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기의 천재들 -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찰스 다윈에서 당신과 나에게로 이어지는 미루기의 역사
앤드루 산텔라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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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루가 사라져감. 넌 망하는 중. - 책 속에서

 

나약한 인간, 시간 낭비하는 인간, 업신여겨도 될 만한 인간 등 비난의 평가를 받는 '미루는' 사람. 그런데 남이 미루는 건 못 봐줘도 자신이 미루는 건 합리화하는 게 바로 '미루기' 아닐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무언가 중요한 일을 미루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저널리스트 앤드루 산텔라 저자의 <미루기의 천재들>. 이제는 하나의 하위 학문으로 자리 잡을 정도로 미루기에 관한 관심이 높고, 미루는 습관을 극복하게끔 하는 자기계발서도 많습니다. 미루기는 근절해야 할 악습관일까요.

 

 

 

저자는 미루기 습관을 버리고자 하는 관심으로 미루기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게 아니라, 미루기 습관에 관한 명분과 근거를 찾고자 합니다. 재미있게도 미루기의 발자취를 찾아 떠난 여정 속엔 우리가 익히 아는 거장들의 모습이 속속 드러납니다. 미루는 사람은 루저로 평가받는다는데 그들은 왜 성공한 사람으로 대접받을까요. 미루기 이면에 담긴 미루기의 속사정을 <미루기의 천재들>에서 만나보세요.

 

1838년 '모든 종은 변화한다.'는 문장을 노트에 적은 다윈은 과학에 일대 혁명을 일으킬만한 사건임을 인지하면서도 20년이 지난 후에야 진화론을 발표합니다. 출간 전까지 다윈은 무척 바빴습니다. 따개비와 지렁이에 푹 빠졌으니까요. 도로시 파커는 초고를 내기까지 걸린 오랜 시간의 변명으로 "다른 사람이 제 연필을 쓰고 있었거든요."라고 말했고, 노벨수상학자 조지 애컬로프는 8개월 동안 소포를 부치지 못한 변명으로 "내일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미루기는 단순한 시간 지연을 넘어 상황이 악화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일을 지연하는 겁니다. 불편하면서도 가짜 쾌감을 느끼기도 하고, 죄책감을 가지면서도 그만두지 못하는 미루기.

 

현대 인지 행동 치료의 선조인 심리학자 엘리스의 책 <미루는 습관 극복하기>, 미루기에 관해 다작 작가인 페라리 교수와의 만남에서 미루는 사람들의 심리를 분석한 이야기도 꽤 솔깃합니다. 무능한 인간이 되기보다는 노력을 안 하는 인간이 오히려 낫다는 식의 원인이자 변명이 되는 미루기.

 

미루는 사람은 두 부류가 있다고 합니다. 시작한 일을 끝내지 못하는 부류와 애초에 시작을 못 하는 부류. "스스로에 대한 높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에 일을 미루는 건지도 모른다"는 말은 특히 공감되었는데, 제가 평소 일정 짜는 기준이 이와 비슷합니다. 일정을 맞추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거절하고 포기하고 시작조차 하지 않은 일들이 수두룩한데 그것 때문에 인생의 또 다른 기회를 얼마나 놓쳤을까요.

 

 

 

<궁극의 리스트>란 책을 쓸 정도로 리스트에 집착한 움베르토 에코, 자기계발 산업의 기원이 된 벤저민 프랭클린, 막대한 과제를 쉴 틈 없이 설정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의 리스트 에피소드는 현대인의 할일 리스트(To-Do List)에 관한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줍니다. 미루기의 달인들에게 리스트는 리스트 작성만으로 이미 하나의 성취를 이룬 것이고, 마지막 항목에 줄을 긋는 것이야말로 힘 빠지는 일입니다.

 

 

 

 

스스로를 방해하는 미스터리한 행동, 미루기. 일과 시간과 생산성에 대해 오늘날까지 영향을 끼치며 현대 표준화 관리법의 선조가 된 테일러의 주장은 기계와 같은 효율성을 강조하며 과학이 되었습니다. 시간을 소중한 자원처럼 활용하기에 미루는 습관이야말로 성공의 방해물이 됩니다.

 

이런 역사의 흔적을 보며 저자의 한 마디. "스케줄이 강제되면 선택지도 제한된다". 세상과 세상이 요구하는 일을 미루는 거장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저자는 의무로 가득 찬 일상 세계에서 미루기야말로 길을 찾는 방법이 되지 않겠냐는 말이 인상 깊습니다.

 

 

 

유럽 계몽주의 시대의 슈퍼스타 지식인 리히텐베르크. 광범위한 지적 호기심은 이 일 저 일에 조금씩 손을 대게 했지만, 고집스럽게 몰두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리히텐베르크의 정신을 기린 리히텐베르크 소사이어티의 이야기는 더 재밌습니다. 단체 회원들에게 있어 꾸물거리기와 미루기, 주저하기는 창의적인 과정의 한 단계라는 걸 깨닫습니다. 한 가지 일을 미루면 종종 다른 일을 하게 되고,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던 그 두 번째 일이 결국은 꼭 해야 했던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일 경우가 많았던 겁니다.

 

모든 미루기 달인들이 천재적 업적을 남겼다는 명제가 아닌, 천재적 업적을 남긴 이들도 미루는 습관의 흔적이 있었다는 정도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는 합리화에 딱입니다. 라이트의 건축물 폴링워터가 있는 펜실베니아, 리히텐베르크의 고향 괴팅겐, 찰스 다윈의 다운하우스 등을 순례하며 일을 미루는 사람은 한 가지 일에서 등을 돌려 다른 일로 향했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차츰차츰, 조금씩 진행될 뿐이라는 건 그저 게으름 피우는 것과는 다릅니다.

 

미루는 습관이 집중을 방해하는 외부적 자극이 많은 현대에 생긴 증상이 아니라 유구한 역사를 지녔다는 걸 보여준 <미루기의 천재들>. 누군가에겐 골칫거리이자 은밀한 기쁨이 되는 미루기. 미루는 습관을 떨쳐내고 싶지만 단호하게 근절할 의지가 없는 미루기 달인들에게는 유쾌하고 재치 있는 이야기입니다. 원제도 맘에 쏙 듭니다.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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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예측 - 세계 석학 8인에게 인류의 미래를 묻다
유발 하라리 외 지음, 오노 가즈모토 엮음, 정현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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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총균쇠, 슈퍼인텔리전스, 100세 인생, 악의 번영, 백인 노동자 계급, 백인의 역사, 핵 벼랑을 걷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굵직한 대표 저서를 가진 세계 석학 8인이 <초예측>에 모였습니다.

 

30년, 아니 10년 후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가 빠른 시대. 단편적 정보, 단기 트렌드 예측이 아닌 미래의 새로운 가치가 어디로 향할지 거시적 전망을 보여주는 책 <초예측>으로 인류의 미래를 생각해봅니다.

 

 

 

이 책은 오노 가즈모토가 세계 석학들을 취재하며 인터뷰한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8인의 인터뷰이들과의 대담이 한국인 저널리스트와 이뤄진 책이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일본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의 대답 같은 건 궁금하지 않았으니까요. 대신 클린턴 정부 시절 국방장관 출신 윌리엄 페리의 북한 문제와 실업 및 난민 문제처럼 현 한국 상황과 연계할 만한 주제 등 동북아시아 정세에 관심 많은 국제 저널리스트의 혜택을 보기도 합니다.

 

세계 석학 8인의 면모부터 위엄 있습니다.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 퓰리처상 수상작 <총, 균, 쇠> 저자 제러드 다이아몬드, 젊은 인공지능 연구자이자 <슈퍼인텔리전스> 저자 닉 보스트롬 등 21세기 지식의 최전선에 있는 석학들입니다. 그들의 대표 저서가 읽기 부담스러워 아직 못 읽었다면, 그들의 핵심 사상을 쏙쏙 뽑아놓은 <초예측>으로 수월하게 진입해보세요.

 

 

 

예측 가능한 면도 있지만, 예측 불가능성을 안고 있는 인공지능. 미래의 문제는 지구 차원에서 발생할 것이기에 국제적 차원에서 협력할 기회와 능력을 기르는 게 문제해결의 바탕입니다. <초예측>에서는 국제정세를 주제로 한 페리의 인터뷰 외 대부분은 인공지능 같은 과학 기술의 발달과 관련한 다양한 문제점을 다각도로 살펴봅니다.

 

유발 하라리는 무용 계급의 출현을 예측합니다. 미래는 불확실성의 시대입니다. 미래 고용 시장을 예측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하면서도 인간이 무용한 존재가 되는 무용 계급 출현을 제기합니다.

그러면 인간은 뭘 해야 할까요. 지금까지는 배우고 그것을 활용하는 시기로 인생이 나뉘었다면, 앞으로는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시대입니다. 그는 최악의 상황까지 포함해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그것이 예측의 효용성입니다. 위기가 현실이 되기 전에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걸 강조합니다.

 

 

 

국가 간 격차 문제에 관해 이야기한 제러드 다이아몬드. 국가 간 소득 불평등 심화가 낳는 문제들은 부유한 나라의 정책에 좌우된다고 합니다. 선진국이 격차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함을 일깨웁니다.

더불어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네요. 인구감소는 자원이 부족한 시대에 오히려 환영할 일이라는데?! 초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자를 자원으로 인식하고 활용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짚어줍니다. 시대착오적인 제도가 바로 정년제라고 일침을 놓기도 합니다.

 

인공지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한 닉 보스트롬의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이는 인류의 실존적 위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일반 지능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이 나왔을 때 인류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유발 하라리의 책 <호모데우스> 주제이기이기도 합니다. 닉 보스트롬은 초지능에 도달하기 전에 기술적으로 통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미 펼쳐진 세계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근원적 문제와 마주하면 늦다고 말이죠. 역시 이 문제의 해결방법에는 협력, 신뢰, 투명성 문화가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유발 하라리가 처음에 언급한 끊임없는 배움의 길과 관련해서는 인재론, 조직론 분야의 권위자 린다 그래튼의 이야기도 인상 깊습니다. 기존의 교육 - 일 - 은퇴 모델은 막을 내리고 재충전과 재교육의 인생을 살 거라고 합니다. 배움 습득에 관한 방법도 알려주고 있어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읽은 파트이기도 합니다. 저자의 책 <100세 인생>, <일의 미래>도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그 외 인간과 사이보그와 과학기술이 혼재하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 같은 세계에서 인간의 행복을 주제로 이야기 한 다니엘 코엔, 민주주의의 위기와 분극화 문제 및 혐오와 갈등을 다룬 조앤 윌리엄스와 넬 페인터, 북한 비핵화 선언과 관련한 에피소드와 함께 21세기 전쟁 양상에 관해 이야기한 윌리엄 페리.

 

 

 

8인의 석학들이 들려주는 미래 예측이 맞냐 안 맞냐를 떠나 일어날 법한 가능성에 대비해 생각해보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발 빠른 사회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개개인 차원에서만 봐도 필요한 일입니다.

 

미래 예측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긴 하지만, 몇 세대 지난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우리가 행동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거시적 전망과 함께 세상을 보는 관점을 넓힐 수 있는 <초예측>. 인터뷰 방식의 대화체 문장은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고 분량도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석학들의 대표 저서로 독서 확장하기 좋은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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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 중요한 것들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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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여든을 넘기며 블로그에 사소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쓰기 시작한 어슐러 르 귄 작가. 2018년 88세로 영면에 들기까지 이어진 날카로운 사색, 반려동물 파드와의 일상이 더해져 감칠맛 나는 글이 담긴 노작가의 마지막 에세이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어스시 연대기, 헤인 시리즈 등 빛나는 작품들로 세계 3대 판타지 문학의 거장으로 불린 어슐러 르 귄. 저는 유려한 문장으로 묵직한 대서사시를 보여준 <라비니아>로 르 귄 작품을 처음 만나 반해버렸답니다. 거장의 판타지 소설에 빠져들기 전에 냥집사라는 동질감을 불러일으킨 이 에세이를 먼저 읽어보게 되었네요.

 

 

 

2010년 하버드로부터 받은 50회 동창회와 관련한 설문조사 에피소드로 시작합니다. 르 귄은 말도 안 되는 질문들 일색이라며 일침을 놓습니다.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질문들에 일일이 토를 다는 르 귄. 그 속엔 미국 정치, 경제 및 페미니즘 같은 각종 사회 문제에 대한 르 귄의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그중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에서 르 귄의 인내심은 폭발합니다. 질문의 보기는 골프로 시작합니다. 르 귄의 직업인 글쓰기 같은 창의적 활동은 한참 뒤에 있습니다.

 

전업작가인 르 귄은 은퇴하지도 않았습니다. 여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질문에 대해 르 귄 스스로의 생활을 생각해보자면 '할 일이 없는 시간'이란 없다고 말합니다. 잠을 자고, 읽고, 쓰고, 생각하고, 잊어버리고, 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고, 걷고, 여행하고, 이따금 영화도 보고, 고양이와 노는데 쓰는 시간은 여가 시간이 아니라는 겁니다.

 

노년 시기에 여가 시간이란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직장에서 일하지 않는 시간을 뜻하는 여가시간. 그렇다면 은퇴한 사람들이 많은 여든이 된 그들에게 '남는(spare)' 시간 외에 뭐가 있을까 하며 말이죠. 늘 해왔던 너무나 쉬운 일들이 노년이 되면서 점차 어려워짐을 몸소 느끼는 노년 시기. 르 귄은 말이 명언입니다.

 

나는 시간을 남겨둘 수가 없다.  하버드 대학교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다음 주면 여든하나가 된다.  내게는 남겨둘 시간이 없다. - 책 속에서

 

 

 

길고양이나 유기묘에게 간택당해 오랜 세월 고양이와 함께 한 작가. 그동안 간택 당하기만 했던 그에게 드디어 선택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동물 보호 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에서 한 살 넘은 턱시도 고양이가 눈에 들어온 겁니다. 귀여움 종결자라며 첫눈에 반해버린 고양이는 그렇게 르 윈의 반려 고양이가 됩니다.

 

묵직한 주제마저도 위트 넘치는 글맛으로 선보인 어슐러 르 귄. 반려동물 파드와의 에피소드도 르 귄 작가가 쓰니 색다른 맛이!!

 

노작가라면 모름지기 고상하고 우아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깡그리 없앱니다. 욕설과 과격한 표현을 담은 작품, 의미심장한 답변을 바라는 독자의 질문, 위대한 미국 문학이라 불리는 작품, 판타지 문학 장르에 대한 편견에 대한 대처 등 르 귄은 솔직하게 지릅니다. 블랙유머도 꽤나 나오네요. 암튼 노작가의 에세이라 해서 고리타분하거나 우수에 젖은 감성팔이일 거란 편견은 버리는 게 좋습니다.

 

<어스시>에 관한 짧은 언급과 함께 판타지 글쓰기에 대한 힌트를, 영웅 외에는 잊어버리는 위대한 고전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의견은 베르길리우스 서사시 아이네이스를 새롭게 조명한 <라비니아>를 떠올리게 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와 증오에 대한 이야기는 묵직합니다. 남자들의 세상을 살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이 스스로를 불신하고 두려워하는 시대에 여성들이 추구해야 할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할머니가 된 르 귄 작가 역시 길거리에서 무관심, 혐오 혹은 적의를 담은 시선을 느낀다고 합니다. 젊은이들의 눈빛은 자신과 다른 동물 종을 바라보는 동물들의 눈빛과도 같습니다. 노인과 함께 살아보지 않은 아이들은 노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인간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가치를 짚어줍니다.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는 불필요한 고통을 피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노작가의 바람이 담겨있습니다.

 

 

 

탁월한 사냥꾼임에도 사냥감을 죽여야 한다는 것도, 죽이는 방법도 모르는 살짝 허술한 턱시도 고양이 파드. "내게 대놓고 반항하는 고양이는 처음이다."라며 한탄을 하다가도, 흠잡을 데 없는 본능과 기술도 아직 미처 다 배우지 못한 것뿐이라며 위안을 삼기도 합니다. 그러다 얼떨결에 죽은 쥐를 위해 르 귄 작가는 시를 짓습니다. 르 귄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작가 특유의 품격이 느껴지는 문장으로 만날 수 있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여든을 넘기며 자신의 노화에 대한 감정, 작가로서 하고 싶은 말들, 여러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 그리고 일상의 단상들을 엮은 에세이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이라고 밝히며 시작하지만, 정작 본인은 남겨둘 시간이 없기에 하나하나 다 중요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제 더는 작가의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없어 아쉽지만, 어슐러 르 귄 작가의 옆집 할머니 같은 면모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책이 있어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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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언어 -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프레임 대화법
박만규 지음 / 베가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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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설득하며 삽니다. 설득이 안되면 말 안 통하는 사람으로 치부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우리는 설득의 원리를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요. 설득과 관련한 이론과 실전 팁을 알려주는 <설득언어>에서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대화법을 배워보세요.

 

데이터, 정보가 쌓이면 지식이 됩니다. 이것들은 기억의 세계입니다. 여기서 문제해결 능력이 더해지면 지혜가 됩니다. 이 문제해결 능력은 상상의 세계입니다.

 

미래 인재상의 으뜸인 창의력을 말로만 강조해봤자 없던 창의력이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진 사고의 틀, 즉 프레임 때문입니다.

 

비합리적인 경험, 고정관념, 신념과 가치들이 모여 형성된 프레임. 나도 모르게 생각을 제약하는 요소는 아주 많습니다. 신념, 감정, 행동 등이 만들어낸 프레임은 무의식적으로 사고에 곧바로 영향 끼치기에 알아차리기도 힘듭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는 논리적 사고를 한다 생각하지만, 그 역시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진 프레임 안에서 하는 겁니다.

 

 

 

여럿이 사진 촬영할 때 어디에 서야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중앙에 서는 게 가장 좋지만, 누군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면? 우리는 좌측 우위 프레임을 가졌기에 가장 왼쪽에 서면 된다고 합니다. 글씨를 왼쪽에서부터 쓰는 나라는 좌측 우위 프레임을 가졌다고 해요. 반대로 글씨를 오른쪽에서부터 쓰는 아랍권은 우측 우위 프레임을 가졌습니다. 이렇듯 배우지도 않았는데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프레임이 수없이 존재합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한다고 해봤자 이미 형성된 프레임을 벗어나기란 힘듭니다. 하지만 이 프레임을 올바로 건드리기만 하면 새로운 사고로 전환할 기회가 생깁니다.

 

프레임이 추상적인 내용이라면, 구체화되는 건 바로 언어를 통해서입니다. 사고의 기본 단위인 개념을 표현하는 언어가 만들어 놓은 틀대로 사고하게 됩니다. 창의적 사고를 방해하는 거죠. 불법체류자, 이주민, 난민 같은 단어처럼 동일한 의미를 가진 단어도 관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설득언어>에서는 프레임을 만드는 관점은 어떻게 생기는지, 무의식적으로 만들어진 프레임이 우리 생각을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비중 있게 다룹니다. 이 부분을 잘 이해해야 반대의 상황, 프레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거나 나의 프레임을 상대에게 주입해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바탕이 됩니다.

 

논리, 진실만으로는 상대를 설득할 수 없습니다. 이슈 선점, 상대의 신념과 가치 프레임을 활성화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법, 감정에 기반을 둔 프레임을 만드는 법 등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프레임 사용법의 몇 가지 원칙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프레임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관점의 도입이 필요합니다. 나의 호감도는 높이는 대화 기술에서는 6가지 사고법을 소개합니다. 대화 도중 상대를 설득하거나 반박할 때, 상대를 비판하거나 칭찬할 때, 슬로건을 만들 때 유용합니다.

 

 

 

프레임을 사용하는 기본적인 방법에 관한 것은 다양한 사례를 이미지와 함께 소개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치 프레임에 관해 유명한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설득언어>는 좀 더 일상에 근접한 사례가 많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문제 해결책을 쉽게 찾지 못할 때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기 위한 사고법을 익히면 딜레마에 빠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고정관념은 쉽게 바뀌는 게 아니라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관점이 열릴 기회도 함께 버리는 겁니다.

 

인간의 생각 구조와 언어 사용의 원리를 기반으로 한 설득의 원칙을 설명한 <설득언어>. 프레임과 관점, 언어의 복합적인 관계를 이해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질 겁니다. 내 생각을 지배한 프레임을 이해해야만 자신을 바꾸려는 자기계발도 언어를 바꾸고 생각을 바꿔야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걸 깨닫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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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의 사생활
박찬용 지음 / 세이지(世利知)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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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때문에라도 한 번쯤 사본 잡지. 잡지 천국이라고 할 만큼 잡지 전성기 시절을 몸소 체험했던 저로서는 <잡지의 사생활>에서 다룬 주제가 무척 반가웠어요. 당시엔 잡지를 통해서만 핫한 신상품과 유명 연예인들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지금으로 치면 인플루언서의 창구 역할을 톡톡히 했었죠. 디지털 세대로 들어서면서는 종이 잡지 시장이 예전만큼은 아닌 요즘입니다. 그럼에도 새로운 종이 잡지 브랜드는 여전히 생성되고 어느 순간 또 사라지길 반복하는 걸 보면 잡지 시장이 죽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느낄 수 있습니다.

 

패션·라이프 스타일 잡지에서 일하는 현직 에디터의 생생한 경험담을 통해 잡지 에디터의 직업윤리와 일의 의미를 살펴보는 책 <잡지의 사생활>. 생생한 목소리에 공감을 표할 편집자들은 물론이고, 이 직업을 선망하며 궁금해하는 이들이라면 만족스럽게 읽을 만한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여행잡지 에디터로 시작해 남성잡지 <에스콰이어> 에디터로, 그리고 현재는 매거진 <B> 에디터로 일하는 현직 잡지 에디터 박찬용 저자.

 

잡지는 누가 만드는 걸까? 그들의 연봉은 얼마일까? 잡지 에디터는 어떻게 되는 걸까? 잡지에는 왜 비싸거나 가격미정인 물건이 대부분일까? 더블 브레스티드 슈트니 싱글 몽크 스트랩 슈즈 같은 외래어를 꼭 사용해야 하는 걸까? 등 잡지 독자와 잡지 업계에서 일하고 싶은 이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히 알려줍니다.

 

 

 

나에게 잡지 에디팅은 페이지를 만드는 일이다. - 책 속에서

 

잡지 에디터란 완성된 페이지의 모습을 상상한 후 각자의 과정에 구체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립니다. 원고 작성은 물론이고 촬영을 진행해 페이지에 들어갈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도 잡지 에디터의 일입니다. 혼자서 뚝딱 해내고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 한 페이지 안에 관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페이지 편집에 가까운 업무이기에 잡지 에디터에게 요구되는 기술과 덕목은 문필력, 기획력, 협상력 등 무척이나 많은 편입니다.

 

교정사, 사진가, 디자이너 등 프로페셔널한 이들과 함께 작업하는 잡지 에디터는 오히려 기술적인 부분 외 인간관계에서 특히 관리자로서의 소양이 필요한 직업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기획과 창작을 넘나드는 잡지 에디터의 일. 일의 영역이 넓어 뭐든 할 수 있다는 장점이 매력으로 와닿는 반면 그만큼 기력 소진이 크다는 게 함정! 하지만 1인 미디어 시대인 요즘에는 오히려 이런 경우가 흔해졌지 않나요. 잡지 에디터들이야말로 디지털 시대, 미래 직업에 잘 적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생활 대부분을 잡지 에디터 생활을 한 저자의 경험담은 누군가에겐 희망을, 누군가에겐 실망을 안겨줄 수도 있습니다. <잡지의 사생활>에서는 당근과 채찍을 모두 드러냅니다.

 

동경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들인 시간에 비해 물질적인 보상은 적은 편이니까요. 열정을 강조하고 공짜 노력을 은근히 바라는 상황을 견디는 건 참 힘듭니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며 애써 자발적 노력을 한다 해도 그조차 한계가 옵니다.

 

그래서 생계형 직업으로는 이 일을 권하지 않는다는 솔직한 말도 꺼냅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인데도 어쩔 수 없이 다른 일로 눈을 돌려야 하거나 생계를 위한 투잡 상황에 이르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매월 마감이 있는 월간지는 체력과 정신력이 보통이 아니면 견디기 힘들지만, 어쨌든 마감도 반드시 끝이 있다는 사실과 그 결과물이 매월 나오니 쾌감도 동반한다는 건 매력적입니다.

 

 

 

현장 경험을 토대로 한 생생한 이야기가 담긴 인터뷰 글도 볼 수 있습니다. 봉소형 교정사, 김참 사진가, 홍국화 <보그> 에디터 3인방의 인터뷰는 잡지의 세계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 잘 보여준 코너였어요. 함께 노력하는 이들의 업무 방식과 직업관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패션 에디터 직업 덕분에 한때는 인기를 누렸던 잡지 에디터. <잡지의 사생활>에서는 보이는 삶과 실제 삶과의 차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잡지 에디터의 환상을 깨뜨리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프로 잡지 에디터가 될 수 있는 경로, 갖춰야 할 소양 등 잡지 에디터가 되고 싶은 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조언이 많습니다.

 

 

 

라이선스지, 로컬지, 패션 에디터, 뷰티 에디터, 피처 에디터 등 이번에 처음 알게 된 낯선 용어들도 많았어요. 그동안 잡지를 보며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콕콕 짚어주며 잡지를 만드는 이들의 마음을 보여준 <잡지의 사생활>에서 잡지 페이지 너머의 세계를 엿봅니다.

 

국내 잡지 시장에서 겪는 실질적 고충과 고민은 잡지뿐만이 아니라 감각과 경험을 아우르면서 기획과 창작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공감 살 만한 내용이었어요. 두꺼운 분량의 책이 아닌데도 곰곰이 생각하며 읽느라 꽤 오랜 시간 붙잡았던 책입니다.

 

저자가 평소 책 많이 읽는 에디터라는 걸 느끼기도 했어요. 하드보일드 거장 로스 맥도널드의 책 <블랙머니> 주인공 대사를 언급하기도 하고, 존 르 카레 스파이 소설 작가는 인터뷰 섭외하고 싶은 인물에 포함될 정도. 이렇게 깨알 취향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어 더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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