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잊는 것이 아니다
김수진 지음 / 부크크(bookk)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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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지워야 할 부채가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는 삶의 자산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김수진 시인의 시집 『슬픔은 잊는 것이 아니다』.


“잊어버려”, “털어버려”, “시간이 약이야”라는 말로 자신의 아픔을 제대로 마주할 겨를도 없이 감정을 서둘러 급속 냉동시켜 버리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정말 슬픔을 지워버리는 것이 건강한 삶일까요? 슬픔이라는 감정은 우리 삶에서 퇴출해야 할 부작용에 불과한 것일까요?


문학고을 강원지부에서 활동하며 다사로운 온기와 솔직한 시어로 자신만의 시 세계를 다져온 김수진 시인. 우리가 매일 스쳐 지나가는 소박한 일상의 사물들을 통해 감정의 진짜 얼굴을 드러냅니다. 슬픔을 안전하게 소유하고 항해하는 법을 이야기합니다.





슬픔을 망각이 아닌 보유로 바라본다는 관점이 독특합니다. 시인은 슬픔을 부정하거나 빨리 털어내려 애쓰는 대신, 슬픔이 내 삶의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하나의 온기나 가락으로 변형되는 과정을 가만히 관조합니다.


시 「뾰족구두」는 우리 모두의 페르소나에 대한 은유입니다. 남들에게 멋지고 예쁘게 보이기 위해, 타인의 시선에서 자부심을 얻기 위해 우리는 매일 아침 불편하고 위험한 뾰족구두를 신습니다. 먼 시선 속 멋진 나를 유지하기 위해 발가락이 비틀리는 통증을 참아내며 곡예를 하듯 걸어갑니다.


시인은 편안한 납작이(단화)나 운동이(운동화)를 그리워하면서도, 뾰족구두가 주는 아찔한 유혹과 매력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우리들의 이중적 심리를 포착합니다. 당신은 지금 누구를 위해 그 위태로운 곡예를 이어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타인의 시선을 위해 견뎌내고 있는 숨은 아픔들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이 시집에서 가장 제 마음을 두드린 시는 「숨죽여 우는 새」입니다. 소리 없이 숨죽여 우는 울음 같은 건 없다는 문장에서 한참을 머물게 됩니다. 울지 말고 강해지라고 압박하는 사회에서, 그러나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숨을 죽인 채 아파하는 존재야말로 가장 절실한 삶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이들입니다.


시인은 역설적으로 숨죽여 우는 새는 없다는 통념에 맞서, 자기 내면의 아픈 울음을 밖으로 꺼내어 놓습니다. 슬픔을 억지로 숨기거나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발산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야말로, 내가 지금 살아있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가 된다는 깨달음을 선사합니다.





시인은 윤동주의 시를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고단한 삶의 무게 때문에 발버둥 치는 대신 자연의 이치에 가만히 몸을 맡깁니다.


소설가 유영준 작가의 소개글에 따르면 김수진 시인은 목소리가 크지 않고 나직나직하게 말하지만 시어 속에서는 포장 없이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는 성향이라고 말합니다. 포장지로 자신을 감싸기보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이렇게 산다"라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시인의 태도는, 역설적으로 거짓 긍정에 지친 이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옵니다.


"옷자락 끝 실밥마냥 나풀거린다"라며 미련을 옷 끝에서 흔들리는 실밥에 비유한 이 문장도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실밥은 잡아당기면 올이 더 풀릴까 봐 건드리기도 애매합니다. 흔히 말하는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정확한 크기가 아닐까요. 완벽하게 비워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시인은 조금은 실밥처럼 나풀거리는 미련을 달고 살아도 괜찮다는 다정한 허락을 건네는 듯합니다.


슬픔과 공존하는 법을 터득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깊고 그윽한 평정심이 시집 전반에 자리 잡고 있는 『슬픔은 잊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시는 감정의 탈출구가 아니라 감정의 착륙지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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