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달님만이
장아미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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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즐겨읽던 전래동화를 손에 쥔 듯한 표지 디자인이 눈길을 끈 <오직 달님만이>. 브릿G를 통해 단편 <비님이여 오시어>, <토우> 등을 발표한 전직 잡지 기자 출신 장아미 작가의 첫 장편소설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국적인' 요소를 소설 전반에 걸쳐 펼쳐 보인 작품입니다.

 

두 손이 결박된 채 어둠이 깔린 산길을 가고 있는 열아홉 살 모현. 범님의 신부로 인신 공양의 제물이 되어 산을 오르는 중입니다. 하지만 호랑이 앞에 가기도 전에 또 다른 위기에 마주 선 모현. 제물이 된 것도 환장할 사연인데 이 무슨 첩첩산중의 위기가 닥치는지.

 

급박한 상황 속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호랑이에게 어깨까지 물리지만, 호랑이가 그냥 호랑이면 판타지가 아니되죠. 내꺼인냥 침까지 발라주며 기이한 멘트를 날려주고 가시는 범님. 모현과 범님과의 기나긴 연이 있다는 걸 초반에 흘려둡니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인신 공양이 이뤄지게 되었을까요. 그 중심에는 무당 천이가 있습니다. 남의 욕망을 다루는데 도가 튼 무당 천이는 공포를 무기 삼아 마을을 쥐락펴락합니다. 마을에 벌어지는 온갖 변고를 범님의 화를 누그러뜨리지 못한 탓으로 돌린 무당 천이는 수령 홍옥이 마침 호랑이를 잡겠다며 산으로 들어간 뒤 생사가 불명인 상황에 이르자 인간 제물을 바치는 데 박차를 가합니다.

 

그러던 차에 사라졌던 수령 홍옥이 범님의 신부로 점지되었던 모현과 함께 돌아오니... 마을은 난리법석이죠. 점지된 신붓감을 앗아가려 한다며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모현을 다시 범님에게 보내야 한다는 무당 천이, 모든 백성을 공평하게 보듬어 안아야 한다며 모현을 지키고자 하는 수령 홍옥의 대립이 팽팽합니다.

 

이 과정에서 무당 천이와 수령 홍옥의 정체, 모현과 자매지간인 희현의 사정 등 떡밥이 마구마구 던져집니다. 예상했던 흐름과 크게 다른 결말은 아니었지만, 뻔한 전개인듯하다가도 예측 못하며 튀어나오는 악인의 모습도 있어 심심한 스토리는 아니었어요.

 

인외의 존재들이 등장함에도 판타지한 묘사는 밋밋한 편이라 제 기대감을 충족하진 못했지만,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민담, 설화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 소설 <오직 달님만이>. 콩닥콩닥 로맨스, 시기와 저주 등 감칠맛 나는 양념이 더해져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길게 써줬으면 좋겠다 싶은 관계도 있어서 한 권 분량이 좀 아쉬웠습니다.

 

힘없고 약한 소녀들, 어리거나 보호자가 없거나 집안의 위세가 덜하면 덜할수록 인간 제물이 되어야 했던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굴복하지 않는 모현의 당찬 모습, 마음에 들었어요.

 

지켜야 할 것들을 등 뒤에 세우고 있는 사람들은 쓰러뜨리기 쉽지요.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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