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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 연습 -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순간
니콜라 노바 지음, 성귀수 옮김 / 책사람집 / 2026년 9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관찰은 타고난 감각이 아니라 훈련으로 습득하는 체계적인 기술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관찰 연습』.
"저 사람은 눈썰미가 좋아"라는 말을 흔히 사용하듯 우리는 관찰력을 타고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관찰 연습』은 반복 가능한 훈련의 문제로 옮겨 놓습니다. 운동을 하면 근육이 생기듯 관찰도 방법을 알고 횟수를 채우면 늘어난다는 겁니다.
인류학자 니콜라 노바(Nicolas Nova)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두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며 기술과 환경의 변화가 삶과 문화를 어떻게 바꾸는지 연구해 온 학자입니다. 스마트폰과 AI, OTT 등 시각 정보가 범람하는 사회에서 인간의 지각 능력이 심각하게 둔화되고 있음을 경고하며 이를 감각의 위기와 상상력의 붕괴로 진단했습니다. 2024년 12월 31일 오만 탐사 활동 중 세상을 떠났고, 이 책은 유작이 되었습니다.
관찰이라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요? "잘 보세요"라는 말은 사실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다이어트 중인 사람에게 "적당히 드세요"라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관찰 연습』은 무엇을 볼지, 어떤 조건에서 볼지, 어떻게 적을지를 쪼개서 알려 줍니다. 조르주 페렉이 강조한 "작은 숟가락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법"처럼 무심코 지나치던 평범한 일상을 독창적인 창작과 기획의 자산으로 전환하는 19가지의 프로토콜을 소개합니다.

이 책의 탄생 비화가 재밌습니다. 『관찰 연습』은 저자가 밝히듯 레몽 크노의 명작 『문체 연습』을 시선의 차원으로 옮겨온 결과물입니다. 레몽 크노가 버스 안에서 일어난 극히 평범한 하나의 사건을 99가지 서로 다른 문체와 글의 형식으로 변주해 내며 다채롭게 포착했듯, 니콜라 노바는 이 실험적 방법론을 계승하여 19~20세기 개념예술의 규칙과 조르주 페렉 등의 전략을 바탕으로 일상의 사물과 현상을 다각도로 관찰하고 기록하는 19가지 시선의 프로토콜로 재탄생시켰습니다.
레몽 크노의 『문체 연습』이 하나의 상황을 문장의 형식으로 다변화해 독창적인 감각을 깨웠다면, 니콜라 노바의 『관찰 연습』은 동일한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거리와 자세, 기록의 방식을 다각화함으로써 무심했던 일상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패턴과 의미를 발견하게 만드는 지적 훈련이라는 점에서 유전적 계보를 공유합니다.
『관찰 연습』은 관찰이라는 행위를 감상에 머물게 하지 않고, 자료 생성(Production) → 상호 작용(Interaction) → 편집 작업(Compilation)이라는 단단하고 실용적인 3단계 시스템으로 구축했습니다.
관찰이라고 하면 보통 가만히 지켜보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동물 다큐의 카메라맨처럼요. 그런데 저자는 보는 사람이 장면 안으로 들어가고, 심지어 장면을 건드려 봐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화면 속 세상을 관람하는 데 너무 익숙합니다. 스크롤 하는 손가락은 세계를 건드리지 않고, 세계도 나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안전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 책이 말하는 관찰은 나도 변하고 세계도 달라지는 쌍방향 행위에 가깝습니다. 관찰자의 자리를 재설정합니다.
출근길, 자주 가는 카페, 책상 위 물건이 곧 관찰의 현장입니다. 우리는 여행을 가야 비로소 눈이 열린다고 믿습니다. 낯선 도시에서는 간판 글씨 하나에도 감탄하면서, 매일 지나는 우리 동네 편의점 앞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이 책은 여행자의 눈을 집 앞으로 가져오라는 쪽에 가깝습니다. 비행깃값은 안 들고요.
대화 일람표, 동작과 자세, 구석구석, 사물 데이터베이스 만들기, 관용어 모음. 하나같이 거창하지 않고, 어딘가 귀여운 데가 있습니다. 내 책상 위의 볼펜과 머그컵과 충전기를 학술 대상처럼 취급하는 장면을 상상하면, 이미 관찰은 시작된 셈이니까요.
연습 15 테마 편집 편에서는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버지니아 울프의 비망록을 모델로 삼아 잡다한 수집품에 새로운 미학을 부여하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저자가 자신의 스마트폰 메모장에 태양계라는 테마를 만들고, 거기에 태양광 관련 기사, SF 소설 솔라펑크 문구, 노마딕 워커의 인용문 등을 모아두었던 실제 사례를 소개하며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도와줍니다. 관찰된 단편들을 한데 묶어 새로운 맥락과 아이디어를 창출해 내는 편집자적 시선의 가치를 보여줍니다.
저자는 일찍이 감각의 위기와 상상력의 붕괴를 예감했고, 관찰하는 능력을 인간적 감수성의 필수적인 조건으로 강조했다고 합니다. AI 시대의 진짜 위험은 틀린 답보다 대신 봐 주는 편안함일지 모릅니다. 요약본이 있으면 원문을 안 읽게 되고, 이미지 생성기가 있으면 머릿속으로 그려 보지 않게 됩니다. 이때 약해지는 건 지식이 아니라 보는 근육입니다. 계산기가 나오면서 암산이 약해진 것처럼요.
그렇다면 관찰 훈련은 AI와 경쟁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정반대입니다. AI가 못 하는 일, 곧 '나'라는 구체적인 몸이 이 순간 이 장소에서 마주친 것을 감각하는 일을 지키려는 시도에 가깝습니다.

저자는 "관찰이란, 우리의 감각이나 기억의 허술함을 벗어나 방점을 찍을 만한 일들을 기록하고 소통하는, 보다 더 확실한 방법을 찾는 일이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허술함'이라는 표현이 와닿았습니다. 저자는 관찰을 눈으로 보기에서 끝내지 않고 지도, 목록, 용어집, 말풍선, 도면 같은 틀에 담는 일까지 확장합니다.
"마음의 눈으로 보세요"가 아니라 "당신의 기억은 믿을 게 못 되니 적어 두세요"라고 하는 셈입니다. 아날로그적이기도 합니다. 기록하는 순간 흐릿한 인상이 문장이나 표로 바뀌고, 그때부터 비로소 남과 나눌 수 있는 자료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관찰의 궁극이 정보 수집이나 아이디어 발굴이 아니라 실존하는 방식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조금 거창하다 싶었지만, 읽다 보니 이해가 됩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 곁에 있는지를 알아차리며 사는 것, 그게 곧 '여기 있다'는 감각이니까요. 생산성 도구로 포장하기 쉬운 주제인데, 이 책은 끝내 그쪽으로 기울지 않습니다.
최근에 읽은 『패치 인류세』 저자인 인류학자 애나 칭에 대한 언급도 반가웠습니다. 애나 칭이나 바티스트 모리조, 로맹 베르트랑 같은 작가들이 강조하는 생명 세계로의 시선 확장을 끌어옵니다. 오늘날 지구를 채운 생물의 다양성에 주목하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며, 이에 대해 애나 칭은 섬세한 관찰을 알아차림의 기술이라 칭하며 끊임없이 갈고닦아야 할 긴요한 능력으로 강조한 바 있습니다.
니콜라 노바 역시 문제의식을 받아들여, 단순히 사물이나 기계를 관찰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생태계와 주변의 미세한 존재들, 그리고 기계·기술적 환경에까지 주의력을 복원시키는 일이 AI와 정보 과잉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다움의 필수 조건임을 일깨워 줍니다.
『관찰 연습』은 한 번 읽고 책장에 꽂는 책이 아니라 자주 펼치며 숙제하는 책입니다. 19가지 과제는 읽는 시간보다 해 보는 시간이 길어야 제값을 합니다. 기록하고 분류하는 습관은 아이디어 발상, 글쓰기, 리서치에 두루 쓰일 수 있습니다. 관찰이 곧 질문하는 기술이라는 깨달음도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