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과 홈페이지에 올린 글입니다. 게시판의 안전한 존치가 의심스러워 이곳에 보관합니다.
작성일 2002. 8월경
오랜만입니다.
이게 얼마만인지......
전 수원에 있습니다. (아직까지 모르는 사람이 정말로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밤중에 전화 걸어서 술마시러 (서울로) 나오라는 협박 가까운 고통을 제게 주지 않기를.....)
수원에 직장이 있기 때문이죠.
그럼 수원시민이냐고요?
정말 위험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수원시민은 아닙니다.
수원에 직장이 있고 수원에서 살고 있는데 수원시민이 아니라면......
장상 총리지명자의 발목을 잡은 그 무서운 "위장전입(여기서 위장전입이란 법적 검토가 수반되지 않은 상식선의 의미로서 법조계 종사자 여러분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랍니다)"이냐고요?
부의 증식을 위해, 귀족 자동차 번호를 위해, 높은 학군 때문에 위장전입을 했냐고요?
고발하지 않을 테니 지금이라도 빨리 본 주소지인 서울로 오라고요? (허걱)
아~~~ 여러분......
이제부터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셔도 좋습니다.
그럼 꼬인 듯 얽혀있는 위장전입과 도덕성의 매듭을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의 증식...?
富라고요?
생계를 위해 허리끈 바짝 조이고, 자존심 싹 버리고, 꼬박꼬박 정부와 은행에게 삥 뜯기는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부의 증식은 신문과 TV에서만 보는 저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단어라 할 수 있습니다.
전 아직까지 월급이 오르면 식료품 비 지출을 더 늘리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귀족번호...?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죠.
서울시 강남구 자동차번호(서울55)를 받기 위해 강남구로 위장전입을 한다던데......
저도 차는 있습니다. (제 차를 보고 이것도 차냐? 라는 사람이 있었죠. 한 명이었다면 말도 안 합니다.)
앞 유리의 중간에 유리창 폭의 2/3에 달하는 깊은 상처가 있고,
뒤 범퍼는 달려있다기 보다는 걸려 있고,
정지한 수만큼 시동이 꺼지는(물론 지금은 고친 상태지만)
그런 찹니다.
더 이상 목이 메여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높은 학군...?
이건 언급할 가치가 없군요.
그렇습니다. 전 먹고 살기 위해(너무 비참한가?) 수원에 왔습니다.
전~~~
6시에 일어나 그 시간 수원 인계동에서 용인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복장을 갖춘 후 터덜터덜 숙소를 나섭니다.
아파트 생활에 경험이 없는 제가 이 생활을 한지도 한 반년이 지났고......지금은 어엿한 인계동 주공 아파트 주민의 일원으로 꼬박꼬박 관리비, 물청소 비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덜 깬 잠을 몸에 달고 문 밖을 나가 4층에서 내려간다는 것은 아직도 제게 익숙지 않은 하루의 시작이죠.
계단을 세 번 돌아 주차장에 내려오면 어딘가 어설프게, 엇박자로 세워져 있는 군청색 세피아가 반쯤 감긴 눈을 하고 절 맞이합니다.
(수원 생활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대중교통 이용자에서 오너 드라이버로의 수평적 이동도 빼놓을 순 없겠죠.)
전 열쇠 고리를 검지에 낀 채로 빙그르르 두세 바퀴를 돌린 후 이 녀석에게 새로운 아침을 선물합니다.
운전석에 앉아 양쪽 사이드 밀러를 확인하고 안전벨트 고리를 연결한 후에야 비로소 열쇠를 꽂아 시계방향으로 비틀죠.
이미 오래 전에 정년 퇴직했을 제 승용차는 털털털 소리를 내며 곧 숨이 넘어갈 듯 몸을 부르르 떨다가 다시 우-웅 소리를 내며 새 삶을 시작합니다.
후진으로 주차장을 유유히(움직임이 한가하고 느리게) 빠져 나와 약 500m거리에 있는 백화점 꼭대기 수영장으로 향합니다.
출구와 입구가 분리돼 있는 백화점 주차장은 저처럼 노란 딱지를 붙이고 다니는 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특혜라 할 수 있죠. 구불거리는 내리막길에서 나를 향해 달려오는 차가, 내가 피해야만 하는 차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요즘 제가 정말 열심히, 온 정력을 다 바쳐 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그건 바로 수영이랍니다.
수영을 시작한지 어언 5개월...
처음엔 몸이 자꾸 가라앉아 좌절도 많이 했었는데......
계속 수영장 물을 마시다 보니 맛도 나쁘지 않고 배도 부르고 해서 빠지지 않고 꾸준히 나갔더니 이젠 수면 위를 자연스레 헤치고 나아가는 모습이 제법 멋있다고들 합니다. (물론 전 제 모습을 본적이 없지만)
그래서 하루에 두 번씩 출근 전, 퇴근 후 수영장에 빠져서 살고 있죠.
수영을 하고 좋아진 게 있다면
첫째, 출근하기 전 상쾌한 아침을 시작할 수 있고
둘째, 퇴근한 후 이 막막한 수원에서 뭘 할까? 하는 고민 따위는 할 필요가 없고
셋째, 점점 나오기 시작하던 배 살이 그 방향을 바꿔 점점 들어가고 있다는 거죠.
물론 이거 말고 더 좋은 점이 많지만 이 정도만 열거하죠.
이 글을 읽는 선후배님들도 시간 있으면 수영배우세요.
(교수님! 여기까지 읽고 읽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지 마시고 수영 배우세요^^ 아마 교수님은 잘 뜰겁니다.)
연락하지 않은 만큼 긴 글이었습니다.
이글은 그 동안의 무심함을 용서 받으려는 간사함에 기인하지 않음을 명백히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