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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 샘터 잊지 못할 명문장 -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 필사
월간 <샘터> 지음 / 샘터사 / 2026년 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1970년 4월 창간 이후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한국 사회의 일상과 마음의 풍경을 기록해 온 국내 최장수 문화교양지 월간 〈샘터〉. 명사들의 성찰 깊은 산문과 이름 없는 이웃들의 소박한 고백이 같은 지면에 실리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높낮이 없는 자화상을 완성해 왔습니다.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용기와 온정을 잃지 않으려는 목소리, 실패와 상처를 숨기지 않는 진솔한 이야기는 〈샘터〉를 공동체의 기억 창고로 자리매김하게 했습니다. 비록 올해부터 휴간이라는 쉼표를 찍었지만, 축적된 삶의 언어와 가치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56년 샘터 잊지 못할 명문장』은 오랜 기록 속에서 명문장 100편을 엄선해 엮은 필사집입니다. 한 시대를 관통한 생활의 지혜와 인간적인 온기를 다시 건네는 고마운 선물 같은 책입니다. 몇몇 문장은 전문 수필이 함께 실려 있어, 문장의 출처를 맥락 속에서 다시 읽게 합니다.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법정 스님부터 주부까지, 유명 작가와 이웃의 문장이 동등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샘터〉가 지켜온 원칙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글의 가치가 지위나 직업이 아니라 삶의 진실성에서 비롯된다는 편집 철학이 이 책 전반을 관통합니다. 삶의 정수를 꿰뚫는 100개의 문장. 눈으로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노트 페이지에 직접 손글씨를 채워 넣을 수 있습니다.
<샘터>에서 건져올린 관계의 본질은 입체적입니다. 박완서 작가는 벽을 허무는 건 대화라고 말하며 진실함의 힘을 강조합니다. 대화는 기술이 아니라 정직의 영역이라는 걸 일깨워줍니다.

법정 스님은 관계의 불협화음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기 전에, 내가 먼저 보낸 마음의 주파수가 무엇이었는지 점검하라고 권합니다. 내가 보낸 미움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때, 우리는 비로소 나라는 존재의 실체를 깨닫게 됩니다.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피로감을 느끼는 세대에게 관계의 주도권이 외부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 있다는 걸 짚어줍니다.
행복은 성취의 결과물이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라는 사실을 명사들의 목소리를 통해 보여줍니다. 홍윤숙 시인은 투명한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진실로 모든 사람이 나날을 고해하듯 살아간다면, 때 묻은 마음을 목욕하듯 씻으며 살아간다면 이 세상 온갖 물상을 있는 그대로 유리알처럼 비쳐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이죠. 고해라는 표현은 종교적 함의를 넘어,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매일 영혼을 세척하는 성실한 노동을 의미합니다.
독립운동가 나혜국의 문장도 와닿습니다. 자신의 주름살을 고생의 흔적이 아닌 내 훈장으로 바라봅니다. 빚지지 않고, 남의 원성 듣지 않으며 자신의 꿈을 소박하게 일궈온 세월의 흔적이 주름이라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명예로운 장식이라고 합니다.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기술적인 방법론이 아닌 본질적인 지혜에서 찾습니다. 신달자 시인의 매듭에 대한 글은 실패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교정해줍니다. 매듭을 내일의 문턱을 오르는 신뢰의 계단이라고 말합니다. 살다 보면 겪게 되는 무수한 단절과 좌절을 성장의 발판으로 재해석합니다. 효율과 성과를 강요받는 이들에게 실패해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넵니다.
고 안성기 배우의 "좋은 사람이 좋은 연기를 하고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겠지"라는 고백은 직업 윤리와 인격을 연결합니다. 경쟁 사회의 규칙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합니다.
<샘터>에서 가져온 사랑은 감상적인 유희가 아니라 존재의 완성입니다. "밤은 다른 과실처럼 씨가 따로 있지 않다. 먹히는 살이 곧 씨앗이다. 당신의 사랑을 한 그루 나무로 키우려 한다면 먹을 것이 아니라 아껴서 심어야 하느니."라고 말합니다. 사랑을 소비하지 말고 심으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즉각적인 만족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선택입니다.
장영희 교수의 문장도 매력적입니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우리가 진짜가 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라고 말합니다.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희망의 문학을 전파했던 그의 삶이 녹아든 이 문장은, 오만한 마음을 겸손하게 낮출 때 비로소 인간은 완성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사랑은 타인을 소유하는 기술이 아니라, 나 자신의 모난 구석을 동그랗게 깎아내는 자기 수련의 과정임을 들려줍니다.

마지막으로 시끄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정적 속에서 자아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최인호 작가의 조용한 사람에 대한 동경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성숙의 끝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침묵하는 노인이 아니라, 고요함을 간직하고 있는 바위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생의 막바지에 도달하고자 했던 지점이 조용한 바위라니요. 소음 가득한 SNS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침묵의 밀도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
671권. 1970년 4월 창간호부터 2026년 1월호까지 〈샘터〉가 세상에 내놓은 잡지의 총수입니다. 지난 56년간 이 잡지를 통해 독자에게 닿은 문장의 수는 가히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 방대한 유산 앞에서 편집부는 수만 개의 문장을 검토해 100개를 추려냈습니다.
《56년 샘터 잊지 못할 명문장》은 읽고, 쓰고, 돌아보는 삼중의 리듬으로 문장을 체화할 수 있게 합니다. 쓰지 않으면 완성되지 않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