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성당 - 빛, 인간을 만나다
강한수 지음 / 파람북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건축은 시대를 가장 정직하게 기록하는 예술입니다. 문학은 해석될 수 있고, 회화는 상징으로 읽힐 수 있지만, 거대한 건축물은 그 시대 사람들이 무엇을 믿었고 무엇을 꿈꾸었는지를 몸집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성당은 언제나 종교시설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강한수 신부의 『르네상스 성당』은 거대한 돔의 구조를 설명하면서도 결국 인간을 이야기하고, 기둥의 비례를 설명하면서도 그 안을 걷는 사람의 감정을 먼저 생각합니다.


건축가 출신으로 국내외 건설 현장을 경험한 뒤 사제가 되었고, 로마에서 신학과 건축사를 함께 연구한 강한수 신부. 제도판 위에서 먹줄을 긋던 손으로 성무일도를 집전하는 사람입니다.


『로마네스크 성당』, 『고딕 성당』에 이어 완성된 중세 유럽 성당 건축 3부작의 마지막 권답게, 이번 책은 약 300년에 걸친 르네상스의 흐름을 피렌체에서 로마, 베네치아를 거쳐 알프스 너머 유럽까지 따라갑니다.


우리는 르네상스를 인간 중심 시대라고 기억합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면 조금 다른 표현이 더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르네상스는 인간이 신보다 높아진 시대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이성과 지성을 통해 신이 만든 질서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한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르네상스 성당은 이전 시대와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집니다. 거대한 돌벽으로 압도하기보다 수학적 비례와 조화를 통해 안정감을 만들어 냅니다. 건축은 감정을 흔드는 장치가 아니라 논리로 아름다움을 증명하는 예술이 됩니다.





저자는 이런 변화를 실제 성당의 평면과 돔, 기둥의 배열을 통해 왜 르네상스 사람들이 원을 좋아했는지, 왜 중앙집중형 공간을 꿈꾸었는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안내합니다.


14세기 초 피렌체에서 단테와 조토가 나눈 우정부터 들려줍니다. 단테는 라틴어가 아닌 피렌체 방언으로 『신곡』을 써서 문학을 귀족의 서재에서 거리로 끌어냈고, 조토는 평면적이던 성화에 처음으로 입체와 표정을 불어넣었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영역에서 기존 규칙의 정당성을 의심하고, 인간의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르네상스 건축의 첫 번째 주인공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입니다. 피렌체 세례당 청동문 공모전에서 공동 당선 판정을 거부하고 홀로 로마로 떠난 그는, 판테온과 콜로세움을 비롯한 고대 건축물을 직접 측량하며 비례 체계를 연구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어디에도 쓸 곳이 없어 보이는 작업이었지만, 그 침묵의 축적이 수십 년 후 인류 건축사의 걸작인 피렌체 대성당의 팔각 드럼 위에 돔을 올리는 방법으로 귀환합니다.


그 귀환의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피렌체 설계위원회 앞에 나타난 브루넬레스키는 주머니에서 달걀 하나를 꺼내 위원들에게 세워보라 했습니다. 아무도 나서지 못하자, 그는 달걀의 밑을 조심스레 깨어 탁자에 세웠습니다.


저자는 이 장면에 대해 "달걀 세우기를 통해 브루넬레스키는 자신의 설계를 명하기에 앞서 그 설계가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만큼 그의 돔 설계는 독창적인 것이었고,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도용됨 없이 온전히 본인의 것으로 인정받아야 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로마로 갑니다. 브라만테,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상갈로 가문의 건축가들이 수십 년에 걸쳐 손을 바꿔가며 성 베드로 대성당을 설계하는 이야기는 건축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브라만테가 구상한 평면은 완벽한 중앙집중형 그릭 크로스였습니다.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아도 동일한 외형을 갖는, 인간의 이성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균형 잡힌 건축이었습니다. 그러나 건축이란 설계도가 아니라 시간 속에 세워지는 것이지요. 교황이 바뀌고, 건축가가 죽고, 종교개혁이 터지고, 로마가 약탈당하는 동안 브라만테의 완벽한 계획은 조금씩 변형되고 타협하며 현재의 모습에 가까워졌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미켈란젤로입니다. 칠순을 넘겨 성 베드로 대성당 총감독직을 떠맡은 그는 이전 건축가들이 훼손해 놓은 구조를 정리하고, 고딕의 구조 원리를 르네상스의 언어로 재해석해 뾰족한 리브 돔을 설계했습니다.


브라만테의 매끈한 반구형 돔과 미켈란젤로의 역동적인 뾰족 돔을 나란히 놓고 저자는 묻습니다. 이 두 돔의 차이는 단순한 취향의 차이인가, 아니면 50년이라는 시간의 차이인가? 대답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르네상스의 확신이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는 시간, 그 변화가 돔의 외형으로 나타난 겁니다.


라파엘로도 건축가로서 새롭게 조명됩니다. 회화의 거장으로만 알려진 그가 어떻게 성 베드로 대성당 설계에 관여했는지, 그리고 키지 경당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회화와 건축과 조각을 어떻게 통합했는지를 보여줍니다. 한 공간에서 예술의 모든 장르가 하나의 신학적 메시지를 향해 수렴하는 경험, 그것이 르네상스 성당이 궁극적으로 지향한 것이었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은 알프스를 넘습니다. 프랑스, 영국, 독일이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각기 달랐습니다. 세 나라 모두 이탈리아의 고전주의를 통째로 이식하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고딕 전통과 종교개혁의 맥락 속에서 필요한 것을 선택적으로 흡수하며 자국의 양식으로 변형했습니다.


파리의 생테티엔 뒤 몽 성당이 고딕 구조 위에 르네상스 파사드를 얹은 것은 어색한 혼용이 아니라, 그 시대 프랑스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건축이었습니다. 이런 관점이 중요하다는 걸 짚어줍니다. 외래 양식을 받아들이는 일은 항상 번역의 문제이고, 번역에는 언제나 번역자의 맥락이 개입한다는 것을요.


종교적 경외를 넘어 비례와 빛의 인문학으로 읽는 성당 건축 대탐사 『르네상스 성당』. 본문에서 다룬 성당들은 지금도 제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 책을 들고 그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성당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기둥의 오더와 돔의 하중 계산을 설명하면서, 창문이 왜 저 방향에 났는지, 제단을 향해 걷는 신자의 신체가 어떤 비례 속에 놓이도록 계획되었는지를 함께 묻는 책. 르네상스 성당이 '인간이 신의 공간을 설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300년에 걸쳐 돌과 빛으로 답한 기록이라면, 이 책은 그 답을 읽어주는 안내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역, 마키아벨리의 문장들 - 권력은 어떻게 태어나고, 무엇으로 무너지는가 철학자의 시선 1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민유하 편역 / 리프레시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15세기 피렌체의 치열한 정쟁 한복판에서 인간의 위선과 권력의 생리를 가장 냉정하게 해부했던 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 외교관이자 정치가로서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어낸 그의 문장들은 도덕을 저버린 냉혹한 권모술수의 상징처럼 오해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민유하 저자의 언어로 재탄생한 『초역, 마키아벨리의 문장들』을 펼쳐 들면,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악의 예찬이 아닙니다. 착각을 걷어내고 인간 사회의 본질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현실주의의 지도와 마주하게 됩니다.


『초역, 마키아벨리의 문장들』은 『군주론』을 포함해 『로마사 논고』, 『전쟁의 기술』, 『피렌체사』 등 마키아벨리의 광범위한 사유를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합니다. 권력이 어떻게 태어나고 무너지는지를 추적합니다. 오늘날 조직과 관계에도 적용되는 진짜 힘의 법칙을 이야기합니다.


리더는 구성원들에게 따뜻하고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규율 없는 호의가 반복되면, 조직은 이내 느슨해지고 위기 상황에서 통제력을 잃게 됩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사랑받는 것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더 나은가? 둘 다 갖추기 어렵다면,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문장을 공포 정치를 펼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오독한 것입니다. 마키아벨리가 강조한 두려움은 감정에 휘둘리는 폭력이나 독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선을 넘거나 규칙을 어기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명확한 대가가 따른다는 인과관계의 명확성이자 흔들리지 않는 규율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호의와 애정은 자신의 손익계산에 따라 언제든 변하기 마련이지만, 시스템이 주는 명확한 경고와 규칙은 예측 가능성을 부여합니다. 감정에 기대는 리더십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질서 없는 자비가 조직 전체를 망치기 전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규칙과 구조로 통치 감정을 제어해야 권력은 비로소 안정성을 획득합니다.


직장 동료나 파트너와의 관계를 논할 때 의리와 신뢰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그러나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영원한 동반자가 과연 존재할까요?


마키아벨리는 로마사 논고에서 "인간은 강제되지 않는 한 결코 선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자유가 주어지고 제멋대로 행동할 틈이 생기는 순간, 모든 것은 순식간에 배신과 무질서로 빠져든다."라고 했습니다.


인간을 본질적으로 이익에 민감하고 계산적인 존재로 파악했습니다. 과거에 베푼 은혜는 현재의 손실 앞에서 쉽게 잊히고, 당장의 필요가 다하면 충성심도 연기처럼 증발합니다.


현명한 리더는 구성원들이 조직의 규칙을 따르고 통제에 따르는 것이 자신에게도 가장 안전하고 이익이 되는 구조를 정교하게 설계해 두는 것, 그것이 진짜 인간을 움직이는 방법입니다.


진심은 언제나 통한다는 말은 현대 비즈니스와 정쟁의 세계에서는 순진한 격언일지도 모릅니다. 마키아벨리는 대중이 권력을 소비하는 방식을 꼬집습니다.


권력은 물리적인 힘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대중의 머릿속에 심어진 이미지와 철저하게 계산된 연출을 통해 철옹성이 됩니다. 사람들은 내면의 깊은 진실을 파고들기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장면과 평판을 먼저 신뢰합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연출하는 동시에, 위기 상황에서는 사자의 용맹함과 여우의 영악함을 번갈아 보여주며 평판을 관리해야 합니다. 리더가 모든 행동의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려 들면 오히려 권위는 가벼워집니다. 때로는 신비주의와 단호한 장면의 연출이 백 마디의 해명보다 적을 먼저 멈추게 만드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우리는 갈등이 없는 상태를 평화롭고 건강한 조직의 징표로 여깁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사에서 조용한 평화의 이면에 도사린 함정을 들추어냅니다. 회의 시간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만장일치로 안건이 통과되는 조직이 있다면, 그것은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 소수의 권력자가 의견을 독점했거나 구성원들이 완전히 무관심해진 상태일 확률이 높습니다.


귀족의 지배 욕구와 민중의 자유 욕구가 거칠게 충돌했던 로마 공화정처럼 건강한 불화와 소란스러운 논쟁은 권력의 독주를 막는 강력한 안전장치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억누르거나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공적인 틀 안에서 해결되도록 제도화하는 것입니다. 긴장과 논쟁이 완전히 사라진 공동체는 내부에서부터 썩어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평화로운 일상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지만, 준비되지 않은 평화는 단 한 번의 외부 충격으로도 산산조각 나는 유리 장식과 같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위기관리의 본질에 대해 짚어줍니다.


군주론에서 "당장의 위험을 모면하려 미루고 중립으로 도피하는 우유부단한 군주는 필연적으로 파멸한다. 지연은 적에게 유리한 상황을 헌납하는 짓이며, 최악의 선택을 강요받게 될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작은 위기가 찾아왔을 때 골치 아픈 논쟁을 피하려고 방치하면, 결국 적이 판을 주도하는 최악의 타이밍에 가장 불리한 선택지를 강요받게 됩니다. 평화는 단순히 바라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닙니다. 평화로운 시기에 끊임없이 전장을 계산하고 내부 리스크를 단호하게 진단해 두는 자, 즉 힘과 질서를 갖춘 자만이 평화를 누릴 자격을 얻습니다.


이상주의자와 몽상가는 세상이 도덕과 정의, 당위성에 의해 움직인다고 믿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냉혹한 현실 정치는 마땅히 그래야 하는 당위가 아니라 실제로 움직이는 사실 위에서 굴러갑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가치와 법률을 내세워도, 그것을 지켜내고 강제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이 없다면 그 가치는 허무하게 짓밟힐 뿐입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라는 특정한 대상을 향해 말을 건넸지만, 결과적으로는 위선의 가면을 쓴 인간 전체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해부해 냈습니다. 따뜻한 위로를 건네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의 겉모습에 속지 않고, 선의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냉혹한 구조를 똑바로 보게 만드는 용기를 쥐여줍니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순진한 태도로는 나를 지킬 수 없다는 뼈아픈 깨달음을 줍니다. 『초역, 마키아벨리의 문장들』은 위선의 안개를 걷어내고 조직의 구조와 제도를 직시함으로써 실용적인 생존 전략과 진짜 리더십의 뼈대를 구축하는 가치를 선사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언어로 살아간다는 것 - 관계, 마음, 나를 만나는 어느 심리학자의 인생 수업
이서원 지음 / 스틸당(STEALDANG)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솔직히 한번 따져볼까요. 하루 중 나는 몇 번이나 내 이야기를 하는지. 단톡방에서 누군가의 소식을 전달하거나 험담하고, 유튜브 알고리즘이 밀어주는 타인의 일상을 구경합니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면 마음이 허합니다. 많은 말을 했는데, 정작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남의 세계 속에서 조용히 증발해가는 자아에서 출발하는 『나의 언어로 살아간다는 것』. 서강대학교 상담심리학 교수로 30년간 3만 명의 내담자를 만나온 심리학자 이서원 저자가 자신의 인생 노트를 꺼내어 펼쳐 보입니다. 아침과 밤, 감정과 후회, 깨달음과 물음표가 뒤섞인 사적인 기록, 치유의 글쓰기를 만나보세요.


"치료는 밖에서 안으로 약이 들어오는 것이고, 치유는 내 안의 상처가 밖으로 나가 스스로 약을 바르는 것"이라는 그의 진단이 울림을 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스스로 쓰고 읽는 자기 치유의 언어입니다.





1장은 아침, 2장은 밤으로 나뉩니다. 아침에는 그날의 감정과 바람을, 밤에는 후회와 깨달음, 관계와 기억을 다룹니다. 이 책은 하루의 리듬을 보여줍니다. 아침에는 '바람역'을 출발하고, 밤에는 '돌아봄역'에 도착하는 겁니다. 각 역마다 스쳐 지나가는 감정과 사연을 글로 붙잡습니다.


2018년부터 저자가 대학원 기말고사 문제로 출제해온 문장이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 묻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답은 다섯 줄이면 충분하다." 오직 자기 자신에게 진짜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다섯 줄로 답하는 겁니다.


"오늘 나는 무엇이 가장 궁금한가?"를 묻고 다섯 줄만 답해보는 방식이 마음에 듭니다. 상담실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탐색과도 닮아 있습니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혼난 하루였다면 대부분은 "오늘 정말 재수가 없었다." 정도로 끝냅니다. 하지만 다섯 줄 질문은 달라집니다. 왜 그 말이 유난히 아팠을까. 나는 무엇을 인정받고 싶었을까. 내가 두려워한 것은 실패였을까, 무시였을까. 이 질문 하나만으로 감정은 사건에서 자신으로 이동합니다. 저자는 이런 이동이 바로 성장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아침의 언어가 희망과 다짐의 언어라면, 밤의 언어는 성찰과 수용의 언어입니다. 밤은 반성의 시간이 아니라 이해의 시간입니다. 하루를 평가하기보다 의미를 발견하는 태도를 강조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자기 이야기를 더 나은 서사로 만들어 더 나은 사람으로 살고 싶어 한다. 다만 나만 그러는 것 같아 주위의 눈치를 보며 안 그런 척하고 살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이 의미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 의미는 거대한 사건보다 하루의 작은 기록에서 만들어집니다. 밤마다 일기를 쓰는 행위는 하루를 다시 살아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표현되지 못한 감정이 신체 증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자주 이야기합니다. 저자 역시 할 말을 하지 못하면 몸이 대신 아프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스트레스가 심할수록 두통이나 위장장애, 수면장애가 나타나는 사례는 흔합니다. 글쓰기는 말하지 못한 감정을 안전하게 흘려보내는 통로가 됩니다.


삶의 돌발 상황에 대한 태도에 대한 이야기가 와닿습니다. 예상치 못한 실패, 계획의 붕괴, 뜻밖의 상실. 이 모두를 저자는 세상 모든 일에는 반드시 교훈이 들어 있다는 오래된 격언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때 글쓰기는 교훈을 의식적으로 붙잡는 행위입니다. 그냥 흘려보내면 상처나 실수로 끝나지만, 글로 기록하면 서사가 됩니다.


저자가 권하는 글쓰기는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길지 않아도 괜찮다."입니다. 감정 일기, 나에게 쓰는 편지, 속담에 댓글 달기, 사진 에세이, 대화 수첩, 배움 일기, 주기週記, 필사책 만들기 등 글쓰기의 형식도 참 다양합니다. 저자는 글쓰기를 삶의 다양한 결을 포착하는 복수의 언어 감각으로 확장합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고, 명답만 있다"라고 합니다. 각자의 경험, 언어, 감정의 결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도달의 과정이 바로 글쓰기입니다.





저자는 또한 "내 경험으로만 쓰면 좁아지고, 남 경험으로만 쓰면 엉성해진다"라며 균형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감정과 타인의 지혜를 함께 버무릴 때, 글은 보편성을 얻습니다. 


매일 다섯 줄이라는 작고 구체적인 실천이 주는 성취감, 글을 통해 자신의 감정 구조를 발견해가는 지적 즐거움을 알려주는 『나의 언어로 살아간다는 것』. 글쓰기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정직한 자기 혁명입니다. 타인의 세계를 소비하느라 헛헛해진 당신에게 필요한 건, 세상의 소음을 끄고 내 언어로 건너오는 시간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산만한 아이의 읽기 쓰기 공부법은 따로 있다 나침반 시리즈 5
이사비나 지음 / 언더라인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전작 『우리 아이가 ADHD라고요?』가 세상의 편견과 싸우는 부모들을 위한 뜨거운 위로였다면, 『산만한 아이의 읽기 쓰기 공부법은 따로 있다』에서는 학교 공부의 가장 근본적인 두 축인 읽기와 쓰기를 통해 무너진 기초 학력을 일으켜 세우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이사비나 저자는 5년간 ADHD 아들과 함께한 눈물겨운 집공부 경험, 그리고 학교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산만한 기질의 아이들을 치유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지식의 습득과 인출이라는 로드맵을 그려냅니다.


아이가 교과서를 펼쳐놓고 멍하니 앉아 있을 때, 부모는 흔히 두 가지 중 하나를 떠올립니다. 집중을 못 하는 걸까, 아니면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걸까.


알림장은 써 왔는데 준비물을 챙기지 못하고, 교과서를 읽었는데 무엇을 배웠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아이. 그 아이는 게으른 게 아니라, 읽고 이해하고 기억하고 정리하는 과정 자체가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짚어줍니다.


문해력이 무너지면 학업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규칙을 이해하는 일조차 버거워집니다. 저자는 주의력 결핍과 전두엽 발달의 지연이라는 관점에서 추적합니다.





전두엽이 담당하는 기능 중에서 주의 집중은 아이들의 읽기 능력과 동기를 좌우한다고 합니다. 전두엽 발달이 느린 ADHD 아이의 학습을 도우면서 우리 아이가 왜 수학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지, 왜 독해 문제집의 지문을 읽어내지 못하는지, 왜 책을 읽자고 하면 울상이 되는지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핵심은 생활문해력입니다. 줄글로 된 긴 책을 읽지 못한다고 해서 아이를 다그칠 필요가 없습니다. 일상의 모든 환경이 훌륭한 텍스트가 될 수 있습니다. 마트, 도서관, 병원 등에서 마주치는 안내판을 사진으로 찍어 "이 표시는 우리에게 어떤 행동을 하라는 걸까?", "여기는 몇 시에 열고 닫을까?" 등의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는 생활표지판 탐험이 대표적입니다.


읽고 쓰기 전에 필요한 건 어휘력입니다. 어휘력은 지식을 담는 그릇이자 사고의 경계선입니다. 어휘의 양과 질이 부족한 아이들은 교과서를 펼쳤을 때 마치 모르는 외국어로 가득 찬 유인물을 보는 듯한 혼란을 경험합니다.


저자는 문맥 속에서 단어의 쓸모를 체득하는 입체적인 어휘 훈련을 소개합니다. 책 속에 담긴 단계별 어휘 활동지를 살펴보면 디테일한 코칭 능력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단어의 뜻을 파악하는 경지를 넘어, 문장 속에서 주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뇌에 어휘의 연결망을 촘촘하게 깔아주는 깊이 있는 접근법을 알려줍니다.


산만한 아이를 위한 읽기 공부법 파트에서는 읽기 유창성을 점검해보자고 합니다. 문장을 ‘매끄럽게 읽을 힘’을 뜻합니다. 정확하고 빠르게 문장을 소화하며 행간의 의미를 눈치채는 감각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먼저 모범적으로 낭독을 해주고 아이가 이어 읽게 하거나, 아이가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 직접 유연성을 점검하는 과정 등을 통해 읽기 브레이크를 부드럽게 해제해 주어야 합니다.


산만한 아이를 위한 쓰기 공부법 파트에서는 쓰기 싫어하는 마음부터 살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만약 아이가 쓰기를 싫어하고, 글씨체가 엉망이라면 기다려야 한다는 신호라고 합니다. 지우고 다시 쓰게 하는 행동을 반복해서 극복하게 하려 한다면 아이의 쓰고자 하는 마음은 영영 생기지 않을 수 있다고 말이지요.


저자는 쓰기 장벽 허물기를 소개합니다. 문장 세 줄 쓰기로 목표를 작게 쪼개거나, 핵심어만 아이가 찾아 적고 나머지는 부모가 대신 써주는 '줄칸 제공하기', 포스트잇을 활용해 가벼운 소통을 유도하는 '포스트잇 쓰기' 등이 해법입니다.


특히 인지적 에너지가 고갈되어 생각이 멈추는 아이에게는 말을 먼저 유도하고 부모가 받아 적은 뒤 이를 다시 보고 쓰게 하는 말하기 기반 쓰기 전환법이 특효약입니다. 글씨체 교정 역시 강압적인 교정이 아닌 학년별 맞춤형 공책 가이드를 매칭해 주면 좋습니다. 





노트 정리는 복잡한 지식을 나만의 메타인지 필터로 여과하여 뼈대만 남기는 최고의 고등 사고 훈련입니다. 읽기와 쓰기가 서툴기 때문에 오히려 노트 정리는 꼭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산만한 아이에게 무턱대고 노트를 던져주면 백지 공포증에 시달립니다.


최소한 아이가 쓰기 거부감이 없고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의 학령기에 접어들었을 때 코넬 노트법이나 시각화 노트를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합니다. 그 전 단계까지는 읽기 유창성과 어휘력을 기르는 기본 근육 형성에 올인하라고 합니다.


책에서 예시로 보여주는 생각 정리 기술들은 다양합니다. 마인드맵, T-차트의 2분할 표, 원 형태의 벤다이어그램 등 시각적 맵핑 과정들을 하나씩 소개합니다. 받아쓰기, 띄어쓰기, 일기 쓰기로 이어지는 쓰기 숙제 잔혹사는 매일 밤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는 주범이지요. 학교 수업을 돕는 쓰기 연습에 대한 조언도 실용적입니다.


방법이 없었던 게 아니라 방법을 몰랐던 것을 짚어주는 『산만한 아이의 읽기 쓰기 공부법은 따로 있다』. 산만한 아이에게는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한 게 아니라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의 수용소 이후 - 빅터 프랭클이 남긴 인생 강의
빅터 프랭클 지음, 유영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삶이 주는 조건보다 그 삶에 대하는 우리의 응답이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책 『죽음의 수용소 이후』.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로 먼저 각인되어 있지만, 이 책은 과거의 경험을 답습하지 않습니다. 비극을 관통한 이후 수십 년 세월 동안 정신과 의사이자 철학자로서 다듬어온 생각들이 응축된, 프랭클 사상의 진정한 완결판이자 인생 강의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비극이었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그곳에서 번호표를 단 채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오스트리아의 신경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Viktor Emil Frankl).


그는 빈 대학교 교수이자 25년간 빈 신경정신과 병원 원장으로 재직하며 '로고테라피(의미치료)'라는 심리치료학파를 창시한 거장입니다. 1997년 92세로 타계하는 순간까지 인간이 마지막까지 지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증명해 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 이후』는 1946년부터 1984년까지 남긴 네 편의 결정적 강의 원고를 엮은 책입니다. 생생하고 대화하듯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읽다 보면 오랜 세월 삶을 연구한 한 노학자가 조용히 질문을 건네는 시간을 함께하는 기분이 듭니다.


이번 한국어판에는 특별한 선물이 숨어 있습니다. 빅터 프랭클의 손자이자 영화감독 겸 심리치료사인 알렉산더 베셀리 프랭클의 특별 서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손자의 고백을 통해 우리는 위대한 사상가의 이면에 숨겨진, 지극히 인간적이고 따뜻했던 한 남자의 실존을 마주하게 됩니다.





1950년대 초, 프랭클은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아우슈비츠가 있습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가장 힘들게 다가오는 일이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에 비하면 작아 보일지 몰라도, 그건 그 사람의 인생에서는 가장 힘든 경험인 것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보며 "고작 그런 일로 힘들어하냐"라며 고통의 무게를 계량화하곤 합니다. 그러나 빅터 프랭클은 고통의 절대적 양을 비교하는 잔인한 짓을 멈추라고 했습니다. 골방에 갇힌 청년의 우울도, 직장을 잃은 가장의 절망도, 실연의 아픔도 각자의 우주에서는 저마다의 아우슈비츠라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서문에서 토비아스 에슈 교수는 프랭클의 사상이 오늘날 지닌 현재성을 뇌과학과 행복 연구의 관점에서 재해석합니다. 현대인이 겪는 무기력과 권태가 외적 환경이 아닌 내적 의미의 상실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하며, 프랭클이 이미 70년 전에 내린 진단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첫 번째 강의는 현대인이 겪는 공허를 분석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물질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완벽하게 빈곤한 상태. 이를 실존적 공허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삶의 방향을 잃기 쉬운 시대가 되었다고 진단합니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장면은 어렵지 않게 발견됩니다. 원하는 회사에 입사했는데도 허무함을 느끼는 직장인, 수많은 '좋아요'를 받지만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 스펙은 화려하지만 삶의 목적을 설명하지 못하는 청년들까지 말입니다.


프랭클은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근원적인 동력이 프로이트가 말한 '쾌락의 의지'도, 아들러가 말한 '권력의 의지'도 아닌, 바로 '의미에의 의지'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공허가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바라봅니다. 그래서 문제를 없애는 것보다 질문을 바꾸는 일이 중요해집니다. 성공을 위한 기술보다 존재의 이유를 먼저 묻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독한 공허를 넘어 의미를 움켜쥘 수 있는 실천적 방법론은 무엇일까요? 두 번째 강의는 프랭클 사상의 중심축인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행복을 직접 붙잡으려 할수록 오히려 멀어진다고 말합니다. 의미 있는 일을 하다 보면 행복은 뒤따라오는 결과라는 것입니다.


행복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목표를 세우지만, 목표를 달성한 직후 다시 허무함을 느끼곤 합니다. 프랭클은 그 이유를 외부 성취가 아니라 삶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가 비어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그가 제시하는 의미는 거창한 사명이 아닙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책임 있게 수행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 피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도 인간다운 태도를 잃지 않는 것 모두가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철학은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입니다.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정답을 제시하지 않고, 각자의 삶에서 발견해야 할 질문을 남겨 줍니다.


세 번째 강의는 자유와 책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인간의 자유를 무한한 가능성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환경은 언제든 인간을 제한할 수 있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는 자유만큼은 끝내 남아 있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회사, 가족, 경제적 현실처럼 바꿀 수 없는 조건을 자주 만납니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절망만 바라보고, 어떤 사람은 그 안에서 새로운 길을 찾습니다. 프랭클은 바로 이 차이가 인간의 자유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유를 이야기하면서 반드시 책임을 함께 언급합니다. 선택에는 결과가 따르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 역시 자신의 몫이라는 사실을 그는 끝까지 놓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의 철학은 위로만 건네지 않습니다. 동시에 성숙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책임도 요구합니다.


인간의 삶이 가치 있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삶이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오늘의 선택은 아무런 긴장감도, 책임감도 갖지 못합니다. 마지막 강의에서 프랭클은 죽음과 유한성이라는 벽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실존적 태도를 들려줍니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잃어버린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미 살아낸 경험과 사랑, 노력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한 번 실현된 가치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는 그의 관점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이 철학은 후회를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대신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다시 묻게 만듭니다.


『죽음의 수용소 이후』는 삶이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인간이 어떤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지를 탐구합니다. 이미 잘 알려진 프랭클의 대표작을 읽었다면 그의 사상이 세월 속에서 어떻게 더욱 깊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고,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그의 철학을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는 좋은 출발점이 됩니다.


시대가 달라져도 불안과 상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빅터 프랭클은 삶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그 질문에 어떤 태도로 응답할지는 결국 우리 자신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