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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치매에 걸리면 이렇게 해 주렴 - 20년 경력 요양보호사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하라카와 다이스케 지음, 서희경 옮김, 카치 데루히코 감수 / 소보랩 / 2026년 10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어느 날 치매 진단을 받은 아버지가 딸에게 건넨 두툼한 봉투. '치매에 걸리면 딸에게 건넬 것!'이라는 글씨와 함께 요양보호사인 아버지가 써 내려간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자신이 기억을 잃어갈 때 딸이 겪을 상처와 죄책감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버지는 자신이 무너지기 전 딸을 위한 가장 따뜻한 방어막을 써둔 것입니다.
초고령화 사회에서 치매와 돌봄은 더 이상 타인의 불행이 아닌 우리 모두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간병의 무거운 짐을 자식이나 배우자 개인의 온전한 희생으로만 메우려다 가족 해체나 비극적 사건으로 이어지는 현상 역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아빠가 치매에 걸리면 이렇게 해 주렴』은 돌봄의 주체와 객체 간의 관계를 현실적이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냅니다. 저자 하라카와 다이스케는 2004년부터 요양복지사, 생활상담사, 케어매니저로서 20년간 다양한 돌봄 현장에서 치매 환자와 가족을 돌본 전문가입니다. 동시에 그는 두 자녀의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현장의 오랜 경험을 축적한 전문가로서의 통찰과, 언젠가 돌봄을 받게 될 당사자이자 아버지라는 개인적 시선이 교차하며 돌봄에 관한 현실적 준비, 그리고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 모두의 존엄성을 지키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아빠가 치매에 걸리면 이렇게 해 주렴』은 돌봄을 받게 될 당사자(부모)가 훗날 돌보게 될 자식에게 먼저 건네는 위로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들려주는 말은 자책 금지입니다.
치매 가족을 돌보는 과정에서 간병인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은 죄책감과 분노라는 감정적 혼란입니다. 부모에게 화를 내거나 지치는 자신을 보며 자책하고, 요양원 등 전문 시설에 모시는 선택을 불효나 포기로 여겨 괴로워합니다. 저자는 스스로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되어 딸에게 "너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다"라는 말을 건넵니다.
어린 자녀를 보육 시설에 보낸 것이 부모의 이기심이나 불법이 아니듯, 치매를 앓는 부모를 요양 서비스나 전문 시설의 도움을 받도록 조치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돌봄의 연장선이라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치매가 진행되면 환자는 자신의 가장 가까운 자식의 이름이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됩니다. 자식의 입장에서는 나를 완전히 잊었다는 상실감에 절망하곤 합니다. 저자는 기억이나 정보로서의 지식은 지워질지언정, 평생 쌓아온 관계에서 비롯된 따뜻하고 그리운 감정의 수신 체계는 끝까지 작동한다는 걸 짚어냅니다.
치매 환자가 보이는 환각이나 거짓말, 돌발 행동에 대해서도 저자의 조언이 유용합니다. 환자의 행동 이면에 자리 잡은 살아온 삶의 이력과 습관, 자존심을 이해할 때 비로소 진실의 잣대로 비난하거나 다투는 무의미한 갈등을 줄일 수 있게 됩니다.
돌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마음가짐뿐만 아니라 제도적 및 환경적 준비가 필수입니다. 저자는 혼자서 모든 간병을 감당하려는 독박 돌봄을 경계하고, 타인의 도움을 당당하게 받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책에서는 이 준비를 위한 현실적인 지침들이 꼼꼼하게 소개됩니다.

『아빠가 치매에 걸리면 이렇게 해 주렴』은 치매 진단부터 간병, 시설 이용, 임종 준비에 이르기까지 감정적, 현실적 여정을 모두 다룹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의 구체적 활용법과 요양 시설 선택 노하우, 주간보호센터 적응 문제 및 운전면허 반납, 가스 불 안전장치 마련 등 물리적·환경적 조치는 물론이고 임종과 연명 치료, 개인의 취향, 생활 습관, 슬픔과 행복을 느끼는 요소를 미리 기록해 둘 수 있는 공유 시트도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읽는 내내 두 가지 입장을 오갔습니다. 부모를 돌볼 자식의 입장과 언젠가 돌봄을 받을 나의 입장이었습니다. 내가 치매에 걸리면 나는 가족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삶과 나의 삶을 동시에 지켜내는 방법에 대한 다정한 안내서입니다. 이 아버지처럼 10년 전에 미리 써둔다는 설정 자체가 와닿았습니다. 정리해 둔다는 건 가족을 향한 배려입니다. 잘 돌보는 법보다 어려운 것은 잘 도움받는 법이 아닐까요? 아버지가 먼저 알려줍니다.
부모의 간병을 맡아 막막함과 죄책감에 밤잠을 설치는 자녀 세대, 언젠가 돌봄을 받게 될 나이가 되어 자녀에게 짐이 될까 두려워하는 부모 세대 모두에게 꼭 필요한 책입니다. 노인 복지 현장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도 치매 당사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정보를 안겨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