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느린 작별
정추위 지음, 오하나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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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치매에 걸린 남편과의 일상을 담은 『아주 느린 작별』. 출간 즉시 대만을 눈물바다로 만든 화제작입니다.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은 대만의 언어학자 정추위 교수는 68세의 나이에 40년 동반자를 잃어가는 과정을 기록합니다.


그저 감동적인 치매 간병 에세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합니다. 상실 앞에서 인간이 어떻게 존재의 의미를 재구성해 나가는지 보여주는 철학서에 가깝습니다.


수학 교수였던 남편 푸보가 치매를 진단받은 순간, 부부의 일상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저자가 정년 2년을 앞두고 맞닥뜨린 현실은 평생 연구해온 언어가 무력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주 느린 작별』에서 그는 연구자가 아니라 돌봄의 주체로서 서 있습니다. 





매일 아침 커피와 함께 대화로 하루를 열던 두 사람의 루틴은 무너집니다.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예전처럼 열렬히 반겨주는 눈빛은 사라진 지 오래였습니다. 언어를 연구해온 사람이 언어의 소멸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다는 아이러니는 깊은 울림을 줍니다. 더 이상 "여보"라는 호칭조차 듣지 못합니다. 언어는 소통의 매개였지만 동시에 사랑의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68세의 나이에 24시간 간병인이 되어야 했던 돌봄의 현실은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화장실의 대참사, 밤마다 반복되는 불면. "심호흡하자, 심호흡. 절대로 흥분하면 안 돼. 그이는 환자잖아."라며 스스로를 달래는 문장은 돌봄이 지적 훈련이 아니라 감정의 전쟁임을 보여줍니다. 언어학자가 수십 년의 연구로 다룰 수 없었던 영역이 바로 이 '말 없는 소통'의 장이었던 겁니다.


하루를 버틴다는 말이 이런 의미가 될 줄 몰랐을 겁니다. 치매와의 동행에서 약을 먹이는 것도, 외출을 설득하는 것도 전투입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승자는 없습니다. 오직 버틴다는 사실만이 기록됩니다.


남편의 기억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무너질 일만 남았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간병 과정에서 자신의 삶이 소진되어 가는 것을 직면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과정이야말로 사랑의 또 다른 얼굴임을 깨닫습니다. 언어로 다 설명되지 않는 무언의 헌신 말입니다.


남편의 기억은 급격히 무너져 내립니다. 아내를 오랜만에 만난 친구로 착각합니다. 이 짧은 인사는 결혼 생활 전체를 잊어버린 채 건네는 가장 잔인한 언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상실을 받아들이는 훈련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기억의 유무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딸의 위로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엄마, 너무 슬퍼 마세요. … 우리는 지금처럼 계속 아빠를 사랑하고 있으면 돼요."라고 말이지요.


저자는 언어 대신 감각, 기억 대신 현재의 태도를 붙잡습니다. 결국 사랑은 반응이나 기억으로 입증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유효한 감정임을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사랑이 언어 이전의 행위이자 본능임을 증명합니다.


정추위 교수의 학문적 배경은 이 기록을 독특하게 만듭니다. 평생을 언어학 연구에 바쳤지만, 남편과의 관계에서 경험한 것은 언어의 상실이었습니다. 학문의 도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 언어가 사라진 뒤에도 남는 감정과 관계의 심연을 마주한 것입니다.


『아주 느린 작별』은 언어 이후의 세계를 탐구하는 학자의 보고이자, 인간 존재를 언어로만 정의할 수 없음을 드러내는 생생한 사례집의 가치를 지녔습니다. 돌봄의 종착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회복입니다. 위급 시 자신을 돌봐줄 인적 자원을 확보하고, 그간 외면해 온 치료를 받습니다. 무엇보다 인생의 무게를 덜어내기로 결심합니다.


언젠가 사랑하는 이와의 작별을 마주해야 하는 모든 이에게 상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지 질문을 건넵니다. 치매로 인해 모든 기억을 잃은 배우자를 여전히 사랑할 수 있는가? 그 사랑의 근거는 무엇인가? 언어와 기억의 종말 이후에도 남는 것이 무엇인지 깊은 여운을 안겨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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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의 법칙 - 장벽을 허물고 관계를 변화시키는 마인드셋
데이비드 롭슨 지음, 김수진 옮김 / 까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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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수천 명과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나눌 사람은 드뭅니다. 손절과 차단이 관계의 기술로 미화되는 시대, 진정한 연결은 오히려 사라지고 있습니다.


영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롭슨은 심리학과 뇌과학, 의학 연구를 바탕으로 우리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떻게 실패하는지 분석합니다. 전작 『기대의 발견』에서 플라시보 효과의 과학을 탐구했던 그는 신작 『연결의 법칙』에서 인간관계의 과학적 본질을 해부합니다.


『연결의 법칙』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까요? 관계를 시작하고 유지하며 회복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13가지 법칙을 소개합니다. 


미국의 장수 연구에서 발견된 건강과 장수의 7가지 요인 '알라메다 7'은 건강 습관의 대표적 기준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연구자들은 여덟 번째 요인을 추가했습니다. 다름 아닌 사회적 연결이었습니다. 연구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인맥이 넓은 사람들의 사망률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절반 수준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유대가 상처 회복과 면역력 강화, 심지어 치매 예방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사회적 고립은 외로움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심장병 위험이나 조기 사망률과 직결되는 요인입니다. 우리가 서로 연결될 때 단지 기분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입니다.


저자는 공유 현실(shared reality)이라는 개념을 중심에 둡니다. 인간은 같은 경험과 의미를 나눌 때, 서로에 대한 신뢰와 친밀감을 구축합니다. 마음이 통한다는 표현이 비유가 아닌 과학적 사실임을 보여줍니다.






평소 첫인상에 대해 과도하게 불안해했나요? 실제로 상대는 우리의 호의를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연결의 문은 생각보다 훨씬 열려 있다는 뜻입니다.


내성적인 사람이라면 '나는 내성적이라 사람들과 잘 못 어울려'라는 자기 규정을 내세웁니다. 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외향성과 내향성은 인간관계를 결정짓는 절대적 요인이 아닙니다.


내향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도 의도적인 시도로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외향적인 사람조차 잘못된 직관 때문에 오히려 관계 형성에 실패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성격이라는 신화라 명명하며, 관계의 질은 타고난 성격보다 학습 가능한 기술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합니다.


관계의 가장 큰 장벽은 차가운 무관심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잘못된 확신인 겁니다. '저 사람이 날 싫어할 거야'라는 추측은 대부분 근거 없는 자기중심적 사고일 뿐입니다. 인지적 편향의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대화는 정보 전달이 아니라 관계의 무대라고 합니다. 말을 이어가는 데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짧은 침묵은 친밀감을 해치지 않으며 오히려 신뢰를 강화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반가울 겁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화술이 아니라 상대의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입니다. 저자는 대화를 유연하게 이어가는 몇 가지 전략을 소개하며, 적절한 질문이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강조합니다.


관계를 단단히 묶는 접착제는 돈도, 권력도 아닌 감사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진심 어린 칭찬과 고마움의 표현은 상대방의 자기 효능감을 높이고, 관계를 장기적으로 강화한다고 합니다. 감사 표현을 받는 사람뿐 아니라 감사를 표현하는 사람의 행복감도 커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감사는 이기적이지 않은 동시에 가장 이기적인 전략이기도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피할 수 없는 딜레마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기도 합니다. 모든 관계에서 불가피하게 등장하는 거짓말, 은폐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지나치게 엄격한 진실주의는 관계를 피폐하게 만들 수 있으며, 때로는 작은 비밀이 관계를 보호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신뢰를 근본적으로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지혜입니다.


그 외에도 질투하지 말고 함께 기뻐하기, 도와달라고 부탁하기, 나쁜 감정 치유하기, 싸우지 않고 토론하기 등 연결을 유지하는 법칙들을 짚어주며 왜 그래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소개합니다.


온라인 관계도 오프라인 못지않게 의미 있는 유대를 안겨줄 수 있습니다. 문제는 플랫폼이 아니라 사용법입니다. 온라인에서도 감사, 공감, 진정성의 법칙은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매체가 아니라 태도입니다.


혼자가 편할 때일수록 연결이 필요하다는 걸 일깨워 줍니다. 『연결의 법칙』은 뇌과학과 심리학의 최신 연구를 종합해 관계의 본질을 증거 기반으로 해석한 과학적 보고서입니다. 외로움이 세계적 전염병처럼 퍼져가는 시대에 이 책은 관계 회복을 위한 가장 과학적이면서도 따뜻한 처방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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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대동여지도 - 한글로 쉽게 읽고 활용하는 <대동여지도> (최신 개정판)
김정호 지도, 최선웅 도편, 민병준 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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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조선 후기 지도 제작자 고산자(古山子) 김정호. 그는 한 세기 앞서 빅데이터의 개념을 몸소 실천한 학자였습니다. 평생을 바쳐 전국을 답사하며 산줄기, 물줄기, 고을과 도로, 나루터와 봉수대까지 꼼꼼히 기록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1861년 철종 때 완성된 『대동여지도』입니다.


가로 3.8m, 세로 6.7m에 달하는 거대한 전도(全圖)였지만, 접으면 책처럼 휴대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더라도 디자인과 기능 면에서 압도적인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축척, 거리 계산, 기호 사용 등 실용적인 지리정보 시스템(GIS)의 원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지도를 우리가 직접 읽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자로 빼곡히 적힌 지명, 현대와는 달라진 표기법, 흑백의 제한된 정보가 장벽처럼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진선출판사의 『한글 대동여지도』는 그 어려움을 돌파합니다.


한국 지도 제작의 최전선에서 활동해 온 지도학자 최선웅과 백두대간을 종주한 산악·답사 전문 기자 출신 민병준 저자가 손을 맞잡고 펴낸 성과물 『한글 대동여지도』. 두 전문가의 합작은 지식과 체험이 절묘하게 결합된 결과입니다.


『한글 대동여지도』는 전국 11,677개 지명을 한글로 병기했습니다. 낯설었던 고을 이름이 지금의 어느 지역에 해당하는지 바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각 지도마다 해당 지역의 지형과 인문지리를 간략히 개관해 두었기 때문에, 지도만 펼쳐도 국토가 입체적으로 그려집니다.


『한글 대동여지도』는 원본을 65%로 축소해 만들되, 김정호의 원래 의도를 최대한 살렸습니다. 그리고 원본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기도 했습니다. 『대동여지도』에는 빠져 있던 독도(우산도)와 거문도(삼도)를 추가 표기했으며, 일부 잘못된 지명도 교정했습니다.


지도란 과거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메시지라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김정호가 19세기 국토의 효율적 이해를 위해 지도를 제작했다면, 『한글 대동여지도』는 역사적 유산을 현대적 의식으로 재해석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도성도, 경조오부도로 시작해 백두산에서 제주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모든 구석을 훑을 수 있습니다. 각 도엽은 미시적 세부를 보여주면서도, 전체를 연결했을 때 거대한 그림이 완성됩니다. 마치 퍼즐을 맞추는 듯한 쾌감이 동반됩니다.


조선 시대 교통로의 배치가 흥미로웠습니다. 봉수와 역참의 위치를 보면서 통신망이 어떻게 이어졌는지, 군사적 요충지가 어디였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오늘날 고속도로망이나 철도 노선과 비교해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줍니다.





『한글 대동여지도』는 국토를 어떻게 기억하고 해석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책입니다. 디지털 지도 앱으로 손쉽게 길을 찾는 세상에서 왜 종이 지도를 다시 들춰야 할까요?


종이 지도는 단순한 길찾기가 아니라 공간의 총체성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길 위에 있는 나를 넘어, 국토 전체 속에 내 자리를 자각하게 합니다. 김정호가 원했던 모두가 국토를 이해하는 시대, 『한글 대동여지도』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이 책의 독창성은 제책 방식에 있습니다. 원본 『대동여지도』와 동일하게 22첩, 122도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 장 한 장 분리하여 이어 붙이고, 병풍처럼 접어 펼칠 수 있는 겁니다.


게다가 모든 도엽을 연결하면 가로 2.44m, 세로 4.14m의 대형 전도가 완성됩니다. 집 안 거실 벽을 가득 메우는 빅 월맵이라 할 만하지요. 아이들과 함께 우리 고장의 위치를 찾아보고, 조선 시대 도로망을 따라 여행 코스를 상상하는 순간, 지도는 살아 있는 역사 교재로 변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색연필이나 수채 물감으로 산과 강, 도로와 경계를 칠하면서 나만의 대동여지도를 만들 수 있습니다. 목판 인쇄본이라 흑백 지도였던 대동여지도를 당시에도 용도에 따라 직접 채색해서 활용했다고 합니다. 컬러링북처럼 색칠을 하다 보면 평면적으로 보이던 지도가 입체적으로 살아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방점을 통해 거리를 계산하는 방법, 방안표를 이용한 축척 이해, 각종 기호의 의미 파악 등을 통해 지도 읽기의 기초도 탄탄히 다질 수 있습니다. 특히 한양 성곽 안의 모습을 담은 도성도라든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160년 전의 지도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정보를 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습니다. 스마트폰 지도 앱에 의존하다 보면 전체적인 지리 구조를 파악하기 어려운데 『한글 대동여지도』를 통해 우리나라의 산줄기와 물줄기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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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우정 -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김달님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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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곁에서 성장한 한 사람이, 떠나보낸 두 존재의 빈자리를 안고 시작한 본격적인 노년 탐구의 여정. 김달님 작가의 에세이 『뜻밖의 우정: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작가는 오랫동안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어로 활동했지만 이번에는 궁금해하는 마음만을 들고 노인들을 마주했습니다. 누군가는 "들려줄 이야기가 없다"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들의 삶은 소소한 순간마다 놀라운 반짝임을 품고 있었습니다.


총 3부로 구성한 『뜻밖의 우정』은 우리가 애써 외면하려는 노년이라는 시간을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1부에서 개인의 사연과 특유의 개성을 기록하고, 2부에서 노인의 삶을 단순히 타인의 것이 아니라 다가올 나 자신의 모습으로 비추어냅니다. 마지막 3부는 세대와 시간을 뛰어넘는 공감과 우정을 가능하게 하는 태도를 이야기합니다.





누구에게나 삶은 유한하고,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되지만, 실제 일상에서 노년은 저만치 떨어져 있는 남의 이야기로 취급되곤 합니다. 김달님 작가는 그 거리를 좁히려 합니다.


예순일곱 살에 검도 6단을 취득한 순자 씨, 여든에도 랩을 연습하는 정열 씨의 이야기는 기존의 노인 이미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묘한 전율을 남깁니다. 여기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나는 내 나이에 맞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스스로를 나이로 제한하고 있지는 않은가라고 말이죠.


일흔이 넘어 만난 홍자 씨와 옥순 씨의 이야기는 우정이 어떻게 나이를 넘어서는지를 보여줍니다. 겨우 밥솥이 똑같다는 이유로 한바탕 소리 내서 웃는 것처럼, 노년에도 웃음과 연대가 여전히 생성될 수 있다는 희망을 들려줍니다.


삶을 기록한다는 건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이런 미세한 순간에 귀 기울이는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 게다가 노인의 삶을 기록하는 일이 곧 나의 미래를 비추는 일이 된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여든의 윤자 씨는 “작가님…. 이제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이 질문은 세대를 가로질러 울림을 남깁니다. 누구도 완벽한 정답을 내놓을 수 없는 질문, 그러나 서로에게 건네는 것만으로 의미가 되는 질문입니다.


작가는 나이 듦을 억울한 일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노인들의 지혜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삶의 끝을 준비하는 성숙한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남의 이야기가 곧 나의 예행연습이 됩니다.





작가는 노년의 삶을 단순히 관찰하는 것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서로를 바라보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작가가 말하는 진정한 우정은 그저 동년배끼리의 친밀함이 아닌, 세대와 경험의 차이를 뛰어넘는 더욱 보편적인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나이가 들면 지금 내가 이걸 하지 않으면 이제는 영원히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는 한 노인의 고백이 울림을 줍니다. 청춘의 무모함과 노년의 과감함이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습니다. 시간이 한정적이라는 사실은 새로운 용기의 원천이 됩니다.


무엇보다 작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의 가치를 일깨워 줍니다. 너무 사소해서,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비로소 꺼낼 수 있는 이야기들. 노년뿐 아니라 모든 세대에게 해당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SNS에 올리는 사소한 기록조차도 사실은 살아가고 있는 나를 증명하려는 행위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노년을 부담으로 여기거나,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뜻밖의 우정』은 노년 세대를 특별히 영웅화하거나, 반대로 무력하게만 그리지 않습니다. 대신 각자의 얼굴을 가진 개별적 존재로 존중하며 그 구체적인 삶 속에서 우정을 발견합니다.


노년의 삶이 결코 쇠퇴나 포기가 아닌, 오히려 더욱 순수하고 진정한 자기다움의 완성 과정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과 노년이라는 지평을 통해 삶 전체를 바라보게 하는 『뜻밖의 우정』. 단순히 노인에 관한 책이 아니라, 노인이 될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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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든 오사카·간사이 교토·고베·나라 2026-2027 에이든 가이드북 & 여행지도
타블라라사 편집부.이정기 지음 / 타블라라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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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864페이지 가득 찬 미친 디테일, 에이든 오사카·간사이 교토·고베·나라(2026-2027). 기존 에이든 지도와 달리 이번엔 차원이 다른 두께를 자랑하는 여행 가이드북입니다.


150장이 넘는 세밀한 지도와 2,000여 개 여행지, 음식점, 카페, 드럭스토어 등을 망라한 정보가 담겨 있어 간사이 여행의 데이터베이스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mp3 오디오 가이드까지 있으니 색다른 경험을 해봅니다.


스마트폰의 신호가 닿지 않는 순간, 우리는 여전히 아날로그의 단단한 신뢰를 찾게 됩니다. 이번 가이드북은 정보를 충분히, 아낌없이 담자는 타블라라사의 가치를 오롯이 보여줍니다.





에이든 오사카·간사이 교토·고베·나라(2026-2027)는 일본 제2의 도시이자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이 있는 오사카, 일본 천년 수도 교토, 일본 3대 야경 도시 중 하나인 고베, 고대 일본의 심장 나라까지 일본인의 뿌리가 강하게 느껴지는 간사이 지역을 다룹니다.


책을 펼친 순간 마치 게임 속 맵을 열어보는 듯 여행 계획이 시각적으로 정리됩니다. 에이든 여행지도의 퀄리티가 고스란히 가이드북에 담겼습니다. 관광객이 실제 이동 동선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핵심과 디테일을 모두 잘 잡은 지도입니다. 구매자라면 주요 핵심 지도들은 PDF 맵북으로도 받을 수 있습니다.


간사이 지역을 테마로 읽어줍니다. 벚꽃 & 단풍 스팟, 일본 3대 편의점 간식 비교, 드럭스토어 쇼핑 추천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카페, 지역별 빵지순례 등 현지 생활과 취향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묶어냅니다. 쇼핑, 먹거리, 카페, 예술 공간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경험으로 엮어줍니다.


일본 여행의 가장 큰 난관 중 하나는 교통패스 선택입니다. 간사이 지역만 해도 주유패스, E패스, 각종 지하철·전철 패스 등 초보 여행자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이 책은 패스별 비교표를 정리해 무엇을 사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줍니다.


애플페이를 활용한 IC카드 발급법까지 최신 정보가 담겨 있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도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여행 중 헤매는 시간을 줄이고, 목적지에서 보내는 시간을 극대화하는 것이야말로 가이드북의 존재 이유임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도톤보리의 네온사인, 거리를 채운 타코야키와 오코노미야키 냄새, 그리고 구이다오레(먹다가 망한다)라는 말까지 탄생시킨 미식 문화는 오사카를 대표하는 얼굴입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이나 오사카성 같은 명소는 가족 단위 여행객부터 젊은 세대까지 모두를 사로잡습니다.


2000곳의 여행지와 음식점, 압도적 정보의 향연 그 자체입니다. 우메다 공중정원 설명에서는 360도 개방된 루프탑에서 오사카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라는 기본 정보와 함께 주유패스 소지자는 09:30~15:00 사이 무료 입장 가능이라는 팁까지 실려 있습니다. 여행자가 실제로 필요로 하는 모든 정보를 한 번에 얻을 수 있게 합니다.


천년 고도 교토는 일본 전통문화의 정수를 간직한 도시입니다. 금각사와 은각사, 기요미즈데라와 같은 사찰은 물론 기온 거리를 거닐다 보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감각을 줍니다.


봄 벚꽃과 가을 단풍철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로 북적입니다. 다도, 정원, 마이코 문화까지 일본의 정신성과 미학이 일상에 녹아 있어 화려한 대도시 오사카와는 다른 차분한 매력을 선사합니다.





고베는 개항 이후 서양 문물이 들어오며 일본 속의 국제 도시로 성장한 항구도시입니다. 이진칸 거리의 서양식 저택, 롯코산에서 내려다보는 일본 3대 야경 그리고 전 세계 미식가들이 찾는 고베 규는 이 도시만의 상징적인 자산입니다.


일본 전통과 서양 문화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고베의 매력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여행 동선을 세울 수 있도록 도움 주는 가이드북입니다.


나라에서는 일본 불교문화와 고대사의 숨결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나라 공원에 자유롭게 어슬렁거리는 사슴들은 이 지역의 특별한 풍경을 완성합니다. 고즈넉하고 목가적인 분위기 속에서 고대 수도의 위엄과 일상의 평온이 공존하는 것 나라의 매력을 놓칠 수 없습니다.


에이든 오사카·간사이 교토·고베·나라(2026-2027) 가이드북은 쇼핑과 문화, 생활까지 아우르는 종합 가이드 역할을 합니다. 일본에서 사면 더 저렴한 브랜드, 힙한 편집샵 체인 등의 정보는 젊은 여행자들에게 특히 유용합니다.


드럭스토어 추천템 정복, 100엔·300엔샵 가이드, 캐릭터 굿즈샵 총정리 등의 코너는 일본 여행의 묘미인 쇼핑을 즐길 수 있게 도와줍니다. 실제 여행 동선과 연결되어 있어 효율적인 여행 계획 세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스마트폰이 따라올 수 없는 깊이와 종이책만이 줄 수 있는 안정감과 아카이브적 가치가 있습니다. 압도적 두께의 가이드북을 보는 이유, 바로 그 무게가 불안을 덜어내는 심리적 보험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도 여행 계획을 세울 땐 무조건 두꺼운 종이책 형태의 가이드북을 참고해야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얇은 에이든 지도는 여행을 할 때 챙겨가기 좋고요.


직접 걸으며, 묻고, 기록한 길을 새겨 넣은 타블라라사의 미친 디테일을 만나는 시간 『에이든 오사카·간사이 교토·고베·나라(2026-2027)』. 인터넷 정보의 파편화에 지친 여행자라면 에이든 여행 가이드북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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