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낵 인문학 - 간편하고 짤막하게 세상을 읽는 3분 지식
타임스낵 지음 / 스테이블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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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 먹듯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지식 콘텐츠를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 타임스낵의 <스낵 인문학>. 경제, 역사, 과학, 예술, 심리, 상식을 주제로 48가지 이슈를 세상 편하게 꿀꺽할 수 있는 책입니다. 과자 먹듯 짧은 시간 안에 소비하는 콘텐츠를 뜻하는 스낵컬처에 인문학을 붙이다니, 인문학의 진입 장벽을 확 낮췄습니다.


<스냅 인문학>은 가볍게 시작했다가 자꾸만 손이 가 봉지의 바닥을 보고야 마는 스낵처럼 '흥미'로 시작해 '지식'으로 마무리하는 구성입니다. 한 편당 3분 정도면 읽을 수 있으니 간편하게 짤막하게 세상을 읽는 지식 콘텐츠. 사진과 일러스트가 함께 해 지루하고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만큼 순삭 할 수 있어요.


경제 편에서는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 기술을 이용해 납치 광고를 벌인 버거킹 사건처럼 뜻밖의 놀라운 결과를 낳게 한 사례를 만날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 옆에 놓인 인공지능 스피커가 오케이 구글~ 명령에 반응해버린, 생각해 보면 배꼽 잡을 만큼 재밌는 사건이었어요. 기술의 의도와 달리 사용자가 어떻게 쓰느냐를 보여준 첨단 기술의 빈틈을 볼 수 있었습니다.


경악을 금치 못한 제품을 선보인 기업의 흑역사들, 반대로 약간의 실수, 아이디어, 실행력이 히트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분노를 활용해 운전자의 핸드폰 사용에 경각심을 알린 브라질 골키퍼 사건처럼 기막힌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그저 웃고 넘기기엔 그 속에서 캐낼 수 있는 교훈이 만만찮습니다.


엘리베이터에 거울이 설치된 이유, 150일 동안 하루에 지구를 16바퀴씩 돌며 착륙을 대기해야만 했던 우주 난민 사건, 전 국민이 슈퍼카를 탔던 나우루 공화국의 최후 등 역사 속 이슈들이 이어집니다. 조그만 섬나라가 부귀영화를 누리다 한순간에 최빈국으로 전락한 이유를 보면서 현재의 행복을 중시하는 욜로의 이면을 되돌아보기도 합니다.


과학 편에서는 빨대의 구멍이 몇 개인지 살펴보는 콘텐츠가 재밌었는데요. 빨대의 구멍은 몇 개일까요? 위아래 각각 독립적인 2개? 아니면 하나의 긴 구멍? 파이프처럼 그저 직사각형의 면을 돌돌 말아놓은 형태에 불과하기 때문에 구멍은 0개라는 주장까지. 빨대 구멍에 둘러싼 기발한 논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냉동인간 기술은 그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가 이미 냉동인간 서비스를 이용 중인 사람이 600명 정도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냉동인간이 되는 과정이 이집트 미라 만들던 기술을 닮아 더 놀랐네요.


예술 편에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즐거움을 줍니다. 일본 만화 캐릭터의 눈이 왕눈이인 이유, 웃음 뒤에 숨은 사회 풍자 애니메이션 이야기 등 생각할 거리가 많습니다. 뼈 있는 메시지가 많이 숨겨져 있다는 걸 알게 되니 다시 한번 보고 싶어지네요. 희귀한 공포증, 자신의 신체 부위를 부정하는 마음 등 심리와 관련한 놀라운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자신의 신체 일부를 혐오하고 심지어 제거하고 싶어 하는 질환의 사례는 정말 미스터리합니다.


그 외 다양한 상식이 쏟아집니다. 한 번쯤 지식인에서 찾아봤던 궁금증도 있고, <스낵 인문학> 덕분에 처음 접한 이야기도 많습니다. 페트병 바닥에 써진 숫자가 플라스틱 재활용 정보와 안정성을 표기하는 거라는 건 어렴풋이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정확히 구별할 줄 알게 되었어요. 아이스크림 이름 탄생의 비밀로 빵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하며 마무리하는 인문 잡학 사전 <스낵 인문학>.


최근에 읽은 김경집 교수님의 책에서 자투리 정보나 지식의 파편 자체가 창조적 생산력으로 이어질 순 없지만, 그것이 축적이 되어 자신의 사유와 버무려질 때 창조를 이끌어낼 힘을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입체적 사고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축적의 힘이 되는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스낵 인문학>을 읽어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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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스페인은 시골에 있다 - 맛의 멋을 찾아 떠나는 유럽 유랑기
문정훈 지음, 장준우 사진 / 상상출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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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시골에서 맛의 멋을 찾아내는 유럽 유랑기 시리즈. 전작 <진짜 프랑스는 시골에 있다>에서 예고한 스페인 편 <진짜 스페인은 시골에 있다>가 출간되었습니다. 전 세계 시골에 농부 친구들을 둔 자칭타칭 세계 시골 전문가 문정훈 교수의 맛깔스러운 글과 푸드라이터 장준우 셰프의 사진 조합이 이번에도 빛을 발합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을 정말 즐기는 게 글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날 정도로 유쾌한 여행기 <진짜 스페인은 시골에 있다>. 와인과 음식, 사람을 따라 떠나는 프랑스 시골 여행기를 보며 프랑스 구석구석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했는데, 스페인 역시 기존에 알던 관광지 위주의 스페인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 주에서 시작합니다. 한국의 전라도처럼 바스크 지역은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아주 평범한 '옆으로 잘라서 오븐에 구운 토마토'마저도 환상적인 맛이라며 첫 글부터 군침 돌게 하더니 바스크 지역의 재래돼지 코스 요리 묘사 장면에서는 당장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게 만들 지경입니다.


재래돼지와 관련해서는 재래 품종의 가치에 대한 깊은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재래돼지 방목을 하는 농장을 보며 우리나라에서도 시도할 수 있을지 고민해 봅니다. 품종 차별화, 사육 방식 차별화로 양돈사업을 하는 호세 아저씨의 농장은 생산성과 수익성이 없다며 포기해버리는 우리나라 재래, 토종돼지 농장과 비교되기도 합니다. 바스크 재래돼지는 소비자들이 그 가치를 알아주기에 비싸도 충분한 수요가 있다고 합니다.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이자 푸드비즈니스랩 소장인 문정훈 저자는 이 지점에서 유전적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도 꺼내듭니다. 생산성 좋은 것만 사육, 재배하느라 유전적 다양성이 사라지는 현실을 꼬집습니다. 우리의 재래, 토종돼지 복원 문제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무엇보다 그 가치를 찾아내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게 셰프임을 짚어줍니다.


천천히 오래 기른 소로 만든 하몬과 스테이크의 낯선 육향을 맡으며 울릉도 약소의 환상적인 맛과 닮은 점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자연스러운 사육 방식이 안겨주는 가치는 어마어마합니다.


"모든 음식은 농산물로 만들며, 농산물에는 품종이 있다. 내 취향을 알고 내 취향에 맞는 음식을 잘 찾아서 적절한 금액을 지불하고 먹는 것이 훌륭한 소비자의 태도다." - 책 속에서


<진짜 스페인은 시골에 있다>를 통해 스페인 식문화를 배우게 됩니다. 7시에 가볍게 아침을 먹고 10시 반쯤 아점을, 오후 2시쯤 성대하게 점심을 먹고, 6~7시에 점저를 먹고 (!), 9시에 본격 저녁식사를 하는 스페인의 전통 식문화. 하루 다섯 끼라니 놀랍네요.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확연히 다르군요. 해산물도 무척 다양하게 즐기는 스페인이어서 멸치액젓 수출까지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대부분 스페인에 대해선 수도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바르셀로나, 안달루시아 지역 정도를 알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유명 관광지는 한곳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죽기 전에 가봐야 하는 바다의 등대 호텔에 대한 정보를 한 챕터 분량으로 소개할 만큼, 관광지가 아니어도 멋진 매력을 뿜어내는 곳이 많다는 걸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관광지 맞춤 식당에서 먹는 음식이 아닌 지역의 식문화를 즐길 수 있는 정보가 가득합니다. 한국을 알고 싶어 하는 외국인에게 평창 한우 농가를 직접 보여주고 한우구이를 먹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게 진짜 한국의 맛을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스페인의 식문화를 알면 알수록 한국인 입맛과도 잘 맞는 곳이구나 싶어요. 스페인 고춧가루 피멘톤을 활용한 음식은 한식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스페인식 고추튀김과 환상적인 조합을 자랑하는 시드라의 양조장을 살펴보고, 스페인 재래돼지 이베리코로 만든 하몬이 어떻게 만들어지를 살펴봅니다. 이탈리아산 올리브오일을 사랑하는 장 셰프마저도 만면에 미소를 띠게 한 스페인산 올리브오일을 뿌린 아이스크림의 맛도 궁금합니다. 10번도 넘는 스페인 시골 여행을 다녀본 저자의 노하우가 곳곳에 배어있는 <진짜 스페인은 시골에 있다>. 이제 다음 시골은 어디가 될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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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이은진의 범죄심리 해부노트
이수정.이은진 지음 / 김영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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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의 성격장애와 관련된 범죄의 관계를 파헤친 책 <이수정·이은진의 범죄심리 해부노트>.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와 심리상담 전문가 이은진이 함께 쓴 범죄심리 대중서입니다. 소개된 범죄 사례들은 가십거리 소재를 넘어 사회와 가정이 함께 관심 가져야 하는 이유가 충분히 있는 비극들입니다. 범죄심리에 관심 있는 이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관심 있게 바라봐야 할 주제입니다.


<이수정·이은진의 범죄심리 해부노트>에는 열 가지 성격장애가 등장합니다. 일반적인 성격과 질적으로 구분되는 성격장애입니다. 성격적 어려움이 사회적, 직업적 영향을 손상시킬 정도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성격장애. 본인 스스로는 치료가 필요하다고 인지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부모와의 애착관계라는 겁니다. 유전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 성격장애도 있지만 이 역시 양육의 질까지 나쁘면 청소년기부터 그 정도가 심화된다고 합니다.


사회적으로 고립하고 기이한 생활을 하는 성격을 지칭하는 A군, 정서적으로 극단적 경험을 하는 특징을 가진 B군, 타인에 대한 과도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가진 C군으로 크게 나눠 각 성격장애를 사례별로 소개합니다.


<이수정·이은진의 범죄심리 해부노트>에서는 잔혹한 범죄로 이어진 극단적 사례를 소개합니다. 일인칭 시점과 관찰자 시점을 사례별로 안배해 어떤 원인이 촉발시켜서 이런 결과에 이르렀는지의 과정을 몰입감 있게 전개합니다.


사례를 접하다 보면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자신 외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게 된 가해자의 모습에 안타까운 심정이 듭니다. 엽기적 살인 사건을 저지르고서도 스스로는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뒤틀린 성격장애를 가지게 된 이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죄책감 없이 반복하며 살인에 이르는 과정이 섬뜩하면서도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들여다보면 가슴 아픕니다.


스스로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에 도움을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가까운 이들의 관심이 있었더라면 다른 결과를 낳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큰 사건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부모의 거부와 방임을 겪으며 극한 정서적 결핍 상태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해자의 성장 배경과 범행 과정을 통해 경험을 이해할수록 흉악 범죄의 결과 이면에 숨겨진 악의 고리가 보입니다.


사이코패스의 전조증상을 보인 공감 능력이 없었던 가해자가 친족 살해로 수감 생활을 하면서 호전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기만의 세상에서 빠져나와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겁니다. 이처럼 충분히 치료에 집중하면 비극을 막을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믿지 않고 의심하는 편집성 성격장애, 제한된 정서만 표현하는 조현성 성격장애, 왜곡된 인식으로 별난 행동을 하는 조현형 성격장애, 부정적 감정을 과장되게 경험하는 경계성 성격장애,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자기애성 성격장애, 정서를 과도하게 표현하는 연극성 성격장애,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무모하게 행동하는 반사회성 성격장애, 가슴속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회피성 성격장애, 분리나 거부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가진 의존성 성격장애, 완벽한 규율과 통제에 집착하는 강박성 성격장애. 열 가지 성격장애는 개인 간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들 조금씩은 갖고 있는 성향이기도 합니다.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 또는 둘의 조합으로 설명되는 열 가지 성격장애가 실제 범죄심리 프로파일링 과정에서 어떤 기준으로 참고되는지도 소개됩니다.


<이수정·이은진의 범죄심리 해부노트>의 범죄 사례는 유년기, 청소년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안정적인 애착관계의 중요성이 두드러집니다. 적절한 애정과 지지 없이 큰다는 게 한 사람의 성격을 형성하는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과도한 의심과 원한을 품다 끝내 헤어진 애인의 아버지를 살해한 가해자, 전국 1등만 강요하다가 아들에게 살해당한 피해자 등 그 결과는 가해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범죄자의 숨겨진 심리를 파헤치며 극단적 성격장애가 어떤 결과를 낳게 하는지 그 과정을 통해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고민해 보는 <이수정·이은진의 범죄심리 해부노트>.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가진 일명 '갑질'의 주인공은 아닌지, 유년기의 충격과 두려움이라는 미해결된 감정 덩어리를 분노라는 시한폭탄으로 안고 사는 건 아닌지 나와 내 가족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됩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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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있던 자리에
니나 라쿠르 지음, 임슬애 옮김 / 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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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을 주제로 한 청소년 문학 <우리가 있던 자리에>. 주인공이 청소년일 뿐 상실감에 대한 상처의 깊이와 회복의 과정이 성인이 읽어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에다가 담담하면서도 가슴 아리게 하는 문체가 인상 깊은 작품입니다.


2020년 청소년 교양도서로 선정된 <우린 괜찮아>의 작가 니나 라쿠르의 데뷔작이 바로 <우리가 있던 자리에>입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감정들을 다루는데 탁월한 니나 라쿠르 작가의 작품, 무척 매력적입니다. <우리가 있던 자리에>는 2009년 원서 출간 이후 꾸준한 인기에 힘입어 2019년 개정판으로, 그리고 이번에 한국어판이 출간되었네요. 점선 절취선을 뜯어내면 책갈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책날개 디자인이 센스만점입니다.


고등학생 때 인생 최악의 사건을 마주한 케이틀린. 영혼의 단짝과도 같았던 베스트프렌드 잉그리드의 자살은 케이틀린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그해 여름은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한 나날들이 이어집니다. 자신만의 동굴에서 마음을 닫아버립니다.


잉그리드에게서 조금씩 보였던 자해 흔적. 그때 도와달라고 알렸어야 했다며 죄책감과 후회만 가득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잉그리드가 케이틀린의 방에 남겨둔 일기장을 발견합니다. 이 일기장을 읽어버리면 더 이상 새로운 것이 하나도 남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섣불리 읽어내려갈 수 없었지만, 힘겹게 한 장씩 넘깁니다. 잉그리드의 일기장이 케이틀린에게 독이 될지 약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생각이든 떠오르는 대로 서로에게 말했던 사이였는데 일기장에는 자신에게 직접 하지 않은 이야기들만이 있습니다. 왜 말하지 않았을까요. 케이틀린이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랬던 거라면 그조차도 자신의 무기력함에 죄책감이 듭니다.


잉그리드의 아픔을 몰라서는 안 됐다는 자괴감. 케이틀린은 친구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에 고통스러워합니다. 가족이 모르는 것도 알아채 주는 존재로서의 친구 말입니다. 잉그리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똑똑히 알아줬어야 했다고 후회합니다.


새 학기가 시작된 학교생활은 여전히 수많은 감정에 허덕이는 케이틀린을 분노에 차게 만드는 일이 많습니다. 친구들의 "괜찮아?"라는 질문조차 말이 안 되는 질문처럼 들리고, 그렇다고 해서 아무 일도 없는 척 대하는 것도 힘들게 합니다.


사진에 재능이 있었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한 잉그리드와 케이틀린. 잉그리드와 죽이 잘 맞았기에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추억을 쌓았지만, 이제 홀로 남겨진 케이틀린은 사진 수업조차도 괴롭습니다. 사진 선생님도 케이틀린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잉그리드의 친구 자격으로만 자신을 봐왔던 걸까 싶어 고통스럽고 화가 납니다.


투명 인간이 되어가는 기분을 느끼는 케이틀린의 감정이 담담하게 또는 절절하게 묘사됩니다. 가끔은 가장 만만한 엄마에게 쏟아내는 케이틀린의 뒤틀린 표현도 공감됩니다. 고통을 겪는 딸을 대하는 부모님의 심정도 안타깝습니다. 놀라운 건 케이틀린의 부모님의 태도였어요.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반성할 정도로,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주는 부모의 모습에서 배울 게 많았습니다.


거기에 새로운 친구도 있습니다. 전학 온 친구와의 관계맺음은 특히 케이틀린의 치유 여정에 큰 영향을 줍니다. 괜찮냐고 묻는 사람들보다 상실감을 경험해본 그 친구의 "힘들겠다."는 말 한마디에 고마운 감정을 느낍니다.


가장 친한 친구였음에도, 잉그리드를 살릴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괴감은 새로운 친구와의 우정을 쌓아가는데도 방해가 되곤 합니다. 새로운 친구와 웃고 즐기는 것조차 잘못된 일인 것 같습니다. 후회, 짜릿함, 아픔이 뒤섞인 케이틀린의 복잡한 심정을 잘 그려낸 소설 <우리가 있던 자리에>.


케이틀린은 상실을 어떻게 치유할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게 어떤 기분인지 그 절절함을 잘 아는 이도 있고, 누군가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슬퍼할 이유가 딱히 없는 이도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도 애도와 공감을 표현하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끼던 사람의 상실을 겪은 사람을 지켜보는 이들의 표현 방식도 저마다 다릅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분노하기도 하고 치유받기도 하는 케이틀린의 회복 여정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저 세월이 약이라는 식으로 그려내지 않습니다.


<우리가 있던 자리에>는 작가의 경험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고 합니다. 함께 어른이 될 줄 알았던 고등학교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상실의 슬픔을 알게 된 니나 라쿠르 작가. 친한 친구가 아니었음에도 충격, 혼란, 상실감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공유하는 행위만으로도 애도와 치유의 여정에 도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멋진 소설이 탄생했습니다.


"삶은 변화한다. 사람들은, 모든 것은 사라진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할 때 다시 나타나 우리를 꼭 안아준다."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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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자 김경집의 6I 사고 혁명 - 콘텐츠의 미래를 이끄는 여섯 개의 모멘텀
김경집 지음 / 김영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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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의 망망대해에서 헤매고 있는 이들을 위해 여섯 가지 길을 알려주는 책 <인문학자 김경집의 6I 사고 혁명>. 전쟁과 산업화의 패러다임인 속도와 효율의 시대는 지났지만 여전히 20세기 사고방식으로 살아간다면 콘텐츠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합니다.


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콘텐츠의 열매에만 신경 쓰는 현재의 환경. 10년 동안 변화가 없는 이상한 인문학 열풍과 수평적이지도 유연성을 갖지도 않은 무늬만 팀 체제인 실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20세기 애플의 성공 요인 중 하나인 잡스의 직관 능력에 꽂혔으면서도 본질을 바라보지 못했기에 이런 현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사유나 추리에 비해 속도 면에서 월등한 '직관'. 당시 잡스에게는 워즈니악이라는 효율성을 보완하는 인물이 함께 했기에 환상의 조합을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옛 방식을 고수하다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픽사를 인수하며 집단지성의 힘을 경험했고, 애플 복귀 후 그의 키워드는 '융합'이었습니다. 김경집 저자는 20세기 잡스와 21세기 잡스를 구별하라고 조언합니다. 그 구별의 차이를 만든 핵심 키워드를 찾아야 문제의 본질을 볼 수 있습니다.


인문학이란 그저 철학, 문학, 역사 책을 찾고 강좌를 들으며 '소비'하는 게 아니라 인문적 성찰의 힘에서 진가를 발휘합니다. 10년의 인문학 열풍을 거친 동안 진정 성찰했다면 뭔가 달라졌어야 한다고 합니다.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여전히 낡은 사고와 인식의 틀을 깨뜨리는데 주저합니다. 지금쯤이면 여고라는 이름도 없어졌어야 하지 않냐고 반문합니다.


뿌리가 튼튼할 때 생겨나는 열매인 콘텐츠. 실천적 인문학자 김경집 전 가톨릭대 교수는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고 형태도 없는 콘텐츠가 지식을 넘어 '사유'의 결과물임을 강조합니다. <인문학자 김경집의 6I 사고 혁명>은 사고력이 어떻게 길러지는지 여섯 가지 생각의 도구로 설명합니다.


6I 사고법은 탐구 Investigation, 직관 Intuition, 영감 Inspiration, 통찰 Insight, 상상 Imagination을 융합해 최종적으로 나 I/Individual에 도달합니다. 요즘은 국가든 기업이든 학교에서든 다들 강조하는 게 창조, 혁신, 융합이잖아요. 인문학적 사고력의 핵심이지만 정작 실천하는 데 있어서는 막막해합니다.


저자는 현대미술의 추상성에 주목합니다. 자신의 눈으로 해석하면서 당혹감을 느끼기도 하고 그 당혹감을 의식의 확장과 새로운 아름다움에 대한 개안으로 연결하는 체험 자체가 유의미하다는 겁니다. 나의 주체적인 해석을 강조합니다. 그런 데에서 콘텐츠의 힘이 길러진다고 합니다. 현재와 미래를 통찰하게 해주는 현대미술의 장점을 들어보니 그동안 외면해온 게 부끄러워집니다.


가장 안정적이고 체계적, 논리적, 생산적인 지식과 정보는 범람하는 쓰레기 뉴스 속이 아니라 오히려 책에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키워드 '탐구'는 지식과 정보를 그저 탐색하고 검색하는 차원이 아니라 탐구와 창조적 능력이 더해져야 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콘텐츠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내공을 쌓을 수 있는 주요 수단으로서의 독서법에 대한 이야기가 알찹니다.


두 번째 키워드 '직관'은 '탐구'의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양된다고 합니다. 지식/정보 - 탐구 - 직관으로 이어준다는 거죠. 창조와 고유성이 무기가 되는 시대에 콘텐츠의 힘과 확장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탐구해온 사람에게 찾아오거나 연결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세 번째 키워드 '영감'은 경험의 축적, 관점 전환, 호기심과 질문에서 나타납니다.


네 번째 키워드 '통찰'은 끊임없는 관찰과 응시를 통해 가능해집니다. 깊이 생각하고 연결하고 문제의식을 짚어 나가다 보면 통찰의 잔근육이 생긴다고 합니다. 통찰력 키우는 방식의 다양한 사례를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게 알려줍니다. 다섯 번째 키워드 '상상'은 콘텐츠의 생산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소라고 합니다. 궁극적인 창조는 상상력에서 비롯됩니다. 새로운 사고와 행동으로 발현하는 힘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 책에서 확인해보세요.


추상적인 개념처럼 막막하게 다가온 개념들이 이 책에서는 무척 선명하게 이해됩니다. 다섯 가지 키워드를 조합하고 융합해 입체적 사고를 하는 '나'에 이르기까지 그 여정이 쉽지는 않지만,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도록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거창한 데서 찾는 인문학이 아니라 눈여겨보면 모든 것이 콘텐츠임을 짚어줍니다. 궁극의 콘텐츠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인문학자 김경집의 6I 사고 혁명>. 콘텐츠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문학적 사고력의 훈련법과 활용에 대해 좋은 지침이 됩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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