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좀 지겨워지기 시작할만 하니까 날이 개었다. 비오는 날엔 물에 젖은 솜처럼 축 늘어져 손 까딱하는 것도 힘겹게 느껴진다. 이런 이유로 미뤘던 일들이 차곡차곡 책상 위에 쌓여 있다. 점심을 먹고 인스턴트 커피를 홀짝이며 책상 앞에 앉는다. 마우스 운신의 폭이 책상 위의 유일한 공간이다. 커피잔을 놓자 그것마저도 이내 사라져 마우스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오후 한시부터 두시까지는 정적인, 차분한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뜻대로 된 적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적다. 벌써부터 오피스 내음 물씬 풍기는 소리들이 몰려온다. 같은 벨소리라도 사무실 안에서는 형식적이고 같은 말이라도 사무실 안에서는 건조하고 온기 없다.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본다. 비오는 날 습도 100%, 이런 하늘을 가진 날은 한 80%정도 되리라. 문득 어젯밤 강행했던 빨래들이 걱정된다. 왜 갑자기 빨래가 하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하고싶은 일 중에 빨래가 있다는 게 신기하고, 기특하고, 우울하다.

막강 편지부 다영이의 메일을 확인한 건 빨래를 다 널고 성취감에 젖어있을 때였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메일은 날 기쁘게 한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야학'에서의 '야'자에 관한 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줄바뀜 없이 길게 늘어진 글... 아마 다영이는 긴 문장을 좋아하는 듯 하다. 그 덕분에 읽다가 숨차 죽는 줄 알았다. (믿거나 말거나^^)

커피 한 잔을 마셨고, 신발을 두어번 신었다 벗었다 했고, 다리를 수차례 꼬았다 풀었다 했지만 여전히 습도 80%의 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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