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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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YES24 e-연재 공모전 대상 수상작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


정해연 작가의 전작 소설 <악의>는 한국 정치판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추리소설이라 묵직한 느낌이었다면, 이번 <봉명 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는 코지 미스터리의 전형을 보여준 유쾌한 추리소설로 분위기가 확 달라졌어요. <악의>로 정해연 작가를 처음 접했을 때도 느꼈던 건데 무척 가독성 좋은 문체를 발휘하는 작가입니다.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를 읽다가 뭔가 낯설지 않은 내용이 나와 얼른 찾아보니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에 일부를 먼저 소개했더라고요. '오물 테러 사건'이라는 으웩스러운 소재여서 기억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숨어들었다가 관리소 직원의 순찰에 딱 걸린 금고 도둑. 잡히지 않을 거라 우쭐댔건만, 삼선 슬리퍼를 신고도 착착착착착착착 엄청난 속도로 달려온 직원에게 결국 붙잡힐 위기인 웃픈 에필로그로 시작하는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

 

금고 절도 미수범을 잡은 사람은 바로 봉명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 정차웅 과장. 만지면 너무나 부드러울 것 같은 희고 깨끗한 이마 위에 흐트러진 검은 흑발, 깊어 보이는 큰 눈에, 만지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얄팍한 입술, 큰 키지만 전체적으로 균형 있는 몸매의 남자. 신고 있는 삼선 슬리퍼마저 명품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이상한 힘을 가진 남자. 잘생김이 뚝뚝 흐르는 정과장. 그는 미제 사건 해결 1위의 에이스 형사 출신이지만, 돌연 사직서를 내고 사라진 후 얼마 전부터 봉명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일하고 있습니다. 

 

 

 

15층짜리 임대 아파트 봉명아파트에서 벌어지는 다섯 개의 단편 사건들. 소소한 사건에서부터 살인 사건까지 사건의 경중도 다양합니다. 사건 때문에 관할 경찰서 형사가 관리사무소로 찾아오게 되는데, 하필 형사 시절 동기입니다. 1년 반 만에 만난 그들은 동기 시절 개그 콤비를 자랑했었던 사이였죠. 다시 만난 그들은 서로에게 여전히 장난치듯 대하고 정과장의 힌트를 실마리 삼아 사건 해결도 해나가지만, 형사의 마음속엔 아무말 없이 돌연 사직하고 떠났던 정차웅의 과거가 궁금합니다. 

 

 

 

제가 단편선에서 읽었던 부분은 소설 속 여러 사건 중 가장 코믹했던 '오물 테러 사건'인데요. 누군가가 계속 엘리베이터에 소변을 보더니, 어느 순간부터 똥으로 테러가 진화하면서 아주 골머리를 썩게 됩니다. "레알 똥이라구요!" ㅋㅋ

 

이 사건은 그나마 해프닝 수준이었지만 다른 사건들은 제법 심각한 편입니다. 방문교사 실종사건, 투신자살 사건, 자살을 가장한 살인 사건이 이어집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과장은 더 이상 형사가 아님에도 본능적으로 사건의 이면을 바라봅니다.

 

사건 해결 과정에서 아파트 입주민들의 시선을 꼬집기도 합니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 겉으로 보이는 대로 편하게 해석하는 사람들. 사람들의 흥미는 팩트에 쓸데없는 상상력을 입히고, 그렇게 되면 정작 뭐가 팩트인지 알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아무 생각 없는 호기심의 기저에 가벼운 악의가 깔려 있는 심리까지 들춰냅니다.

 

"쳇바퀴 구르듯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 혹시 이런 사건들이 그들에게 카타르시스라도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가벼운 추잡함이 너무나 인간적이라고 해야 할지, 비인간적이라고 해야 할지 애매하다." - 책 속에서

 

 

 

봉명아파트 사건과는 별개로 정차웅의 과거는 그 나름대로 아픈 스토리를 품고 있었어요. 자살한 여자친구 때문이라고 하기엔 아직 남아있는 진실이 있는데.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는 정차웅의 다시 일어서기 과정이기도 합니다.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를 버티는 과정입니다.

 

정해연 작가의 소설은 가독성이 좋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대사가 아주 찰져서 입에 착 달라붙습니다. 정과장의 매력에 빠져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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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구조 대사전 - 수학 성적을 살리는 초등 수학의 모든 것
쓰보다 코조 지음, 유윤한 옮김 / 조선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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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수학 전 과정 교과 연계된 수학 사전 <수학의 구조 대사전>으로 초등 수학 기본기를 다시 한 번 다져봅니다. 초등 교과 순서대로는 아닙니다. 주제 중심의 수학 사전입니다.

 

 

 

초등 수학 영역을 주제별로 크게 네 가지로 나눴습니다.

수와 연산, 측정, 도형, 규칙성과 문제 해결로 구분해 교과서 이곳저곳에 흩어진 개념을 모아 구조화했어요. 중요하게 살펴볼 핵심 개념을 정리해 수학의 기본 구조와 원리를 이해할 수 있게 했습니다.

 

 

수학 개념과 관련한 재미있는 수학 이야기가 담긴 실력 키우기 코너는 환기용 지식으로 제격이네요.

 

 

 


계산식, 풀이 과정이 한눈에 보기 쉽게 나와 있어요. 개념마다 계산식 차이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수학은 개념의 차이를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자연스럽게 개념의 차이를 통해 개념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계산식은 그 차이점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계산의 의미와 구조를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해요. 도형의 경우엔 여러 도형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피면 그 도형만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 거고요.

 

수와 연산쯤은 쉽겠거니 생각했는데 하나의 주제로 묶어서 살펴보니 정말 초등학교 수학 시간 내내 배우는 것들이었어요. 수의 크기, 자릿값 같은 저학년 수학에서부터 분수, 소수의 연산까지. 수의 종류와 알맞은 계산법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측정 파트에서는 양을 나타내는 방법부터 부피, 속도 등 측정에 관한 모든 것을. 도형에서는 점, 선, 면으로 이루어진 모양을 살펴보며 도형의 성질과 작도에 관해 설명합니다.

 

 

 

규칙성과 문제 해결 파트에서는 6학년 수학에 등장하는 비와 비율은 물론이고 수량 관계를 확인하는 법까지. 그리고 문제 푸는 요령이라고 해야 할까요. 문제 해결 방법에 관한 내용도 알짜배기입니다. 식을 사용해 설명하는 문제를 푸는 법, 서술형 문장제 문제의 다양한 해결 방법을 소개합니다.

 

책을 펼쳤을 때 양면으로 한 번에 눈에 쏙 들어오는 편집이 마음에 들었고요. 대신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부분은 아니지만 소소한 오타가 있긴 해서 마무리가 좀 아쉽긴 했네요. 인덱스도 없지만 이 부분은 목차와 워낙 상세하게 나와있어 큰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수학사전을 처음 접하는 분이라면 이런 것도 사전이라고 부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일반 사전 구성과는 다릅니다. 대체로 용어 위주의 수학사전 vs 주제별 수학사전 식으로 나뉘는데 이 책은 주제별로 구성했고, 수학 지도와도 같은 훌륭한 내용이 마음에 들었어요. 초등수학 총정리와 중학교 수학 예습에 효과적인 <수학의 구조 대사전>. 개념 정리와 계산 구조를 익혀 수학 기본기를 다질 수 있는 수학사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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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허 아이즈
사라 핀보로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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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입을 근질근질거리게 하는 소설이 있습니다. 극강의 반전이 제대로 살아있는 소설 <비하인드 허 아이즈>를 읽고 나니 딱 그렇네요. 반전 결말을 맞으며 받은 충격을 다들 겪어봐야 해요!!

 

"비밀은 셋 중 둘이 죽었을 때에만 지킬 수 있다." - 벤저민 프랭클린

 

 

 

<비하인드 허 아이즈 Behind her eyes> 제목은 올여름에 읽은 심리 스릴러 소설 <비하인드 도어 Behind the door>와 비슷한 데다 초반 분위기도 유사합니다. 겉으로는 완벽한 부부로 보이지만 실상은 살얼음판 같은 관계. 흠잡을 데 없는 아내가 남편의 눈치를 보며 긴장하는 모습까지 말이죠. 새 출발을 한다며 이사 온 데이비드와 아델 부부에게는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요.

 

 

 

싱글맘 루이즈는 바에서 만난 환상적인 남자에게 끌렸는데 알고 보니 새로 온 직장 상사! 게다가 우아하고 아름다운 아내를 둔 유부남이었다니. 그를 만나면서 다시 여자로 살아난 기분이었건만 빛 좋은 개살구였다며 스스로를 자아비판 수준으로 질책합니다.

 

유부남 직장 상사와 비서 관계. 너무 식상한 패턴인가요? 저도 솔직히 처음엔 그런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이처럼 흔하디흔한 뻔한 공식은 이 부분밖에 없으니 안심하세요.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내 상상력이 얼마나 부족했는가 하며 자아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데이비드의 아내 아델은 남편의 통제를 받으며 생활하는 가운데 남편 몰래 루이즈와 친구 관계가 됩니다. 루이즈의 호감을 제대로 얻는 아델. 그런데 그들의 첫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의 불륜 상대를 두고 아델은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걸까요.

 

"이제 계획은 다 세웠다. 그 사실에 배 속이 흥분으로 부글거렸다." - 책 속에서

 

 

 

미스터리 심령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제 벌어질 일들은 심드렁할 수 있겠지만, 일단 끝까지 보세요. 기막힌 반전을 두고 놓치기엔 너무 아까운 소설이거든요.

 

야경증이 있는 루이즈는 역시 같은 증세를 겪은 아델로부터 도움을 받게 됩니다. 아델이 알려준 방법은 꿈의 주인이 되는 자각몽을 위한 것이었는데, 루이즈는 이 방법이 잘 통하는 성향이었어요.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게 되자 꿈속에서 그다음 단계가 진행됩니다. 첫 번째 문을 열어 내가 원하는 곳을 가는 자각몽을 꾼다면, 어느 날부터인가 은빛 두 번째 문이 나타나면서 그 문을 통과하면 순간 내 자아가 몸과 분리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실체가 없는 '나'는 멀리 떨어진 장소까지 다녀올 수 있기도 합니다.

 

 

 

아델은 남편 데이비드를 증오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하고 있고, 절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데이비드에게서는 아델을 향한 삐뚤어진 사랑마저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통제할 뿐입니다. 한때는 연인이었지만 이제는 고요한 적과도 같습니다.

 

아델의 목적은 루이즈에게 데이비드에 관한 의심과 불안의 씨앗을 심어두는 것. 아델의 치밀한 계획은 루이즈로 하여금 상황을 엉뚱하게 바라보게 합니다. 아델은 사람들의 '성격'을 갖고서 도박을 하는 겁니다.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조율사와도 같습니다. 데이비드를 의심할 증거가 너무 많이 나오면서 루이즈는 데이비드를 불신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남편의 불륜 상대를 떨궈내는 수준이라면 너무 쉽잖아라고 생각할 즈음, 질투와 욕망이 가득한 불륜 소재 아침 드라마 분위기는 반전의 반전을 거듭합니다.

 

아델의 이야기 중 거짓말을 눈치챈 루이즈. 그녀가 거짓말을 했다면 이 모든 것이 바뀝니다. 그 여자는 연약하지도 상냥하지도 않고 그저 맛이 간 여자일 뿐이라는 걸 비로소 깨닫는데. 공격적이고 공감 능력 없는 소시오패스 아델에게서 데이비드를 구해내려는 루이즈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이 관점의 문제고 교묘한 눈속임이다. 절대로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진실이란 사람마다 다르다." - 책 속에서

 

 

 

결말을 알고 나면 초반에 등장한 '그 후' 편이 이해가 됩니다. <비하인드 허 아이즈>는 그 때, 그 후, 현재 시점을 오가며 진행하는데, 아델과 데이비드의 과거를 이때 슬쩍슬쩍 보여줍니다. 후반부 반전을 보고 처음엔 짜증이 좀 났어요. 물론 그 상태에서도 결말로 훌륭한 스토리이긴 했지만 그 상태로는 제 취향에 안 맞는 결말이었거든요. 그러다가 와우... 진짜 1도 생각 안 했던 내용으로 극강의 반전을 안겨주는 겁니다. 그때의 놀라움이란. 충격이란 단어는 이럴 때 써야 하는 거였어요.

 

소설은 원래 소재나 문체 등 개인 취향을 타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이것저것 다 집어치우고 반전소설 제대로 맛보고 싶은 분이라면 <비하인드 허 아이즈> 추천합니다. 스티븐 킹이 "사라 핀보로의 소설은 명확하고 감정적인 울림이 있다. 그녀의 소설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라고 평했을 만큼 탄탄한 스토리 보장합니다. 영화화되는 소설이라니 대단한 반전 스릴러 영화 탄생 예고네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놓아주어야 한다고?
말도 안 되는 헛소리지."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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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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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치바>, <골든 슬럼버> 등으로 일본 미스터리계를 장악한 이사카 코타로 작가. 최근에 읽은 책 <남은 날은 전부 휴가>에서는 범죄를 소재로 하면서도 뭔가 상큼발랄(?) 이미지를 보여줘서 인상 깊었는데요. 사회 비판 소설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책도 엄지 척 세울만합니다.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비틀어 보여주는 데 상당한 재능있는 작가인 것 같아요.

 

 

 

위아래가 붙은 작업복,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와 고글, 목검을 든 남자. 고등학생이 괴롭힘을 당하는 현장을 보고 도와주는 이 사람은 일명 '정의의 편'이라 불리는 남자입니다. 누명을 쓴 무고한 시민이 위험에 처했을 때 나타나 도와주며 자경단 역할을 하는데.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의 배경은 바야흐로 평화경찰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사회. 위험인물로 적발되면 공개처형됩니다. 죄를 저지른 사람을 처형하는 게 아니라 미연에 막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런 일을 담당하기 위해 평화경찰 부서가 생겼고 그 위치는 어마어마해졌습니다.

 

미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권침해법이라 부르는 테러방지법이 있고, 일본에서도 테러대책법안과 관련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공모죄법으로 불리는 일본의 이 법은 사전 모의만으로도 처벌하도록 되어 있어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처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에서도 공포정치냐 범죄 예방이냐에 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지만, 소문의 위력과 군중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당하면서 긴장하고 공포에 사로잡히면서도 흥분하는 심리. 대부분은 효과가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 사회는 약육강식의 세계와 다를 바 없습니다. 어느 정도 시스템이 안착된 후부터는 나름의 정의감 넘치는 시민들의 밀고가 이어지게 됩니다.

 

문제는 중세 마녀사냥처럼 되었다는 겁니다. 평화경찰에게 취조라는 행위는 죄를 자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학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한 오락처럼 변질됩니다. 위험인물로 지목당한 자가 평화경찰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취조를 당하면 차라리 처형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니까요. 진심으로 도망치고 싶다면, 화성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지경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든, 아무리 불만이 많든, 지금의 이 사회를 살아가야만 해. 룰을 지키며 올바르게 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나라를 떠나면 돼. 다만 어느 나라에 가든 이 사회의 연장선상에 있지. (중략) 이 나라보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아예 화성에 가서 살 생각이야?" - 책 속에서

 

 

 

이 상황에서 벗어날 것인가, 화성에라도 가서 살 것인가. 희망이 없는 선택지만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무고한 이웃이 연행될 때 방관했다는 죄책감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평화경찰의 부조리함을 파헤치려던 사람들의 계획이 실패한 사건을 계기로 복면의 남자가 다시 등장합니다. 위험인물을 연행하거나 취조하던 중에 '정의로운 편'에게 당하는 평화경찰. 결국 유능한 수사관이 파견되고 본격적으로 평화경찰과 정의로운 편의 대결이 이뤄집니다.

 

 

 

 

그런데 이 유능한 수사관의 말과 행동을 보면 상당히 골 때리는 캐릭터입니다. 기타 하나만 들면 금방이라도 노래를 시작할 것 같은 외모이면서 그의 말에는 깊은 의미가 많이 숨어있습니다. 은근슬쩍이 아닌 대놓고 평화경찰을 비꼬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어쨌든 이 수사관 때문에 사건 해결에 한 발 한 발 다가섭니다. 복면 남자가 사용하는 자석을 이용한 무기의 정체를 쫓는 과정에서 드러난 평화경찰의 부조리한 사건은 경찰 내부의 권력 문제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소설 중반부를 넘어서면 드디어 '정의의 편' 복면 남자의 시점으로 진행합니다. 정의감도 가족력이 있구나 싶네요. 보고 배운 게 그러하니. 곤경에 처한 사람을 두고 보지 못한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비참한 결말을 겪었습니다. 한 사람을 구하면 다른 사람도 구해야 한다는 식, 모든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것은 위선으로 비치게 되는 현실을 경험한 그로서는 누군가를 도울 때마다 '조심해, 위선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어'라는 마음속 경고를 하며 삽니다.

 

그러던 그가 변화한 계기는 선량하게 살았는데도 병으로 고통스럽게 죽은 아내와 평화경찰의 부조리한 사건에 휘말려 죽은 학생의 일을 목격한 이후부터입니다. 어떻게 자석 무기를 손에 넣어 평화경찰에 반격했는지 과정을 그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습니다. "세상은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니까 그게 싫으면 화성에라도 가서 사는 수밖에 없지"라는 희망 없는 선택지 앞에서도 그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노력합니다.

 

과연 '정의의 편'은 무사할 수 있을지, 평화경찰 시스템은 이대로 이어질지 예측하기 힘든 치열한 심리전이 볼만한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생존 본능이 인간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변질되는지 보여줍니다. 이사카 코타로 작가 특유의 비꼬기식 은유가 빛을 발휘하고, 통쾌한 반전도 어김없이 등장하면서 반전 스릴러의 대명사인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 분위기가 나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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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빈 폰 - 나무, 바람, 흙 그리고 따뜻한 나의 집 캐빈 폰
스티븐 렉카르트 글, 김선형 옮김, 노아 칼리나 사진, 자크 클라인 기획 / 판미동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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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을 온전히 누리는 사람들과 그들의 작은 집 200여 장의 사진이 가득한 환상적인 화보집 <캐빈 폰 Cabin Porn>.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언제라도 노력하면 지을 수 있는 집 한 채씩을 품고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 책 속에서

 

자연과 함께라면 황야든, 나무 위든, 지하이든 그곳이 어디든 소박한 안식처를 짓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상에서 지친 심신을 힐링하려는 이들에게 숲 속의 작은 집만 한 곳은 없는 것 같아요. 저도 휴양림 통나무집에서 하룻밤 지낸 이후 자연 속 나무집 매력에 푹 빠져버렸거든요.

 

<캐빈 폰>은 전 세계에 손수 지은 작은 집 200여 장의 사진과 함께 숲 속의 쉼터를 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농가, 통나무집, 나무 집 등 집 짓는 법이라는 목차가 있긴 하지만 순수하게 집 짓기의 전 과정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자연 속 집을 소개한 카탈로그 느낌이에요. 대신 환경에 따라 포인트 둬야 할 점을 짚어주고 있기에 자연 속 작은 집에 관한 전반적인 정보와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뉴욕 배리빌 숲 지대에 만든 오두막 공동체 비버 브룩. 자원 보존과 지역 사회 활성화를 도모하는 모델로 유명해진 곳입니다. 이후 캐빈 폰이라는 웹페이지를 만들어 우리가 꿈꾸는 집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사진들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그 진액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꿈을 품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다가 취직을 하고 가정을 꾸리게 되지요. 그러다 보면 마흔 살, 쉰 살이 되고 어느 날 문득 꿈을 다 길가에 버리고 왔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런 일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 책 속에서

 

 

 

통나무집이라 하면 보통의 우리는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게 되죠. 언제 어디든 도시와 오지를 오갈 수 있는 경계에 발을 걸쳐야 안심됩니다. 하지만 오두막 성애자들은 자연 속에 묻힐수록 더 열광합니다. 자동차로도 갈 수 없는 깊숙한 곳이나, 허허벌판 사막에 짓기도 합니다.

 

다행히(?) 펜션 분위기의 모던한 나무집도 있습니다. 숲 속의 집이라는 환상은 그대로인데 현대적인 분위기와 소재를 더했습니다. 우리가 익히 머릿속에 떠올리는 초원의 통나무집들도 있습니다.

 

휴양을 목적으로 하거나 실험적인 건축물을 지어보려고 혹은 아예 살기 위해 짓는 등 목적은 다양하지만, 소박한 삶의 철학이 건축에 고스란히 표현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회생할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 낡은 주택을 개조해 재생하기도 하고, 양곡 사일로를 개조하거나, 고물 폐기장에서 주워온 것들을 활용해 집을 짓기도 합니다. 집이 아닌 메이플 시럽 만드는 제조소, 사우나, 보트 창고, 대피소 등도 소개됩니다.

 

 

 

어린이 책 13층 나무집 시리즈 덕분에 저희 집에서도 나무집 로망이 불어닥쳤는데요. 이선 슐루슬러의 트리 하우스는 꿈이 현실화된 느낌입니다. 트리하우스에서 헛간까지 집라인을 설치해 액티비티를 즐길 수도 있고, 페달로 동력을 전달하는 자전거 엘리베이터까지. 장난기 가득한 상상을 실현한 나무집이었어요.

 

 

 

현대 문명의 이기를 버리고 자연 속에서 소박하게 사는 삶이 영적으로나 창조적으로나 충만한 삶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오두막 성애자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댄 프라이스에게 움막은 반지의 제왕 호빗의 집 분위기입니다. 순간순간 흐르는 대로 지은 움막들은 발길 닿는 대로 여행하는 그의 삶의 철학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돔형 오두막집인 유르트는 몽골 게르와 비슷합니다. 유목민의 주거지 형태를 재현해 숲 속 보금자리를 짓기도 합니다. 현대화되고 한층 내구성 좋게 유르트 건설 방식인데도 채 9일이 걸리지 않고 만든 집이었어요.

 

<캐빈 폰 Cabin Porn>은 현대인에게 자연 속 작은 집은 새로운 삶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 현장을 보여줍니다. 전 세계 손수 지은 작은 집 200여 장의 사진은 보는 것만으로도 산림욕을 하는듯한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버리기와 비움, 아날로그적인 삶의 탐구 등 현대인들이 꿈꾸거나 실천하는 행동의 마지막 행보는 바로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아닐까 싶네요.

 

"판타지를 딛고 현실로 도약하는 건 어렵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고 영감을 찾는 데서 그것은 이미 시작된다." -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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