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디즈니로 출근합니다
김미란 지음 / 시월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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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영화상에 10번이나 후보로 오르고, 오바마 대통령은 '나보다 큰 귀를 가진 세계의 리더'라고 말했던 바로 그 주인공. 마이클 테어도어 마우스라는 풀네임을 가진 미키마우스. 이토록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가진 미키마우스를 그리는 사람이 한국인이라면?

 

전 세계에 유통되는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그리고 그 친구들'의 캐릭터 그림과 상품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 캐릭터 아티스트의 책을 읽었습니다. 최근에 미키마우스나 미니마우스가 그려진 디즈니 상품을 샀다면 50%의 확률로 이 책의 저자가 그린 그림일 거라고 하는데!

 

전공과 상관없는 애니메이터가 되겠다는 꿈 하나만을 가지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3년 만에 칼아츠 조기 졸업,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와 MGA 엔터테인먼트를 거쳐 월트 디즈니 이매지니어링 수석 캐릭터 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김미란 저자의 에세이 <오늘도 나는 디즈니로 출근합니다>.

 

월요병이란 단어가 와닿지 않을 정도로 애정하는 일을 하며 사는 김미란 저자의 이야기는 캐릭터 아티스트에 관심 많은 지망생 뿐만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자신의 꿈을 펼치며 사는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좋은 사례가 됩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팬이라면 디즈니 캐릭터 비하인드스토리와 디즈니 기업 문화에 대한 궁금증도 해소할 수 있는 책입니다.

 

 

 

캐릭터에 있어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것이 철칙인 디즈니에서 미키마우스를 본체 그대로 온 모델로 그리는 작업은 생각하는 것보다 쉬운 일이 아닌가 봐요. 디즈니 입사 당시 이미 캐릭터 아티스트 경력 10년 차였음에도, 처음 1년 이상은 신입사원처럼 훈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디즈니에서도 미키마우스를 그리는 것만큼은 대단한 실력자로 인정받기에 김미란 캐릭터 아티스트가 지금의 위치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이 이어졌는지 상상 그 이상입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이지만 동시에 아티스트라는 자부심이 있다. 그 자부심을 잃는 순간 어쩌면 노동자로서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 오늘도 나는 디즈니로 출근합니다

 

캡틴 아메리카 캐릭터의 방패를 새로 디자인하기도 했고, 스타워즈 캐릭터 상품도 맡아 작업하는 등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 외에도 상황에 맞게 다양한 작업을 할 기회도 생겼습니다. 개인 작업을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회사이기도 하고, 아티스트의 창의력이 높아질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통해 영감을 받으며 발전시켜 나갑니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좋은 회사에서 오래 하고 싶어서' 공부를, 노력을, 그리고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는 김미란 캐릭터 아티스트입니다.

 

 

 

비 예술인이 예술인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한국 정규 교육을 받는 이들이라면 상상 가능한 그 범주였어요. 관심 없는 전공을 선택했고, 본인의 재능이 무엇인지 고민조차 하지 못하고 떠밀려가던 시절 말입니다. 방황하는 날은 길었지만, 뒤늦게라도 진로를 찾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무엇보다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어떻게 진입해야 할지, 하다못해 포트폴리오라는 게 뭔지 전혀 모르던 막막한 상황에서 입학이 매우 어렵다는 칼아츠에 들어가기까지의 에피소드는 스펙터클한 드라마입니다. 그림의 기본부터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경험한 것들 중, 뿌리 깊게 몸에 밴 몰개성에 관한 이야기는 한국의 획일적인 미술 교육을 꼬집기도 합니다. 진정한 아티스트의 성장을 위해 지망생들이라면 꼭 새겨들어야 할 조언이 많습니다.

 

칼아츠 졸업 후 학생 비자는 끝나가지만 취업이 쉽지 않던 위기 속에서도 절박함이 결실이 낳아 워너 브라더스에 첫 출근을 한 게 스물여덟 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대신 선택한 워너 브라더스에서 캐릭터 아티스트로 성장해나갑니다. 워크 비자, 영주권 발급 과정에서 슬럼프도 찾아왔었지만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다진 시기였다고 회상합니다.

 

섬세한 분업화가 잘 되어 있는 엔터테인먼트 분야 대기업 디즈니에 입사하기로 마음먹고 실행에 이르는 과정은 탈탈 소진된 에너지를 새롭게 충전하고 싶은 직장인들이 한 번쯤 생각하는 이직 고민의 경험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김미란 캐릭터 아티스트의 고민을 통해 자신의 역량과 성장 가능성을 돌아보는 시간이 됩니다.

 

 

 

어린 시절 재미있게 본 애니메이션의 대부분을 차지한 디즈니. 백마 탄 왕자가 구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공주 시대를 넘어, 오로지 자신으로 존재하며 스스로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겨울왕국>의 엘사에 이르기까지. 스스로의 과오를 반성하듯 다양한 인종을 등장시키거나 악인의 시점까지 드러내며 새로운 가치를 보여주는 디즈니의 행보 덕분에 기대를 갖고 바라보게 되는 디즈니입니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디즈니 공주들의 비밀도 알려주는데 오랜만에 추억의 애니메이션들을 보고 싶어질 정도로 재미있는 비하인드스토리랍니다.

 

1928년생 미키마우스와 미니마우스를 9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생동감 있게 그리는 디즈니 캐릭터 아티스트 김미란 저자의 <오늘도 나는 디즈니로 출근합니다>. 한국인 최초 디즈니 수석 캐릭터 아티스트로 활동하면서 회사로서의 디즈니의 모습과 한 분야에 매진하며 영주권자로서의 삶을 사는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누군가에겐 먼저 그 길을 밟은 선배의 생생한 경험담, 소중한 조언이자 한 발 내디딜 수 있는 큰 동력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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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 욕망과 결핍, 상처와 치유에 관한 불륜의 심리학
에스터 페렐 지음, 김하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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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내로남불 심리의 모든 것을 파헤친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늘 터부시하고 금지되지만,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는 인간적 경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외도로 고민하는 수많은 사람과 상담을 진행하며 이 주제에 몰두한 심리치료사 에스터 페렐은 불륜이라는 도발적인 렌즈를 통해 현대의 사랑을 들여다봅니다. 부부 사이뿐만 아니라 연인 관계까지, 커플을 이룬 두 사람의 관계에서 넓은 의미의 배신까지 확장해 포괄적으로 다룹니다.

 

욕망이 한눈을 팔 때의 궤적을 따라가는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이 책은 외도의 위기를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지침서가 아니라, 외도라는 주제를 오픈함으로써 관계를 더욱 진실하게 만들고, 회복력을 키워 더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데 주목합니다.

 

외도가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변화를 가져오는지, 불편한 질문에 맞서도록 하는 책입니다. 물론 기만을 용인하거나 배신을 가볍게 여기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해와 정당화는 엄연히 다름을 짚어줍니다.

 

"외도는 두 사람 (또는 그 이상)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는 하나의 이야기다." - 책 속에서

 

다양한 관점에서 외도라는 주제에 접근합니다. 양쪽의 시각뿐만 아니라 그 행동의 의미를 모두 살펴봅니다. 외도의 동기와 의미, 결과에 관해 알아갈수록 우리는 관계의 끈을 건실하게 지켜나갈 수 있게 됩니다.

 

여전히 바람피운 여성이 사형당할 수 있는 국가가 9개나 되는 현실에서 통계 수치로 매길 수 없는 자료. 그렇기에 저자는 숫자가 아닌 이야기에 초점을 둡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단순하게 정의 내릴 수 없더라고요. 불륜이 들통났을 때 '아무 일도 없었어'의 아무 일 역시 짐작했던 것보다 범주가 넓었습니다.

 

배신의 핵심에는 신뢰의 위반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무엇이 배신인지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릅니다. 어쨌든 "잡히면 죽어."로 귀결되긴 하지만요.

 

과거 부부간 신의와 독점적 관계도 오늘날 많은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욕망은 그대로이지만 사람들이 그 욕망을 추구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자신과 감정을 중시하는 현대인의 사고방식이 또 새로운 관계를 이끌어낸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키는 충격적인 경험인 외도의 발견. 자신에게 외도란 무엇인지, 자신이 외도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파트너가 생각하는 외도가 무엇인지... 진정성 있는 호기심이 필요할 때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외도는 그저 결핍의 산물일까요. 나올 만한 이유는 다 나왔다고 생각할 때마다 새로운 이유가 등장하더라고 합니다. 그래도 반복해서 등장하는 주제는 "자기 발견의 한 형태이자 새로운 (또는 잃어버린) 정체성의 추구"로 문제의 증상이 아닌 경험의 확장으로 묘사한다는 겁니다.

 

갈라서든 다시 건강한 관계를 쌓기로 했든 왜 외도가 발생했고 외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과정일 겁니다. 읽는 내내 적나라한 사례가 등장하다 보니 피폐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이런 주제야말로 책으로라도 꼭 배워야 하는 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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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달님만이
장아미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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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즐겨읽던 전래동화를 손에 쥔 듯한 표지 디자인이 눈길을 끈 <오직 달님만이>. 브릿G를 통해 단편 <비님이여 오시어>, <토우> 등을 발표한 전직 잡지 기자 출신 장아미 작가의 첫 장편소설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국적인' 요소를 소설 전반에 걸쳐 펼쳐 보인 작품입니다.

 

두 손이 결박된 채 어둠이 깔린 산길을 가고 있는 열아홉 살 모현. 범님의 신부로 인신 공양의 제물이 되어 산을 오르는 중입니다. 하지만 호랑이 앞에 가기도 전에 또 다른 위기에 마주 선 모현. 제물이 된 것도 환장할 사연인데 이 무슨 첩첩산중의 위기가 닥치는지.

 

급박한 상황 속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호랑이에게 어깨까지 물리지만, 호랑이가 그냥 호랑이면 판타지가 아니되죠. 내꺼인냥 침까지 발라주며 기이한 멘트를 날려주고 가시는 범님. 모현과 범님과의 기나긴 연이 있다는 걸 초반에 흘려둡니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인신 공양이 이뤄지게 되었을까요. 그 중심에는 무당 천이가 있습니다. 남의 욕망을 다루는데 도가 튼 무당 천이는 공포를 무기 삼아 마을을 쥐락펴락합니다. 마을에 벌어지는 온갖 변고를 범님의 화를 누그러뜨리지 못한 탓으로 돌린 무당 천이는 수령 홍옥이 마침 호랑이를 잡겠다며 산으로 들어간 뒤 생사가 불명인 상황에 이르자 인간 제물을 바치는 데 박차를 가합니다.

 

그러던 차에 사라졌던 수령 홍옥이 범님의 신부로 점지되었던 모현과 함께 돌아오니... 마을은 난리법석이죠. 점지된 신붓감을 앗아가려 한다며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모현을 다시 범님에게 보내야 한다는 무당 천이, 모든 백성을 공평하게 보듬어 안아야 한다며 모현을 지키고자 하는 수령 홍옥의 대립이 팽팽합니다.

 

이 과정에서 무당 천이와 수령 홍옥의 정체, 모현과 자매지간인 희현의 사정 등 떡밥이 마구마구 던져집니다. 예상했던 흐름과 크게 다른 결말은 아니었지만, 뻔한 전개인듯하다가도 예측 못하며 튀어나오는 악인의 모습도 있어 심심한 스토리는 아니었어요.

 

인외의 존재들이 등장함에도 판타지한 묘사는 밋밋한 편이라 제 기대감을 충족하진 못했지만,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민담, 설화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 소설 <오직 달님만이>. 콩닥콩닥 로맨스, 시기와 저주 등 감칠맛 나는 양념이 더해져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길게 써줬으면 좋겠다 싶은 관계도 있어서 한 권 분량이 좀 아쉬웠습니다.

 

힘없고 약한 소녀들, 어리거나 보호자가 없거나 집안의 위세가 덜하면 덜할수록 인간 제물이 되어야 했던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굴복하지 않는 모현의 당찬 모습, 마음에 들었어요.

 

지켜야 할 것들을 등 뒤에 세우고 있는 사람들은 쓰러뜨리기 쉽지요.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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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우일 그림,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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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팬이 아니어도 맘에 쏙 들만한 귀여운 책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분위기 가득한 동화 같은 하루키 미공개 단편 소설이 이우일 일러스트레이터와의 협업으로 탄생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에 공연할 성聖 양 어르신님을 추모하는 음악 작곡 의뢰를 받은 양 사나이.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나흘 뒤로 닥쳤지만 약속한 음악은 한 소절도 만들지 못하게 되자...

 

정원수 한 그루 한 그루가 양 모양으로 다듬어져 있는 양 박사 집으로 조언을 받으러 갑니다. 그런데 양 박사는 무시무시한 말을 꺼냅니다. 저주에 걸렸다고 말이죠.

 

크리스마스이브에 구멍 뚫린 음식을 먹으면 저주에 걸린다니!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도 도넛을 먹은 양 사나이는 금기 사항을 어겨 저주에 걸린 거였어요. 그렇다면 저주를 풀 방법은 있을까요?

 

방법이 없지만 않지만 그 해결책이 참 요상합니다. 하긴 저주의 조건부터 요상... ㅋㅋ. 구덩이에 떨어져야 한다는데 그 세세한 기술조차도 참 판타스틱합니다.

 

구덩이에 무사히(?) 떨어질 수 있을지,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이 정말 흥미진진해요. 하루키가 이런 글을 공개하고 있지 않았었다니! 양 사나이의 순둥순둥한 모습에 어느새 빠져들고, <신비한 동물사전>에서나 나올법한 캐릭터들의 다양한 매력도 볼만합니다.

 

이우일 작가의 그림이 40여 컷이나 들어있는데 그저 삽화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하루키의 동화 같은 이야기를 더욱 입체적이고 깊이있게 표현하고 있어 마음에 쏙 듭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크리스마스이브에는 구멍 뚫린 음식을 피하게 될 것 같나요? 일부러 찾아 먹을지도 몰라요~ 궁금하다면 읽어보세요 ^^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읽기 좋은 하루키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판타스틱한 세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5년에 쓴 짧은 소설이 이우일 일러스트레이터의 매력 넘치는 그림이 더해져 탄생한 <양 사나이의 크리스마스>. 초판 한정 엽서 세트는 크리스마스를 장식할 아이템으로도 제격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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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쏟다
고만재 지음 / 마들렌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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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코드가 닮아 빵빵 터져가며 재미있게 읽었던 고만재 작가의 전작 <하늘로 솟은 엉덩이>에 이어 신간 에세이집 <커피를 쏟다>를 읽었습니다. 이번에는 또 다른 감성을 듬뿍 전달하고 있는데, 예쁘기만 한 감성 에세이에 식상한 분들이라면 반가워할 만한 책이 될 겁니다.

 

글 쓰는 운동 선생 고만재 작가가 운동 지도와 강연을 하며 만난 특별한 인연들, 스치듯 지나갔지만 깊은 인상을 남긴 인연들 등 잊히지 않는 에피소드를 들려준 <커피를 쏟다>. 그는 이 인연들이 모두 '나를 키운 인연들'이라고 합니다. 소소한 조각들이 모여 그의 하루하루를 만들어낸 셈이니까요.

 

제자의 이름이 기억 안 나다보니 흔들리는 눈동자를 시전한 웃픈 상황으로, 가볍지만 의미 있는 글로 시작합니다. 엄마가 된 이후엔 어머님 소리만 줄창 듣고, 인터넷 생활로 필명이 오히려 더 이름처럼 불리게 되는 요즘. 오랜 친구들 만날 때 아니고서는 (아, 친정 모임에 가면 이모들은 열심히 불러줍니다. 몇 년 치를 하루 만에 다 듣고 오는 기분이죠 ;;;) 암튼 제 이름을 누군가가 불러주는 상황 자체가 참 희박하더라고요. 저자가 평소 사람의 이름을 꼭 기억하려고 하는 이유를 들려준 첫 에피소드부터 끄덕끄덕하게 됩니다.

 

표제가 된 '커피를 쏟다' 에피소드에서는 커피 쏟는 장면이 무려 세 번이나 등장합니다. 두 번은 피해자로, 한 번은 가해자로 ㅋㅋ. 커피를 쏟으면 대충 무슨 일이 생길지는 예상될 겁니다. 그때의 반응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에세이에 등장한 인물들은 모두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기면 심호흡 크게 하고 웃으면 그뿐이라는 걸. 내가 오늘 예민하게 반응한 것 중 그냥 웃으며 넘길 수도 있었던 일은 없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버스에서 조는 취객에게 내릴 곳을 묻고 깨워주겠다는 버스 기사님, 유튜브에서도 화제가 된 지하철 취객 포옹 영상에서의 청년 등 가슴 따스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집니다. 저자 역시 '간헐적 착한 일'을 한다고 밝힐 정도로 편견과 선입견을 내려놓고 포용하는 시각으로 대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내가 그 상황에 맞닥뜨렸다면 눈길을 피해버리는 척 애쓰는데 노오력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 상황에서도 말이죠.

 

그래도 세상엔 좋은 사람이 꽤 많다는 걸 보여준 에세이집 <커피를 쏟다>. 선량한 마음과 공감의 배려를 하는 이웃들의 이야기를 통해 소소한 깨달음의 시간을 안겨줍니다.

 

"지난 몇 년간 열정을 엉뚱한 곳에 쏟으며 분주하고 의미 있게 잘살고 있다고 착각했다. 정작 소중하고 아까운 것들을 놓치며 본질을 흐려왔다." - 커피를 쏟다


마음이 궁핍할 때 저자는 동대문 시장을 거닐며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삶을 지켜본다고 해요. 사람 향기가 나는 곳이 끌리기 마련입니다. 일상 속 배려와 공감 이야기들을 한 편씩 읽어나가다 보면 뾰족했던 마음도 조금은 뭉툭해지는 것 같습니다. 작은 일에 만족할 줄 모르고 살고 있을 때 읽기 좋은 글이 바로 이런 에세이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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