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과 지성으로 일한다는 것 - 뉴노멀시대 비즈니스 전략
야마구치 슈.미즈노 마나부 지음, 오인정.이연희 옮김 / 마인더브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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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의 저자 야마구치 슈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미즈노 마나부의 대담을 엮은 책 <감성과 지성으로 일한다는 것>. 삶과 비즈니스의 온갖 문제의 해결 실마리를 찾아가는 데 필요한 철학적 사고법을 이야기하는 최고의 전략 컨설턴트 야마구치 슈, 그리고 <쿠마몬> 만화책으로 알게 된 구마모토현 캐릭터 쿠마몬을 디자인한 미즈노 마나부의 조합이라니 기대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비즈니스는 깊고 넓은 문제를 해결해왔습니다.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집중해왔지요. 그리고 모두가 정답에 도달했습니다. 불편하게 여기는 문제를 발견해 정답을 제공하다 보니 이제는 깊지만 좁은 문제, 넓지만 얕은 문제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과거에만 집착하다보니 문제를 발견하고 제기하는 힘이 부족해진 오늘날입니다. 질 좋은 문제가 희소해진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을 구상하는 힘을 잃어가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야마구치 슈는 정답의 과잉화 시대에 이미 가치가 하락한 것을 예전과 똑같이 추구한다면 수익이 나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성공체험이 낳은 오류에 빠진 겁니다. 이제는 필요를 충족시키는 가치보다 의미를 담은 가치에 초점 맞춰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의미가 있는 가치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고, 그런 토양이 마련되지 않으니 답보 상태입니다. 현재 일본의 상황이 그렇고, 일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도 깊게 새겨야 할 이야기입니다.


<감성과 지성으로 일한다는 것>은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에만 집착한 나머지 미의식이 완전히 묻힌 현재를 성토하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을 꼬집습니다. 의미가 담긴 이유보다 편하고 이해하기 쉬운 근거에만 집착하는 아재 사상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판단할 용기조차 없어 망설임에 갇힙니다. 다행히 망설임을 극복하고 사내 문화를 바꾼 소테츠 기업의 사례를 예로 들며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예전엔 대중의 불만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개인의 좋고 나쁨, 제멋대로 분위기가 오히려 필요한 시대이고, 재미와 흥미를 감지하는 안테나를 세워야 한다고 합니다. 현 일본 상황이 필요를 충족시키는 가치만 추구하다 막다른 골목에 봉착한 상황이기에 이제 '의미가 있는 세계'로 방향을 바꿔 브랜드를 확립해야 한다는 걸 짚어줍니다. 새로운 방법으로 의미를 만들려면 크리에이티브 리더십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감각을 잃지 않고 내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멋지다고 말할 수 있는 태도입니다.





의미를 만드는 것에 이어 야마구치와 미즈노가 공략한 비즈니스 전략은 스토리를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어떤 상품이든 한 편의 스토리처럼 세계를 만들어보자고 합니다. 요즘처럼 15초 포맷의 광고 현실에선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개성을 만들어 가는 작업인 타깃에 대한 중요성, 스토리 만드는 방법에 대한 접근법을 통해 세계관 만드는 훈련을 하도록 일깨워줍니다.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처럼 꾸밀 수는 있어도 그 세계관을 흉내 낼 수는 없듯 어떤 세계관을 만들고 싶은가를 철저하게 고민하는 것이 첫걸음이라고 합니다. 지향하는 세계관을 위해 세심한 부분까지 철저하게 최적화되어 있을 때 브랜드화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가진 매력을 잘 파악하고 세계관을 제대로 만들어서 보여줄 수 있다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펼칠 수 있다는 걸 다양한 사례로 보여줍니다. 이 세계관은 지식에서 시작한다는 것도 짚어줍니다. 인풋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거죠. 그렇기에 일이라는 아웃풋만 하고 있으면, 센스와 지식에서 점점 멀어지게 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합니다. 


"커피 체인점을 하고 싶으니 투자하십시오. 편의점에서는 1달러, 일반 커피점에서는 2달러에 살 수 있는 커피를 7달러에 팔 생각입니다. 담배는 피울 수 없지만, 아주 편안한 매장입니다." 이 말만으로는 투자할 사람이 없을 테지만, 세계관을 가지고 승부를 걸어 성공한 게 바로 스타벅스입니다. 미즈노는 애플의 세계관을 만든 스티브 잡스, 스타벅스의 세계관을 관리하는 사람, 디즈니랜드 등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가깝다고 합니다. 온갖 비즈니스 현장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필요할 텐데, 현재는 텅 빈 상태와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감성과 지성으로 일한다는 것>에서는 실제로 좋은 디자인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어떻게 늘려갈 것인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크리에이티브 인식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 등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해야 할지 짚어줍니다. 결국 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경영자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한 팀이 되어 움직여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최근에 읽은 김효근 교수의 <마스터피스 전략>에서도 소비자 현존감을 사로잡은 미학 경영을 다루고 있으니 이 책과 함께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의미, 스토리, 미래를 데려오는 디자인이 결합한 크리에이티브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 <감성과 지성으로 일한다는 것>. 앞으로의 비즈니스에 꼭 필요한 사고방식을 장착할 수 있게 일깨우는 책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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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푸켓 & 끄라비 - 2022-2023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김경진.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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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우림과 아름다운 바다와 섬들이 있는 세계적인 휴양지이자 동남아 대표 관광지 푸켓 & 끄라비. 자유여행을 위한 정보와 준비를 수월하게 도와주는 가이드북 해시태그 트래블 <푸켓&끄라비>로 만나봅니다.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식민지를 겪지 않은, 따뜻하고 정감 있는 미소를 가진 불교의 나라 태국. 치앙마이와 같은 산악 지역, 에메랄드빛 바다 등 관광 대국으로 오랜 세월 자리 잡고 있습니다. 볼거리, 즐길거리는 물론이고 미식의 천국인 만큼 식도락 여행까지 다양한 매력을 가진 태국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간만큼 행복한 여행이 되도록 여행자 스타일에 맞는 다양한 팁을 소개하는 여행 가이드북입니다. 푸켓은 태국의 최고 휴양지인 만큼 태국에 대한 기본 정보를 알아두면 좋습니다. 태국은 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와 관계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이라든지 한국어가 태국의 대학 입시 제2외국어 과목으로 포함되어 있다는 정보 등을 알게 되니 더 정겹게 다가오네요.


귀한 줄 몰랐던 코로나 이전의 여행은 이제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입니다. 뉴노멀 시대 우리의 여행 트렌드는 어떻게 바뀔까요. 관광지 위주의 코스에서 벗어나 장기간의 여행, 자동차 여행, 소도시 여행, 호캉스 위주의 여행이 늘어날 겁니다. 짧은 일정이 아닌 이상 '살아보는' 형태의 경험으로 변화할 거라고 예상합니다. 해시태그 푸켓 & 끄라비에서는 장기 숙박 및 장기 거주에 유용한 팁을 알려줍니다. ​


태국 남부는 북부에 비해 물가가 조금 비싸서 방콕, 치앙마이 위주로 한 달 살기를 하는 편이지만 숙박비를 제외하면 푸켓도 크게 차이나진 않는다고 하니 남부의 매력을 만끽하고 싶다면 푸켓을 선택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여행 중 교통수단으로는 도시 간 이동이 자유로운 렌터카 외에도 태국에서 오토바이 운전을 배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흔하게 이용하는 오토바이, 그리고 자전거나 전동 킥보드도 대도시에서는 렌트 가능하다고 합니다.


푸켓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 빠통 비치를 중심으로 즐길 수 있는 장소들이 가득합니다. 화려한 나이트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방라 로드, 현지에서 만나는 무에 타이 쇼, 아이가 있는 가족여행이어도 푸켓은 오락실, 실내 놀이터 등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많아 문제없습니다. 부모와 함께 하는 효도여행에 맞는 코스도 많고, 어떤 테마여행이든 푸켓은 충족시켜주는 것 같아요.


여유를 누리고 싶은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빠론, 화려하진 않지만 아기자기한 멋이 있는 까따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던 푸켓 분위기와는 확 달라져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되는 푸켓 타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해변들도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시간 여유가 되는 여행자들을 위한 패키지여행에서는 대부분 패스하는 푸켓 북부 지역 정보도 있습니다.


북적이는 푸켓 대체 여행지로 떠오르는 태국의 천연 관광지 끄라비 KRABI. 곳곳에 해변이 있고 인근에도 아름다운 작은 섬이 많은 비현실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끄라비는 더욱 매력적입니다. 한 달 살기로도 좋은 곳이에요. 깨끗한 환경,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고 여유롭게 휴가를 누릴 수 있는 끄라비의 매력을 만날 수 있어요.


유럽 사람들의 겨울 휴양지로 알려진 끄라비는 온천, 저렴한 펍, 록 클라이밍 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기에 환승 이동을 감수하고서라도 꼭 가봐야 할 여행지인 것 같습니다. 푸켓에서 끄라비로 이동하는 법, 끄라비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법, 숙소 이용법, 여행 물가, 일정 및 취향에 따라 여행 계획 짜는 법,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음식 등 끄라비 여행 준비를 든든하게 해줍니다.


다른 해변도시보다 확실히 끄라비만의 자연 볼거리가 풍부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연을 그대로 살려 멋진 풀장이 있는 크리스탈 라군도 있고, 끄라비에서 온천을 즐길 수도 있답니다. 맹그로브 정글도 있어 밀림 분위기도 제격이네요.


배낭여행자의 성지 피피 섬과 영화 007 촬영지인 제임스 본드 섬, 푸켓의 몰디브라 불리는 라차 섬 등 멋진 절경을 가진 섬 투어는 푸켓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스입니다. 신혼여행지나 패키지여행으로 푸켓이 인기였는데, 뉴노멀 여행에서도 푸켓은 주목받을 겁니다. 여유 있게 돌아다니는 자유여행으로서 새로운 푸켓의 모습을 발견하는 시간이 됩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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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푸켓 & 끄라비 - 2022-2023 최신판 #해시태그 트래블
김경진.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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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여행하기 좋은 푸켓과 푸켓 대체 여행지로 떠오른 천연 관광지 끄라비 매력을 만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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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태어나서 - 자칭 리얼 엠씨 부캐 죽이기 고블 씬 북 시리즈
류연웅 지음 / 고블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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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고 얇은 판형으로 짧지만 단단하고 강고한 이야기들을 담은 고블 씬 북 시리즈. 이번엔 극작가로 활동하며 다크와 블랙을 추구하는 작가 류연웅의 <한국에서 태어나서>로 새로운 블랙코미디 장르를 만나봅니다. 


힙합 음악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무대로 써 내려간 소설입니다. 마니아적 요소가 다분한 힙합이라는 소재를 통해 꿈과 현실 속에서 갈등하는 모든 이들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펼쳐 보입니다. 릴뚝배기와 조헤드라는 이름을 쓰는 래퍼. 두 주인공의 사건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흐름 속에서 타임리프까지 등장하는 특이한 구조입니다. 


릴뚝배기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힙합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인지를 쌓아올리며 스물일곱 살에 드디어 1집을 발매하지만, 한방 빵 터지는 일 따위는 없었습니다. 댓글이라곤 "얘는 미국에서 태어났어야 한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댓글도 한 개밖에 없네;;"뿐입니다. 미래가 보이질 않은 상황. 이제는 그만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순간 그에게 신이 찾아옵니다. "넌 이제 뒤졌다." 하면서 말이죠. 아뿔싸. 오래전 "제가 만약 힙합을 버리려고 한다면… 가차 없이 저를 뒤지게 해주세요."라고 했던 기도가 기필코 이뤄지다니요.


한편 힙합 오디션에 참가해 1등을 하고 대형 기획사와 방송국 도움을 받으며 한방 제대로 터뜨린 일명 잘나가는 조헤드의 상황도 꼬여버렸습니다. SNS 비밀 계정에 업로드한 줄 알았던 글이 공식 계정에 올라가면서 난리가 나버린 겁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ㅈ 같다."라는 글이었거든요. 소속사에서 이 위기의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한 전략을 구상합니다. 노이즈 마케팅으로 말이죠. 언더그라운드 시절의 정체성을 죽이고 진정한 조헤드로 탄생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일종의 부캐 죽이기에 나섭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의 부제 '자칭 리얼 엠씨의 부캐 죽이기'에 돌입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독자는 조헤드와 릴뚝배기의 교차점을 발견합니다. 조헤드의 아마추어 시절 예명이 릴뚝배기라는 점입니다. 성공하지 못한 릴뚝배기의 자아로 진행하는 시점과 성공한 조헤드의 자아로 진행하는 시점이 얽히며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꿈을 가진 릴뚝배기와 조헤드가 어느새 부질없다며 한탄하는 상황은 그야말로 삶을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릴뚝배기는 대형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발을 들인 아티스트들을 가짜로 규정해야만 버틸 수 있었습니다. 릴뚝배기는 오디션 참가용 예명인 조헤드를 결국 사용하지 않았으니까요. 반면 산업 아티스트가 된 조헤드 역시 나름대로의 고충을 안고 있습니다. 성공하고 나니 배불렀다는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온갖 합리화로 살아왔지만 허탈감이 밀려옵니다.


릴뚝배기에게 마지막 하루를 살아갈 기회를 주고 신은 쿨하게 퇴장하고, 릴뚝배기는 자신에게 주어진 그 시간을 마지막 기회로 삼기로 합니다. 조헤드도 과거를 정리하고 새롭게 탄생하려고 발돋움을 합니다. 릴뚝배기와 조헤드 각자의 청산은 어떻게 진행되고 그로 인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기대되는 <한국에서 태어나서>입니다.


힙합이라는 소재로 진행하지만 이 소설은 꿈을 향해 달리는 청춘들의 내적 갈등을 보여줍니다. 그 과정에서 타협하고 합리화한 시간들의 대부분은 결국 스스로를 속여왔던 시간들이 아니었나 생각하기에 이른 릴뚝배기와 조헤드의 모습은 남 일 같지 않습니다. 버리고 싶은 과거의 자신조차 지금의 나에 이르게 한 정체성의 일부라는 걸 마음 깊이 알고는 있으니까요. <한국에서 태어나서>는 저마다 다른 상황에 처했지만 자신의 무능과 약함에 슬퍼했던 청춘들이 이제는 도망치는 대신 그 슬픔을 이해하려고 하는 성장 드라마입니다.


류연웅 작가의 작품은 <펄프픽션>에서 단편 『떡볶이 세계화 본부』로 처음 만났었는데요. 불공정과 불평등을 떡볶이를 소재로 기발하게 풀어낸 것처럼 오늘날을 살아가는 이들의 갈등과 고통을 뜻밖의 소재로 이야기하는 재주가 좋은 작가여서 다음 작품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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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뜬 곳은 무덤이었다
민이안 지음 / 북폴리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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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 제1회 SF소설 공모전 '상상 현실이 되다' 대상작 <눈을 뜬 곳은 무덤이었다>. 민이안 작가의 성공적인 등단작입니다. '사람은 성장 시기에 따라 다양한 특성을 보인다고 한다. 앞구르기, 뒷구르기, 옆돌기를 매일 하는 시기. 공룡의 이름과 특성을 읊고 다니는 시기. 별의 형태와 은하들의 거리를 외우고 다니는 시기. 나물 반찬을 싫어하는 시기. (중략) 따뜻한 음악을 들으면서 위로받는 시기. 상상을 글자로 옮겨보는 시기. 마침 상상을 글자로 옮겨보는 시기가 되어 글을 쓰고 있다.'라는 프로필 문구에서부터 느낌이 훅 오더라고요.


침대에서 눈을 뜬 게 아니라 정체 모를 새하얀 마네킹 더미에서 눈을 뜬 '나'. 마네킹이라 생각했던 것은 버려진 안드로이드들입니다. 이곳은 폐기된 안드로이드의 파츠를 분리해 새로운 몸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안드로이드 업사이클 센터입니다. 


나는 왜 기억을 잃은 채 이곳에 있는 걸까요. 다행히 잠시 의식을 차린 사이 구조되지만 이내 기절해버린 사이 웬 놈이 피부가죽을 벗겨내고 망치로 두개골을 두드리는 절체절명의 순간 깨어납니다. 으아아악!!


그런데 이상하게 통증은 없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내 머리를 열어본 안드로이드는 몇몇 메모리 데이터가 비어 있다느니 제조 번호가 어떻다느니 같은 말을 해댑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안드로이드인가 봅니다. 그것도 구형 안드로이드들이 선망하는 최신형이라고 합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나는 왜 이 상황에 이르게 된 걸까요.


이곳은 버려진 안드로이드 중 자아가 남은 안드로이드들이 힘겹게 살아가는 세계입니다. 인간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습니다. 나는 내 머릿속을 본 안드로이드 '달'에게 의지해 함께 다니기로 합니다. 달은 연락이 한참 전에 끊긴 주인이 내렸던 명령을 여전히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주인과 연락이 될 거라는 희망을 가진 채 임무를 마무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달의 여정에 함께하는 이름 없는 나에게 달은 '풀벌레'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밤마다 시끄럽게 질문을 한다고 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구형 바디의 안드로이드들은 부품을 구하기도 힘들어 이 세계에서도 깡패 로봇이 등장할 정도입니다. 인간 세상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주인과 연락이 끊겨 무기한 대기하는 안드로이드는 오히려 온전한 죽음을 바랄 지경에 이릅니다. '나' 역시 구형 안드로이드들이 인간인가 착각할 정도로 인간다움의 면모를 보여주다 보니, 스스로도 정체성 혼란을 겪습니다.


명령어 수행을 완료했거나 수행 불가능한 상태로 무기한 대기 중인, 삶의 목표가 사라진 안드로이드 세계. 인간과 닮게 만드느라 가짜 고통까지도 겪도록 만든 안드로이드의 이면을 뜻밖에 마주하는 시간입니다. 인간의 허무감, 우울감을 고스란히 경험하는 기계 역시 자기 파괴적 최후로 나아가는 현장을 목격할 땐 기분이 묘해지더라고요. '나'는 왜 과거의 기억을 전부 날려먹었는지, 달의 숨겨진 명령어에 감춰진 비밀 등 이들의 여정은 성장 드라마의 한 편을 보는듯합니다.


한국 SF소설계의 샛별 탄생입니다. 차기작을 기대하게 됩니다. 짜임새 있는 구조와 결말을 완성하기 위해 곳곳에 설치된 암시, 아름다운 언어가 어우러져 기성 작품에 전혀 뒤지지 않는 SF소설을 맛봤습니다. 상상을 글자로 옮겨보는 시기라는 그의 성장 시기가 오래 이어지길 바랍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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