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 홍단영
이은비 지음 / 북레시피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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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전통 건축과 풍수지리 그리고 궁궐의 암투가 절묘하게 얽혀 있는 이은비 작가의 장편소설 <가인, 홍단영>.


여성이면서 남장을 하고, 목수이면서 풍수지리의 대가로 군림한 홍단영이라는 주인공의 삶은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는 강렬한 서사로 우리를 매료시킵니다. 궁궐 암투의 치열함 속에서 펼쳐지는 홍단영의 모험과 로맨스는 반전을 거듭하며 긴장감을 높이는 한편, 조선의 전통 건축과 풍수의 세계를 섬세하게 그려내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홍단영은 남장을 해야만 했던 조선 시대 건축가이자 풍수 전문가입니다. 스스로를 ‘가인(家人)’이라 부르며, ‘풍화가인(風火家人)’의 의미를 담아 모두가 편안히 살아갈 집을 짓고자 노력합니다.


홍단영의 기술은 아름다운 집을 짓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땅의 악운을 막고, 천기의 흐름을 활용해 흉지를 명당으로 탈바꿈시키는 독특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삶에 개입합니다. 이러한 ‘인태리어(人兌利饇)’ 기술은 명당을 차지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단영을 찾아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홍단영의 세계는 풍수지리라는 조선 시대의 전통적인 사상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가 이끄는 목수단 ‘안궐(安橛)’은 단순히 집을 짓는 것을 넘어, 땅의 에너지를 다스리고 사람들의 운명을 변화시키는 일을 합니다.


작품 속 풍수지리와 전통 건축은 단순한 배경 설정을 넘어 서사의 주요 축을 이룹니다. 명당을 차지하지 못한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그녀의 문을 두드리고, 흉지조차 복지로 탈바꿈시키는 단영의 노력은 독자들에게 운명에 맞설 수 있다는 희망을 전달합니다.


‘향법론(천기의 흐름을 따르는 이론)’과 ‘형기론(지형과 기운을 따지는 이론)’의 차이를 통해 풍수의 깊이를 더하며, 생소할 수 있는 이론적 배경을 흥미롭게 풀어냅니다. 소설 속 나주 금성관, 무위사 극락보전, 와리산과 같은 실제 역사적 장소들이 등장하며, 집을 짓는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됩니다.





단영의 삶은 궁궐의 권력 다툼과 깊이 얽혀 있습니다. 왕실과의 인연을 끊으려 했던 그는 어느 날, 월산대군 이정의 의뢰를 받게 됩니다. 이정은 조선 팔도의 최악의 흉지로 불리는 와리산에 궁가를 짓고자 안궐을 찾아옵니다. 단영은 이를 거절하지만 결국 운명처럼 이정과 얽히게 됩니다. 애절하면서도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일품입니다. 권력 암투와 운명의 장벽이 두 사람의 관계를 끊임없이 위협하며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펼쳐집니다.


와리산이라는 조선의 흉지에서 벌어지는 궁가 건축 과정은 그 자체로도 긴장감 넘치는 드라마입니다. 단영과 안궐 식구들이 조정 대신들의 방해와 대자연의 재앙 속에서 이를 완성해가는 과정은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합니다. 단영과 이정의 사랑은 물론, 궁가의 완성 여부와 조선 왕실의 운명까지 모든 이야기가 한 데 얽혀 치닫습니다. 와리산 궁가를 둘러싼 음모 그리고 단영의 과거까지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우리가 흔히 쓰는 인테리어는 영어 interior에서 비롯된 외래어로, 공간을 아름답고 실용적으로 꾸미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태리어(人兌利饇)’는 발음은 비슷하지만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태리어(人兌利饇)’라는 독특한 한자어와 외래어 ‘인테리어(interior)’ 사이의 동음이의어 재미가 있습니다.


‘인(人)’ 사람, 인간. 사람이 중심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태(兌)’ 기쁠 태. 기쁨과 만족을 상징합니다.

‘리(利)’ 이롭다. 실용적 가치와 삶의 번영을 나타냅니다.

‘어(饇)’: 배부름, 충족. 풍요롭고 넉넉한 삶을 상징합니다.


한자 조합으로 만들어진 ‘인태리어’는 단순히 공간을 꾸미는 기술이 아니라, 땅의 기운을 읽고 조율해 사람의 운명과 복을 담아내는 건축 철학을 뜻합니다. 이은비 작가의 언어적 유희가 빛을 발합니다. 우리 집도 단순히 인테리어가 아니라, 인태리어였으면 운명이 좀 나아졌을까요?





로맨스를 중심으로 권력과 풍수 그리고 운명을 둘러싼 복잡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소설 <가인, 홍단영>. 사주(주어진 운명)와 팔자(스스로 선택한 삶) 사이의 간극을 채워주는 인태리어를 통해 운명은 바꿀 수 없지만, 선택은 스스로의 몫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운명을 바꾸는 사람, 운명을 거스르는 사랑 이야기를 재밌게 풀어냅니다. 풍수와 건축이 엮어낸 조선의 운명 대서사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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