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대동여지도 - 한글로 쉽게 읽고 활용하는 <대동여지도> (최신 개정판)
김정호 지도, 최선웅 도편, 민병준 글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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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조선 후기 지도 제작자 고산자(古山子) 김정호. 그는 한 세기 앞서 빅데이터의 개념을 몸소 실천한 학자였습니다. 평생을 바쳐 전국을 답사하며 산줄기, 물줄기, 고을과 도로, 나루터와 봉수대까지 꼼꼼히 기록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1861년 철종 때 완성된 『대동여지도』입니다.


가로 3.8m, 세로 6.7m에 달하는 거대한 전도(全圖)였지만, 접으면 책처럼 휴대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더라도 디자인과 기능 면에서 압도적인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축척, 거리 계산, 기호 사용 등 실용적인 지리정보 시스템(GIS)의 원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지도를 우리가 직접 읽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한자로 빼곡히 적힌 지명, 현대와는 달라진 표기법, 흑백의 제한된 정보가 장벽처럼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진선출판사의 『한글 대동여지도』는 그 어려움을 돌파합니다.


한국 지도 제작의 최전선에서 활동해 온 지도학자 최선웅과 백두대간을 종주한 산악·답사 전문 기자 출신 민병준 저자가 손을 맞잡고 펴낸 성과물 『한글 대동여지도』. 두 전문가의 합작은 지식과 체험이 절묘하게 결합된 결과입니다.


『한글 대동여지도』는 전국 11,677개 지명을 한글로 병기했습니다. 낯설었던 고을 이름이 지금의 어느 지역에 해당하는지 바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각 지도마다 해당 지역의 지형과 인문지리를 간략히 개관해 두었기 때문에, 지도만 펼쳐도 국토가 입체적으로 그려집니다.


『한글 대동여지도』는 원본을 65%로 축소해 만들되, 김정호의 원래 의도를 최대한 살렸습니다. 그리고 원본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기도 했습니다. 『대동여지도』에는 빠져 있던 독도(우산도)와 거문도(삼도)를 추가 표기했으며, 일부 잘못된 지명도 교정했습니다.


지도란 과거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메시지라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김정호가 19세기 국토의 효율적 이해를 위해 지도를 제작했다면, 『한글 대동여지도』는 역사적 유산을 현대적 의식으로 재해석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도성도, 경조오부도로 시작해 백두산에서 제주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모든 구석을 훑을 수 있습니다. 각 도엽은 미시적 세부를 보여주면서도, 전체를 연결했을 때 거대한 그림이 완성됩니다. 마치 퍼즐을 맞추는 듯한 쾌감이 동반됩니다.


조선 시대 교통로의 배치가 흥미로웠습니다. 봉수와 역참의 위치를 보면서 통신망이 어떻게 이어졌는지, 군사적 요충지가 어디였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오늘날 고속도로망이나 철도 노선과 비교해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줍니다.





『한글 대동여지도』는 국토를 어떻게 기억하고 해석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책입니다. 디지털 지도 앱으로 손쉽게 길을 찾는 세상에서 왜 종이 지도를 다시 들춰야 할까요?


종이 지도는 단순한 길찾기가 아니라 공간의 총체성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길 위에 있는 나를 넘어, 국토 전체 속에 내 자리를 자각하게 합니다. 김정호가 원했던 모두가 국토를 이해하는 시대, 『한글 대동여지도』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이 책의 독창성은 제책 방식에 있습니다. 원본 『대동여지도』와 동일하게 22첩, 122도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 장 한 장 분리하여 이어 붙이고, 병풍처럼 접어 펼칠 수 있는 겁니다.


게다가 모든 도엽을 연결하면 가로 2.44m, 세로 4.14m의 대형 전도가 완성됩니다. 집 안 거실 벽을 가득 메우는 빅 월맵이라 할 만하지요. 아이들과 함께 우리 고장의 위치를 찾아보고, 조선 시대 도로망을 따라 여행 코스를 상상하는 순간, 지도는 살아 있는 역사 교재로 변합니다.





거기에 더해서 색연필이나 수채 물감으로 산과 강, 도로와 경계를 칠하면서 나만의 대동여지도를 만들 수 있습니다. 목판 인쇄본이라 흑백 지도였던 대동여지도를 당시에도 용도에 따라 직접 채색해서 활용했다고 합니다. 컬러링북처럼 색칠을 하다 보면 평면적으로 보이던 지도가 입체적으로 살아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방점을 통해 거리를 계산하는 방법, 방안표를 이용한 축척 이해, 각종 기호의 의미 파악 등을 통해 지도 읽기의 기초도 탄탄히 다질 수 있습니다. 특히 한양 성곽 안의 모습을 담은 도성도라든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160년 전의 지도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정보를 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습니다. 스마트폰 지도 앱에 의존하다 보면 전체적인 지리 구조를 파악하기 어려운데 『한글 대동여지도』를 통해 우리나라의 산줄기와 물줄기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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