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언어로 살아간다는 것 - 관계, 마음, 나를 만나는 어느 심리학자의 인생 수업
이서원 지음 / 스틸당(STEALDANG)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솔직히 한번 따져볼까요. 하루 중 나는 몇 번이나 내 이야기를 하는지. 단톡방에서 누군가의 소식을 전달하거나 험담하고, 유튜브 알고리즘이 밀어주는 타인의 일상을 구경합니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면 마음이 허합니다. 많은 말을 했는데, 정작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남의 세계 속에서 조용히 증발해가는 자아에서 출발하는 『나의 언어로 살아간다는 것』. 서강대학교 상담심리학 교수로 30년간 3만 명의 내담자를 만나온 심리학자 이서원 저자가 자신의 인생 노트를 꺼내어 펼쳐 보입니다. 아침과 밤, 감정과 후회, 깨달음과 물음표가 뒤섞인 사적인 기록, 치유의 글쓰기를 만나보세요.


"치료는 밖에서 안으로 약이 들어오는 것이고, 치유는 내 안의 상처가 밖으로 나가 스스로 약을 바르는 것"이라는 그의 진단이 울림을 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스스로 쓰고 읽는 자기 치유의 언어입니다.





1장은 아침, 2장은 밤으로 나뉩니다. 아침에는 그날의 감정과 바람을, 밤에는 후회와 깨달음, 관계와 기억을 다룹니다. 이 책은 하루의 리듬을 보여줍니다. 아침에는 '바람역'을 출발하고, 밤에는 '돌아봄역'에 도착하는 겁니다. 각 역마다 스쳐 지나가는 감정과 사연을 글로 붙잡습니다.


2018년부터 저자가 대학원 기말고사 문제로 출제해온 문장이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 묻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답은 다섯 줄이면 충분하다." 오직 자기 자신에게 진짜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다섯 줄로 답하는 겁니다.


"오늘 나는 무엇이 가장 궁금한가?"를 묻고 다섯 줄만 답해보는 방식이 마음에 듭니다. 상담실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탐색과도 닮아 있습니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혼난 하루였다면 대부분은 "오늘 정말 재수가 없었다." 정도로 끝냅니다. 하지만 다섯 줄 질문은 달라집니다. 왜 그 말이 유난히 아팠을까. 나는 무엇을 인정받고 싶었을까. 내가 두려워한 것은 실패였을까, 무시였을까. 이 질문 하나만으로 감정은 사건에서 자신으로 이동합니다. 저자는 이런 이동이 바로 성장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아침의 언어가 희망과 다짐의 언어라면, 밤의 언어는 성찰과 수용의 언어입니다. 밤은 반성의 시간이 아니라 이해의 시간입니다. 하루를 평가하기보다 의미를 발견하는 태도를 강조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자기 이야기를 더 나은 서사로 만들어 더 나은 사람으로 살고 싶어 한다. 다만 나만 그러는 것 같아 주위의 눈치를 보며 안 그런 척하고 살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이 의미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 의미는 거대한 사건보다 하루의 작은 기록에서 만들어집니다. 밤마다 일기를 쓰는 행위는 하루를 다시 살아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표현되지 못한 감정이 신체 증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자주 이야기합니다. 저자 역시 할 말을 하지 못하면 몸이 대신 아프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스트레스가 심할수록 두통이나 위장장애, 수면장애가 나타나는 사례는 흔합니다. 글쓰기는 말하지 못한 감정을 안전하게 흘려보내는 통로가 됩니다.


삶의 돌발 상황에 대한 태도에 대한 이야기가 와닿습니다. 예상치 못한 실패, 계획의 붕괴, 뜻밖의 상실. 이 모두를 저자는 세상 모든 일에는 반드시 교훈이 들어 있다는 오래된 격언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때 글쓰기는 교훈을 의식적으로 붙잡는 행위입니다. 그냥 흘려보내면 상처나 실수로 끝나지만, 글로 기록하면 서사가 됩니다.


저자가 권하는 글쓰기는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길지 않아도 괜찮다."입니다. 감정 일기, 나에게 쓰는 편지, 속담에 댓글 달기, 사진 에세이, 대화 수첩, 배움 일기, 주기週記, 필사책 만들기 등 글쓰기의 형식도 참 다양합니다. 저자는 글쓰기를 삶의 다양한 결을 포착하는 복수의 언어 감각으로 확장합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고, 명답만 있다"라고 합니다. 각자의 경험, 언어, 감정의 결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도달의 과정이 바로 글쓰기입니다.





저자는 또한 "내 경험으로만 쓰면 좁아지고, 남 경험으로만 쓰면 엉성해진다"라며 균형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감정과 타인의 지혜를 함께 버무릴 때, 글은 보편성을 얻습니다. 


매일 다섯 줄이라는 작고 구체적인 실천이 주는 성취감, 글을 통해 자신의 감정 구조를 발견해가는 지적 즐거움을 알려주는 『나의 언어로 살아간다는 것』. 글쓰기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정직한 자기 혁명입니다. 타인의 세계를 소비하느라 헛헛해진 당신에게 필요한 건, 세상의 소음을 끄고 내 언어로 건너오는 시간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