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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의 과학 - 방구석에서 우주까지, 유체역학은 어떻게 세상을 깨끗하게 만드는가?
송현수 지음 / Mid(엠아이디) / 2025년 12월
평점 :

*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먼지를 털어내고, 컵에 남은 커피 자국을 닦아내며, 샤워실의 습기를 쫓아냅니다. 그저 귀찮고 피하고 싶은 가사 노동일 뿐이지만, 송현수 박사의 시선은 다릅니다.
『청소의 과학』에서 청소는 노동이 아닙니다. 엔트로피(무질서도)가 증가하는 자연의 섭리에 맞서 인간이 인위적으로 질서를 회복하려는 숭고한 기술적 투쟁입니다. 청소는 그래서 성격이나 부지런함의 문제가 아닙니다.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흐름을 읽어내는 능력의 문제입니다. 이 책은 바로 그 능력을 길러주는 가이드북입니다.
흐름의 과학이라는 유체역학 키워드로 일상의 말랑말랑한 과학을 탐구해 온 이야기꾼 송현수 박사가 전작 『개와 고양이의 물 마시는 법』, 『흐르는 것들의 역사』 등에서 보여준 특유의 통찰력이 이제 집 안 구석구석으로 향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공기가 답답해서 창문을 엽니다. 하지만 송현수 박사는 이를 유체의 압력 차를 이용한 공간 치환으로 설명합니다. 공기 분자는 멈춰 있지 않습니다. 미세먼지와 실내 오염 물질은 공기 흐름의 사각지대, 즉 데드 존에 고이게 마련입니다.

『청소의 과학』은 창문을 여는 행위를 넘어, 바람의 길목을 어떻게 설계해야 효율적으로 탁한 공기를 밀어낼 수 있는지 그 유체역학적 최적해를 제시합니다. 공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환기는 집이라는 유체 시스템의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핵심 공정입니다. 청소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왜 여기만 먼지가 쌓이는지 이상했는데, 이제 과학으로 답할 수 있습니다. 거실의 소파 밑이나 TV 뒤편에 먼지가 집중되는 것은 그곳의 기류 속도가 급격히 느려지는 정체 구간이기 때문입니다.
창문을 닦을 때 생기는 얼룩 역시 액체가 증발하며 남기는 용질의 흔적, 즉 커피 고리 효과(Coffee Ring Effect)와 맞닿아 있습니다. 걸레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미세한 물막의 두께와 표면장력이 결정하는 광택의 비밀을 읽다 보면, 어느새 거실 바닥이 거대한 물리 데이터의 집합체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침실은 각질과 섬유 부스러기 그리고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유동하는 공간입니다. 옷방에서 옷을 털 때 발생하는 정전기는 전자기적 인력으로 먼지를 포획하는 물리적 현상입니다. 우리가 옷을 정리하고 침구를 터는 행위가 어떻게 미세 입자의 침강 속도를 조절하는지 설명합니다. 침실의 안온함은 결국 적절한 습도 제어와 입자 제어를 통해 완성되는 과학적 결과물임을 깨닫게 됩니다.
주방의 기름때는 점성이 높은 유체의 전형입니다. 뜨거운 물과 세제가 만날 때 일어나는 계면활성제의 마법은 고체 표면과 액체 오염원 사이의 부착력을 끊어내는 고도의 화학 반응입니다.
화장실은 이 책에서 역동적인 공간으로 묘사됩니다. 샤워기에서 분사되는 물방울의 크기가 욕실 내 습도 포화 속도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타일 틈새에 물때가 고착되는 모세관 현상은 유체역학의 축소판입니다. 곰팡이가 번식하기 위해 필요한 임계 습도와 이를 억제하기 위한 증발 원리를 이해하고 나면, 락스 냄새 자욱한 욕실 청소는 어느덧 미생물과의 치열한 영토 전쟁으로 격상됩니다.
화장지는 어떤 방향으로 거는 게 맞을까라는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취향 싸움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과학적 근거가 있더라고요. 위생의 관점, 힘과 흐름의 문제 등을 조목조목 짚어갑니다.
더불어 재미있는 역사적 증거도 있습니다. 화장지를 발명한 세스 휠러가 출원한 특허 도면을 보면 최초 설계자의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손의 동선과 공기의 흐름, 표면 접촉을 고려한 결과물상 어떤 방향으로 거는 게 더 나은지 생각해보세요.

이어서 저자의 시선은 집 밖으로 향합니다. 도시의 배수 시스템이 어떻게 폭우 시 오염 물질을 정화하는지,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도시 설계가 유체의 흐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짚어줍니다. 도시를 청소하는 것은 결국 거대한 유체 회로의 막힌 곳을 뚫어주는 일과 같습니다.
지구는 스스로를 청소하는 거대한 시스템입니다. 파도는 해안을 씻어내고, 비는 대기를 닦아냅니다. 하지만 최근 이 시스템에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바로 미세 플라스틱입니다.
해류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미세 플라스틱의 이동 경로는 유체역학적으로 예측 가능하지만, 그 양이 자정 작용의 임계치를 넘어섰습니다. 자연의 청소 메커니즘을 모방한 기술적 시도들을 소개하며, 저자는 청소가 더 이상 개인의 위생 문제가 아니라 종의 생존을 위한 공학적 필수 과제임을 짚어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대기권 밖 우주로 안내합니다. 지구 궤도를 떠도는 우주 쓰레기는 초속 수 킬로미터로 이동하며 인류의 우주 진출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 되었습니다. 우주 청소 기술은 현대 공학의 정수가 집약된 분야입니다. 무중력 상태에서 입자를 제어하고 흐름을 만드는 기술은 우리가 집 안에서 분무기를 뿌리는 행위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청소는 단순히 더러운 것을 치우는 행위가 아니라, 가용 에너지를 투입해 엔트로피의 파도에 맞서 의도된 질서를 세우는 예술적 행위입니다. 미래의 청소는 로봇과 AI가 흐름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최적화하는 초정밀 제어의 영역으로 진입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기저에 흐르는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는 인간만이 깨끗함이 주는 정서적 위안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겁니다.
『청소의 과학』은 우리가 닦아내는 얼룩이 얼마나 정교한 물리 법칙의 산물인지, 우리가 내뱉는 숨결이 방 안의 기류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줍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우리 집이 이전과 다르게 보입니다. 구석에 쌓인 먼지는 유체 역학적 정체 구간의 지표가 되고, 창문에 맺힌 물방울은 표면장력의 경이로운 연출이 됩니다.
공학이라는 딱딱한 껍질 속에 일상의 경이로움을 담아낸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복잡한 수식 하나 없이도 유체역학의 핵심을 꿰뚫는 서사 덕분에 과학이 우리 삶을 얼마나 더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무의미한 반복처럼 느껴졌던 청소가 사실은 우주의 질서를 복원하는 고도의 엔트로피 저항 운동임을 깨닫고 새로운 동기부여를 얻는 건 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