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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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치바>, <골든 슬럼버> 등으로 일본 미스터리계를 장악한 이사카 코타로 작가. 최근에 읽은 책 <남은 날은 전부 휴가>에서는 범죄를 소재로 하면서도 뭔가 상큼발랄(?) 이미지를 보여줘서 인상 깊었는데요. 사회 비판 소설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책도 엄지 척 세울만합니다.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비틀어 보여주는 데 상당한 재능있는 작가인 것 같아요.

 

 

 

위아래가 붙은 작업복,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와 고글, 목검을 든 남자. 고등학생이 괴롭힘을 당하는 현장을 보고 도와주는 이 사람은 일명 '정의의 편'이라 불리는 남자입니다. 누명을 쓴 무고한 시민이 위험에 처했을 때 나타나 도와주며 자경단 역할을 하는데.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의 배경은 바야흐로 평화경찰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사회. 위험인물로 적발되면 공개처형됩니다. 죄를 저지른 사람을 처형하는 게 아니라 미연에 막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런 일을 담당하기 위해 평화경찰 부서가 생겼고 그 위치는 어마어마해졌습니다.

 

미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권침해법이라 부르는 테러방지법이 있고, 일본에서도 테러대책법안과 관련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공모죄법으로 불리는 일본의 이 법은 사전 모의만으로도 처벌하도록 되어 있어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처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에서도 공포정치냐 범죄 예방이냐에 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지만, 소문의 위력과 군중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당하면서 긴장하고 공포에 사로잡히면서도 흥분하는 심리. 대부분은 효과가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 사회는 약육강식의 세계와 다를 바 없습니다. 어느 정도 시스템이 안착된 후부터는 나름의 정의감 넘치는 시민들의 밀고가 이어지게 됩니다.

 

문제는 중세 마녀사냥처럼 되었다는 겁니다. 평화경찰에게 취조라는 행위는 죄를 자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학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한 오락처럼 변질됩니다. 위험인물로 지목당한 자가 평화경찰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취조를 당하면 차라리 처형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니까요. 진심으로 도망치고 싶다면, 화성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지경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든, 아무리 불만이 많든, 지금의 이 사회를 살아가야만 해. 룰을 지키며 올바르게 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나라를 떠나면 돼. 다만 어느 나라에 가든 이 사회의 연장선상에 있지. (중략) 이 나라보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예 화성에 가서 살 생각이야?" - 책 속에서

 

 

 

이 상황에서 벗어날 것인가, 화성에라도 가서 살 것인가. 희망이 없는 선택지만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무고한 이웃이 연행될 때 방관했다는 죄책감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평화경찰의 부조리함을 파헤치려던 사람들의 계획이 실패한 사건을 계기로 복면의 남자가 다시 등장합니다. 위험인물을 연행하거나 취조하던 중에 '정의로운 편'에게 당하는 평화경찰. 결국 유능한 수사관이 파견되고 본격적으로 평화경찰과 정의로운 편의 대결이 이뤄집니다.

 

 

 

 

그런데 이 유능한 수사관의 말과 행동을 보면 상당히 골 때리는 캐릭터입니다. 기타 하나만 들면 금방이라도 노래를 시작할 것 같은 외모이면서 그의 말에는 깊은 의미가 많이 숨어있습니다. 은근슬쩍이 아닌 대놓고 평화경찰을 비꼬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어쨌든 이 수사관 때문에 사건 해결에 한 발 한 발 다가섭니다. 복면 남자가 사용하는 자석을 이용한 무기의 정체를 쫓는 과정에서 드러난 평화경찰의 부조리한 사건은 경찰 내부의 권력 문제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소설 중반부를 넘어서면 드디어 '정의의 편' 복면 남자의 시점으로 진행합니다. 정의감도 가족력이 있구나 싶네요. 보고 배운 게 그러하니. 곤경에 처한 사람을 두고 보지 못한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비참한 결말을 겪었습니다. 한 사람을 구하면 다른 사람도 구해야 한다는 식, 모든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것은 위선으로 비치게 되는 현실을 경험한 그로서는 누군가를 도울 때마다 '조심해, 위선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어'라는 마음속 경고를 하며 삽니다.

 

그러던 그가 변화한 계기는 선량하게 살았는데도 병으로 고통스럽게 죽은 아내와 평화경찰의 부조리한 사건에 휘말려 죽은 학생의 일을 목격한 이후부터입니다. 어떻게 자석 무기를 손에 넣어 평화경찰에 반격했는지 과정을 그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습니다. "세상은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니까 그게 싫으면 화성에라도 가서 사는 수밖에 없지"라는 희망 없는 선택지 앞에서도 그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노력합니다.

 

과연 '정의의 편'은 무사할 수 있을지, 평화경찰 시스템은 이대로 이어질지 예측하기 힘든 치열한 심리전이 볼만한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생존 본능이 인간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변질되는지 보여줍니다. 이사카 코타로 작가 특유의 비꼬기식 은유가 빛을 발휘하고, 통쾌한 반전도 어김없이 등장하면서 반전 스릴러의 대명사인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 분위기가 나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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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빈 폰 - 나무, 바람, 흙 그리고 따뜻한 나의 집 캐빈 폰
스티븐 렉카르트 글, 김선형 옮김, 노아 칼리나 사진, 자크 클라인 기획 / 판미동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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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을 온전히 누리는 사람들과 그들의 작은 집 200여 장의 사진이 가득한 환상적인 화보집 <캐빈 폰 Cabin Porn>.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언제라도 노력하면 지을 수 있는 집 한 채씩을 품고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 책 속에서

 

자연과 함께라면 황야든, 나무 위든, 지하이든 그곳이 어디든 소박한 안식처를 짓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상에서 지친 심신을 힐링하려는 이들에게 숲 속의 작은 집만 한 곳은 없는 것 같아요. 저도 휴양림 통나무집에서 하룻밤 지낸 이후 자연 속 나무집 매력에 푹 빠져버렸거든요.

 

<캐빈 폰>은 전 세계에 손수 지은 작은 집 200여 장의 사진과 함께 숲 속의 쉼터를 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농가, 통나무집, 나무 집 등 집 짓는 법이라는 목차가 있긴 하지만 순수하게 집 짓기의 전 과정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자연 속 집을 소개한 카탈로그 느낌이에요. 대신 환경에 따라 포인트 둬야 할 점을 짚어주고 있기에 자연 속 작은 집에 관한 전반적인 정보와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뉴욕 배리빌 숲 지대에 만든 오두막 공동체 비버 브룩. 자원 보존과 지역 사회 활성화를 도모하는 모델로 유명해진 곳입니다. 이후 캐빈 폰이라는 웹페이지를 만들어 우리가 꿈꾸는 집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사진들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그 진액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꿈을 품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다가 취직을 하고 가정을 꾸리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마흔 살, 쉰 살이 되고 어느 날 문득 꿈을 다 길가에 버리고 왔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런 일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 책 속에서

 

 

 

통나무집이라 하면 보통의 우리는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게 되죠. 언제 어디든 도시와 오지를 오갈 수 있는 경계에 발을 걸쳐야 안심됩니다. 하지만 오두막 성애자들은 자연 속에 묻힐수록 더 열광합니다. 자동차로도 갈 수 없는 깊숙한 곳이나, 허허벌판 사막에 짓기도 합니다.

 

다행히(?) 펜션 분위기의 모던한 나무집도 있습니다. 숲 속의 집이라는 환상은 그대로인데 현대적인 분위기와 소재를 더했습니다. 우리가 익히 머릿속에 떠올리는 초원의 통나무집들도 있습니다.

 

휴양을 목적으로 하거나 실험적인 건축물을 지어보려고 혹은 아예 살기 위해 짓는 등 목적은 다양하지만, 소박한 삶의 철학이 건축에 고스란히 표현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회생할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 낡은 주택을 개조해 재생하기도 하고, 양곡 사일로를 개조하거나, 고물 폐기장에서 주워온 것들을 활용해 집을 짓기도 합니다. 집이 아닌 메이플 시럽 만드는 제조소, 사우나, 보트 창고, 대피소 등도 소개됩니다.

 

 

 

어린이 책 13층 나무집 시리즈 덕분에 저희 집에서도 나무집 로망이 불어닥쳤는데요. 이선 슐루슬러의 트리 하우스는 꿈이 현실화된 느낌입니다. 트리하우스에서 헛간까지 집라인을 설치해 액티비티를 즐길 수도 있고, 페달로 동력을 전달하는 자전거 엘리베이터까지. 장난기 가득한 상상을 실현한 나무집이었어요.

 

 

 

현대 문명의 이기를 버리고 자연 속에서 소박하게 사는 삶이 영적으로나 창조적으로나 충만한 삶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오두막 성애자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댄 프라이스에게 움막은 반지의 제왕 호빗의 집 분위기입니다. 순간순간 흐르는 대로 지은 움막들은 발길 닿는 대로 여행하는 그의 삶의 철학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돔형 오두막집인 유르트는 몽골 게르와 비슷합니다. 유목민의 주거지 형태를 재현해 숲 속 보금자리를 짓기도 합니다. 현대화되고 한층 내구성 좋게 유르트 건설 방식인데도 채 9일이 걸리지 않고 만든 집이었어요.

 

<캐빈 폰 Cabin Porn>은 현대인에게 자연 속 작은 집은 새로운 삶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 현장을 보여줍니다. 전 세계 손수 지은 작은 집 200여 장의 사진은 보는 것만으로도 산림욕을 하는듯한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버리기와 비움, 아날로그적인 삶의 탐구 등 현대인들이 꿈꾸거나 실천하는 행동의 마지막 행보는 바로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아닐까 싶네요.

 

"판타지를 딛고 현실로 도약하는 건 어렵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고 영감을 찾는 데서 그것은 이미 시작된다."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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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언제나 사랑
니콜라 바로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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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일 작가 니콜라 바로의 로맨스 소설 <파리는 언제나 사랑>. 파리와 사랑은 언제나 찰떡궁합처럼 어울리는 단어인 것 같아요.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로 갈등보다는 낭만적인 사랑에 집중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파랑을 좋아하는 로잘리. 하늘과 바다를 보고 첫눈에 행복의 감정이 각인되면서 푸른빛이 행복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하늘색, 회청색, 담청색, 연회청색, 남청색, 청람색, 군청색, 수레국화색, 코발트블루, 청록색, 인디고블루, 실크블루, 사파이어블루, 나이트블루... 어쩜 이렇게 다양한 파란색이 있는지.

 

커피와 함께 하는 아침을 사랑하고, 저녁형 인간에 여유 부리며 시간 보내는 걸 즐기는 로잘리는 긍정적이고 호의적입니다. 엄마의 기대를 저버리고 미술을 전공한 후 파리 생제르맹 한복판의 아기자기한 드라공 거리에 작은 가게를 낸 로잘리. 포장지, 편지지, 펜, 카드, 엽서를 파는 선물가게입니다.

 

그중 가장 특별한 건 로잘리가 만든 소원 카드입니다. 손님들의 사연을 담아 수작업으로 글씨와 그림을 그려 만들어주는 카드. '나와 함께 날고 싶은 그대에게', '구름 뒤에도 태양은 있다.', '봄은, 겨울이 남기고 간 빚을 갚아주는 해결사가 되기도 한다.' 등 문구도 어찌나 창의적이고 예쁜지.

 

하지만 로잘리의 소원은 정작 이뤄지지 않습니다. 연례 의식으로 해마다 생일에 직접 그린 소원 카드를 들고 에펠탑에 올라가 카드를 공중에 날리지만, 올해마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에펠탑에 오르지 않겠다고 마음먹을 지경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명한 동화책들을 낸 은발의 노작가 막스의 새 동화책 일러스트 작가로 찜 당하는 일이 생기면서 로잘리의 인생은 바뀝니다. 막스의 스토리 <파란 호랑이> 원고를 읽자마자 푹 빠지게 되고, 딱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내지요.

 

막스와 함께 작업한 <파란 호랑이> 동화책은 성공적으로 출간되어 유명세를 떨칩니다. 그런데 <파란 호랑이> 스토리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나타나는데.

 

 

 

대대로 내려온 로펌 회사를 이어받지 않고 영문학 대학 강사로 일하는 로버트.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와 예전에 함께 파리에 왔던 추억을 기리며 다시 한번 파리로 왔습니다. 파리는 언제나 굿 아이디어라던 어머니의 말 대신 파리에 도착하고 온통 재수 없는 일만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파란 호랑이> 동화책을 보고는 표절로 고소하겠다고 으름장 놓게 됩니다. 그 이야기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들려준, 어머니와 자신만 아는 이야기였거든요. 원본 원고까지 가지고 있는 로버트로서는 막스와 로잘리의 책이 그의 소중한 기억을 빼앗아 가버린 느낌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로잘리와 로버트는 진실을 밝히려 함께 움직이게 되는데. 터키블루색 눈동자를 가진 로버트와 깊고 진한 파란색 눈동자를 가진 로잘리. 앙숙 관계에서 뜻밖의 감정을 느끼게 되기까지 둘의 투닥거림조차 사랑스럽습니다.

 

 

 

<파리는 언제나 사랑> 본책과 함께 온 작은 책 <파란 호랑이>는 소설 속 막스의 동화책을 실물로 만든 동화책입니다. 초판 한정이라니 놓치지 마세요. 금발의 어린 소냐, 구름 호랑이. 그리움이 있어야 갈 수 있는 파랑 나라. 하늘색 조약돌, 물감이 묻은 손수건 등 동화책 <파란 호랑이>는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되는 그리움과 자신의 소원을 믿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랍니다.

 

 

 

<파리는 언제나 사랑>을 읽는 내내 파리에 직접 있는듯한 기분이 듭니다. 파리 구석구석을 둘러보는듯한 묘사가 진국입니다. 유명한 영문학 전문 서점 셰익스피어 & 컴퍼니 서점도 등장해 반가웠어요.

 

갈등 후 재확인하는 로맨스 소설의 전형적인 구성을 따라가고 있지만 그 부분은 무척 빠르게 진행해 당황하긴 했지만요. ^^ 그만큼 갈등에 집중하기보다는 사랑의 감정을 깨닫는 것에 포인트 둔 책입니다. 사랑마저 믿지 않는다면 너무 삭막한 세상이잖아요. 로버트의 어머니가 말했던 "파리는 언제나 굿 아이디어"처럼 파리와 사랑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소설입니다.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사랑에 빠져있거나 사랑을 잃었거나 상관없이 파리는 언제나 옳다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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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6개월에 끝내고 알리바바 입사하기 - 죽어라 영어만 파서는 절대 모르는 인생을 바꾸는 초특급 전략
김민지 지음 / 앵글북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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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듯이 성장하는 중국 IT 시장. 과일 파는 노점상, 자판기에도 QR코드가 있어 신용카드 대신 모바일로 결제할 수 있을 정도로 중국의 변화 속도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합니다. 다들 글로벌 인재를 외치면서도 정작 중국으로 눈길을 주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요. 치열한 한국 취업 경쟁에서 벗어나 발 빠르게 중국에 발 디딘 김민지 저자의 경험담은 많은 자극을 줍니다.

 

 

 

6개월 만에 HSK 6급 합격하고 1년 만에 알리바바 인턴십으로 입사, 이후 보스턴컨설팅그룹, 상하이 테크노드 등을 거쳐 현재는 국내 IT 기업 카카오 입사를 앞둔 상태가 되기까지. 이 모든 것이 중국어 하나로 특별해진 경험입니다.

 

중국어 6개월에 끝낸다는 책 제목에 숨은 의미가 있습니다. 원래 중국어를 잘 하던 사람도 아니고 한자 1도 모르던 한자 바보였다고 해요. 중국 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중국어 공부에 올인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목표는 중국 땅을 무대로 만드는 것. 중국어는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여러 도구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그래서 '완벽'하게 구사해야 한다는 언어 부담감을 오히려 내려놓았습니다. 대신 '어떻게 하면 빠르게 익힐 수 있을까'에 중점 뒀습니다. 얼른 써먹을 수 있는 중국어를 익혀야 했습니다. <중국어 6개월에 끝내고 알리바바 입사하기>는 비전문가가 중국어를 어떻게 공부했는지 가성비 갑 전략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중국어 구사 능력은 중국인들 속에 있을 땐 빛을 발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중국 투자 열풍으로 외국인 사이에서 더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중국어 한다 하면 위치가 달라질 정도라는군요.

 

이런 관점으로 보면 학생들이 하는 중국어 공부법 대신 직장인만의 중국어 공략법이 필요합니다. 어떤 업계를 목표로 하느냐에 따라 듣기, 읽기, 쓰기, 말하기 가운데 어디에 얼마큼 집중할 것인지 계획이 나와야 합니다. 공부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게 시작입니다. 이렇게 직업의 특성을 파악하고 어떤 중국어 능력이 필요한지 집중하는 것은 자신의 목표에 최적화된 공부 계획 세울 때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한마디로 엉뚱한 데 삽질하지 말란 소리죠.

 

 

 

김민지 저자의 중국어 단어 공부는 꼬꼬무 암기법.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단어 공부는 나중을 위해 효율적인 공부법이라고 합니다. 성조를 위한 성조 공부 대신 단어 발음 자체를 계속 연습하고, 모르는 단어의 뜻을 유추해 파악하는데 유용한 암기법입니다.

 

HSK는 급수를 따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HSK 시험 준비하는 과정을 하나의 체계적인 커리큘럼으로 활용했다고 해요. 그래서 HSK 시험공부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중국어의 모든 부분을 커버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했다고 합니다.

 

 

 

HSK 6급 실력이면 실제 중국에서 생활할 때 어느 수준쯤 될까요. 중국인들끼리의 대화는 그래도 안 들리더라고 합니다. 회의 참석시 대충 알아듣는 수준이긴 했고요. 듣기조차도 완벽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고 합니다. 조금 안 들려도 기죽지 않는 자신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에피소드가 많았어요.

 

 

 

일을 하면서도 중국어 공부는 계속됩니다. 이때는 방향이 조금 달라지네요. 소통을 위한 대화에 바로 써먹을 수 있는 문장을 집중 공략하고, 드라마 속 인물들이 쓰는 표현이 입으로 나올 수준으로 공부했다고 합니다. 카카오톡, 페이스북, 구글 역할을 하는 위챗과 유튜브 개념의 요우쿠를 일상화하기도 합니다.

 

 

 

중국어 실력은 또 하나의 성장 동력이 되었습니다. 더 큰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언어 공부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어요. 독학만으로 한 건 아니었어요. 현지에서 어학연수 받으며 현지 중국인과의 푸다오 수업, HSK 시험공부, 시청각 자료 공부로 6개월 동안을 중국어에 집중했습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절실한가와 함께 중국어를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 목표 설정하는 거였습니다. 구체적 목표가 생기면 문장 하나 외울 때도 언제 어떻게 써먹을지 머릿속에 그려보게 됩니다. 추가적 노력을 통해 필살기로 삼을 만한 것까지.

 

<중국어 6개월에 끝내고 알리바바 입사하기>는 공부의 방향성을 결정해 공부 전략 세웠을 때의 효과를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학생 때 하던 방식 대신 직장인의 공부법으로 결국 취업 기회를 넓히는 것에 성공한 김민지 저자의 노력, 대단해 보였어요. 단순히 중국어 공부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중국 문화 속에서 외국인으로서 일하는 노하우들이 생생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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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 - 기상천외한 공생의 세계로 떠나는 그랜드 투어
에드 용 지음, 양병찬 옮김 / 어크로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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칫솔 세균이니 변기 세균이니 하면서 일상생활 속 세균 덩어리로 등장하며 불결을 상징하는 미생물. 하지만 대부분의 미생물들은 병원균이 아닌 데다가 우리를 병들게 하지 않는다는데?!

 

평균적인 인간들은 식품 1그램을 섭취할 때마다 약 100만 마리의 미생물을 삼키고, 우리 피부와 체내는 물론 세포 안에도 사는 미생물. 우리 은하에 존재하는 별보다 한 인간의 소화관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개체 수가 더 많다고합니다. 우리는 공생자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에 존재하는 '놀라운 우주'. 왜 우리는 미생물과 동반자 관계가 되었을까요. 미생물이 미치는 영향과 미생물 세계를 탐구하는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한 책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 미생물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소수파인 병원균에만 집중하고, 다수파인 정상 미생물총 공생 세균에 관한 이해는 뒷전이었던 현실이었잖아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균을 수제 현미경으로 세계 최초로 관찰한 레이우엔훅. 350년 전 인간은 처음으로 미생물을 보게 됩니다. 이후 기술 발달과 다양한 연구 결과 덕분에 동물과 미생물의 공생 관계를 하나씩 파헤칠 수 있었어요.

 

 

 

공생이라는 개념도 그저 한 몸에 산다는 개념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넓게 확장할 수 있었어요. 단순히 사는 장소 문제가 아니라 동물의 발생을 유도하는 공생 세균도 있었습니다. 자기 몸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고 다른 종에게 외주를 주는 겁니다. 동물보다 먼저 지구를 지배하고 있었던 미생물인 만큼 상호작용하며 진화했던 겁니다. 게다가 공생 세균은 동물의 신체를 유지시키기 위해 일을 계속하는데 가장 명확하게 나타나는 곳이 바로 면역계입니다.

 

뇌에도 영향을 줍니다. 장내미생물이 면역계에 영향을 주면 행동 증상에도 영향이 나타나더라는 연구 결과는 사회적 태도, 행동, 스트레스 대처 능력 등에 결국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까지 되는 겁니다. 이 부분은 솔직히 으스스 해지더라고요. 숙주의 마음을 조종하는 기생충 이야기처럼 말이죠.

 

이처럼 공생 파트너이자 기생충이라는 미생물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로 볼바키아 세균이 있습니다. 숙주의 생식을 교란하는 세균인데 균주와 숙주에 따라 기생자-상리공생자 관계를 오간다는군요. 그런데 이런 양상을 많은 세균들이 보여줍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는 위궤양, 위암을 초래하는 나쁜 균으로 알고 있었지만, 대신 식도암과 천식을 예방한다고 합니다. 소화관에 머무는 장내미생물이 혈류로 침투하면 패혈증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공생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짚어줍니다.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사는 게 공생이지, 대립과 갈등을 쏙 빼고 협동과 화합만으로 이뤄진 게 다가 아니라는 거죠.

 

 

 

미생물은 이처럼 우리 삶과 건강에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알레르기와 염증 질환의 위험이 높아졌습니다. 도시화로 착한 미생물, 환경 속 미생물, 기생충이 사라지면서 장내 미생물 다양성이 뚝 떨어졌습니다. 여전히 오지에 사는 수렵 채취인, 개발도상국 시골 주민들은 다양한 마이크로바이옴을 보유하고 있다는 걸 비교하면서 미생물 변화가 질병을 초래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간 개체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미생물 군단입니다. 모든 동물들은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에 의존하고 있지만 의식하지 못하며 살아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가공식품, 항생제 등 다양한 원인으로 우리와 동반자 관계를 이뤘던 미생물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구에서 미생물이 사라진다면 먹이사슬이 붕괴되고 인간은 불과 1년 안에 사회 붕괴를 경험할 거라 합니다. 종의 멸종은 물론, 생존 종 개체군 규모도 줄어들게 됩니다.

 

무척 신기한 공생 세균이 소개되는데요. 길이 1밀리미터 몸 중 절반이 공생 세균인 해양 침전물 속에 사는 편형동물 '파라카테눌라'는 몸이 조각나면 완전한 성체로 재생됩니다. 그런데 공생 세균이 들어있지 않은 유일한 곳인 머리만 가지고서는 꼬리를 만들지 못한다는 거예요. 꼬리만으로는 머리가 재생되는데 말입니다. 그만큼 공생 세균과 동물과의 관계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미생물이 있었기에 진화의 기회도 가능했고, 반대로 동물이 미생물의 도움을 받아 진화 기회를 신속히 포착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미생물과 동반자 관계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정복자 인간이 가만히 있을 수 없죠. 신의 손이 작용합니다. 동반자 관계를 '조작'할 수 있는 힘을 가지려고 합니다.

 

인간 기술로 미생물과 숙주 간의 의도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세균 칵테일이라 부르는 프로바이오틱스, 엽기적이지만 대변 미생물총 이식술 등 미생물의 불균형을 고치려 합니다. 성공 사례의 경우 일회성 신화일 수도 있습니다. 장기적 영향에 대한 연구는 미진하지만 이 또한 극복할 겁니다.

 

미래 의학의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합성생물학이 가세해 이젠 GM 미생물들까지 등장했습니다. 미생물의 잠재력을 이용해 맞춤 미생물 처방을 알약 하나로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는 인간의 삶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생물의 존재감을 톡톡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부정적이거나 하찮게 대했던 미생물 세계의 진실을 알고 나면 자유의지를 가치 있게 여기는 독립적이고 우월한 인간 종의 의미까지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은 여러 종으로 구성된 집합체이며 하나의 세계'이자 '내 몸은 놀라운 우주'라는 말이 그저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체가 있는 말이 되네요. 저자도 이렇게 말합니다. "'나'라는 개념은 버리고, 늘 '우리'라는 개념을 생각하라."

 

미생물과 함께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보여준 책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 우리는 미생물에게서 진화했고,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계 전체를 아우르는 미생물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은인인 미생물이 배신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우리 몸의 숨은 생태계, 앞으로 파헤쳐야 할 미생물 연구는 무궁무진합니다.

 

생각보다 사진 자료가 없어 아쉬웠습니다. 등장하는 세균의 현미경 관찰 사진이 궁금했어요. 글자가 빼곡한 데다 언뜻 보기엔 낯선 단어만 눈에 띄어 어려운 책일 거라 생각했는데, 세계에서 가장 핫한 과학 저널리스트 테드 용 작가의 유쾌한 문체 덕분에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최고 수준의 과학 저널리즘이라는 빌 게이츠의 찬사를 받은 책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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