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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전쟁 ㅣ 환상문학전집 37
조 홀드먼 지음, 김상훈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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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SF 고전소설이라 하면 영화로 익숙한 <스타십 트루퍼스> 원작소설이 먼저 떠오르는데 양대걸작이 있었더라고요. 절판되었다가 완전판으로 돌아온 조 홀드먼 작가의 <영원한 전쟁 The Forever War> 입니다.
그랜드마스터 칭호를 받고, SF 명예의 전당에 오른 조 홀드먼 작가. 물리학, 천문학 전공자에다가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중상을 입고 명예제대를 했던 경험이 <영원한 전쟁>이라는 걸작을 만들었네요. 1974년 초판이 나온 이후 이번 황금가지 환상문학전집에서 나온 이 책은 그동안 여러 이유로 반영되지 못 했던 부분을 완벽히 수정한 완전판이라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소설 <영원한 전쟁>은 윌리엄 만델라가 일병에서 소령으로 지휘관이 되고 제대하기까지의 세월을 배경으로 합니다. 1975년생 스물두 살 물리학도 만델라는 지적, 육체적으로 엘리트인 남녀 최정예 징집 군대인 UNEF (국제연합 탐사군)에 강제 입대하며 전쟁터로 나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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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쟁은 인류 vs 외계 종족 토오란 전쟁이어서 우주에서 이뤄져요. 우주에서 빛보다 빠르게 순간이동하는 콜랩서 점프라는 게 발견되면서 우리가 느끼는 시간으로는 겨우 몇 년이 지날 뿐이어도, 점프 몇 번 하고 나면 지구의 시간은 짧게는 몇 십 년에서 길게는 몇 백 년이 지난 상태가 됩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시공간 개념이 등장하죠. 천문단위 AU는 기본, 중력가속도가 몇십 G 수준이고, 상대성 이론, 시간 팽창 이론 등 물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 스케일이어서 사실 이론을 하나하나 따지고 넘어가려 하면 진도 못 뺍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스토리에 녹아든 이런 이론들이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이해되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가 되니까요.
만델라는 토오란과의 전쟁 초기부터 투입되었는데, 처음엔 토오란 종족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 당시 군인들은 실험용 수준이었습니다. 힘을 증폭시키는 강력한 개인용 병기인 파이팅 슈트는 한순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폭탄 옷을 입은 셈이었고요. 최면술로 조건 반사 학습까지 당하며 전쟁터로 내몰립니다.
첫 전투는 일방적인 학살, 도살 수준으로 인류의 승리였지만 이후 토오란 종족도 인류의 전쟁 스타일을 흉내 내기 시작합니다. 콜랩서 점프의 시간 팽창 효과로 과거, 미래 등 시간 개념이 이쯤에서는 뒤죽박죽되어버려요. 토오란 종족이 이젠 더 발달한 무기와 전술을 갖춰 미래에서 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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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의 2년 복무 기간이 끝나고 제대한 윌리엄 만델라. 함께 복무한 연인 메리게이와는 인연을 이어나가며 행복한 시간을 누릴 듯했지만, 문제는 지구의 상황이 바뀌어 있었다는 데 있습니다. 2년이 지난 것뿐인데 지구는 21년이 지났고, 90억 인구의 지구는 살기 힘들어진 곳으로 변했습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온 제대 군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장면이었어요.
결국 연인 메리게이와 재입대를 하지만, 그들은 서로 다른 곳으로 배치되면서 살아생전 다시 만날 수 없게 되는 상황을 맞이합니다. 우주에서 점프를 하다 보면 서로 간의 시간대가 완전히 어긋나버리니까요. 전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상태에서 만델라는 소령으로 진급 후 마지막 전쟁을 치르며 소설은 결말을 향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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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전쟁>의 포인트!
전쟁이 어떻게 시작하고 유지되고 끝나는지를 보여주면서 전쟁의 양상을 꼬집고, 군인들의 심리 묘사를 통해 반전 메시지를 전합니다.
각종 물리학 이론을 적용한 배경은 여전히 놀랍습니다. 전쟁을 치른 십여 년간 지구는 1143년이라는 천 년 이상의 세월이 흐른 것처럼, 주관 시간과 객관적 관찰자의 시간 왜곡 같은 상대성 이론이 나올 때는 그나마 올 초에 <빛보다 느린 세상> 과학 책을 읽어서인지 아주 낯설지는 않아서 다행이었어요.
부르주아 느낌이 났던 <스타십 트루퍼스>에 비해 병기 수준은 오히려 인간적(?)이었고, 지구 상황을 묘사한 부분은 전형적인 디스토피아 성격을 띱니다. 인구 억제를 위해 동성애가 정상이고 이성애가 정서 기능 장애인 시대가 되는 걸 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로맨스가 들어간 부분이 참 좋았어요. 메리게이와의 로맨스는 <영원한 전쟁> 소설을 더욱 멋지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스포가 될 것 같아 언급은 여기까지!
[책 속에서]
- 가장 끔찍했던 것은 나의 행동이 알고 보면 그렇게 비인간적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었다. 몇 세대 전의 조상님들은 굳이 최면 암시를 받지 않아도 같은 인류에게조차 똑같은 일을 했을 것이다.
인류 전체가 역겨웠고, 군대가 역겨웠고, 앞으로 남은 1세기 동안 이런 나 자신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 그들 모두 전 세계 일자리의 거의 반수가 전쟁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만약 전쟁이 끝난다면, 모든 것이 붕괴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 지구의 경제는 전쟁을 필요로 하고 있었고, 토오란은 더할 나위 없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돈을 얼마든지 처넣을 수 있는 멋진 구멍이 생겼고, 전쟁은 인류를 분열시키는 대신 통합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