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의 몸(원제: Eve's Rib)>의 저자 매리앤 리가토 박사가 이화여대에서 특강을 했다.
번역가로서 번역한 책의 저자를 직접 만나는 것은 분명 흔치 않은 행운일 것이다.
번역을 하는 동안 저자와 번역가는 아주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전적으로 일방적인 관계이지만.^^)
만일 내가 어떤 책을-원서든, 번역서든- 그냥 독서의 대상으로 읽을 때는 그 책과..또 그 책의 저자와 "연애"를 하는 느낌이다. 가볍게 시작하고 즐기고, 만끽하고, 괴로운 부분들은 skip해 버리면 그만이다. 그리고 영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 중간에 그만둘 수 있다.
하지만 번역하는 책은 전혀 다른 상황이다. 그 책과...또 저자와...일종의 "결혼" 관계로 묶이는 느낌이다. 번역이 끝날 때까지 싫든 좋든 진하고 끈적끈적한 관계를 이어가야만 한다. 한 패러그래프, 한 문장, 한 단어....도 싫다고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겉보기엔 멋지구리한 남자가 알고보니 치약짜는 습관이랑 양말 벗어놓는 습관이 드럽기 짝이 없어 정이 뚝 떨어지듯...너무 고생시키는 사소한 대목때문에 저자에게 증오감(--;;) 마저 느낀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그냥 연애만 했을때는 얻지 못했을 경험......한 문장 한 문장 같이 고민하고 헤쳐나가면서 진정한 그 책과 저자의 진국을 맛보는 행운 역시 번역자의 특권이다....그리고 역시 연애와 달리 결혼처럼....그 무서운 "정"이 들어버리는 것이 덤이라면 덤이겠고...
그런만큼....저자를 만나는 일은 가슴 설레는 일이다.
사실 <이브의 몸>은 정보 전달 위주의 책이니만큼....조금 학술적이고 건조한 분위기이고.....글도 깔끔하고 정확해서 별 고생 없이 번역했던 책이라...저자에게 특별한 호오의 감정은 남지 않는 편이었다.
오늘 강연에서 만난 저자의 모습 역시...지적이고 자신감 넘치고 명확하고...똑 소리가 절로 나는 멋진 여성이었다.
강연 내용은 거의 책의 내용을 축약한 것이라 이해가 쏙쏙 되었으나...(으흠~ 나으 리스닝 실력은 녹슬지 않았어!)
뭔가 던지고 픈 질문도 있었고 강연 뒤에 환담도 나누고 싶었으나...정말 입이 안떨어졌다. (스피킹 실력은 녹이 쓴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휘발해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도다...)
그냥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 책(원서)에 사인을 받고 황급히 자리를 빠져나와버렸다...ㅠ.ㅠ
어찌되었든...
기쁘고 보람있는 하루였다. (<-초딩일기체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