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구독 사회 - 약과 영양제로 몸을 튜닝하는 시대
정재훈 지음 / 에피케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매일 아침 습관적으로 삼키는 알약들에 대한 도발적인 보고서, 정재훈 약사의 『건강 구독 사회』.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이나 영양제 루틴 뒤에 숨겨진 거대한 마케팅의 실체와 심리적 기제를 해부합니다.


임상 시험을 거쳐 부작용이 낱낱이 기록된 '약'은 무서워하면서, 효능이 모호하고 검증되지 않은 '영양제'는 천연이라는 단어에 현혹되어 결제합니다. 병원에 가면 의사는 원인이 복합적이니 검사를 해보자며 답답한 소리를 하지만, 1분짜리 숏폼 영상 속 전문가들은 "이거 하나면 끝납니다"라고 말합니다.


유튜브에서 오메가3 영상을 한 번 클릭하면, 알고리즘은 피드를 영양제와 건강 불안으로 채워 넣습니다. "아직도 마그네슘 안 드세요?", "이걸 모르면 당신의 장은 썩고 있습니다." 공포와 결핍의 서사 위에 판매가 이루어지는 구조입니다. 우리는 과학적 진실보다 매혹적인 서사를 선택합니다.


저자는 우리가 1조 원의 시장을 형성하며 비타민을 사는 행위가 실제 영양 결핍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는 심리적 면죄부를 구매하는 것이라고 꼬집습니다. 건강을 관리하고 있는지, 불안을 구독하고 있는지 묻습니다. 무엇을 먹어야 건강해지는가라는 질문보다, 왜 우리는 특정한 것을 건강하다고 믿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최근 전 세계를 강타한 위고비, 마운자로 같은 GLP-1 계열 비만 치료제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제 약은 질병을 고치는 도구를 넘어, 내 몸을 최적화하는 해킹 툴이 되었습니다. 마이너스(질병)를 제로(정상)로 만드는 것이 과거의 의학이었다면, 이제는 제로를 플러스로 만드는 향상의 시대가 도래한 겁니다.


GLP-1 약물은 단순 체중 감량을 넘어 전신의 대사 시스템에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이 약물들이 대사 질환자들에게는 혁명적인 생명줄이 될 수 있지만, 오젬픽 페이스(급격한 다이어트로 노화해 보이는 얼굴)를 감수하면서까지 미용 목적으로 매달리는 현상에 대해서는 경고를 보냅니다.


특히 아이들의 키를 키우기 위한 성장호르몬 주사 열풍 역시 부모의 불안이 과학의 탈을 쓰고 아이의 몸을 튜닝하는 현상임을 짚어줍니다.


필수라고 믿었던 영양제들의 민낯도 드러납니다. 비타민, 오메가3, 유산균 등이 어떻게 관리하는 삶의 훈장이 되었는지 분석합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도덕적 허가 효과(Moral Licensing Effect)처럼요. 영양제 한 알이 주는 안도감이 오히려 건강에 해로운 생활 습관을 유지하게 만드는 역설을 낳는 겁니다.


특히 단백질 쉐이크에 집착하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한 방이 묵직합니다. 근육은 쉐이크 통이 아니라 스쿼트 랙 위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 즉 행위의 본질을 생략한 채 성분만 섭취하려는 태도가 우리를 건강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는 점을 꼬집습니다.


평소 알러지 관리를 하던 아이에게 장 건강, 면역력, 피부 개선까지 거의 만능에 가까운 장 유산균 영양제를 먹이니 오히려 부작용으로 알러지가 폭발했습니다. 우리 아이 사례를 겪으며 몸에 좋다는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항상 좋다는 뜻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여러 가지 영양제를 바꾸며 내 몸을 혹사하지 말고, 변수를 통제하며 신중하게 접근하라는 약리학적 충고가 그래서 더 깊게 와닿았습니다.





마늘 홍삼, 강황, 커피, 초콜릿... 우리가 식품으로 즐기던 것들이 어느덧 기능성이라는 옷을 입고 약처럼 소비됩니다. 건강기능식품이라는 카테고리는 참 흥미로운 발명품입니다. 식품도 아니고 약도 아닌 이 회색지대는 약처럼 팔리기 위해 충분히 의학적 언어를 차용하면서도 약으로서의 엄격한 임상 기준은 요구받지 않는 구조입니다.


저자는 적당히라는 말이 가장 과학적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지침임을 인정하면서도, 음식을 성분 단위로 쪼개어 분석하는 영양주의의 덫에 빠지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마늘은 마늘일 뿐, 그것이 혈압약의 완벽한 대체재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저자는 푸드라이터의 시선으로 식탁 위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약리학을 추적합니다. 영양제가 효소라는 일꾼을 붙잡아두면 약은 분해되지 못하고 몸속을 떠돈다고 합니다. 우리가 간과하는 지점입니다. 몸에 좋다는 영양제를 한 움큼 먹는 행위가 정작 질병을 고치기 위해 먹는 처방약의 효과를 지워버리거나, 위험한 수준으로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오메가3가 혈액응고 억제제와 함께 복용될 때 생길 수 있는 문제, 비타민 K와 항응고제의 상호작용 등 영양제는 다른 약과 충돌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실제로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로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AI와 웨어러블 기기가 지배하는 미래의 건강 관리 시스템을 조명합니다. 연속 혈당 측정기를 차고 실시간으로 바뀌는 데이터에 일희일비하는 현대인들은 과연 더 자유로워졌을까요?


데이터가 주는 확신이 때로는 우리 몸에 대한 주권을 타인이나 알고리즘에게 넘겨주는 행위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합니다. 진정한 맞춤 영양이란 기계가 뱉어내는 수치가 아니라, 내 몸의 신호에 귀를 기울이고 지속 가능한 생활 방식을 스스로 구축해 나가는 철학적 과정이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정재훈 약사의 『건강 구독 사회』는 단순히 영양제 먹지 마라는 식의 이분법적인 책이 아닙니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우리가 왜 그토록 영양제와 신약에 열광하는지 그 심연의 불안을 위로하는 책에 가깝습니다. 건강은 구독 서비스처럼 돈을 지불한다고 해서 배송되는 결과물이 아니라, 매일의 식사와 움직임으로 빚어내는 삶의 과정 그 자체임을 일깨워 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56년 샘터 잊지 못할 명문장 -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 필사
월간 <샘터> 지음 / 샘터사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1970년 4월 창간 이후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한국 사회의 일상과 마음의 풍경을 기록해 온 국내 최장수 문화교양지 월간 〈샘터〉. 명사들의 성찰 깊은 산문과 이름 없는 이웃들의 소박한 고백이 같은 지면에 실리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높낮이 없는 자화상을 완성해 왔습니다.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용기와 온정을 잃지 않으려는 목소리, 실패와 상처를 숨기지 않는 진솔한 이야기는 〈샘터〉를 공동체의 기억 창고로 자리매김하게 했습니다. 비록 올해부터 휴간이라는 쉼표를 찍었지만, 축적된 삶의 언어와 가치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56년 샘터 잊지 못할 명문장』은 오랜 기록 속에서 명문장 100편을 엄선해 엮은 필사집입니다. 한 시대를 관통한 생활의 지혜와 인간적인 온기를 다시 건네는 고마운 선물 같은 책입니다. 몇몇 문장은 전문 수필이 함께 실려 있어, 문장의 출처를 맥락 속에서 다시 읽게 합니다.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법정 스님부터 주부까지, 유명 작가와 이웃의 문장이 동등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샘터〉가 지켜온 원칙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글의 가치가 지위나 직업이 아니라 삶의 진실성에서 비롯된다는 편집 철학이 이 책 전반을 관통합니다. 삶의 정수를 꿰뚫는 100개의 문장. 눈으로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노트 페이지에 직접 손글씨를 채워 넣을 수 있습니다.


<샘터>에서 건져올린 관계의 본질은 입체적입니다. 박완서 작가는 벽을 허무는 건 대화라고 말하며 진실함의 힘을 강조합니다. 대화는 기술이 아니라 정직의 영역이라는 걸 일깨워줍니다.





법정 스님은 관계의 불협화음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기 전에, 내가 먼저 보낸 마음의 주파수가 무엇이었는지 점검하라고 권합니다. 내가 보낸 미움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때, 우리는 비로소 나라는 존재의 실체를 깨닫게 됩니다.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피로감을 느끼는 세대에게 관계의 주도권이 외부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 있다는 걸 짚어줍니다.


행복은 성취의 결과물이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라는 사실을 명사들의 목소리를 통해 보여줍니다. 홍윤숙 시인은 투명한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진실로 모든 사람이 나날을 고해하듯 살아간다면, 때 묻은 마음을 목욕하듯 씻으며 살아간다면 이 세상 온갖 물상을 있는 그대로 유리알처럼 비쳐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이죠. 고해라는 표현은 종교적 함의를 넘어,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매일 영혼을 세척하는 성실한 노동을 의미합니다.


독립운동가 나혜국의 문장도 와닿습니다. 자신의 주름살을 고생의 흔적이 아닌 내 훈장으로 바라봅니다. 빚지지 않고, 남의 원성 듣지 않으며 자신의 꿈을 소박하게 일궈온 세월의 흔적이 주름이라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명예로운 장식이라고 합니다.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기술적인 방법론이 아닌 본질적인 지혜에서 찾습니다. 신달자 시인의 매듭에 대한 글은 실패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교정해줍니다. 매듭을 내일의 문턱을 오르는 신뢰의 계단이라고 말합니다. 살다 보면 겪게 되는 무수한 단절과 좌절을 성장의 발판으로 재해석합니다. 효율과 성과를 강요받는 이들에게 실패해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넵니다.


고 안성기 배우의 "좋은 사람이 좋은 연기를 하고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겠지"라는 고백은 직업 윤리와 인격을 연결합니다. 경쟁 사회의 규칙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합니다.


<샘터>에서 가져온 사랑은 감상적인 유희가 아니라 존재의 완성입니다. "밤은 다른 과실처럼 씨가 따로 있지 않다. 먹히는 살이 곧 씨앗이다. 당신의 사랑을 한 그루 나무로 키우려 한다면 먹을 것이 아니라 아껴서 심어야 하느니."라고 말합니다. 사랑을 소비하지 말고 심으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즉각적인 만족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선택입니다.


장영희 교수의 문장도 매력적입니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우리가 진짜가 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라고 말합니다.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희망의 문학을 전파했던 그의 삶이 녹아든 이 문장은, 오만한 마음을 겸손하게 낮출 때 비로소 인간은 완성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사랑은 타인을 소유하는 기술이 아니라, 나 자신의 모난 구석을 동그랗게 깎아내는 자기 수련의 과정임을 들려줍니다.





마지막으로 시끄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정적 속에서 자아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최인호 작가의 조용한 사람에 대한 동경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성숙의 끝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침묵하는 노인이 아니라, 고요함을 간직하고 있는 바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생의 막바지에 도달하고자 했던 지점이 조용한 바위라니요. 소음 가득한 SNS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침묵의 밀도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671권. 1970년 4월 창간호부터 2026년 1월호까지 〈샘터〉가 세상에 내놓은 잡지의 총수입니다. 지난 56년간 이 잡지를 통해 독자에게 닿은 문장의 수는 가히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 방대한 유산 앞에서 편집부는 수만 개의 문장을 검토해 100개를 추려냈습니다.


《56년 샘터 잊지 못할 명문장》은 읽고, 쓰고, 돌아보는 삼중의 리듬으로 문장을 체화할 수 있게 합니다. 쓰지 않으면 완성되지 않는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좋은 삶을 위해 죽음을 묻다 - 《파이돈》에서 《팡세》까지, 삶과 죽음을 읽는 철학 수업
최대환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갓생을 살기 위해 노화를 거부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타임라인 속에서 상실의 슬픔은 효율성을 해치는 방해물로 취급받기 일쑤입니다. 『좋은 삶을 위해 죽음을 묻다』라는 제목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뮌헨 예수회 철학대학에서 고대 철학을 전공하고 오랜 시간 신학생들을 양성해온 철학 하는 사제 최대환 신부님은 우리 인생이라는 항해의 종착지를 미리 답사해보는 지적인 모험을 펼쳐 보입니다.


죽음을 말하는 이유는 공포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걷고 있는 길의 방향을 다시 묻기 위해서입니다. 메멘토 모리를 삶의 집중력을 높이는 철학적 장치로 재해석합니다. 죽음은 종착지가 아니라, 현재의 삶을 선명하게 만드는 거울이라는 관점입니다.


가톨릭의대 생명대학원에서 의료진과 종종인들을 매료시켰던 명강의 <죽음 이해>를 바탕으로, 소크라테스부터 파스칼까지 서양 철학사 2500년을 관통하는 죽음의 계보를 따라가는 여정이 이 책의 뼈대를 이룹니다.


1부는 가장 근원적인 물음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와 에피쿠로스를 소환합니다.


플라톤의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사형 집행 당일, 독배를 앞에 두고 제자들과 마지막 토론을 벌이는 장면을 담았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마당에 무슨 토론이냐 싶겠지요.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오히려 지금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기 가장 좋은 때라고 말합니다. 이 역설적 태도가 《파이돈》의 핵심입니다. 죽음을 회피하는 대신 죽음을 응시함으로써 비로소 삶의 진면목이 드러난다는 겁니다.





소크라테스에게 성찰하지 않는 삶이란 이미 죽은 삶, 즉 자신의 영혼을 방치한 채 욕망과 두려움에 끌려다니는 삶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있는 삶, 곧 영혼을 돌보고 덕을 쌓으며 살아온 삶은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소크라테스의 태도가 죽음 이후를 준비하는 자의 의연함이라면, 에피쿠로스는 아예 다른 방향에서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에피쿠로스의 논리는 명료합니다. 쾌락과 고통은 모두 감각에 속하고, 죽음은 감각의 소멸입니다. "내가 있을 때 죽음은 없고, 죽음이 있을 때 나는 없다"라는 말은 강력한 현재 긍정론인 겁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지금 이 순간을 망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잘 죽는 것을 준비한다는 것은 의미 없는 노력이며, 오직 잘 사는 것만이 잘 죽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준비하며 살라고 하고, 에피쿠로스는 죽음 같은 건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방향은 달라 보이지만, 목적지는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두려움 없이 살아라. 『좋은 삶을 위해 죽음을 묻다』는 이 두 전통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임을 보여주면서, 죽음을 둘러싼 철학적 대화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를 보여줍니다.


2부 죽음의 기예(Ars Moriendi)는 이 책의 중심 개념 중 하나입니다. 기예(技藝)라는 표현이 이채롭습니다. 죽음이 어떻게 기예가 될 수 있는 걸까요? 기예란 반복되는 훈련과 실천을 통해 몸에 배는 능력입니다. 죽음을 의연하게 맞이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갑자기 되는 일이 아니라, 일상에서 꾸준히 연마해온 삶의 태도가 결정적인 순간에 발현되는 겁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은 세네카입니다. 네로 황제의 스승이자, 훗날 그 황제에게 자살을 명받은 비운의 스토아 철학자입니다. 세네카는 정작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는 '오늘'을 충실하고 소중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기대 수명 연장에 열을 올리면서도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이 보입니다. 저속노화가 키워드가 된 시대에 세네카는 오래 사는 것보다 얼마나 충실하게 사는지가 문제라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키케로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등장합니다. 딸의 죽음이라는 개인적 비극, 공화정의 몰락이라는 역사적 좌절 앞에서 키케로는 철학을 붙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철학이 단지 관념이 아니라 생존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키케로는 몸으로 증명했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더욱 극적인 사례입니다. 로마 제국 최고의 권력자가 매일 자신의 죽음을 묵상하며 일기를 썼다는 사실은 철학이 권력의 정점에서도 필요한 내면의 실천임을 보여줍니다.


3부는 신학적인 색채가 짙습니다. 플로티노스, 아우구스티누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등장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개의 죽음'은 인상적인 개념입니다. 육체의 죽음과 영혼의 죽음을 구분합니다. 영혼의 죽음은 육체적으로 살아 있으나 내면이 죽어버린 상태, 관계가 단절되고 의미를 상실한 상태이며, 아우구스티누스는 그것을 죽음이라고 불렀습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영적 가난' 개념도 흥미롭습니다. 소유와 집착을 내려놓는 삶이 어떻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미니멀리즘이나 에세이즘이 유행하는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에크하르트가 수백 년 전에 통찰한 것과 유사한 욕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덜 가질수록 더 자유롭다는 진리 말입니다.


4부는 철학자들의 사상을 넘어, 그들이 실제로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를 들려줍니다. 단테 알리기에리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한 편의 비극이자 서사시입니다. 이탈리아 서정시의 정점을 끌어올린 시인이 동시에 정치 투쟁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가 추방당하고, 돌아오면 화형이라는 경고 속에서 유배지를 전전하며 《신곡》을 완성했습니다.


추방당하고 박탈당한 사람이, 죽음 이후에도 개인의 고유성이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토록 강렬하게 그려냈다는 사실을 짚어줍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실존적 몸부림을 그려낸 단테의 죽음 철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토마스 모어의 이야기도 뭉클합니다. 스토아 철학의 덕과 에피쿠로스적 삶의 향유를 동시에 추구한 인문주의자가 양심과 생명 사이에서 양심을 선택하는 최후를 맞습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삶을 경시한 결과가 아니라 삶을 가장 진지하게 사랑한 결과라고 해석합니다. 《유토피아》에 등장하는 이상 사회의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삶의 기쁨을 온전히 누린다는 대목은 토마스 모어 자신의 삶의 방식을 드러냅니다.


몽테뉴와 파스칼은 근대의 문턱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정면으로 응시한 사상가입니다. 몽테뉴는 자기 자신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 그 불안정하고 유한한 나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길을 열었습니다. 파스칼은 그 나약함 앞에서 신앙으로의 도약을 선택했습니다. 두 길은 달라 보이지만, 둘 다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했다는 점을 짚어줍니다.


지금 죽어도 허무하지 않을 것인가. 이 물음이 최대환 신부를 철학으로 이끌었고, 그 철학이 이 책이 되었습니다. 허무하지 않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공했다는 뜻? 진심으로 살았다는 뜻? 저자는 이 질문에 직접적인 답을 내리지 않습니다. 대신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세네카, 단테, 토마스 모어, 파스칼의 삶과 사상을 경유하면서 우리 스스로 그 답에 다가가도록 이끌어줍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라는 개념을 소개합니다. "호모 비아토르는 우리말로 길 위의 인간, 여정에 있는 인간, 여행하는 인간, 순례하는 인간 등으로 옮깁니다. 인간 존재를 해석하는 숱한 개념이 있지만, 우리의 인생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이보다 더 절실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정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이죠.


우리는 출발했고 언젠가 도착합니다. 그 사이의 시간이 우리의 삶입니다. 『좋은 삶을 위해 죽음을 묻다』는 목적지를 의식하는 여행자만이 지금 이 길의 의미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토록 위대한 몸 - 최신 의학이 밝혀낸 면역, 질병, 노화의 비밀 프린키피아 9
줄리아 엔더스 지음, 질 엔더스 그림, 배명자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1.5kg의 뇌부터 2m²의 피부까지, 줄리아 엔더스가 던지는 인체 해독 패러다임 『이토록 위대한 몸』. 800만 부 이상 팔린 『이토록 위대한 장』으로 전 세계에 장내 미생물 열풍을 일으켰던 독일 의학자 줄리아 엔더스. 이번에는 장 하나가 아닌, 몸 전체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몸은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당신과 평생을 함께 조율해가는 경이로운 파트너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몸의 언어를 읽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는 겁니다.


병원에 가면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몸은 분명히 신호를 보냅니다. 만성 피로, 원인 불명의 피부 트러블, 반복되는 소화 불량,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불안. 수치로는 잡히지 않고, 특정 장기로 귀결되지도 않는 이 불편함들. 우리는 그것을 원인 불명이라고 부르거나, 스트레스 탓으로 돌리거나, 그냥 참습니다.


17세 때 원인불명의 피부병을 앓으며 몸의 신호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줄리아 엔더스. 이 책은 의학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삶의 고백과도 같습니다. 여동생인 과학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질 엔더스의 위트 넘치는 삽화가 곁들여진 『이토록 위대한 몸』을 통해 우리 몸의 은밀한 네트워크를 파헤쳐 봅니다.





태어나는 순간 첫 호흡을 내뱉고, 죽는 순간 마지막 숨을 멈춥니다. 폐는 하루에 무려 2만 번이나 우리를 살려내는 성실한 일꾼입니다. 폐가 단순히 산소를 들여오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는 가스 교환기라고 생각했나요? 이 책은 활성산소와 균형의 문제를 짚어줍니다.


우리 몸의 산소 처리 방식은 불완전하다고 합니다. 약 100회 회전할 때마다 한 번씩, 산소 두 조각이 반응하다 말고 빠져나가는 겁니다. 이 녀석이 활성산소입니다. 이 미완성 분자는 원래보다 반응성이 훨씬 더 강해서 우리 몸에는 해롭습니다. 거의 모든 물질과 결합하는 산소가 몸에서 무차별적 연쇄 반응을 일으킬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유지해주는 산소가 동시에 우리를 노화시키고 공격하는 칼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저자는 조화로운 관리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완전한 통제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몸은 완벽하게 설계된 기계가 아니라, 오류의 가능성을 내포하면서도 그 오류를 스스로 조율하며 균형을 유지하는 체계입니다. 미세먼지와 대기오염이라는 불청객 속에서 폐가 어떻게 필터링을 수행하는지, 우리가 의식적인 호흡법을 통해 어떻게 자율신경계의 평화를 되찾을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시간입니다.


잘 작동하는 면역체계는 적이 오면 무조건 섬멸해야 하는 전사로 상상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면역체계의 본질은 공격이 아니라 식별과 협상에 있다고 합니다. 면역이란 게 단순히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요즘 만연한 알레르기 역시 면역체계가 왜 그렇게 예민보스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들려줍니다. 과민하게 반응하는 주요 책임자가 비만세포라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줄리아 엔더스가 의학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는 피부병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피부를 다루는 장은 유독 감성적이고 따뜻합니다. 할머니의 죽음이라는 개인적인 상실의 경험을 통해 피부가 어떻게 우리의 감정과 연결되는지 설명합니다. 피부는 우리가 타인과 맺는 관계의 최전선이며, 모든 상처와 치유의 기록이 새겨지는 일기장이었습니다.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행위부터 누군가의 다정한 어루만짐이 우리 뇌에 어떤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지까지 세밀하게 추적합니다.


근육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울퉁불퉁한 보디빌더의 몸? 저자는 강함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립니다. 근육은 뇌와 소통하며 우리 몸의 움직임을 조율하는 정교한 센서입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개념이 등장하는데, 바로 티틴이라는 단백질입니다.


긴장 상태의 근육을 늘리면 티틴 용수철이 활성화되고, 자주 활성화될수록 근육은 더욱 정밀하게 동작에 맞춰 강도를 조절한다고 합니다. 요가와 필라테스에서 특히 이런 정밀한 조절이 자주 일어나고, 이렇게 훈련된 티틴은 눈에 띄는 근력 강화를 선사하는 겁니다. 격렬한 근력 운동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 이완과 긴장의 워라밸이 근육에도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몸의 컨트롤 타워, 뇌를 다룹니다. 우리는 잠을 활동의 정지라고 생각하지만, 뇌의 입장에서는 관리자 교체의 시간입니다. 잠들었을 때는 주로 내부를 조절하는 늙은 뇌 영역(가장 초기에 진화한)이 통치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잠이 올 때 대뇌가 개입하여 반대 신호를 보낼 수 있다고 합니다. 먼저 부엌을 치워야 해. / 추리극이 지금 너무 재밌어. / 야간 근무 중이야 같은 신호가 충분히 강하면 깨어 있게 되는 겁니다.


잠을 설치는 이유는 내부의 늙은 뇌가 보내는 휴식의 요청을 외부 지향적인 젊은 뇌가 묵살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도파민 중독에 휩싸인 우리들이 꼭 알아야 할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몸은 고립된 부품들의 집합이 아니라,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균형을 재조정하는 유기체라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건강도서로 읽히면서도 몸과 함께 살아가는 태도에 관한 책입니다.


더 많이 운동하거나, 더 좋은 영양제를 먹거나, 더 철저하게 관리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고, 그 신호를 해석하는 언어를 갖추라고 권합니다. 호흡부터 수면까지, 백 년을 버텨낼 당신의 몸을 위한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사용설명서 『이토록 위대한 몸』. 몸의 언어를 해독해보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 새로 읽는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와 두 편의 시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루카 옮김 / 아티초크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정수를 담은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버지니아 울프(Adeline Virginia Woolf)라는 이름 앞에는 의식의 흐름, 모더니즘의 기수 같은 수식어가 붙곤 합니다. 이번 에세이집은 소설가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에세이스트 울프의 서늘하고도 유머러스한 면보를 보여줍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보수성을 온몸으로 밀어냈던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들여다보면, 뜨겁게 박동하는 혁명가였습니다. 비평가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의 서재에서 지적 자양분을 섭취하고, 블룸즈버리 그룹을 통해 관습에 저항하며 동성애, 평화주의, 여성의 독립을 외쳤던 생애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전복이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된 「제인 오스틴, 모두가 두려워하는 부지깽이」 글에서는 제인 오스틴을 통해 낡은 관습의 껍데기를 벗겨봅니다. 울프는 오스틴이 처했던 시대적 제약, 즉 거실 한구석에서 몰래 글을 써야 했던 여성의 운명을 연민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 좁은 공간에서 갈고닦은 오스틴의 풍자가 얼마나 무자비하고 날카로운지를 주목합니다. 울프에게 오스틴은 문학적 모범인 동시에, 가부장적 질서 안에서 침묵을 강요받으면서도 문장으로 그 질서를 해체한 전략가였습니다.





"『오만과 편견』이 그 굳은 껍질 속에 숨겨진 귀한 보석을 드러내기 전까지 제인은 난로 옆의 부지깽이나 검불막이만큼도 주목받지 못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죠. 여전히 부지깽이 같지만, 이제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부지깽이예요.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 글로 인물 묘사를 날카롭게 하니까 어찌 두렵지 않겠어요?"라고 말합니다. 제인 오스틴은 조용한 사이다의 원조인 셈입니다.


예술을 논하면서 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은 멋쩍은 일로 여겨지나 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꽤 현실적입니다. 『자기만의 방』에서 강조했던 연간 500파운드의 가치가 이 에세이에서도 변주됩니다.


토머스 쿠츠라는 인물을 통해 삶을 지탱하는 두 축, 즉 자본과 감정의 상관관계를 파고듭니다. 사랑은 운명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랑을 유지하고 완성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비용과 계급적 한계를 분석하는 울프의 시선이 날카롭습니다.


「추락하는 자에게는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글에서는 특권층의 교육을 받은 작가들이 마주한 내적 갈등을 다루며, 문학이 어떻게 사회적 책임과 연결되는지를 논합니다. 울프는 교육이라는 자원을 독점해온 계층의 부채감을 지적합니다.


추락하는 자에게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여유가 없습니다. 사회적 불평등이 존재하는 한 예술은 결코 보편적일 수 없다는 겁니다. 민주적 열망과 세습된 특권 사이의 긴장을 묘사하며, 지식인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염치를 강조합니다.





「내가 교양속물을 싫어하는 이유」, 「예술가는 정치와 무관하다는 이들에게」 글도 재밌습니다. 아는 척만 하는 교양속물들의 허위의식을 비웃기도 하고, 예술의 순수성 뒤에 숨어 정치를 외면하는 태도를 꾸짖기도 합니다.


울프에게 예술은 고립된 섬이 아닙니다. 파시즘의 위협과 전쟁의 공포 속에서 예술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하다는 말은 기득권을 옹호하는 또 다른 방식일 뿐이라는 울프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당대 지식인들이 영화를 그저 하급 오락으로 치부할 때, 울프는 영화가 인간의 감각을 어떻게 재편하는지 간파했습니다. 문학이 담아내지 못하는 시각적 리듬과 속도감에 주목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인간 정신을 담아낼 새로운 그릇에 대한 모더니스트 작가로서의 학구적 열망이었습니다.


울프가 평생을 바쳐 수행한 여성 계보학의 핵심을 보여주는 「그녀에겐 얼굴이 없었다」, 화가 월터 시커트의 작품에 대해 논하는 「월터 시커트에 관한 대화」 등 비평가로서의 울프의 진면목을 볼 수 있어 흥미진진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미세한 의식의 구조를 뒤흔듭니다.





이 책은 우아한 울프라는 환상을 깨부숩니다. 독설을 내뱉고, 정치를 고민하며, 예술의 계급성을 비판하는 전복적 울프가 서 있습니다. 우리가 갇혀 있던 편견의 감옥을 찢어발깁니다.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에는 울프의 시가 두 편 수록되어 있습니다. 친필 원고에 남겨진 수정 흔적을 그대로 반영한 시가 실려 있어 작가의 사유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울프의 에세이는 소설보다 훨씬 직접적이고 신랄하며, 무엇보다 재밌습니다. 지적 부지깽이로 낡은 관습의 껍데기를 깨부수는 버지니아 울프를 만나보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