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은네디 오코라포르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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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과 인종 차별, 폭력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아프로퓨처리즘 SF 판타지 소설로 풀어낸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기계 기술 SF를 더 선호하는 저로서는 마법 판타지 과인 이 책을 평소처럼 진입 장벽 염두에 두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현재 우리의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어 어느새 푹 몰입해 읽고 있더라고요.

 

나이지리아계 미국인 SF 작가 은네디 오코라포르 작가. 아프로퓨처리즘이 문화계의 대세로 자리 잡은 요즘, 오코라포르 작가 이력이 눈길을 끕니다. '아프리칸퓨처리즘' 제작사를 직접 세워 아프리카의 미래를 그리는 데 선두에 선 작가는 마블의 블랙팬서, 슈리 등의 코믹스 스토리 작가로 활동하면서 옥타비아 버틀러의 대표작 <야생종> 드라마 각본을 맡기도 하는 등 핫한 작가더라고요.

 

이 소설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는 2011년 세계환상문학상 수상했고 HBO 드라마화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대체역사로서의 아프리카 SF 소설의 면모를 만나보세요.

 

 

 

자신의 모습과 닮은 이 하나 없는 마을에서 엄마와 함께 사는 온예손우. 알 수 없는 무시와 멸시를 당하며 이방인처럼 살다가 열한 살에 탄생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되면서 고통과 분노를 가슴에 품게 됩니다.

 

잉태된 순간부터 골칫거리 존재인 '에우'라 불리는 아이. 오케케족과 누루족 간의 인종 대학살 및 폭력의 피해자인 에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혼혈아의 모습입니다. 처참한 성폭력으로 인해 에우로 태어난 아이들은 결국 폭력적으로 된다는 믿음이 사람들에게 깔려있어 에우를 애초에 사람 취급하지 않습니다. 고향에서 머나먼 길을 떠나온 모녀가 정착한 마을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었죠.

 

편견 없이 사랑을 준 새아버지가 돌아가시고 4년 후 스무 살의 현재 시점에서 온예손우가 그동안의 일을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에우로서의 자아 때문에 혼란스러워한 소녀 시절, 열한 살 의식이라는 할례에 관한 사건은 안타까우면서 충격적입니다. 존재만으로도 어머니에게 불명예라고 생각하는 온예손우로서는 그 마을에서 당연시 여기는 할례를 받기로 스스로 선택합니다. 그렇게나마 한다면 그들과 같은 울타리 속에 머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말이죠. 할례도 받지 않은 아이로 더 수모 당하기 싫어 열한 살 의식을 치른 온예손우.

 

하지만 그 의식 이후 온예손우는 자신의 존재가 일반 사람과 다르다는 걸 깨닫습니다. 형태를 바꿀 수 있고, 치료도 가능한 마법사라는걸요. 마법사로서의 힘을 인지하긴 했지만 온예손우는 자제력 없는 분노로 가득 채워진 상태입니다. 무엇보다 생부에 대한 분노는 극을 달합니다.

 

이계와 현실계를 오갈 수 있는 마법을 가졌음에도 위대한 마법사이자 전쟁광인 생부에게는 한낱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욱하는 성격이다 보니 좌절도 하고 실패를 맛보기도 합니다.

 

"내가 운명을 향해 나아가지 않을 때면, 운명이 내게로 다가왔다." 책 속에서

 

하지만 온예손우 곁에는 인생의 동반자인 에우 남자가 있었고, 할례를 함께 받아 우정을 쌓은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인종 말살의 폭력 행위를 저지하고 새역사를 쓰기 위해 떠나는데.

 

 

 

희생을 강요당한 여자의 삶과 이유도 모른 채 만연해진 증오와 혐오를 담은 폭력이 소설 전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소설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는 온예손우의 이름 뜻이기도 합니다. 묵직함이 담긴 이름의 의미만큼이나 온예손우가 향하는 길이 순탄치 않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어벤져스급의 능력을 가졌지만 제대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온예손우가 성장하는 과정에서의 내밀한 묘사는 기대치에 부족해 살짝 아쉬움이 있었는데, 전반적으로 이 소설이 제 상상을 초월한 상상 그 이상의 스토리를 보여주는지라... 신비롭지만 뭔가 명쾌하게 이해되지는 않는 (상상을 해도 그림이 그려져야 하는데 잘 안되어 OMG ㅜ.ㅜ) 은네디 오코라포르 작가의 마법 묘사는 절 좌절하게 만들었어요. 평소 마법 판타지물 좋아하던 분이라면 진입 장벽 없지 싶습니다.

 

마법 묘사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흐르는 주제는 가슴이 아릴 정도로 강렬합니다. 인종 청소라 불리는 제노사이드, 신체적·정신적 폭력, 차별과 혐오 등 이미 우리 세계가 겪어온 악을 만날 수 있는 가슴 아픈 소설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마법의 손길이 없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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