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충분한 삶 - 일상을 불충분하게 만드는 요구와 욕구를 넘어
헤더 하브릴레스키 지음, 신혜연 옮김 / 샘터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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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독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유해한 메시지들을 함께 고민해보고 벗어나는 법을 이야기하는 자기회복의 인문학 <이만하면 충분한 삶>. 사려 깊음은 우유부단으로, 우울은 다른 이들과 잘 지내기를 거부하는 고집으로 오해받으며 단순히 행복을 성취하지 못하거나 무리와 잘 어울리지 못하면 도덕적 실패로 간주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유해하고 모순된 사회 문화적 메시지들은 무의식적으로 서서히 내면화해 일상에서 자신이 부족하다 생각하고 자신의 삶에 실망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그 어느 때보다 소통 환경이 넓어진 디지컬 커뮤니케이션 환경에서 오히려 점점 더 고립되어 가는 기분이 들때조차 이 문제를 각자의 개인적인 문제로 간주해버립니다. TV 비평가이자 칼럼니스트 헤더 하브릴레스키는 <이만하면 충분한 삶>에서 기이한 압박과 불안에 사로잡힌 우리의 삶을 적나라하게 들춰냅니다.


미니멀리즘의 이면에 숨겨진 과소비, 소셜 미디어가 부추긴 수치화 현상, 소비지상주의적 현혹의 명백한 징후를 보이는 음식 문화 등에서 오늘날 우리 문화를 지배하는 규칙을 짚어줍니다. 우리의 오해로부터 파생된 현상들입니다. 그 규칙대로라면 우리는 최고의 멋진 삶을 살아야하고 최고 버전의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세상에 맞는 태도를 길러야하는게 삶의 목표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오랜 침묵을 통해 깊이 사고할 기회를 차단하고, 자신의 평가에 따라 세상이 좌우되기라도 한다는 듯 행동하고, 전문가라는 사회악에 매몰되기도 합니다. 특히 전문가 이야기가 인상 깊었는데요. "주변에 자영업자나 교사, 예술가보다 전문가가 더 많다면 분명 그것은 세상이 그 기반을 상실했음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합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보내는 유해한 메시지 중 강하면 미쳐있는 여성 캐릭터를 꼬집기도 합니다. 드라마 '명탐점 몽크'에서는 심리적 장애가 천재성의 핵심으로 그려졌고, 수많은 미친 여자들은 그냥 똑똑한 것일 뿐인데도 성격의 불안정한 요소는 성별에 따라 달라집니다. TV 비평가답게 이 사례 외에도 다양한 미디어 속 캐릭터를 분석해 보여줍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을 권하는 단순 명쾌한 말들은 오히려 우울과 불편에 대한 기피를 하게 만들었고, 자기계발은 능력치를 최대로 뽑아내기 위해 안달났습니다. 외적 장애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자아의 힘만 믿으라고 하니까요. 뭔가를 비평하려면 헤더 하브릴레스키의 비평 방식을 눈여겨보세요. 표현 자체는 세지 않은데도 내용은 무척 신랄합니다.


관심과 인기가 중요한 시대라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하찮고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중적인 마음이 드는 현대인의 상황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이만하면 충분한 삶>. 혼란스러운 세상 속 유해한 메시지들에게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나이에 대한 집착에서 해방하고, 진정한 로맨스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등 나를 향한 믿음을 통해 자기회복을 하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순간을 즐기며 편히 쉬는 것이 진정한 사치라고 짚어줍니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음을 알려면 관점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상상 속의 완벽한 대안과 비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말입니다.


더 나아지지 않는 자신에 대해 연민을 느껴야, 타인에 대한 연민도 느낄 수 있는 법. 만연한 망상과 거대한 환상이 우리의 공동체 의식과 연민을 억압하고 있음을 짚어주는 <이만하면 충분한 삶>. 불완전한 현재의 순간에서 자존감과 충만함을 찾을 수 있는 법을 이야기합니다.


"최고 버전의 당신은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당신이다."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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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양털 조끼의 세계 여행 - 우리 앞에 펼쳐진 세계화의 진실
볼프강 코른 지음, 이수영 옮김, 김은혜 그림 / 웅진주니어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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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보다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을 더 흔하게 볼 수 있는 요즘, 세계화의 물결을 일상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품이 만들어진 나라는 그 제품의 긴 생애에서 하나의 정거장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수많은 제품들의 여행은 원료를 구입하는 단계에서 시작해 쓰레기 처리장이나 재활용 센터 등으로 이어집니다.


저자는 청소년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세계화와 관련한 글을 쓰던 시점에서 고민에 빠집니다. 이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 최적의 제품을 선정해야 하는데 마땅한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아프리카 난민을 다룬 프로그램을 보다가 해안에 도착한 난민 중 한 청년이 입은 옷에 주목합니다. 그 옷은 몇 개월 전 헌옷 수거함에 버린 자신의 조끼였습니다. 심지어 붉은 포도주 자국까지 같으니 그것이 내 조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이 책의 주인공으로 삼기에 이릅니다.


독일의 헌옷 수거함에서 나온 빨간색 인조 양털 조끼를 입은 아프리카 청년은 어쩌다가 대서양을 표류하게 되었을까? 그 조끼는 어떻게 아프리카로 보내졌을까? 조끼는 어디서 만들어졌고, 조끼의 연료는 어디서 구했을까?


<빨간 양털 조끼의 세계 여행>은 조끼의 여정을 추적하며 물건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세계화와 공정무역에 대해 알아보는 책입니다. 꽤 폭넓고 깊은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방식이 매력적인 책입니다.


풍부한 석유와 현명한 경제정책으로 세계화의 승자로 일컫는 석유 부국 두바이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지구에 매장되어 있는 석유는 매우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습니다. 두바이 노동자들의 일상과 세계 최고층 건물의 초호화 분위기를 극명하게 비교하는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인상 깊습니다. 유조선은 석유를 가득 싣고 방글라데시로 이동합니다. 이 과정에서 낡은 유조선의 위험성도 짚어줍니다.


석유가 폴리에틸렌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숨겨진 방글라데시 치타공의 염색 공장과 섬유 공장의 암담한 현실은 노동 환경의 다양한 이면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납품 기한을 맞추기 위해 16시간째 쉬지 않고 재봉질을 하는 환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옷이 완성되면 컨테이너선에 실려 세계 최대의 컨테이너 항구 싱가포르로 이동합니다. 컨테이너선과 관련해서는 우리나라 조선업이 소개되어 있어 신기했어요.


해적 습격을 피해 드디어 독일 함부르크의 항구로 도착한 컨테이너는 세관 통관 후 백화점 물류 센터로 향합니다. 그리고 저자가 이 조끼를 구입하게 되기까지의 여정이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헌옷 수거함에 버린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의류 재활용 회사를 취재하며 헌옷의 향방을 알게 됩니다. 그중 헌옷 컨테이너 사례를 소개합니다. 아프리카로 향한 화물이 세네갈에 도착해 한 청년의 손에 들어가기까지의 여정은 파란만장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아프리카로 보내지는 헌옷이 오히려 아프리카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겁니다. 아프리카 내에서의 의류 생산과 관련된 이야기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빨간 양털 조끼가 아프리카 난민의 보트 여정을 함께 하는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공정한 무역 정책을 펼치도록 끊임없이 문제 제기하는 거라고 짚어줍니다. 다른 대륙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우리에겐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인 양 행동해선 안된다고 강조합니다.


소비자로서 이 옷은 어느 나라에서 수입되었고, 어떤 조건에서 만들어졌고, 이 옷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었고,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발생했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쓰레기가 발생할 것인지.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의 노동 조건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의 고려 없이 그저 싼 물건에만 초점 맞춰선 안되는 이유를 알게 해주는 책입니다.


흔한 물건에 담긴 세계 여러 나라 노동자를 생각해 보는 사회적 연대감과 환경 문제 및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와 공정무역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일깨우는 멋진 책입니다. 얇은 분량이지만 다루고 있는 지식의 깊이가 남다릅니다. 중고등학생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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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다 그만두지 않았을까
정옥희 지음, 강한 그림 / 엘도라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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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반복하고 실패하고 헤매는 시간을 겪다 보면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더 잘하고 싶어 하는 욕망도 만날 수 있습니다. 상반된 감정 속에서 매일을 어찌어찌 살아가는 일상입니다.


<나는 어쩌다 그만두지 않았을까>는 발레 전공자의 이야기입니다. 여덟 살 때 발레 학원을 시작으로 무용과 입학, 발레단 활동을 하다 이제는 대학 강사 생활을 하고 있는 정옥희 저자는 하나의 직업군이자 사회 현상으로서의 발레에 대해 관찰해 온 풍경을 들려줍니다. 무언가를 전공한다는 것의 보편적 경험이기에 예체능 전공자가 아닌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발레에 대한 지식을 얻는 건 덤입니다.


말 대신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발레. 새로운 언어를 감지한 이들이 무용수가 됩니다. 그들의 움직임은 섬세하고 매혹적인 언어와도 같습니다. 무용수들은 움직임으로 소통하고 생각합니다. 몸에 축적된 감각은 오래 기억되어 나이가 들어도 음악만 들으면 자동 반응을 할 정도라고 합니다.


정옥희 저자는 일찍 목표가 들어앉은 삶을 살았습니다. 꿈을 찾지 못하고 진로를 정하지 못한 채 대학에 입학하는 많은 학생들과 달리 무용과를 목표로 대학 입시를 준비했고, 발레단 입단을 목표로 취업 준비를 했습니다. 이처럼 딱딱 목표가 정해져 있는 삶이 부럽다는 생각도 들면서 한편으론 중간에 바꿀 기회가 있을 때 두려움에 멈추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기 마련입니다.


세계적인 몇몇 대단한 발레리나가 아니고서야 발레를 전공한 이들의 이야기는 그동안 잘 모르고 있었고,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마침 최근 큰 이슈로 떠오른 발레계 소식이 있더군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파리오페라발레의 수석무용수가 된 한국인 박세은 발레리나가 위상을 떨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명성 있는 발레리나는 1% 부자를 보는 것처럼 뭔가 멀게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프로페셔널 발레단의 군무 무용수로 활동했던 발레 전공가인 저자의 목소리가 평범한 우리들의 삶과 맞닿아있어 공감이 큽니다.


발레 하면 너무나도 완벽한 동작에 마리오네트처럼 인형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 정확한 동작에 대한 의미를 알게 되니 앞으로 발레를 관람하는 눈이 달라질 것 같아요. <나는 어쩌다 그만두지 않았을까>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콩쿠르를 거치며 온갖 일들을 겪으면서 웬만해선 흔들림 없는 프로페셔널로 성장하기까지 그 여정을 펼쳐 보입니다.


학생 신분으로 중국 광저우 발레단에 입단해 1년을 지냈을 때의 경험도 파란만장합니다. 그때의 경험은 한국에 돌아와서 유니버설 발레단에 입단했을 때 발휘됩니다. 다국적 무용수들은 외국인 노동자와 같습니다. 그들의 어려움, 외로움, 고립감을 헤아릴 줄 알게 됩니다.


프리마 발레리나만 기억하는 우리들에게 군무 무용수는 일부러 신경 써서 바라보지 않는 이상 그저 배경으로만 인식하게 됩니다. 주인공이 되지는 못했던 저자는 그렇기에 오히려 조금 더 성숙한 관찰자가 되어 발레를 바라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전체가 하나처럼 움직이며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군무 무용수는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는 감각이 고도로 발달된 존재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프로의 정신은 너무 떨거나,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쉽사리 나태해지지 않으면서 매번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 책 속에서


오로지 대학 입학을 위해 달려온 우리나라 무용 전공자들은 특히나 대학 생활하면서 우울증을 많이 겪는다고 합니다. 1년에 겨우 몇 명만 뽑는 프로페셔널 발레단에 입단하는 것도 무척 힘든 일이니 요가나 필라테스 자격증을 따거나 대학원 진학을 하기도 합니다.


우아하고 고급스럽게 다가오는 발레. 사람들은 발레를 좋아한다는 기호를 내세우고 싶어 하면서도 발레 무용수에 대한 냉소와 혐오가 가득한 현실을 거침없이 지적하기도 합니다. 임신은 은퇴라는 공식이 있다시피 하다 보니 엄마 발레 무용수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세계적인 발레리나도 친정 엄마 찬스가 없는 한 육아와 병행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프로로서 품질 유지를 위해 그토록 완벽주의와 성실함을 지켜온 발레 무용수의 삶이 임신과 동시에 단절되는 겁니다.


발레가 등장하는 만화, 영화 등을 소개하기도 하고 발레에 대한 기본 지식과 더불어 일반인들은 쉽게 접할 수 없는 고급 에피소드가 많이 등장합니다. 발레 취미 1도 없는 저조차도 포인트 슈즈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 흥미진진하더라고요.


<방구석 미술관> 책에서 드가의 발레 작품을 소개할 때 알게 된 발레리나의 역사 속에 자리했던 성 노동자로 전락했던 어두운 시절을 저자 역시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나마 루이 14세가 발레를 직접 출 정도로 사랑했기에 그 덕분에 발레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졌다고 하는군요. 그럼에도 여전히 진행 중인 철저한 외모지상주의, 낡은 인권 감수성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냅니다.


초심자가 프로가 되기까지 그 여정을 가감없이 드러낸 <나는 어쩌다 그만두지 않았을까>. 열심히 노력하는 것과 자기 파괴적으로 달리는 것은 다름을 짚어줍니다. 프로에겐 이번 공연이 끝이 아니니까요. 그만두지 않고 지금의 일을 치열하게 해나가고 있는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애증의 파노라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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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스파이 스키 스쿨 1~2 세트 - 전2권 책이 좋아 3단계
스튜어트 깁스 지음, 김경희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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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시리즈와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 푹 빠졌던 시절이 있었는데 스파이물의 공식들이 뻔하면서도 끊을 수 없는 매력 때문에 사랑하는 장르물입니다. 정통 스파이물의 멋진 요원 캐릭터에 심쿵하기도 하고, 코미디로 비튼 스파이물 역시 그 나름대로 허당끼를 만끽할 수 있어서 재밌고요. 흥미로운 건 영미권에선 키즈 스파이물도 무척 많다는 거였어요. 어린이 첩보 액션 소설 <스파이 스키 스쿨>도 스튜어트 깁스 작가의 '스파이'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전작 <스파이 스쿨>, <스파이 캠프>, <악당 스파이 스쿨>에서 스파이를 키우는 비밀 학교에 다니는 벤의 모험기를 담은 스파이 시리즈. 이번엔 정식 스파이 임무를 맡아 스키장에서 펼쳐지는 모험을 선보이는 <스파이 스키 스쿨>입니다. 앞의 책을 읽지 않아도 내용 이해에는 전혀 무리가 없지만, 읽고 나면 너무 재밌어서 전 시리즈를 다 읽고 싶어질 거예요. 스파이 시리즈는 '책이좋아3단계'에 해당하는데 초등 고학년이 읽기 좋은 책입니다. 스파이 하면 떠오르는 기밀문서. 영화에서는 지령 전달 후 자폭하는 장면들이 펼쳐지는데 우리 아이도 그런 장면들 정말 재밌어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급비밀 기숙학교인 스파이 스쿨에 다니는 벤. 사실 벤은 스파이에 특출난 재능을 가진 아이는 아닙니다. 사건에 얼결에 개입하면서 너무 많은 비밀을 알게 된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정식 학생이 된 케이스였거든요. 한편 학교에서 가장 뛰어난 스파이 훈련생 에리카는 집안이 대대로 첩보원 출신이어서 어렸을 때부터 온갖 훈련을 받아왔습니다. 얼음 여왕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학생들 사이에선 넘사벽 존재입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듯한 벤과 에리카는 전작에서도 얽히고설키는 관계입니다. 스파이물에서 빠질 수 없는 공식 중 하나가 로맨스이기도 한데 풋풋한 청소년 로맨스도 기대하세요. 그나저나 이번엔 무슨 사건이길래 아직 부족한 게 많은 훈련생 신분인 벤이 작전의 핵심 요원이 되었을까요.


<스파이 스키 스쿨>의 악당은 전혀 빈틈이 없는 레오 청이라는 인물입니다. 중국에서 갑자기 미국행을 하면서 분명 음모를 꾸미고 있건만 구체적인 정보를 CIA에서도 모르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마침 딸 제시카의 스키 강습을 위해 스키장으로 온 레오 청. 그런데 CIA도 못한 일을 아이들이 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 시점에서 들려주는 스파이 훈련기는 꽤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어 흥미진진의 연속입니다. 작전 수행 직전 들떠(?)있는 아이들의 모습에서는 그 나이대의 평범한 일상이 엿보여 실감 납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재능이 없어 기죽기 일쑤였던 벤이 성장하는 과정도 한 방의 무언가가 아니라 소소한 것들에서 성취를 얻어내며 자신감을 얻어 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각자의 장점이 팀에서는 단점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함께 할 때 필요한 자세와 태도를 사건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기도 합니다. 티격태격 싸움이 끊이질 않고 삐거덕대면서도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스파이 스키 스쿨>. 아이들의 모험, 액션 그리고 로맨스 한 스푼이 엮어가는 이야기를 스튜어트 깁스 작가의 흡인력 있는 스토리 덕분에 흥겹게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사실 자연스럽지 않은 소재인데도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적당한 유머와 함께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어린이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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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공구로운 생활
정재영 지음 / Lik-it(라이킷)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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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상 2세대로 공구 생태계의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는 공구 큐레이션 업체 '공구로운 생활' CEO 정재영 저자의 책 <오늘부터 공구로운 생활>. 다채로운 이력과 경험을 지닌 저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은행나무 출판사의 생활 애호 에세이 브랜드 '라이킷' 시리즈 아홉 번째 책으로 나왔습니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지만 은근한 경시와 편견이 자리 잡은 3D 직업군 중의 하나가 공구상일 겁니다. 창업 트렌드 최전선에서 일하던 밀레니얼 세대인 저자가 퇴사하고 공구상이 된 데는 15년간 트럭으로 43만 킬로미터를 주행하며 공구상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병환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구는 1도 모르던 사람이 얼결에 공구상을 운영하다 보니 좌충우돌 에피소드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청계천 공구 상가는 명실공히 이름 한 번쯤은 들어본 곳일 겁니다. 청계천 공구 상가에 찾는 물건이 없으면 우리나라에 없다고 보면 된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고 보니 단순히 소비자 입장에서 가정용 공구 정도 몇 가지만 아는 게 다인지라 공구상의 역할이 뭔지 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적재적소적시에 공장단지에 필요한 제품이 들어가야 하는 공구. 공구 상가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합니다. 카탈로그 들여다보며 제품 명칭 좀 아는 걸로 끝이 아닙니다.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품질의 공구와 실제 결제하는 사업체 모두가 합리적으로 만족할 만한 공구를 선택해야 하고, 최상의 품질을 지닌 공구를 기술자에게 추천해 줄 수 있어야 하고,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마케팅 및 유통에 취약한 제조사를 도울 수도 있어야 합니다. 공구 상가는 신체에 혈액을 공급하는 심장 역할이라는 저자의 말이 인상 깊습니다.


요즘은 집수리 서비스가 있어 간단한 수리도 직접 못하겠다 싶으면 서비스 업체를 이용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겨우 한 번 정도 쓸까 말까 한 공구를 굳이 준비해둘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됩니다. 흔한 드라이버조차 없는 집이 많습니다. 한편 DIY 작업에 취미 있는 일반 소비자들도 늘어나고 있어 공구에 대한 정보와 지식은 점점 격차가 벌어질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집에 하나쯤 갖추면 좋은 공구를 콕 짚어 알려줍니다. 특히 집들이 선물로 공구를 선택하면 중복 확률이 적은 편이라고 합니다. 공구라고 해서 흔히 생각하는 투박함만 생각하면 오산. 공구가방만 하더라도 멋스러운 제품이 많더라고요. 튼튼한 데다가 실용성도 있으니 운동 용품이나 캠핑 장비를 넣기 좋다며 애용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공구 브랜드 하면 생각나는 건 일본, 독일산 정도인데 브랜드 및 제품 모델마다 장단점이 있어 사용자에게 잘 맞는 걸 찾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무조건 이름난 브랜드가 최고인 건 아니더라고요. 국위 선양하는 국산 브랜드의 위엄도 만날 수 있습니다.


생판 모르던 공구 세계에 진입 후 나이 지긋한 기술자들 틈에서 업신 당하기도 하면서 그 세계에 제대로 스며들기까지 공구상으로서의 일상을 담은 글들이 흥미진진합니다. 지방에 납품하러 가는 트럭 안에서는 프리미엄 결제한 유튜브 영상을 음성으로 들으며 가는 젊은 공구상. 온 힘을 다 쥐어짜내어 당장 뭔가를 이룰 필요는 없다는 걸 공구상의 세계에서 배우며 유연한 조절력을 얻습니다. 다양한 일을 경험하며 공구상으로서의 정체성을 세웁니다. 공구상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 세상에 꼭 필요한 직업이라는 것을요.


콘크리트 벽에 나사를 박아야 할 때 어떤 드릴을 써야 하는지, 줄자는 어떤 걸 사야 하는지, 수두룩한 장갑의 쓰임새를 도무지 알 수 없을 때 <오늘부터 공구로운 생활>이 시원하게 해결해 줍니다. 안전복, 안전화, 장갑처럼 안전과 편의성을 위해 착용하는 것들의 정보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정보들이라 읽는 맛이 좋았습니다. 니트릴 장갑을 자주 사용하는 편인데 요리용으로 사용할 땐 식품용 인증받은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되기도 했어요. 살 때 솔직히 전혀 그런 부분 생각도 못 했거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름을 낯설어하는 공구 중의 하나인 버니어캘리퍼스는 소라게 쉘을 재는데 유용한 제품이라 잘 사용 중이기도 하고요. 작업하다 답답해지기 일쑤였던 저렴한 공구세트에 들어있는 공구는 내구성이 썩 좋지 않다는 말에도 폭풍 공감합니다. 공구는 그저 가격만을 따지기에는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짚어줍니다. 게다가 단품으로 구입한다 해도 생각했던 것보다 비싸진 않은 가격대이면서도 쓸만한 제품을 추천하고 있어 도움 됩니다.


<오늘부터 공구로운 생활>로 공구에 대한 올바른 사용법과 실용적인 정보를 많이 얻었습니다. 공구들의 쓰임새를 세세하게 알게 되니 안전하고 즐겁게 활용할 수 있겠습니다. 무척 다양한 쓰임새로 활용 가능한 공구를 소개할 때는 신세계 느낌이더라고요.


기술자가 말하면 찰떡같이 알아듣고 추천해 주는 공구상의 역할을 보니 공구상이야말로 큐레이터의 원조가 아닐까 싶더라고요. 생산자와 상생하며 소비자의 즐거운 공구 생활을 돕는 공구상. 가업을 잇는 2세대 공구상으로 이 일을 그만두지 않고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공구상이 되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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