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수필을 평하다
오덕렬 지음 / 풍백미디어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필의 문학성 회복에 앞장서는 오덕렬 수필가의 책 <힐링이 필요할 때 수필 한 편>을 읽으며 수필의 문학적 감성을 새롭게 깨닫게 되어 정말 좋았었는데요. 그 책에서 수필의 역사도 알려주셨어요. 우리가 흔히 아는 에세이와 창작수필은 같은 게 아니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만난 <창작수필을 평하다>에서는 우리나라 수필의 진화 현상에 대해 더 자세히 배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창작수필을 평하다>는 창작·창작적 수필 21작품과 그에 관한 평을 모은 책입니다. 한국 수필계 최초의 평론집이면서 독자들이 잘못 알고 있던 수필의 개념에 대해 제대로 고쳐 알리고 있으니 의미가 큰 책입니다. 


전작 <힐링이 필요할 때 수필 한 편>에서 피천득의 「수필」은 수필이 아니라 시이고, 「인연」은 소설이라고 해서 의아했는데, 그 근거를 <창작수필을 평하다>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일반산문이었던 수필이 산문의 창작적 변화를 거듭하여 온 과정을 내포한 용어가 바로 창작문예수필, 창작에세이입니다. 통칭하여 창작수필로 부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필'이란 어떤 것인가요. '붓 가는 대로'(1934년 김광섭의 「수필문학소고」에 등장), '신변잡기'가 수필의 대표 이미지일 겁니다. 지극히 개인적 일상 이야기, 작가가 경험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쓰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창작수필을 평하다>에서는 수필의 개념부터 새롭게 정의합니다.


'수필'은 사실의 소재를 작품 안으로 끌고 들어와서 작품의 제재로 삼는다고 합니다.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사실의 소재입니다. 사실적 경험에 근거한 작가의 화상 기억에 의존하는 겁니다. 


"문학적 기억이란 그것을 머리에 떠올리는 순간 이미 사실과 다른 창조적으로 구성된 이미지의 기억이 된다." - 책 속에서


화상 기억으로 쓴 수필, 사실적 소재가 창작의 세계로 들어서는 작품들이 이 책에 소개되어 있으니 이해하는데 어렵지는 않습니다. 저는 반숙자 저자의 「백일몽」 작품이 정말 재미있었는데요. 실제로 잠자면서 꾼 꿈을 선보이는게 아니라 상상력을 발휘한 이야기입니다. 시, 소설, 희곡과는 다른 새로운 창작문학으로서의 창작수필이란게 이런 거구나 깨닫게 됩니다.


원래는 비창작 일반 산문문학이었던 에세이가 3인칭 시점의 창작·창작적인 작품으로 진화한 겁니다. <창작수필을 평하다>에 소개된 수필들만 읽어봐도 구성이 소설 못지않게 정말 다양하고 뜻밖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어요. 한 문장만으로 수필 한 편을 써 내려간 선정은 작가의 「용은 산을 넘고」는 25개 정도의 상황이 전개되면서도 단 한 문장으로 표현한 실험적 작품입니다. 놀랍도록 마음에 들더라고요.


창작수필과 일반 산문문학인 에세이의 구분을 좀 더 설명하자면 창작수필 작가는 상상하고, 에세이 작가는 생각을 파고든다는 차이를 들 수 있습니다. 시는 창조적 언어의 상상 세계를 만들어 내고, 소설은 허구적 이야기의 상상적 세계를 만들어 내고, 창작수필은 사물의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즉, 사물과의 교감의 상상적 세계를 창작하는 문학입니다. 역사적 사실과 시적 교감을 할 수도 있고, 사물에서 느끼는 작가의 상상을 의물화나 의인화해 표현하기도 합니다.


수필 문학은 일반 산문문학에서 시작해 진화 발전하여 창작수필에 이르렀습니다. 각자 독자적인 장르가 된 셈이죠. 이어서 피천득의 「수필」을 분석하며 '산문의 시'라는 현대 문학의 새로운 장르도 발견하게 됩니다.


수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피천득 작가의 「수필」. 국정 교과서에 실려 경수필이라고 배웠고, 시험 문제로도 자주 등장했던 그 작품은 수필을 곡해하고 오해하게 된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수필 문학에 대한 전반적인 이론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수필로 쓴 수필론'이라고 배워온 「수필」. 당시에는 창작수필이라는 용어가 없었긴 했지만, 이제는 구분할 수 있고 구분해야 합니다.


피천득의 「수필」은 '산문의 시'라고 합니다. 산문시와는 다릅니다. 산문시는 운문에서 산문 쪽으로 변형된 거지만, '산문의 시'는 완전한 산문 문장법을 따르는 시문학입니다. 새로운 형식인 거죠. '산문의 시'는 2007년 이관희 작가에 의해 생긴 용어입니다. 꽤 늦은 셈인데 그만큼 수필 장르에서 이론 부재 현상이 심각했던 겁니다.


수필산문의 창작적 변화를 연구해온 이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이렇게 수필의 현대문학 이론화와 수필 평론가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들도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비창작이었던 수필이 창작문학으로 진화하는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창작수필을 평하다>. 더불어 21편의 멋진 창작·창작적 수필의 재미를 알게 되어 감사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1 작심삼일력 - 열심히 말고 재밌게 3일만 해봅시다!
하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12월
평점 :
절판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30만 부 기념 본격 나태 일력 <2021 작심삼일력>. 열심히 말고 재밌게 3일만 해보자고 기운 북돋우는 탁상달력입니다.


2021년에 공휴일이 적다는 거 알고 계시나요? 거리두기가 계속 지켜져야 할 듯하니 큰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심적으로 뭔가 빡빡해지는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잖아요. 편안하고 느긋해 보이는 고양이 그림이 가득한 <2021 작심삼일력>으로 달래봅니다.


잠시 멈추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도 괜찮다고 위로하는 에세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주제와 찰떡궁합입니다. 견뎌야 하는 삶이 아닌, 즐기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단 3일. 작심삼일러들이라면 평소 가지고 있던 자괴감과 불안을 한 방에 다독이네요.


하완 작가가 직접 작업한 작심삼일력입니다. 좀 깨는 그림 덕분에 빵빵 터졌던 에세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의 매력이 작심삼일력에도 고스란히 담겨있어요.


주인공의 포즈를 고양이가 대신하고 있으니 넘 귀엽습니다. "열심히 말고 재밌게 3일만!" 모토로 만들어진 일력인 만큼 프로 작심삼일러라면 책상에 딱 놓아보세요. 팍팍한 일상을 조금은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고픈 마음이 절로 들게 하는 <2021 작심삼일력>입니다.


하완 작가가 손글씨로 숫자와 요일을 구성했다고 합니다. 일력을 위해 3분의 2 이상은 새로 그린 그림을 보며 깨알 재미 만끽하세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의 그림과 명문장이 배치되어 있기도 합니다. 뜻밖의 웃음을 주기도 하는 날도 있어 정말 사랑스러워요. 이거 어떻게 매일 찢어버리나요?! 게다가 종이 질이 맘에 쏙 들어요. 부들부들한 감촉이어서 메모하기에도 딱입니다. 


작심삼일을 100번 하면 한 해 얼추 채웁니다. 100가지의 경험도 쌓이는 거고요. 이런 마인드를 되새기다 보면 고역인 하루가 아니라 소소한 즐거움과 위안을 동시에 누릴 수 있지 않을까요. 매일의 작은 성취를 응원하는 2021 작심삼일력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먹었으면 운동하자 EG홈트
고만재 지음 / 마들렌북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변의 진리임에도 실천이 안 되는 것 중의 하나가 먹은 만큼 몸을 움직이는 거죠. 글 쓰는 운동 선생 고만재 저자의 전작들을 읽으며 유쾌명쾌한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었는데, 이번엔 다시 건강 운동 책 <먹었으면 운동하자 EG홈트>로 찾아왔습니다.


코로나19로 집콕 배달 음식을 먹는 나날들이 늘다 보니 오히려 예전보다 더 풍족하게 먹는 것 같아요. 거리가 멀어서 못 갔던 맛집 메뉴와 디저트까지 배달시켜먹으니 1일 1배달을 꼬박꼬박 실천하며 칼로리 폭탄을 몸에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


먹었으면 운동하자! 맛있는 음식과 간단한 운동의 특급 콜라보입니다. 글보다 동작에 집중해 운동에 재미를 붙이고 바른 자세로 따라 할 수 있게 합니다.


쫙 펼쳐지는 페이지에 하나의 음식과 운동이 구성되어 한눈에 보기 좋게 편집되어 있습니다. 음식 먹을 때 저는 유튜브에 올려진 예능 영상을 틀어놓는 편인데 이제는 그 음식 먹으면서 해당 운동 영상을 시청해야겠어요. 평소 같았으면 국물까지 싹 흡입했었지만, 영상 보면서는 국물은 남기게 되는 조절이 가능하답니다. (이거 먹는데 이만큼 운동해야 한다고? 뜨헉)


처음 목차를 봤을 땐 요리책인가 싶을 정도로 메뉴가 좌르륵 나옵니다. 운동 이름은 전혀 없이 메뉴만요! 지금 먹고 있는 음식만 찾으면 되니 수월하게 찾아지더라고요. 없는 메뉴는 최대한 비슷한 종류를 골라서 하면 될 것 같아요. 한 끼 식사로 주로 등장하는 한식과 양식이 고루 소개되어 있습니다. 편의점 도시락, 야식, 디저트류도 빠짐없이 다룹니다.


음식별 운동법마다 QR코드가 있어 영상을 바로 볼 수 있어요. 고만재 저자는 유튜브 채널 고만재TV를 운영 중이지만 재활용 따위 없습니다. <먹었으면 운동하자 EG홈트> 책을 위해 따로 영상을 제작하셨더라고요. 구구절절한 설명 없고, 딱 동작에만 집중해 영상에서 보여줍니다. 휴식 시간까지 시간을 담았으니 틀어놓고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됩니다.



근력 운동 푸쉬업과 스쿼트, 근지구력 운동 플랭크, 하지 운동 런지 등 대표 운동이 등장하는데, 대체로 한 가지만 하기보다는 복합운동으로 변형해 선보이고 있습니다. 유산소 운동이 되는 점핑잭 종류도 크로스잭, 스플릿잭 등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어요. 덤벨 한 쌍만 있으면 되는 전신복합운동, 머신이 없어도 맨손으로 할 수 있는 홈트에 적합한 운동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건 아니지만 효과 높은 운동도 알려주고 있으니 꼼꼼히 살펴보세요.


간간이 등장하는 짧은 문구는 빵빵 터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위트가 있는 저자여서 에세이도 재밌게 읽었었는데 여기서도 웃음 날려줍니다. 몸치라면 바보처럼 보이는 동작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하라느니, 보양식 먹어놓고 겨우 스쿼트만으로 해결될 쏘냐며 팩트 저격하기도 하고요. 뱃살이 빠지는 건 아니지만 깜짝 놀라기는 할 거라는 운동도 있는데 그 결과가 정말 너무 궁금해지더라고요 ㅋㅋ. (참, 뱃살은 소식과 걷기부터 하라고 조언합니다)


건강식처럼 느껴지는 메뉴는 운동 안 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지만, 그런 메뉴에서도 운동은 빠짐없이 등장합니다. <먹었으면 운동하자 EG홈트>에서는 체력을 튼튼히 하고 몸이 날렵해지는 운동들을 소개합니다. 시간 대비 효과 높은 복합 운동이 많아요. 일단 두 달이 고비인 만큼 그 기간만이라도 버텨보자고요.


어제는 닭갈비를 먹었는데 마오리족이 된 듯한 운동법에 빵 터지기도 했어요. 사진으로만 봤을 땐 그 동작은 감이 잘 안 왔는데 영상으로 보고 아하! 딱 제 취향의 운동이더군요 :) 전 스텝박스 하는 것처럼 다리를 움직이는 걸 좋아하거든요.


먹는 걸로 힐링하고, 움직이기 싫어하는 운동 초보자를 위한 책 <먹었으면 운동하자 EG홈트>. 고만재 저자의 말처럼 근육이 환호를 지르다 보면 서서히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을 거예요. 음식과 운동을 연결해 그날 먹은 음식에 맞춰 운동법을 따라 하는 방식이다 보니 직관적이라 명쾌한 느낌이에요. 먹은 만큼은 그래도 운동해야겠다는 도전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래가 필요한 날 - 나를 다독이는 음악 심리학
김창기 지음 / 김영사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포크 밴드 '동물원' 출신 싱어송라이터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의 음악 테라피 <노래가 필요한 날>. 힘들 때 들으면 위로가 되는 노래 하나쯤 있을 거예요. 서정성 짙은 멜로디와 내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듯한 가사에 푹 빠져본 경험이 있다면 공감할 만한 책입니다.


"사람은 강한 감정을 유발하는 사건이 일어날 때 들었던 소리나 배경음악을 그 감정과 연결해 저장하고, 그 감정을 유발하는 사건을 겪거나 기억할 때 그 소리나 노래를 다시 듣게 됩니다." - 책 속에서


지친 날, 외로운 날, 심심한 날... 우리에겐 분명 노래가 필요한 날들이 있습니다. <노래가 필요한 날>은 인간의 심리와 노래를 연결해 말합니다. 왜 그 노래에 공명하며 끌리게 되는지 내 마음을 알아차리게 해줍니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봐주지 않지만 내가 자발적으로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저자는 '낭만'이라는 키워드를 활용합니다. 메마른 삶에 서사를 부여하는 '낭만'. 현실을 외면하고 왜곡하지 않고, 타인에게 피해가 없을 정도로만 자기 기만을 하고, 현실감을 잃지 않을 만큼 사는 의미를 부풀리는 거죠. 낭만의 효용은 노래를 들을 때 특히 빛을 발휘하는 것 같아요. 인생에는 이성적이고 공적인 일 외에 감정적이고 사적인 삶도 필요하다는 걸 일깨웁니다.


그림을 치유제로 삼는 요즘 트렌드가 생각납니다. 사실 음악은 우리 스스로 알게 모르게 이미 자기만의 방식으로 치유제로 삼아왔다는 걸 깨닫습니다. 저는 멜로디 자체에 끌리는 타입인데 <노래가 필요한 날>을 읽고서는 가사를 음미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블루로 불안한 나날들 속에서 들으면 좋은 노래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적의 <걱정말아요 그대>를 들을 땐 아주 작은 희망을 키우는 습관에 대해 생각해 보세요. 긍정도 학습되니까요. 무모한 긍정이 아니라 희망을 학습한다는 건 내가 닥친 역경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그 원인과 영향을 자신을 보호하고 발전하려는 측면에서 이해하는 걸 의미한다고 합니다. 부정적인 결과를 해결하거나 최소화하는 방법을 생각하는 연습을 반복하는 거죠.


비슷한 의미를 가진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 노래도 우리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칭찬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합니다. 고생했다, 힘들었니? 괜찮아 같은 인정과 위로와 격려의 말과 사랑해, 고마워 같은 감사와 신뢰의 감정이 진실하게 전달되도록 해보자고 합니다. 요즘 같은 난관을 잘 헤쳐나가며 각자의 일상과 위치를 잘 지키는 우리의 노력과 인내를 셀프 칭찬해볼까요.


삶의 단계 때마다 즐겨듣는 노래는 달라지지만 노래에서 분명 위로받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는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와 맞물려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며 세상의 힘이 되는 노래에서 힘을 얻어보세요. 신디 로퍼의 <True Colors>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주는 노래입니다. 캄캄하고 힘든 세상이지만 자신의 빛깔로 세상을 채우자고 북돋우고 있습니다.


삶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태도와 방법을 노래와 함께 찾아가는 <노래가 필요한 날>. 나를 찾아가는 시간, 사람을 사랑하는 시간, 서로 함께하는 시간, 마음을 다독이란 시간, 인생을 공부하는 시간에 관한 77곡의 노래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씩 살펴보다 보면 누군가는 노래에 얽힌 추억과 스토리에 푹 빠지기도 할 테고, 누군가는 소개된 노래를 찾아듣다 새삼 인생 노래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온한 파랑
정이담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성 연대 퀴어 로맨스와 뱀파이어물의 조합이 멋지게 어우러졌던 정이담 작가의 데뷔작 <괴물 장미>에 이어 차기작 장르가 SF 소설이라고 해서 호기심이 솟구쳤습니다. 전작에서 여성의 내밀한 심리를 아릿한 여운이 담긴 문체로 펼쳐나가는 스타일을 보여준 작가여서 SF 장르는 생각도 안 했는데 <불온한 파랑> 기대 이상이었어요. 하드 SF 요소와 상실과 치유라는 가슴 시린 소재의 조화가 어쩜 이렇게 환상적인지.


<불온한 파랑>에는 우리 사회의 민낯이 담겨 있습니다. 세월호 사고라고 드러내진 않았지만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그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실종된 학생을 구조하다 목숨을 잃은 잠수사의 딸 은하, 그 배에서 목숨을 잃은 언니의 동생 해수. 아픔을 가진 두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물을 삼키기 힘들 만큼 물 공포증을 앓았던 은하와 따뜻한 물로 씻지 못하는 해수. 그들은 저마다 트라우마를 가진 채 성장합니다.


은하는 고래자리의 기이한 별에 대한 기사를 본 후로 조금씩 나아집니다. 푸른 가스가 뒤덮인 사진을 보며 파랗고 반짝이는 빛이 꼭 푸른 피를 흘리는 동물처럼 보입니다. 세상을 떠난 영혼들은 푸른빛으로 웃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렇게 점점 우주에 관심을 가집니다.


항공우주공학과에 들어간 은하와 해양과학부에 들어간 해수는 룸메이트로 재회합니다. 아버지가 그리운 시간을 인내한 은하와 언니가 오지 않는 시간을 견뎌온 해수는 서로의 상실을 외면하기도, 어루만져 주기도 하면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며 지냅니다. 서로의 상처를 건드리는 날도, 감정을 폭발시키는 날도 있지만 서로의 존재를 기꺼이 용납하는 사이입니다.


이제 흥미진진한 SF적 요소가 등장합니다. 고래자리 타우 별 근처에 개척 가능한 슈퍼지구가 발견되었고, 인간의 기술 발전도 신물질의 발견 덕분에 상상의 일이 현실로 이뤄지게 되었습니다. 신 에너지원은 깊은 바닷속에서만 추출 가능한 물질이었습니다. 그 물질의 쓰임을 해수가 발견하게 됩니다. 조건이 갖춰지면 특수한 작용이 일어나는데, 질량을 허수로 만드는 원소인 겁니다. 상대성 이론의 질량 에너지 등가 법칙을 뒤집는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불온한 파랑>의 소재인 12광년 떨어진 고래자리 타우 별 행성의 슈퍼지구는 2012년에 발표된 기사를 바탕으로 합니다. 빛의 속도로 가더라도 12년이 걸리는 그곳에 슈퍼지구의 후보지가 있다는 기사였어요. 이 책 바로 직전에 읽은 <과학은 어렵지만 상대성 이론은 알고 싶어> 책 덕분인지 초속 30만 킬로미터인 빛의 속도와 상대성 이론 개념이 녹아든 이번 이야기가 더 잘 이해되어 다행입니다.


질량의 해체와 복원을 반복하며 빛보다 빠른 입자에 도달하고, 무한에 가까운 속도로 출력하는 기술. SF 소설 속에서나 만날 법한 이야기이지만 <불온한 파랑>은 이런 초월적인 신 기술을 묘사하는데 집중하기보다는 그 기술을 이용하는 인간의 관행과 사회적 비리에 초점을 둡니다.


해수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꿈꾸며 낙원 지구 프로젝트 책임자로 우주로 나간 은하는 성공적으로 그 일을 마칩니다. 그런데 귀환을 앞둔 상태에서 사건이 터집니다. 바로 지구에서 말이죠. 무기한 대기 상태로 고래자리 행성에 머물게 된 은하와 소식을 알 수 없는 해수. 둘은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현실의 지구가 낙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낙원은 인간에게도 다른 생명에게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듯, 작가는 소설 마지막에 이르러 지구에서 사라진 생명들을 호출합니다. 가슴 찡한 감동과 가해자인 인간으로서 겪는 감정이 혼재하는 상태를 맛볼 수 있을 거예요.


은하와 해수의 상실의 배경이 독자가 살고 있는 현실 이야기와 맞물려 있다면, 그들의 치유와 구원의 여정은 환상에 기댑니다. 책임 소재를 떠넘기기만 하는 작태를 보이는 사회 속에서는 치유조차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넘어가버렸으니까요. 공감과 연대도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사회에서는 진정한 치유가 이뤄질 수 없었습니다. 정이담 작가는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상실을 어루만져 줬는지 <불온한 파랑>에서 만나보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