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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되기의 철학
스티네 옌선.프랑크 메이스터르 지음, 금경숙 옮김 / 생각의집 / 2021년 9월
평점 :
육아에 관해서라면 언제나 다양한 방법론이 나옵니다. 어린이 행복지수가 높다는 북유럽 양육법만 해도 덴마크식 육아, 핀란드식 육아, 스웨덴식 육아 등 끝이 없습니다. 누군가는 부모가 아이를 너무 응석받이로 만든다 하고, 누군가는 부모와 아이를 대등한 입장에 놓고 키워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교육적 목소리를 따라야 할까요.
네덜란드 문학재단 번역 지원 선정 도서 <부모 되기의 철학>은 일곱 살 딸을 둔 싱글맘 스티네 옌선과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 독립하지 않은 두 아들을 둔 아빠 프랑크 메이스터르가 부모들과 우리 자신이 양육자로서 하는 키잡이 역할을 고민해 보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그들은 철학자입니다. 철학자야말로 갈팡질팡 증후군을 직업병으로 가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철학하기란 갈팡질팡하며 가늠하는 일이고, 사유의 기초에 회의를 중심에 두는 것이라고 합니다. <부모 되기의 철학>은 철학자로서 이번엔 육아 딜레마 자체에 집중해 육아 문제에 철학이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여정을 보여줍니다.
저자 스티네는 한부모라는 죄책감에 딸에게 선물을 너무 많이 주는 건 아닐까 고민합니다. 너무 버릇없이 키우는 것은 아닐까, 때로는 단호하게 '안 돼!'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엄격함 vs 들어주기. 많은 부모가 자신이 선호하는 쪽으로 입장을 취하는데, 그 선택은 다분히 의식적인 선택일까요. 아니면 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인지, 사회적 분위기에 따른 시대정신일까요.
학원, 숙제, 습관 등 양육자로서 실패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저마다 가진 다양한 딜레마. 잠시 엄격하게 대하고 나면 너무 엄하지 않았는지 바로 자문하는 것처럼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있는지 회의감에 빠지는 상황은 다들 겪어봤을 겁니다. <부모 되기의 철학>은 양육에 따라오는 회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육아 철학의 역사만 해도 권위적 양육자의 모습과 탈권위적 모습 사이에서 끊임없이 시소를 타고 있습니다.
칸트는 훈육을 강조하며 아이가 서서히 절대적으로 이해하도록 해주어야 하는 정언명령을 양육의 기초에 둡니다. 반면 온건파 로크는 아이의 문제를 그냥 그러다가 지나가는 하나의 단계로 봅니다. 상황에 따라 우리는 이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합니다. 실제 육아에서는 이 두 가지가 일관성 있게 적용하기 힘든 딜레마로 다가옵니다.
나라별 육아서를 파헤치며 육아 딜레마가 당신만의 문제가 아님을 짚어줍니다. 서구의 물렁함과 동양의 엄격함이라는 단순한 구분법으로 적용한 육아서도 많고, 유명인들의 육아서 대부분이 약간은 낄낄대며 그럴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면서 진짜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드러내진 않습니다. 엉뚱하게 처신하는 자신의 모습을 뽐내며 허술한 부모 유형이라는 클리셰 범벅인 육아서도 상당합니다. 하지만 너스레 떨며 낄낄대는 그 속에 바로 딜레마의 아픈 지점이 숨어있음을, 원칙이 있는 육아를 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건드립니다.
낙제된다고 해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은 채 숙제하기 싫어하는 딸을 둔 사례는 내 아이를 공동체에서 훌륭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 키워야 하는지, 아니면 행복한 아이가 되도록 키워야 하는지의 딜레마를 설명할 수 있는 사례입니다. 오늘날 자녀 교육은 점점 아이 개개인의 행복에 초점을 맞춥니다. 엄격함 vs 들어주기와 마찬가지로 행복 vs 바람직한 시민의식 사이에서 딜레마가 생깁니다.
이 책에서는 철학자 플라톤과 루소를 마주 세우고 육아의 목표로써 시민의식과 개인 행복 간의 대조를 보여줍니다. 플라톤이라면 학교 숙제 하기를 싫어한다고 해서 행동을 가르치지 않을 까닭은 없다고 말할 겁니다. 숙제를 하게 하고 언젠가 철인이 될 수도 있을 거라며, 불평해서는 안 되고 자신의 지성을 공동체에 바쳐야 한다는 걸 강조할 겁니다. 반면 루소는 숙제할 마음이 없으면, 할 필요 없다고 말할 겁니다. 스스로 우러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고 말이죠. 강요가 없는 만큼 보상도 해주지 않습니다.
저자는 여기에서 무엇이 아이를 바람직한 시민으로 만들고, 무엇이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지 고민합니다. 플라톤과 루소의 중간에 위치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양육 철학도 살펴봅니다. 인간은 꿀벌과 같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자신의 집단 구성원과 잘 지낼 수 있으면 가장 행복하다고 주장합니다. 그에게 행복한 삶이란 무언가를 해낸 삶이며, 전체적으로 성공한 삶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라면 숙제를 하지 않는 아이에게 보상이라는 방법을 사용할 겁니다. 비록 보상 때문에 숙제를 하겠지만, 그러면서 좋은 기분을 알게 될 거고 이후엔 보상이 없어도 오랫동안 좋은 기분으로 숙제를 할 거라고 말입니다.
성별을 두고 양육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젠더 중립적 vs 여자아이, 남자아이 문제입니다. 전형적으로 여성적이라고 딱지 붙는 일이 덜 가치있게 여겨지는 것은 막고 싶다거나, 의사는 항상 남자인 줄 알았다가 여자 의사를 보고서야 그동안 고정적인 성 역할을 따르고 있었음을 인지한 저자들처럼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성 역할에 관한 논쟁은 역사적으로 치열합니다.
<부모 되기의 철학>에서는 보부아르와 버틀러의 시각과 성별 간 두뇌 논쟁, 젠더 중립적 양육이 가장 많이 이행된 스웨덴 육아 모델을 살펴봅니다. 여성이 사고하고 이성적인 존재로 성장하도록 장려하는 페미니스트 교육의 주제는 시몬 드 보부아르에 의해 가시화됩니다. 보부아르는 최초로 성별과 젠더를 엄격하게 분리했습니다. 여성적 또는 남성적이라고 부르는 신체적 징표가 여성적, 남성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문화, 젠더의 의미는 아니라고 말이죠.
남성성과 여성성의 고정관념은 두뇌 혁명과 뇌 과학의 발전으로 생물학주의로 돌아가게 됩니다. 오히려 젠더 중립적 양육을 반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린 겁니다. 성별 차이를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수용하고 인식하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후 여성성과 남성성의 차이에 관한 선입견을 낱낱이 깨부수는 연구 결과도 있음을 짚어줍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선입견이 우리가 내는 성과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번번이 드러난 연구처럼, 성 역할에 관한 선입견이 단번에 변하기 어려운 일임은 분명합니다.
육아서를 읽는 이유는 명쾌한 정답을 바라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많은 육아서가 완성된 답변을 내놓습니다. 하지만 모든 아이에게 통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없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고 여전히 갈팡질팡합니다.
부모가 갈팡질팡한다는 것은 자신의 행동이 자녀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회피하거나 어물쩍 넘어가는 방식의 육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게 바로 철학을 바탕으로 기준을 세우는 일입니다. 상황에 따라 특정한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걸 이해한다면, 결국 표준 전술이 없다는 것에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오히려 키를 잡아야 한다는 걸 강조하는 <부모 되기의 철학>입니다. 이 깨달음의 과정을 그나마 순조롭게, 덜 스트레스 받으며 헤쳐나갈 수 있도록 건설적으로 갈팡질팡 가늠하기를 할 수 있는 팁을 후반부에 정리해 주고 있으니 큰 도움 될 겁니다.
육아는 즐겁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철학자들의 양육법을 번갈아가며 적용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책은 과감하게 갈팡질팡하라고 합니다. 이리저리 재지 않는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철학에서 얻은 팁을 통해 바람직한 원칙을 고민해 보고, 타협을 수용하며 절충하는 기회에 대해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걸 알려주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