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6년 YES24 e-연재 공모전 대상 수상작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


정해연 작가의 전작 소설 <악의>는 한국 정치판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추리소설이라 묵직한 느낌이었다면, 이번 <봉명 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는 코지 미스터리의 전형을 보여준 유쾌한 추리소설로 분위기가 확 달라졌어요. <악의>로 정해연 작가를 처음 접했을 때도 느꼈던 건데 무척 가독성 좋은 문체를 발휘하는 작가입니다.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를 읽다가 뭔가 낯설지 않은 내용이 나와 얼른 찾아보니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에 일부를 먼저 소개했더라고요. '오물 테러 사건'이라는 으웩스러운 소재여서 기억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숨어들었다가 관리소 직원의 순찰에 딱 걸린 금고 도둑. 잡히지 않을 거라 우쭐댔건만, 삼선 슬리퍼를 신고도 착착착착착착착 엄청난 속도로 달려온 직원에게 결국 붙잡힐 위기인 웃픈 에필로그로 시작하는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

 

금고 절도 미수범을 잡은 사람은 바로 봉명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 정차웅 과장. 만지면 너무나 부드러울 것 같은 희고 깨끗한 이마 위에 흐트러진 검은 흑발, 깊어 보이는 큰 눈에, 만지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얄팍한 입술, 큰 키지만 전체적으로 균형 있는 몸매의 남자. 신고 있는 삼선 슬리퍼마저 명품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이상한 힘을 가진 남자. 잘생김이 뚝뚝 흐르는 정과장. 그는 미제 사건 해결 1위의 에이스 형사 출신이지만, 돌연 사직서를 내고 사라진 후 얼마 전부터 봉명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일하고 있습니다. 

 

 

 

15층짜리 임대 아파트 봉명아파트에서 벌어지는 다섯 개의 단편 사건들. 소소한 사건에서부터 살인 사건까지 사건의 경중도 다양합니다. 사건 때문에 관할 경찰서 형사가 관리사무소로 찾아오게 되는데, 하필 형사 시절 동기입니다. 1년 반 만에 만난 그들은 동기 시절 개그 콤비를 자랑했었던 사이였죠. 다시 만난 그들은 서로에게 여전히 장난치듯 대하고 정과장의 힌트를 실마리 삼아 사건 해결도 해나가지만, 형사의 마음속엔 아무말 없이 돌연 사직하고 떠났던 정차웅의 과거가 궁금합니다. 

 

 

 

제가 단편선에서 읽었던 부분은 소설 속 여러 사건 중 가장 코믹했던 '오물 테러 사건'인데요. 누군가가 계속 엘리베이터에 소변을 보더니, 어느 순간부터 똥으로 테러가 진화하면서 아주 골머리를 썩게 됩니다. "레알 똥이라구요!" ㅋㅋ

 

이 사건은 그나마 해프닝 수준이었지만 다른 사건들은 제법 심각한 편입니다. 방문교사 실종사건, 투신자살 사건, 자살을 가장한 살인 사건이 이어집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과장은 더 이상 형사가 아님에도 본능적으로 사건의 이면을 바라봅니다.

 

사건 해결 과정에서 아파트 입주민들의 시선을 꼬집기도 합니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 겉으로 보이는 대로 편하게 해석하는 사람들. 사람들의 흥미는 팩트에 쓸데없는 상상력을 입히고, 그렇게 되면 정작 뭐가 팩트인지 알 수 없게 된다고 합니다. 아무 생각 없는 호기심의 기저에 가벼운 악의가 깔려 있는 심리까지 들춰냅니다.

 

"쳇바퀴 구르듯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 혹시 이런 사건들이 그들에게 카타르시스라도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가벼운 추잡함이 너무나 인간적이라고 해야 할지, 비인간적이라고 해야 할지 애매하다." - 책 속에서

 

 

 

봉명아파트 사건과는 별개로 정차웅의 과거는 그 나름대로 아픈 스토리를 품고 있었어요. 자살한 여자친구 때문이라고 하기엔 아직 남아있는 진실이 있는데.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는 정차웅의 다시 일어서기 과정이기도 합니다. 가슴을 짓누르는 무게를 버티는 과정입니다.

 

정해연 작가의 소설은 가독성이 좋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대사가 아주 찰져서 입에 착 달라붙습니다. 정과장의 매력에 빠져보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