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공구로운 생활
정재영 지음 / Lik-it(라이킷)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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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구상 2세대로 공구 생태계의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는 공구 큐레이션 업체 '공구로운 생활' CEO 정재영 저자의 책 <오늘부터 공구로운 생활>. 다채로운 이력과 경험을 지닌 저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은행나무 출판사의 생활 애호 에세이 브랜드 '라이킷' 시리즈 아홉 번째 책으로 나왔습니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지만 은근한 경시와 편견이 자리 잡은 3D 직업군 중의 하나가 공구상일 겁니다. 창업 트렌드 최전선에서 일하던 밀레니얼 세대인 저자가 퇴사하고 공구상이 된 데는 15년간 트럭으로 43만 킬로미터를 주행하며 공구상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병환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구는 1도 모르던 사람이 얼결에 공구상을 운영하다 보니 좌충우돌 에피소드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청계천 공구 상가는 명실공히 이름 한 번쯤은 들어본 곳일 겁니다. 청계천 공구 상가에 찾는 물건이 없으면 우리나라에 없다고 보면 된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러고 보니 단순히 소비자 입장에서 가정용 공구 정도 몇 가지만 아는 게 다인지라 공구상의 역할이 뭔지 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적재적소적시에 공장단지에 필요한 제품이 들어가야 하는 공구. 공구 상가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합니다. 카탈로그 들여다보며 제품 명칭 좀 아는 걸로 끝이 아닙니다.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품질의 공구와 실제 결제하는 사업체 모두가 합리적으로 만족할 만한 공구를 선택해야 하고, 최상의 품질을 지닌 공구를 기술자에게 추천해 줄 수 있어야 하고,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마케팅 및 유통에 취약한 제조사를 도울 수도 있어야 합니다. 공구 상가는 신체에 혈액을 공급하는 심장 역할이라는 저자의 말이 인상 깊습니다.


요즘은 집수리 서비스가 있어 간단한 수리도 직접 못하겠다 싶으면 서비스 업체를 이용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겨우 한 번 정도 쓸까 말까 한 공구를 굳이 준비해둘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됩니다. 흔한 드라이버조차 없는 집이 많습니다. 한편 DIY 작업에 취미 있는 일반 소비자들도 늘어나고 있어 공구에 대한 정보와 지식은 점점 격차가 벌어질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집에 하나쯤 갖추면 좋은 공구를 콕 짚어 알려줍니다. 특히 집들이 선물로 공구를 선택하면 중복 확률이 적은 편이라고 합니다. 공구라고 해서 흔히 생각하는 투박함만 생각하면 오산. 공구가방만 하더라도 멋스러운 제품이 많더라고요. 튼튼한 데다가 실용성도 있으니 운동 용품이나 캠핑 장비를 넣기 좋다며 애용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공구 브랜드 하면 생각나는 건 일본, 독일산 정도인데 브랜드 및 제품 모델마다 장단점이 있어 사용자에게 잘 맞는 걸 찾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무조건 이름난 브랜드가 최고인 건 아니더라고요. 국위 선양하는 국산 브랜드의 위엄도 만날 수 있습니다.


생판 모르던 공구 세계에 진입 후 나이 지긋한 기술자들 틈에서 업신 당하기도 하면서 그 세계에 제대로 스며들기까지 공구상으로서의 일상을 담은 글들이 흥미진진합니다. 지방에 납품하러 가는 트럭 안에서는 프리미엄 결제한 유튜브 영상을 음성으로 들으며 가는 젊은 공구상. 온 힘을 다 쥐어짜내어 당장 뭔가를 이룰 필요는 없다는 걸 공구상의 세계에서 배우며 유연한 조절력을 얻습니다. 다양한 일을 경험하며 공구상으로서의 정체성을 세웁니다. 공구상은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 세상에 꼭 필요한 직업이라는 것을요.


콘크리트 벽에 나사를 박아야 할 때 어떤 드릴을 써야 하는지, 줄자는 어떤 걸 사야 하는지, 수두룩한 장갑의 쓰임새를 도무지 알 수 없을 때 <오늘부터 공구로운 생활>이 시원하게 해결해 줍니다. 안전복, 안전화, 장갑처럼 안전과 편의성을 위해 착용하는 것들의 정보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정보들이라 읽는 맛이 좋았습니다. 니트릴 장갑을 자주 사용하는 편인데 요리용으로 사용할 땐 식품용 인증받은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되기도 했어요. 살 때 솔직히 전혀 그런 부분 생각도 못 했거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름을 낯설어하는 공구 중의 하나인 버니어캘리퍼스는 소라게 쉘을 재는데 유용한 제품이라 잘 사용 중이기도 하고요. 작업하다 답답해지기 일쑤였던 저렴한 공구세트에 들어있는 공구는 내구성이 썩 좋지 않다는 말에도 폭풍 공감합니다. 공구는 그저 가격만을 따지기에는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짚어줍니다. 게다가 단품으로 구입한다 해도 생각했던 것보다 비싸진 않은 가격대이면서도 쓸만한 제품을 추천하고 있어 도움 됩니다.


<오늘부터 공구로운 생활>로 공구에 대한 올바른 사용법과 실용적인 정보를 많이 얻었습니다. 공구들의 쓰임새를 세세하게 알게 되니 안전하고 즐겁게 활용할 수 있겠습니다. 무척 다양한 쓰임새로 활용 가능한 공구를 소개할 때는 신세계 느낌이더라고요.


기술자가 말하면 찰떡같이 알아듣고 추천해 주는 공구상의 역할을 보니 공구상이야말로 큐레이터의 원조가 아닐까 싶더라고요. 생산자와 상생하며 소비자의 즐거운 공구 생활을 돕는 공구상. 가업을 잇는 2세대 공구상으로 이 일을 그만두지 않고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공구상이 되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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