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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언어 - 유행가에서 길어 올린 우리말의 인문학
한성우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3월
평점 :
최초의 가요부터 K-POP까지 유행가에서 길어 올린 우리말의 인문학 <노래의 언어>. 전작 <우리 음식의 언어>에서는 과거의 밥상부터 오늘날 식탁에 이르기까지 먹고 마시는 것과 관련된 말을 살펴봤다면, 이번에는 우리 노래에서 찾아봅니다. 우리 음식과 우리 노래의 언어라니. 국어학자인 저자가 실생활 언어를 탐구하는 영역의 폭이 대단하다는 걸 느꼈어요.
한성우 저자는 멜로디와 리듬보다 가사에 초점 맞췄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우리 곁에 있는 노래. 그중 노랫말을 살핀 <노래의 언어>. 취향에 따라 호불호도 제각각인 노래. 통계를 위한 작업을 위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노래를 정하는 것부터 큰일이었어요. 어떻게 노랫말을 모으고 정리하고 분석할 것인지 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랫말이란 사람의 삶을 노래하는 말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시대에 따라 삶 속에 살아있는 말을 노랫말에서 발견할 수 있었어요.
특정한 시기에 대중의 인기를 얻어 많은 사람들이 듣기도 하고 부르기도 하는 노래, 유행가.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장르도 변해왔습니다. 그중 천대하면서도 분위기 띄울 때는 한 번쯤 부르는 뽕짝. 이 뽕짝이라는 단어의 기원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재미있게도 리듬 '쿵짝'에서 나온 것으로 짐작하네요.
노래가 된 시, 시가 된 노래에 관한 이야기도 신선했어요. 전 멜로디 파여서 가사를 음미하는 건 소홀했었는데 이번에 <노래의 언어>를 읽으며 가사의 매력에 푹 빠졌어요. 가사를 글로 적어둔 걸 보니 한 편의 시와 같은 가사가 무척 많네요. 시와 가사를 놓고 보면 사실 구분이 안 될 정도더라고요. 하지만 현실에선 차별이 존재하죠.
노랫말 중 사투리에 대한 저자의 애정은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특히 방탄소년단이 작사, 노래한 <팔도강산>은 상주고 싶을 정도로 구구절절 맞는 말을 써 놨다고 칭찬합니다. "결국 같은 한국말들 올려다봐 이렇게 마주한 같은 하늘 살짝 오글거리지만 전부 다 잘났어 말 다 통하잖아"라는 가사는 현실에서 사투리 차별이 존재하기에 더욱 와닿는 말입니다.
재미있는 건 사랑을 빼면 노래가 안 될 것 같고 실제로도 사랑이란 주제는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지만,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나'와 '너'라고 합니다. 노랫말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부르는 사람도 자신의 이야기로 부르고, 듣는 사람 또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부를 기회가 있다면 또 자신의 이야기로 부릅니다. 노랫말에 자신의 삶과 감정을 이입하면 그 순간 나의 노래가 됩니다.
재미있는 건 삶을 노래한 노랫말에 사랑 이야기를 담으면서도, 현실에서 사랑이란 단어는 139위일 정도로 밀려나있습니다. 그만큼 사랑이 충만한 세상을 노래를 통해 꿈꾸고 있는지도요.
노랫말에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무엇인지, 존댓말에 구속받지 않는 세대가 늘어남에 따라 노랫말에도 반말체가 증가하는 추세, 한글과 영어 파괴 문제 등 노랫말의 '말'에 초점 맞추면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쏟아지네요. 노랫말에 나타난 계절, 시공간 등의 변화도 흥미로웠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삶은 물론 감정도 많은 변화를 겪기에 노랫말 속에 그 변화가 담겨 있었어요.
아이돌 그룹이 장악한 가요 프로그램, 작사가와 시인의 차별 등을 통해 저자는 유행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짚어줍니다. 옛 노래든 최신 노래든 이렇게 노랫말을 분석했지만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그냥 즐겁게 들으면 그만이라는 걸 짚어줍니다. 흘러간 노래도 당대에는 최신의 곡이고 최신의 말을 담았던 노래니까요.
국어학자로서의 꼰대 티는 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도 엿볼 수 있었어요. 힙합, 랩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 있겠지만 그건 취향의 문제일 뿐. 이 또한 새로운 흐름이고 거부감을 가지고 배척할 일은 아니라고 말이죠. 모든 것이 우리 음악 역사의 한 흐름인 겁니다. 점잖고 좀 있어 보이는 고려가요의 후렴구와 K-POP 가사를 뒤바꿔 불러보면 뜻밖에도 정말 잘 어울린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실 거예요 ㅋㅋ. 사례 하나하나가 재미있는 게 많습니다.
<노래의 언어>를 읽고 나면 작사가에게 관심 한번 더 주게 될 것 같고, 노랫말을 음미하는 일도 더 의미 있게 다가올 것 같아요. 한 세기에 걸친 유행가 노랫말을 살펴보며 우리의 삶과 시대를 읽을 수 있는 <노래의 언어>. 덕후스러운 독특한 주제로 언어의 의미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