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날은 전부 휴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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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슬럼버>, <사신 치바> 등으로 유명한 이사카 고타로 작가의 <남은 날은 전부 휴가>. 미스터리 추리소설 쪽에서 영향력 있는 작가던데 이 책은 통통 튀는 유쾌함 속에 뜻밖의 감동이 담긴 소설입니다. 전 이 책으로 이사카 고타로 작가를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꽤 만족스러웠어요.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자 해피해피한 감정이 온몸을 감싸는 듯한 기분을 만끽했습니다.

 

<남은 날은 전부 휴가>에 수록된 다섯 편의 스토리가 각각 독립적인 스토리가 되면서도 다섯 편을 관통하는 인물과 인연이 얽혀 하나의 큰 스토리를 완성하는 연작소설입니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운 탓에 이혼하게 되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한 집안이 해체되는 날입니다. 이사 전 마지막 대화를 나누던 자리에서 아버지에게 온 이상한 메일. 뜬금없이 친구하자며 드라이브도 하고 밥도 먹자는 메일에 "뭐 어때?" 한 마디로 승낙해버리는 가족. 그리고 그 가족과 드라이브를 하고 밥도 같이 먹게 되는, 메일을 보낸 당사자인 오카다.

 

의심스럽고 어이상실할만한 상황이 이어지는데도 큰 고민 없이 덥석덥석 받아들이는 가족의 분위기도 황당, 그런 가족과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는 오카다의 행동도 황당하기만 합니다. 도대체 오카다에겐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요.

 

오카다와 미조구치는 의뢰받은 일을 처리하는 해결사로 함께 일합니다. 이제 오카다가 그 일에서 발을 빼려고 하는데. 평생 친구 하나 없었다는 오카다에게 지금 당장 친구를 만든다면 보내주겠다는 미조구치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네요. 어쨌든 그 가족 덕분에 이제 정식으로 백수가 된 오카다.

 

오카다에 관한 이야기는 <남은 날은 전부 휴가> 전반에 걸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만큼 오카다의 영향력은 등장인물들에게 꽤 크게 전달됩니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는 인물이면서도 스스로는 선뜻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스토리는 오카다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상황이 나오네요. 우연히 만난 소년에게서 학대 당한 흔적을 발견한 오카다. 오지랖 넓은 오카다는 폭력 아버지를 상대로 일을 꾸미는데, 캬... 정말 절묘하게 사기를 치더군요.

 

 

 

세 번째 이야기는 오카다와 함께 일한 미조구치가 등장하는데요. 놀고 자빠졌네 싶을 정도로 코미디가 따로 없었어요. 지금까지 분위기와는 상관없는 생뚱맞은 스토리가 등장하다 보니 외전 분위기도 납니다.

 

 

 

네 번째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오카다가 등장해요. 영화 속에서 고문을 당했던 주인공이 '바캉스'를 생각했다는 고백 장면을 본 오카다 역시 "싫은 일이 생기면 바캉스를 생각하기로 했어."라는 한 마디를 내뱉습니다. 현실도피와도 같은 말이지만, 그때의 생각이 이후 오카다의 삶에서 이정표가 됩니다.

 

슬픔은 잊어야만 했다. 남은 시간이 아주 많았으니까.
이따금, 바캉스를 생각했다. - 책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불법적인 일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불의를 참지 못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오카다. 상대방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즐겁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그렇다면 앞으로는 상대가 기뻐하는 일을 해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조직의 일에서 오카다가 발을 빼자마자 미조구치는 그를 배신해버렸고, 이후 스스로를 자책하며 후회합니다. 어느새 오카다가 했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결국 오카다를 그리워하며 미조구치는 무언가를 계획하는데.

 

미조구치와 오카다는 뭐하나 잘 되는 게 없던 인생이었어요. 가진 것도 없고 인생이 필만한 상황도 아닌 그저 그런 삶. 하지만 오카다는 삶을 비난하지도 탓하지도 않습니다. 그건 희망 없음이 아닌 오히려 현실적인 태도였어요. 오카다의 대책 없는 긍정이 미조구치에게까지 전염됩니다.

 

오카다는 우리에게 무엇을 위해 사는지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조구치와 오카다의 미래는 흔히 성공이라 부르는 범주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뭐 어때요. 가진 것 없는 인생도 딱 이만큼의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성공 스토리 못지않은 감동을 주더라고요. 더 현실적인데다가 소소한 말 한마디에서 받는 위로가 꽤 크다는 걸 느꼈습니다. 골때리게 비정상적인 설정으로 배꼽 잡다가도, 한 번씩 치고 들어오는 감동 포인트가 매력적인 묘한 소설입니다.

 

미래는 그때가 닥치지 않는 이상 모르는 거고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요. 가능하면 행복해지고 싶잖아요.-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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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 (리커버 에디션)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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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읽는 내내 울컥울컥. 몇 년 전에 읽었다면 이런 감정은 느끼지 못했을 거란 생각에 역시 인연 책은 때가 있나 봅니다.

 

흔한 고전 서평 모음집이 아니었어요. 청년 유시민을 만든 책들을 30년의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읽으며 느낀 소감을 기록한 책입니다. 당시 대학생이 된 딸에게 헌정했을 만큼 세상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모든 청춘에게 권하는 지혜가 담긴 <청춘의 독서>.

 

 

 

2009년 출간 후 새 옷 입고 나온 청춘의 독서 리커버 에디션. 이 책에 소개한 14권의 고전은 유시민 작가가 청춘 시기에 꽂혔던 책입니다. 19세기 러시아 청년들이, 20세기 유럽과 미국 지식인들,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했던 고민과 사색이 담긴 책이자 지식소매상 유시민의 모습을 만든 바탕이 된 고전들입니다.

 

"나에게 『죄와 벌』은 열병과 같은 정신적 흥분을 안겨준 '날카로운 첫 키스'였다." - 책 속에서

 

 

 

뭣도 모르고 가입한 학생써클 덕분에 만난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는 지식인이 어떤 존재이며 무엇으로 사는지를 배웠고,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 선언문 『공산당 선언』은 그의 영혼을 울렸습니다. 로맨스를 빙자한 정치소설 푸시킨의 『대위의 딸』을 읽고 열렬한 푸시킨 추종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토록 다르게 읽히다니, 그렇다면 그때 본 건 도대체 무엇이었나."라며 기억한 것과 크게 달라 당황하기도 했다는 최인훈 작가의 소설 『광장』. 청년 시절엔 그저 대한민국의 불합리한 사회 현실 비판 소설로 읽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수준이 매우 높은 지식인 소설이자 경험의 질적 차이로 당시엔 내면에 접수할 수 없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이런, 열 번도 넘게 읽은 대목인데, 또 눈자위가 뜨끈해지고 콧날이 시큰하다. 소설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릴 만한 감성이, 내게, 아직도, 남아 있었던가." - 책 속에서

 

 

 

『공산당 선언』을 읽고 가슴 설레는 젊은이라면 반드시 다윈을 읽으라고 말하는 유시민 작가. 약간 생뚱맞아 보일 수 있겠지만 그만큼 다윈의 『종의 기원』은 오남용의 위험을 내포한 책인 만큼 제대로 올바르게 읽어봐야 할 책으로 손꼽습니다.

 

 

 

인생의 고비마다 읽어 지금까지 여섯 번을 읽었다는 어떤 책은 청년 시절 생각을 완전히 바꾼 계기가 된 책이기도 합니다. 50년을 살면서 읽은 책들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 하나만을 고르라고 한다면 바로 이 책이라고 합니다. 바로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입니다. 무엇이 그토록 유시민의 가슴을 두드렸는지 궁금하다면 읽어보세요.

 

그릇된 편견과 고정관념을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 책도 있고, 선한 목적은 선한 방법으로만 이룰 수 있음을 깨닫게 한 책도 있고, 사회가 진보하는데도 허덕이는 삶을 다룬 책을 읽으며 유시민의 꿈을 일깨우기도 합니다.

 

그 유명한 항소이유서 마지막 단란에 인용한 네크라소프의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라는 글귀는 스물여섯 살 때 구치소에서 읽은 책,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서두에 실린 편집자의 글 덕분이었습니다.

 

오늘을 사는 지혜, 더 나은 내일을 그리는 가슴 벅찬 여정을 담은 <청춘의 독서>. 청년 시절 읽었던 고전을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읽으며 깨달은 점은 읽는 이가 아는 만큼 보이더라는 겁니다. 그때 놓쳤던 부분이 새롭게 눈에 들어옵니다.

 

유시민 작가의 글은 고전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그 책들이 어떻게 지금의 유시민이라는 사람을 만들었는지, 하나하나 해부해봅니다. 썰전과 알쓸신잡 방송에서도 다양한 책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청춘의 독서>를 읽다 보면 그의 목소리가 자동 재생되는듯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몇몇 포인트에서는 절제된 슬픔과 분노를 담은 조곤조곤한 그의 말투가 떠올라 더 울컥하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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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세계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살림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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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타 사야카 작가가 <편의점 인간>보다 먼저 발표했던 <소멸세계>.
일본 3대 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작가의 이전 작품 중 역주행 인기를 탄 소설이 바로 <소멸세계>라는데요. 확실히 센세이션 일으킬만한 주제를 다룬 소설이네요. 

 

 

 

싱글맘 엄마와 함께 사는 나 '아마네'의 세상은 성, 연애, 결혼, 가족, 출산의 의미가 지금과 다릅니다. 이제는 부부가 섹스하면 근친상간인 시대입니다. 남편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남매와 같은 이미지입니다. '나'의 첫 번째 결혼에서는 남편이 '나'에게 욕정을 품자 근친상간하려는 변태로 만들어 이혼하기까지 합니다.

 

 

 

아마네의 세상에서 올바른 성이란 인공수정이라는 과학적인 교미를 통해서만 가능하고, 성행위를 통해 임신하는 것을 원시적인 교미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과거 교미 흔적이 아직 남아 있어 '연애' 상태를 겪습니다. 연애는 TV, 책 속의 인물인 캐릭터들과 하는 형태로 이뤄집니다. 인간과 하는 연애도 물론 있지만, 연애 대상이 캐릭터든 인간이든 성욕은 혼자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인 시대입니다. 

 

 

 

연애와 임신 출산을 철저히 분리하는 시대.
'가족'이 된 남편과 아내는 각자의 연애를 따스하게 응원합니다. 사랑은 사랑, 가정은 가정이라는 가족 시스템. 결혼을 해서 가족이 되는 조건으로는 수입과 집안일 분담의 균형 감각이 서로 일치하는가 정도일 뿐입니다. 가족은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간다는 느낌을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그러니 이 시대에는 비혼, 이성혼, 동성혼 등 다양한 형태의 삶을 거리낌 없이 선택하며 삽니다.

 

그런데 싱글맘인 엄마는 '나'에게 과거의 사랑 감정을 들려줍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는 세상의 낭만을 간직한 엄마. 게다가 엄마 아빠가 동물적인 교미를 통해 내가 태어났다는 걸 알게 된 후 나의 성 정체성은 과거와 현재 모두에 걸쳐있게 됩니다.

 

결국 과거의 교미 행위를 시도하는 '나'는 엄마의 가치관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이 사회에 스며들어 안심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반면 내 몸속 본능을 터뜨리고 싶은 양면적인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실험도시에서는 가족 시스템 대신 에덴 시스템이 시행 중입니다. 컴퓨터로 선정된 남녀 주민이 누구의 것인지 모를 정자와 난자로 인공수정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어른으로 인정받는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센터에서 지냅니다. 그 아이들은 우리 모두의 '아가'가 되고, 남녀 어른들은 모두 '어머니'가 되는 겁니다. 실험도시에서는 남자도 인공자궁을 달아 출산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두 번째 결혼으로 가족이 된 남편과 나는 실험도시로 이주해 에덴 시스템의 일부가 됩니다. '아가'들은 내 아이가 아닌 인류의 아이입니다. 센터와 공원에서 '아가'들을 예뻐해 주고 나면 책임은 지지 않고 각자 집으로 돌아갑니다. 인간의 아이라는 애완동물을 키우는 듯한 묘사에 충격적이면서도 그럴법한 일이라고 생각이 드는 건... 어쩌면 지금 이 시대 결혼, 출산, 가족 개념이 이미 해체되고 있어서가 아닐까요. 

 

 

 

"그야 자궁이 여자한테만 있어서잖아. 남남 부부가 아이를 가질 수 있다면, 남녀 결혼은 확 줄어들걸? 남자들도 속으로는 남자끼리 결혼하는 게 마음 편해서 좋다고 생각할 거야." - 책 속에서

 

인공수정의 발달로 여자의 자궁이 가진 의미가 사라지면 임신 출산의 혁명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성과 연애, 결혼, 가족 개념 모두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소멸세계>에서 보여줍니다.

 

이 세상의 정상은 과거에 비정상이었던 때가 있었고, 과거의 정상이 현재의 쓸모없음이 되기도 합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절대불변이 아니라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 개념이 기술 발달로 해체될 수 있는 것들의 범위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인간의 진화는 본능마저도 해체합니다. <소멸세계> 속 인물들은 세상이 요구하는 '정상적인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내 성애의 형태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나' 조차도 말입니다.

 

철저히 해체하는 과정에 그것의 존재 의미를 묻는 방식을 사용한 <소멸세계>. 누군가는 소설 속 세상을 꿈꿀 테고, 누군가는 '나'의 엄마처럼 과거를 고수하려 들 겁니다. 역주행 인기몰이한 소설이라는 점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100년 후쯤 완벽히 미래를 예측한 SF 소설로 이 책이 주목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묘하게 공감돼 오히려 소름 돋는군요.

 

"우리는 진화의 순간을 살아가는 거야. 언제나 그 길을 가는 '도중'이라고."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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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위대한 여정 - 빅뱅부터 호모 사피엔스까지, 우리가 살아남은 단 하나의 이유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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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탄생부터 생명의 기원을 넘어 인류 진화의 과정이라는 주제는 과학과 철학, 종교에서 숱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중 대세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죠. 그런데 <사피엔스>의 한국판이라 불릴만한 저작을 만났습니다.

 

서울대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의 책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생존 전략에 담긴 인류 진화의 여정을 들여다봅니다. 솔직한 심정을 밝히자면, 기독교적인 책일 거라 곡해하고 미뤘던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무척 흥미로운 내용이 많습니다.

 

 

 

호모 하빌리스부터 현생 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요.

기획하고, 불을 다스리고, 달리고, 요리하고, 배려하고, 의례하고, 공감하고, 조각하고, 영적이고, 묵상하고, 그림 그리고, 교감하고, 더불어 사는 인간임을 보여줍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구하고 내면의 소리를 듣는 종교적 인간으로 나아갑니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인간'이라 부를 수 있게 된 정신적인 혁명에 초점 맞춥니다. 유인원이 현생 인류로 가는 위대한 여정, 인간을 뜻하는 '호모'라는 이름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260만 년 전 원시인류인 호모 하빌리스부터 호모 사피엔스까지 어떤 과정으로 발견되었고 명명되었는지, 그리고 각 인간의 특징을 명료하고 이해 쉽게 설명하고 있어 어떤 교양 과학서보다 더 흥미진진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 용어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게 되었네요.

 

 

 

도구 제작을 이유로 최초로 '호모'라는 지위를 획득한 호모 하빌리스. 인위적인 무언가를 하는 행위는 의도된 목적이 있는 창작 활동인 겁니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이미 사라진 인간 종들이 남긴 흔적을 통해 관찰과 공감 능력이 예술로 표현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생존과 상관없는 '상상'은 인간의 정신적 혁명을 보여줍니다. 상상의 표현은 역시 예술이죠. 인류의 조상이 남긴 작은 조각품부터 동굴에 남긴 벽화들은 생존을 위한 사냥을 하면서도 동물이 지닌 위엄과 용맹성을 흠모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책에 소개하는 인간 본성의 특징은 대개 좋은 쪽입니다. 딱 하나 부정적인 면으로 폭력성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되긴 하는데요. 최초의 살인 사건에 대한 증언이 된 두개골. 구약성서 <창세기>에서도 카인의 살인이 나오듯 폭력성은 인간의 본성인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한편 기형인 아이가 5년간 보살핌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두개골도 있습니다.  배려 문화의 사례로 등장합니다. 배려, 공감 능력이라는 것은 인간 생존의 원동력, 인간 본성의 핵심을 이타심에서 찾는 이 책의 줄기와 연결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관찰과 상상이 표현된 예술 작품들을 통해 단순히 살해하는 인간을 넘어 묵상하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타심으로 이어집니다. 잘못 이해하고 의도한 이타심의 발현이 극악하게 드러난 역사적 사례가 숱하게 있긴 하지만, 어쨌든 핵심은 이타적 유전자입니다.

 

 

 

장례 문화는 인간 내면의 무의식을 자극하고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합니다. 사회적이고 영적인 열망을 드러내는 모습 속에도 이타심이 있습니다.

 

종교의 기원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추측함으로써 시작한다고 합니다. 호모 하빌리스부터 호모 사피엔스까지 인간 여정에서 등장한 흔적들은 결국 자신 내면의 소리를 들어왔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미 우리는 종교적 인간이라는 겁니다. 원시종교의 탄생이 농업혁명과 다른 문명을 일으키는 단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배철현 교수는 이 책에서 '과학자들은 ~ 주장한다' 혹은 '추정한다'로 줄곧 이야기하는데요. 현재의 과학지식은 일시적으로 가변적일 뿐 절대 진리는 아니라는 원칙이 잘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물론 과학근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종교근본주의도 경계합니다.

 

우주의 시작, 생명의 시작, 인류의 시작처럼 '처음'에 관해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일깨웁니다. 저 역시 이 책은 그간 발견된 흔적을 통해서 인간의 여정을 탐색한 하나의 해석, 납득할만한 주장으로 접한 셈입니다.

 

종교학자가 이 주제를 다룬 점이 신선해서 읽기 시작했지만, 과학자들의 흥미로운 일화와 유물 발견 당시의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에 관한 2017년 6월 최신 학설까지 이 책에서 만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진화 주제에 관심 있거나 영적인 인간에 관심 있는 분들 모두가 만족할만한 책일 거라 생각합니다.

 

인류 조상들이 남긴 것들을 통해 그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마음을 한데 모으면 지금 우리의 모습이라는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우리는 누구인가, 존재 의미를 갈구하는 인간에게 주는 인류학적 답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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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울어도 되는 밤
헨 킴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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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 팡팡 터지는 그림 덕분에 해외 유수의 기업과 단체에서 러브콜 받는 핫한 일러스트레이터, 헨 킴 Henn Kim 작가. 역량 있는 젊은 아티스트들만 선정해 전시한다는 대림미술관 구슬모아당구장 프로젝트에 개인 전시 중입니다. (헨킴 : 미지에서의 여름 - 7월 29일부터 10월 1일까지)

 

아트에세이 <실컷 울어도 되는 밤>은 헨킴 작가의 그림 중 엄선한 150여 점을 소장하는 셈이니 놓칠 수 없는 책입니다.

 

 

 

흑백의 그림 한 컷과 짤막한 글귀만으로 감동 주는 헨 킴 작가. 왜 그렇게 화제가 되는지 직접 확인해 보세요. 구질구질하지 않게, 담백하면서도 한편으론 강렬하게 위로를 안겨 줍니다.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요소가 있는데도 보는 순간 머리와 가슴을 찌릿하게 하면서 정서적 공감을 부르는 그림. 아트네요, 아트.

 

 

 

지치고 피곤한 힘든 하루의 끝, 밤.
밤은 위로의 시간입니다. 내 머릿속 지우개 대신 내 머릿속 다리미, 기억 지우는 세탁기처럼 괴로운 일들은 떨쳐버려야 하는 시간, 밤.

 

날 꺾으려 드는 모든 것들에게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간절히 느껴지는 그림들입니다. 답답하고 억눌린 내 모습은 내가 약하거나 미친 게 아니라 그저 지금 우울할 뿐이고 다쳤을 뿐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우린 모두 각자의 아름다운 우주를 가지고 있으니 자아에 물도 주고, 사랑도 주라고 합니다. 가끔은 눈물에 잠겨도 되고, 더 격하게 쉬어도 된다고 합니다. 

 

 

 

미지를 탐험하듯 하나하나 알아가는 기쁨이 있는 만큼, 가까워질수록 힘든 일도 생기는 관계의 양면성을 그려내기도 합니다. 

 

 

 

 

이상하고 신비로운 원더랜드. 한여름 밤의 꿈같은 몽환적인 이미지가 일품이었어요.

위로와 치유로서의 달이 그림에 등장합니다. 즐거운 하룻밤 꿈이야말로 오늘을, 현실을 치유하는 힘이 된다는 거죠. 

 

 

 

끙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커피 한 잔의 여유로 시작하는 일상.

여전히 숨 막히는 하루하루가 이어지겠지만, 브런치의 여유와 계절을 즐길 줄 아는 소소한 행동이야말로 치유 아이템이 아닐까요.

 

밤으로 시작해서 아침으로 이어지는 <실컷 울어도 되는 밤>. 헨킴 작가의 그림들은 잊을만한 것은 잊고, 지워버릴 수 있는 건 지워서 조금 더 용기를 낼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선사합니다. 이 모든 것은 나를 아껴주는 마음에서 비롯합니다. 아트테라피 <실컷 울어도 되는 밤>, 헨 킴 작가의 위로가 되는 그림들로 지친 마음을 충전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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