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에서 보낸 3만 시간 - 국가대표 무릎 주치의 김진구 교수의 메디컬 에세이
김진구 지음 / 꿈의지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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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매년 천 건이 넘는 무릎 수술을 집도하는 김진구 교수의 30년 수술실 기록 <수술실에서 보낸 3만 시간>. 의학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고, 의학 드라마처럼 감동적입니다.


돈과 명예라는 화려한 왕관보다 앞서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는 화려한 타이틀 뒤에 숨겨진 의사의 진정한 책임과 부담을 털어놓습니다.


김진구 교수는 '돌팔이'와 같았던 초보 의사 시절에 품었던 마음을 기억하기 위해 돌팔이 일지를 쓰기 시작했다고 고백합니다. 세계 3대 인명사전에 모두 등재된 관절박사가 왜 스스로를 이렇게 부를까요?


'My fingers are all thumbs'(열 손가락이 모두 엄지손가락이라는 뜻)처럼, 그는 의사로서의 첫 발을 내디딜 때 '똥손'이었다고 합니다. 2년 차 전공의도 5분 만에 끝내는 수술을 한두 시간이 넘도록 제대로 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다리뼈 골절 치료를 위한 금속정 고정을 60개 단계로 세분화하고, 전방십자인대 재건술은 120여 단계의 술기로 나누어 자신만의 수술 족보를 만들었습니다.


거기엔 그가 쌓아온 경험과 실수, 문제점 그리고 해결책들이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모든 좋은 수술은 모든 실수에 대한 명료한 기억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김진구 교수는 실패를 통해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남다른 전문성을 키워냈습니다.


김진구 교수에게 수술실은 단순한 일터가 아닙니다. 그곳은 고흐의 캔버스, 메시의 그라운드, 베토벤의 악보와 같은 창작의 공간이자 연극 무대입니다. 영어로 수술실을 Operating Theater라고 부르는 이유를 그는 몸소 보여줍니다.





수술 전에 그는 마치 연극 감독처럼 각본을 짜고, 배우들과 함께 예행연습을 합니다. "펠로우, 전공의, 간호사 등……. 그들은 그저 이름 없는 들러리들이 아니다. 집도의의 팀으로서 각자의 역할을 가진,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들이다."라며 그의 수술실에서는 팀원 각자가 주인공입니다.


팀원들의 개성을 담은 음악을 그들의 입장송으로 틀어줄 정도입니다. 김진구 교수의 수술실은 팀워크와 편안한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이런 디테일이 의료진의 사기를 높이고, 환자에게도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습니다.


김진구 교수의 진료 예약을 하려면 1년 가까이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막상 진료 시간은 고작 1분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환자는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원하지만, 의사는 제한된 시간 안에 많은 환자를 봐야 하는 구조적 모순 속에 있습니다.


그는 '책임은 무겁고 돈은 안 되는 어려운 수술'을 피하려는 의료계의 현실도 지적합니다. 그럼에도 "의사는 어떤 경우에도 환자의 곁에 남아 있어야 한다. 설령 그 환자가 의사를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라는 원칙을 고수합니다. 의사라는 직업이 가진 무게, 흰 가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의사는 신이 아닙니다. 모든 환자를 살릴 수 없고, 모든 수술이 성공할 수도 없습니다. 유망한 선수가 무릎 수술 후 재기에 실패하기도 하고, 고령의 관절염 환자가 사망하기도 합니다. 김진구 교수는 환자를 위해 며칠 밤을 새우기도 했지만, 때로는 "그냥 죽게 놔두지 왜 나를 살렸냐"라는 원망을 듣기도 했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마다 "제 실력이 모자랄 수는 있지만 노력과 정성이 부족하여 우를 범하지는 않겠습니다."라는 짧은 기도를 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죽고 사는 일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환자가 죽으면 의사의 가슴에 무덤이 남습니다. 의사로서의 한계와 책임 그리고 그 속에서 느끼는 인간적인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김진구 교수는 자신의 청춘을 환자들을 위해 바쳤습니다. 하루에 10건 이상의 수술을 소화하며, 자신의 어깨와 팔꿈치 통증을 감수하고 타인의 무릎 건강을 위해 헌신합니다.


<수술실에서 보낸 3만 시간>에는 스피드 스케이팅 이상화, 여자배구 김연경, 축구 설기현, 안정환 등 국가대표 선수들의 수술 경험도 담고 있습니다. 프로 스포츠 선수들에게 수술은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성공적인 재활과 복귀는 선수 생명과 직결됩니다.


김진구 교수는 전방십자인대 재건술을 3,000번 넘게 시행한 전문가입니다. 선수들의 특수한 상황과 요구사항을 이해하고 최적의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게다가 수술 후 재활에 성공하면 환자의 의지 덕분이며, 실패하면 의사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마인드가 대단하게 여겨졌습니다. 겸손함과 책임감을 동시에 보여주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수술실에서 만난 다양한 인생을 풀어놓은 에피소드가 흥미진진합니다. 수술은 정작 수월했지만, 비상하는 용 문신이 틀어지지 않도록 봉합하느라 예술 작품 다루듯 신경써야만 했던 조폭 두목, 무릎기형을 가진 어린 환자, 의학적으로 회복 불능의 사지마비 환자 등 수술실을 찾는 다양한 환자들의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30년 넘게 의사로 일하면서 쌓아온 노하우와 철학은 전문가의 통찰을 보여주는 <수술실에서 보낸 3만 시간>. 자신만의 수술 노트를 만들고, 환자와 의료진을 위한 수술실 문화를 만들어갔습니다. 단순히 기술적인 측면을 넘어, 의사로서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정립해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김진구 교수의 전작 <무릎이 아파요>는 무릎 통증과 치료에 대한 전문지식을 얻을 수 있고, <수술실에서 보낸 3만 시간>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소명의식을 잃지 않고, 환자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는 김진구 교수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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