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되기의 철학
스티네 옌선.프랑크 메이스터르 지음, 금경숙 옮김 / 생각의집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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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육아에 관해서라면 언제나 다양한 방법론이 나옵니다. 어린이 행복지수가 높다는 북유럽 양육법만 해도 덴마크식 육아, 핀란드식 육아, 스웨덴식 육아 등 끝이 없습니다. 누군가는 부모가 아이를 너무 응석받이로 만든다 하고, 누군가는 부모와 아이를 대등한 입장에 놓고 키워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교육적 목소리를 따라야 할까요.


네덜란드 문학재단 번역 지원 선정 도서 <부모 되기의 철학>은 일곱 살 딸을 둔 싱글맘 스티네 옌선과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 독립하지 않은 두 아들을 둔 아빠 프랑크 메이스터르가 부모들과 우리 자신이 양육자로서 하는 키잡이 역할을 고민해 보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그들은 철학자입니다. 철학자야말로 갈팡질팡 증후군을 직업병으로 가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철학하기란 갈팡질팡하며 가늠하는 일이고, 사유의 기초에 회의를 중심에 두는 것이라고 합니다. <부모 되기의 철학>은 철학자로서 이번엔 육아 딜레마 자체에 집중해 육아 문제에 철학이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여정을 보여줍니다.


저자 스티네는 한부모라는 죄책감에 딸에게 선물을 너무 많이 주는 건 아닐까 고민합니다. 너무 버릇없이 키우는 것은 아닐까, 때로는 단호하게 '안 돼!'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엄격함 vs 들어주기. 많은 부모가 자신이 선호하는 쪽으로 입장을 취하는데, 그 선택은 다분히 의식적인 선택일까요. 아니면 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인지, 사회적 분위기에 따른 시대정신일까요.


학원, 숙제, 습관 등 양육자로서 실패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저마다 가진 다양한 딜레마. 잠시 엄격하게 대하고 나면 너무 엄하지 않았는지 바로 자문하는 것처럼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있는지 회의감에 빠지는 상황은 다들 겪어봤을 겁니다. <부모 되기의 철학>은 양육에 따라오는 회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육아 철학의 역사만 해도 권위적 양육자의 모습과 탈권위적 모습 사이에서 끊임없이 시소를 타고 있습니다.


칸트는 훈육을 강조하며 아이가 서서히 절대적으로 이해하도록 해주어야 하는 정언명령을 양육의 기초에 둡니다. 반면 온건파 로크는 아이의 문제를 그냥 그러다가 지나가는 하나의 단계로 봅니다. 상황에 따라 우리는 이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합니다. 실제 육아에서는 이 두 가지가 일관성 있게 적용하기 힘든 딜레마로 다가옵니다.


나라별 육아서를 파헤치며 육아 딜레마가 당신만의 문제가 아님을 짚어줍니다. 서구의 물렁함과 동양의 엄격함이라는 단순한 구분법으로 적용한 육아서도 많고, 유명인들의 육아서 대부분이 약간은 낄낄대며 그럴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면서 진짜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드러내진 않습니다. 엉뚱하게 처신하는 자신의 모습을 뽐내며 허술한 부모 유형이라는 클리셰 범벅인 육아서도 상당합니다. 하지만 너스레 떨며 낄낄대는 그 속에 바로 딜레마의 아픈 지점이 숨어있음을, 원칙이 있는 육아를 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건드립니다.


낙제된다고 해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은 채 숙제하기 싫어하는 딸을 둔 사례는 내 아이를 공동체에서 훌륭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키워야 하는지, 아니면 행복한 아이가 되도록 키워야 하는지의 딜레마를 설명할 수 있는 사례입니다. 오늘날 자녀 교육은 점점 아이 개개인의 행복에 초점을 맞춥니다. 엄격함 vs 들어주기와 마찬가지로 행복 vs 바람직한 시민의식 사이에서 딜레마가 생깁니다.


이 책에서는 철학자 플라톤과 루소를 마주 세우고 육아의 목표로써 시민의식과 개인 행복 간의 대조를 보여줍니다. 플라톤이라면 학교 숙제 하기를 싫어한다고 해서 행동을 가르치지 않을 까닭은 없다고 말할 겁니다. 숙제를 하게 하고 언젠가 철인이 될 수도 있을 거라며, 불평해서는 안 되고 자신의 지성을 공동체에 바쳐야 한다는 걸 강조할 겁니다. 반면 루소는 숙제할 마음이 없으면, 할 필요 없다고 말할 겁니다. 스스로 우러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고 말이죠. 강요가 없는 만큼 보상도 해주지 않습니다.


저자는 여기에서 무엇이 아이를 바람직한 시민으로 만들고, 무엇이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지 고민합니다. 플라톤과 루소의 중간에 위치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양육 철학도 살펴봅니다. 인간은 꿀벌과 같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자신의 집단 구성원과 잘 지낼 수 있으면 가장 행복하다고 주장합니다. 그에게 행복한 삶이란 무언가를 해낸 삶이며, 전체적으로 성공한 삶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라면 숙제를 하지 않는 아이에게 보상이라는 방법을 사용할 겁니다. 비록 보상 때문에 숙제를 하겠지만, 그러면서 좋은 기분을 알게 될 거고 이후엔 보상이 없어도 오랫동안 좋은 기분으로 숙제를 할 거라고 말입니다.


성별을 두고 양육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젠더 중립적 vs 여자아이, 남자아이 문제입니다. 전형적으로 여성적이라고 딱지 붙는 일이 덜 가치있게 여겨지는 것은 막고 싶다거나, 의사는 항상 남자인 줄 알았다가 여자 의사를 보고서야 그동안 고정적인 성 역할을 따르고 있었음을 인지한 저자들처럼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성 역할에 관한 논쟁은 역사적으로 치열합니다.


<부모 되기의 철학>에서는 보부아르와 버틀러의 시각과 성별 간 두뇌 논쟁, 젠더 중립적 양육이 가장 많이 이행된 스웨덴 육아 모델을 살펴봅니다. 여성이 사고하고 이성적인 존재로 성장하도록 장려하는 페미니스트 교육의 주제는 시몬 드 보부아르에 의해 가시화됩니다. 보부아르는 최초로 성별과 젠더를 엄격하게 분리했습니다. 여성적 또는 남성적이라고 부르는 신체적 징표가 여성적, 남성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문화, 젠더의 의미는 아니라고 말이죠.


남성성과 여성성의 고정관념은 두뇌 혁명과 뇌 과학의 발전으로 생물학주의로 돌아가게 됩니다. 오히려 젠더 중립적 양육을 반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린 겁니다. 성별 차이를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수용하고 인식하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후 여성성과 남성성의 차이에 관한 선입견을 낱낱이 깨부수는 연구 결과도 있음을 짚어줍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선입견이 우리가 내는 성과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번번이 드러난 연구처럼, 성 역할에 관한 선입견이 단번에 변하기 어려운 일임은 분명합니다.


육아서를 읽는 이유는 명쾌한 정답을 바라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많은 육아서가 완성된 답변을 내놓습니다. 하지만 모든 아이에게 통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없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고 여전히 갈팡질팡합니다.


부모가 갈팡질팡한다는 것은 자신의 행동이 자녀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회피하거나 어물쩍 넘어가는 방식의 육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게 바로 철학을 바탕으로 기준을 세우는 일입니다. 상황에 따라 특정한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걸 이해한다면, 결국 표준 전술이 없다는 것에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오히려 키를 잡아야 한다는 걸 강조하는 <부모 되기의 철학>입니다. 이 깨달음의 과정을 그나마 순조롭게, 덜 스트레스 받으며 헤쳐나갈 수 있도록 건설적으로 갈팡질팡 가늠하기를 할 수 있는 팁을 후반부에 정리해 주고 있으니 큰 도움 될 겁니다.


육아는 즐겁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철학자들의 양육법을 번갈아가며 적용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책은 과감하게 갈팡질팡하라고 합니다. 이리저리 재지 않는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철학에서 얻은 팁을 통해 바람직한 원칙을 고민해 보고, 타협을 수용하며 절충하는 기회에 대해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걸 알려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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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신들이 섬에 내려오시니 - 코스믹 호러 × 제주설화 앤솔로지
전건우 외 지음 / 들녘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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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에 의해 본격화된 '우주적 공포' (cosmic horror)는 전설과 그 결이 무척 잘 어우러집니다. 크툴루 신화를 창작한 러브크래프트식 호러가 낯설다면, 괴이한 설화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됩니다.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가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괴담, 호러 전문 출판 레이블이자 한국 호러 문학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괴이학회의 여섯 작가들이 제주 설화를 바탕으로 한국형 코스믹 호러를 만들어냈습니다. <오래된 신들이 섬에 내려오시니>는 제주도 고유 신화, 전설, 민담을 재해석해 독특한 공포를 선사합니다.​ 6인 6색의 공포 단편 모음. 분명 한국이지만 제주도만의 고유한 특색을 간직한 제주 설화의 매력을 압축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전건우 작가의 <광기의 전원>은 어느 날 새벽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이 모든 일들이 시작됩니다. 오래전에 사라졌던 민속학자 친구. 제주 설화가 실재했던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연구하던 친구로부터 무려 5년 만에 연락이 온 겁니다. 대뜸 하는 말이 "서천꽃밭으로 가는 길을 발견했네."라니, 드디어 이 친구가 미쳤구나 싶습니다.​


서천꽃밭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펼쳐진 광대무원한 정원입니다. 거기엔 수많은 꽃들이 있는데 기이한 능력을 가졌습니다.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생불꽃이 있는가 하면, 사람을 죽이는 멸망꽃도 있습니다. 웃음웃을꽃, 울음울을꽃, 뼈오를꽃 등 이름으로 그 능력을 짐작할 만한 수많은 꽃들이 있는 곳. 서천꽃밭이 상상의 장소가 아니라 진짜 존재하는 걸까요. 제주로 내려간 '나'는 눈빛만은 생생한 친구를 만나 그의 탐사에 동행하지만,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는 지옥도가 펼쳐집니다.


끝 모를 인간 욕망을 다룬 <광기의 전원>에 이어 전혜진 작가의 <단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둑한 슬픔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펼치는 코스믹 호러인 만큼 공포감 아래에 자리한 억울한 원혼의 비통함이 몰려와 더 스산해지는 기분입니다. 저주라는 미지의 공포와 연결해 제주 4·3 사건을 알리고 있어 울컥하며 인상 깊게 읽은 소설입니다.​


정명섭 작가의 <수산진의 비밀>은 제주로 유배를 간 박시혁의 시선으로 진행합니다. 육지와 여러모로 다른 괴이한 섬이라고 다들 한목소리로 이야기하니 유배살이에 두려움이 스멀스멀 밀려듭니다. 어느 날 수산진 성벽에서 나는 기이한 소리를 들은 데다가 수산진성을 쌓을 때 일어난 인신공양 이야기를 알게 됩니다. 제주 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설문대할망으로부터 지상으로 올라오지 못하는 형벌을 받은 땅속 깊은 곳에 사는 신에게 재물을 바쳤다는 겁니다.


​미신으로 점철된 이곳이 무척 미개하게만 여겨져 인신공양의 증거를 찾아 공론화하고 이들을 교화시키고픈 사명감에 결국 몰래 성벽을 파헤치는데... 산재물을 바치는 인신공양 설화는 언제 들어도 섬뜩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반전이 도사리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황모과 작가의 <딱 한 번의 삶>은 이어도에서 수백 번의 타임리프를 하는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스스로 생을 놓으려고 작정한 여자가 깨어난 곳은 제주 남쪽 바다 어딘가에 있다고 믿고 있는 전설의 섬 이어도.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깨어난 사람은 여자뿐만 아니라 어린 임산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둘 중 한 명만 이 섬에서 나갈 수 있다? 반복되는 윤회의 지옥을 탈출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이 소설은 지옥의 영겁을 반복하는 주인공이 누구에게나 평범하고 온전한 딱 한 번의 삶이 허락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 글이라는 작가의 후기가 울림을 줍니다.​


김선민 작가의 <뱀무덤>은 제주도 김녕사굴 뱀신 신화를 재해석해 러브크래프트의 <광기의 산맥>을 오마주한 소설입니다. 민속학자인 지도교수와 함께 제주도 출장을 간 대학원생. 제주도에서도 외딴섬에 있는 뱀신 전설이 있는 동굴을 발견한 그들이 동굴 끝에 다다르자 마주한 것은 도무지 인류 문명권에서 만든 건축물이라고 할 수 없는 지하도시입니다. 고대 미지의 도시 앞에서 희열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인신공양과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 사항의 전설이 담긴 이 신화는 어떤 모습으로 재탄생될까요.


사마란 작가의 <영등>은 모두가 가족인 지상낙원을 만든 한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룹니다. 일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람들은 모두 함께 작업을 하며 아픈 사람도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마을을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영등할망이라 불리는 영등신이 현신해 있다는 이곳으로 시집온 '나'. 현지인들도 이 마을엔 쉽게 들어갈 수 없다는 이곳에서 '나'는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여섯 작가의 작품이 모인 만큼 취향의 온도차는 분명 있지만, 편당 길이가 짧아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이승과 저승, 무당, 굿, 인신공양 등 설화에 자리 잡은 소재들은 사실 그 자체로 살짝 가까이하고 싶지는 않은, 께름칙한 느낌이 들긴 했었는데 현실의 인물들과 연결되니 생생하게 소름 끼치는 잔상이 꽤 오래가더라고요. 제주 여행을 가더라도 외진 곳을 걸을 때면 이 이야기들이 문득문득 생각날 것만 같아서 더 아찔해지긴 하네요.​


흔히 알고 있는 서양 신화만큼이나 많은 신들이 있는 제주도 신화의 매력에 빠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제주 설화와 관련된 소재를 만날 기회가 되면 쭉 접해보고 싶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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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이젠 떠날 수 있을까? - 한 달 살기 제주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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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쉽게 갈 수 있는 국내여행지라는 생각에 오히려 제주 여행은 우선순위에서 밀려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제주를 마지막으로 간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입니다.


올레길 유행 이후 생각하는 숲길, 한라수목원 등 숲 트레킹도 인기 있고 카페 투어, 해변 여행, 건축 여행 등 다양한 테마 여행을 할 수 있을 만큼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제주. 요즘 제주의 모습을 <이젠 떠날 수 있을까? 한 달 살기 제주>에서 만나봅니다.


한 달 살기 열풍은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이 제한되면서 막혔지만, 국내로 눈을 돌리는 여행자들이 늘어났습니다. 해외 한 달 살기의 로망을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는 곳이 제주가 아닐까 싶어요. 공항을 나서기만 해도 평소 보던 자연환경과는 달라진 분위기에 여행자의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저도 제주의 사계를 다 만끽해 보고 싶은데요. 눈이 올 것 같지 않은 제주여서 겨울의 제주는 기대를 전혀 안 했는데, 조대현 작가의 겨울 제주 사랑이 느껴지는 이야기를 접하고 나면 올겨울은 제주에서 머물고 싶은 마음이 샘솟을 겁니다.


일몰 헌터, 스타 헌터라는 단어가 와닿습니다. 박물관 같은 곳을 가려다 마감 시간 즈음해서 애매하게 시간이 남을 때는 일몰이 아름다운 곳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어둑해진 밤에도 별 보기 힘든 요즘, 빛나는 별을 만날 수 있는 귀한 장소를 찾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제주에서 만나는 일몰과 별은 또 색다른 감상을 불러올지도 모릅니다.


제주의 역사를 배경지식 삼아 여행하면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많아집니다. 제주 4·3 사건과 관련한 다크 투어라든지 탐라국으로 시작한 제주의 오래된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장소들은 그 배경을 알고 여행할 수 있게 간략하게 소개해두고 있습니다.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을 포함해 오름 여행을 해보고 싶어졌어요. 삼다도라 불린 제주인만큼 바람의 소리에 주목한 작가님처럼 바람을 느끼는 시간이 너무나도 기대되기도 합니다. 갈대를 스치며 부는 바람, 수목림을 거닐 때 마주하는 바람 등 바람의 결을 느껴보는 시간을 누리고 싶어졌습니다.


옛 가옥부터 현대 건축물까지 건축 여행을 하기에도 훌륭한 조건을 갖춘 제주입니다. 에메랄드빛에서 코랄드 빛을 내는가 하면, 하얀 백사장부터 검은 모래해변까지 다양한 색감을 자랑하는 해변을 제주에서 맘껏 만날 수 있다는 매력도 대단합니다. 제주 곳곳의 벽화골목을 찾아보는 여행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이 모든 것들을 다 하려면 한 달도 모자를 테지만, 한 달 살기가 아니더라도 주말 동안 틈틈이 찾아가도 무리 없는 제주입니다.


한 달 살기만이 주는 여유로움이 가이드북에 담긴 느낌입니다. 일반적인 여행가이드북과는 달리 에세이적 감성이 담긴 책입니다. 장소 정보는 검색이 더 빠른 시대이니 책에서는 한 달 살기의 가치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관광명소 위주의 제주만 알고 있었다면 양파 같은 매력을 품은 화산섬 제주의 색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이젠 떠날 수 있을까? 한 달 살기 제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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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이젠 떠날 수 있을까? - 한 달 살기 제주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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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같은 매력을 품은 제주의 다채로움을 담은 가이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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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철학 - 소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인문학 편지
윤성희 지음 / 포르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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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큐레이터 윤성희 저자의 신간 <다산의 철학>. 관계를 이어주는 손편지의 매력을 듬뿍 전한 전작 <기적의 손편지>를 감동 깊게 읽었는지라 오랜만에 만나는 신간도 반가웠습니다. 500여 권의 책을 남긴 조선의 대표 학자 다산 정약용을 다룬 책은 많지만 윤성희 작가만의 큐레이션은 역시 빛을 발휘하네요. 다산이 아들, 친구, 제자 등에게 쓴 편지에 담긴 조언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준다는 걸 건져올린 <다산의 철학>.


다산 정약용은 6남 3녀 중 4남 2녀를 먼저 떠나보냈고, 학문적으로 의지하며 동료와도 같았던 형제들의 고난을 목격하기도 했고, 그 자신도 18년의 유배생활을 하며 사적으로 공적으로 세월의 풍파를 많이 겪은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노력의 흔적이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다산의 사고방식과 실천적 행동은 중심을 지키는 신념에서 비롯됩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우리처럼 조선의 그들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다산의 제자 윤혜관은 선비라는 이상과 가장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나 봅니다. 농사도 장사도 할 수 없는 선비는 어떻게 살림을 좀 펴게 만들 수 있을까요.


다산은 작은 밭에 과일나무를 심고 채소를 가꾸라고 조언합니다.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치는 것도 좋다고 합니다. 즉 본캐와 부캐 모두 잘 돌보라는 의미입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밭을 가꾸되 본캐인 선비의 본질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합니다. 논어, 주역 같은 책을 꾸준히 읽으라고 합니다.


윤성희 저자는 다산의 꿈을 현실에 발을 디딘 채로 꾸는 것으로 짚어냅니다. '나'를 중요하게 여기기에 오히려 가능한 N잡러의 철학을 이야기합니다. 나를 잃어가면서 좇는 꿈은 허무한 것이라는 거죠. "진정한 N잡러는 '나'를 버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기를 원하며 꿈을 꾸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다산의 명쾌하면서도 담백한 말이 와닿습니다. 재미있는 건 다산이 유배지에 있을 때 쓴 아들의 편지에는 도성으로 이사하기 전, 과일 심고 채소를 가꾸어 생계를 도모하면서 집안 살림이 좀 넉넉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옮기자고 하기도 했습니다.


서출은 벼슬에 나갈 수 없어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기 일쑤였다는 당시 조선의 상황에서 서출 동생인 약횡에게 다산이 쓴 편지도 있습니다. 솔직히 놀랍더라고요. 깨어있는 자라는 걸 실감하게 한 편지였습니다. 같은 아버지에서 태어났지만 출발선이 달랐던 서출 동생에게 도착점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철저히 평소 자기관리를 잘 하라고 당부합니다. 정해져 있는 신분, 환경은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없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합니다. <다산의 철학>에는 이처럼 세상이 정한 한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나'를 위한 현명한 조언이 가득합니다.


아들에게 보낸 편지 중 재미있는 이야기가 실린 게 있는데요. 유배지로 가 있는 사이 그들의 집도 한양 도성에서 내쳐지자 아들에게 순간의 분노로 시골행 하지 말고 문명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도성으로, 하다못해 도성 근처에라도 있어야 한다고 당부하는 편지입니다. 속물 같아 보이지만 다산은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당부에 가깝습니다. 문화를 보는 안목을 키우는 곳으로서 도성의 중요성을 짚어냈고, 이는 곧 세상의 변화를 읽어내는 능력을 이야기합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생존을 위한 기본 옵션인 적응력과 유연성을 갖추라는 의미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외모지상주의는 있었습니다. 유난히 체구가 작은 제자에게 보낸 편지에는 외모로 판단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용기를 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다산이 가장 사랑했던 제자 황상에게 보낸 편지도 있습니다. 자신은 남들처럼 공부 잘하는 재주가 없다고 말하는 황상에게 다산은 반복과 습관의 힘을 들려줍니다. 부지런한 루틴을 만들어 미라클모닝의 힘을 이미 이야기한 다산입니다.


<다산의 철학>은 딱딱한 해설서가 아닙니다. 이 책에 실린 다산의 편지 원문은 <마음챙김의 인문학> 책으로 제 마음을 사로잡은 임자헌 작가의 번역으로 실려있어 원문도 술술 잘 읽히는 매끄러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거기에 인문학과 자기계발을 연결한 윤성희 작가의 해석이 놀랍도록 근사합니다. 다산의 편지에서 건져낸 통찰의 수준이 부러울 정도였어요.


저마다의 고민으로 불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산이 전하는 위로와 용기의 말 <다산의 철학>. 번지르르한 말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나를 지키는 신념으로 시작해 생각하여 이해의 폭을 넓히고, 행동으로 세상을 바꾸며 타인과 공존하며 잘 살아가는 법을 실천할 수 있는 명쾌한 조언으로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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