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려오는 전화와 프린터에서 쉴 새 없이 뽑아내는 출력물로 오후 이 맘때 책상 위는 늘 아수라장이다. 물론 내 정신상태는 말할 것도 없다. 하루 중에 가장 사무적이고, 가장 이성적인 이 시간에 친구 A는 내게 전화를 하고, 난 휴식 중인 친밀감을 음성에 싣는다.

"회사야?" A는 잠시 망설이다 말을 꺼낸다. "응, 회사지. 일 안해?"

A는 사업을 한다. 하지만 사업이란 말은 너무 사치스러운 표현이다. 그냥 후라이드 치킨집이다. 아니 튀긴 닭가게.

"어... 오늘 쉴려고." 힘이 없다. 늘 밝은 A인데... 난 전화를 머리와 어깨 사이에 낀 채 이제 좀 가닥이 잡힌 데이터 정리에 여념이 없다. "그래." 그는 어렵게 얘기하고 난 너무 쉽게 말한다.

"헤어졌어." "뭐? 뭐라고?" 때마침 빗나간 버린 수화기와 내 청력은 A에게 상처를 준다.

"헤어졌다고."

한 3년전에 A는 옷가게를 하는 B와 사귀기 시작했다. B는 맘이 넓었고 생활력도 강했다. A가 어느정도 기반이 잡히면 분명히 둘은 결혼하리라 생각했다. A도 나도 어쩌면 B도.

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아니, 말이 필요 없었다.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전화기 저편의 음성이 젖어 있다.

A가 내게 눈물을 보인 건 10년 할아버지의 장례 이후 처음이다.

"그럼. 당연하지." 난 이렇게 말했지만, A의 흐느낌에 묻혀 버린다.

그 후 몇마디 말이 오가고 우린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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