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날은 전부 휴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골든 슬럼버>, <사신 치바> 등으로 유명한 이사카 고타로 작가의 <남은 날은 전부 휴가>. 미스터리 추리소설 쪽에서 영향력 있는 작가던데 이 책은 통통 튀는 유쾌함 속에 뜻밖의 감동이 담긴 소설입니다. 전 이 책으로 이사카 고타로 작가를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꽤 만족스러웠어요.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자 해피해피한 감정이 온몸을 감싸는 듯한 기분을 만끽했습니다.

 

<남은 날은 전부 휴가>에 수록된 다섯 편의 스토리가 각각 독립적인 스토리가 되면서도 다섯 편을 관통하는 인물과 인연이 얽혀 하나의 큰 스토리를 완성하는 연작소설입니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운 탓에 이혼하게 되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한 집안이 해체되는 날입니다. 이사 전 마지막 대화를 나누던 자리에서 아버지에게 온 이상한 메일. 뜬금없이 친구하자며 드라이브도 하고 밥도 먹자는 메일에 "뭐 어때?" 한 마디로 승낙해버리는 가족. 그리고 그 가족과 드라이브를 하고 밥도 같이 먹게 되는, 메일을 보낸 당사자인 오카다.

 

의심스럽고 어이상실할만한 상황이 이어지는데도 큰 고민 없이 덥석덥석 받아들이는 가족의 분위기도 황당, 그런 가족과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는 오카다의 행동도 황당하기만 합니다. 도대체 오카다에겐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요.

 

오카다와 미조구치는 의뢰받은 일을 처리하는 해결사로 함께 일합니다. 이제 오카다가 그 일에서 발을 빼려고 하는데. 평생 친구 하나 없었다는 오카다에게 지금 당장 친구를 만든다면 보내주겠다는 미조구치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네요. 어쨌든 그 가족 덕분에 이제 정식으로 백수가 된 오카다.

 

오카다에 관한 이야기는 <남은 날은 전부 휴가> 전반에 걸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만큼 오카다의 영향력은 등장인물들에게 꽤 크게 전달됩니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는 인물이면서도 스스로는 선뜻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스토리는 오카다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상황이 나오네요. 우연히 만난 소년에게서 학대 당한 흔적을 발견한 오카다. 오지랖 넓은 오카다는 폭력 아버지를 상대로 일을 꾸미는데, 캬... 정말 절묘하게 사기를 치더군요.

 

 

 

세 번째 이야기는 오카다와 함께 일한 미조구치가 등장하는데요. 놀고 자빠졌네 싶을 정도로 코미디가 따로 없었어요. 지금까지 분위기와는 상관없는 생뚱맞은 스토리가 등장하다 보니 외전 분위기도 납니다.

 

 

 

네 번째 이야기는 어린 시절의 오카다가 등장해요. 영화 속에서 고문을 당했던 주인공이 '바캉스'를 생각했다는 고백 장면을 본 오카다 역시 "싫은 일이 생기면 바캉스를 생각하기로 했어."라는 한 마디를 내뱉습니다. 현실도피와도 같은 말이지만, 그때의 생각이 이후 오카다의 삶에서 이정표가 됩니다.

 

슬픔은 잊어야만 했다. 남은 시간이 아주 많았으니까.
이따금, 바캉스를 생각했다. - 책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불법적인 일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불의를 참지 못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오카다. 상대방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즐겁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그렇다면 앞으로는 상대가 기뻐하는 일을 해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조직의 일에서 오카다가 발을 빼자마자 미조구치는 그를 배신해버렸고, 이후 스스로를 자책하며 후회합니다. 어느새 오카다가 했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결국 오카다를 그리워하며 미조구치는 무언가를 계획하는데.

 

미조구치와 오카다는 뭐하나 잘 되는 게 없던 인생이었어요. 가진 것도 없고 인생이 필만한 상황도 아닌 그저 그런 삶. 하지만 오카다는 삶을 비난하지도 탓하지도 않습니다. 그건 희망 없음이 아닌 오히려 현실적인 태도였어요. 오카다의 대책 없는 긍정이 미조구치에게까지 전염됩니다.

 

오카다는 우리에게 무엇을 위해 사는지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조구치와 오카다의 미래는 흔히 성공이라 부르는 범주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뭐 어때요. 가진 것 없는 인생도 딱 이만큼의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성공 스토리 못지않은 감동을 주더라고요. 더 현실적인데다가 소소한 말 한마디에서 받는 위로가 꽤 크다는 걸 느꼈습니다. 골때리게 비정상적인 설정으로 배꼽 잡다가도, 한 번씩 치고 들어오는 감동 포인트가 매력적인 묘한 소설입니다.

 

미래는 그때가 닥치지 않는 이상 모르는 거고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요. 가능하면 행복해지고 싶잖아요.-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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