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문제설정을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전 이 부분을 이해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질문을 잘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청년 실업 문제'를 예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이데올로기적 문제설정을 통해서 나올 수 있는 질문은 이렇습니다. 


"청년들은 왜 취업을 못할까?"


문제의 틀을 개인의 능력과 태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자리가 충분한가?, 노동시장 구조는 어떤가?, 교육시스템에 문제는 없는가? 같은 질문이 들어갈 자리는 애초에 없습니다. 


과학적 문제설정으로 전환한다면 이렇습니다. 


"청년 실업을 야기하는 구조적 매커니즘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이 나올 경우, 사업구조 변화, 비정규직 확대, 교육과 노동시장의 미스매치 등 나올 수 있는 해결책은 폭넓고 다양합니다. 


이렇듯 우리가 어떤 사안이나 현상을 보고 의문을 갖게 될 때,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방향성과 해결책 등이 확연히 달라지게 됩니다. 

사안의 본질과 핵심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노력하고 연습해야 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매우 중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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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ano避我路 2025-12-11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난에 대해서 논의할 때, 이런 질문은 어떨까요?

이데올로기적 문제설정은 이렇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특성은 무엇인가?˝

이런 대답이 나올 수 있겠죠.
˝교육 수준이 낮다˝, ˝저축을 안 한다˝, ˝무계획적이다˝

여기서의 문제는 증상(가난의 결과로 나타나는 특성들)을 원인으로 뒤바꿔놓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과학적 문제설정은 이런 게 아닐까요.
˝가난이 만들어지고 대물림되는 사회적 메커니즘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양하겠지만, 임금구조, 교육 기회 불평등, 자산 축적의 세습... 이런 것이겠지요.
교육 수준이 낮은 건 가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문제설정이 이렇게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