이는 놀이이며, 생명 경시의 표출인 것입니다. 책장사가 책 문화를 펼칠 수 있고, 떡장사가 떡 문화를 펼칠 수 있고, 시장의 할머니들이 시장의 문화를 일궈내어야 합니다.


그 힘은 머리로 하는 기획이나, 어떠한 다른 일을 하던 사람들이 와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 몸담아 살던 이들만이 내뿜을 수 있는 멋과 맛입니다.


장맛도 농익어야 제 맛을 내듯, 배다리 헌책방 골목뿐 아니라 우리나라 곳곳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의 오랫동안 배어 있는 멋과 맛이 살아나야 나라의 힘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저희는 내가 사는 조국에 문화의 힘이 회복되길 감히 바랍니다. 혼이 빠진 상행위는 이 땅에 발붙여서는 안 됩니다.


책은 단순히 물건이 아닙니다. 혼들의 외침이고, 혼들의 노래이고, 선조들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책을, 살아 있는 혼을, 살아 있는 가슴에 온전히 전해야 할 의무가 저희에게 있습니다. 그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 2004.3.21. 곽현숙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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