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식물의 세계 - 끝내 진화하여 살아남고 마는 식물 이야기
김진옥.소지현 지음 / 다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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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물, 이산화탄소로 양분을 만들어내 살아가는 식물. 그동안 식물의 광합성 작용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인간의 기술로도 광합성 기계를 아직 만들어낼 수 없다고 합니다. 이게 가능하다면 기후 위기 대처에도 획기적인 대처법이 나오는 셈이죠. 그만큼 식물의 광합성은 놀랍고도 경이롭습니다. 


한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일생을 살아가는 식물. 아스팔트 틈새에서도 고개를 빼꼼 내미는 식물들을 보면 신기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는 재주가 대단한 식물입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진옥 저자와 식물과학 지식의 대중화에 앞장서는 소지현 저자가 함께 쓴 책 <극한 식물의 세계>에서 극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식물 31종을 만나보세요. 


약 46억 년의 지구 역사를 1년으로 바꿔보면, 대략 146년이 1초가 되는 셈이라고 합니다. 1월 1일 0시 지구 탄생 이후 11월 24일이 되어서야 최초의 이끼식물이 출현합니다. 바다의 해조류에서 시작되어 습한 육지로 올라온 이끼식물은 이후 육지화에 적응하는 식물의 출현으로 이어집니다. 11월 27일쯤 되면 고사리식물이 등장하고 겉씨식물도 나타납니다. 12월 21일에는 드디어 현재 지구상에서 전체 식물의 91% 이상을 차지하며 가장 번성하고 있는 속씨식물이 등장합니다. 까마득한 오랜 옛날부터 지구에 적응하며 진화한 식물들. 어떤 방식으로 적응했을까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하다 보니 극한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오로지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서의 진화를 목격하게 됩니다. 타이탄 아룸은 세계에서 가장 큰 꽃차례를 가진 식물입니다. 꽃대에 달린 꽃 전체가 3m에 달한다고 합니다. 워낙 크다 보니 에너지 소모도 많아 몇 년에 한 번 간신히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그런데 방독면 없이는 가까이 갈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냄새를 풍깁니다. 우리가 흔히 시체꽃이라 부르는 바로 그 꽃입니다. 더 놀라운 점은 자신이 가진 에너지로 열을 발산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냄새가 데워져 더 멀리 퍼져나갑니다. 썩은 고기 냄새를 좋아하는 곤충을 끌어모으기 위해서입니다. 꽃가루받이를 위한 전략의 결과입니다. 


아파트 39층 높이로 세계에서 가장 큰 키를 가진 레드우드도 쭉쭉 뻗은 모습이 너무나도 멋졌습니다. 햇빛을 잘 받으려고 자랐는데 너무 키가 크다 보니 다른 문제가 생길 법하지요. 뿌리에서 줄기, 잎까지 물을 보내는데 에너지 소모가 커집니다. 그래서 또 진화합니다. 공기 중 수분을 흡수할 수 있게 말이죠. 다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는 진화를 합니다. 환경이 열악할수록 돌연변이가 생겨나야 그 집단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합니다. 유전자가 섞이는 씨앗 번식도 유리하고요.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려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살아남는 식물들입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개발로 서식처가 줄어들고, 급속히 변하는 환경에 미처 변화할 시간이 부족한 식물들. 멸종위기에 처한 식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오랜 기간 생존하기 위해 진화해온 식물들에게 미안해집니다. 메마른 땅이어도, 추운 곳이어도, 매서운 바람이 부는 곳이어도 저마다의 환경에서 자리 잡은 식물. 어떻게 이런 곳에서까지 살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모습으로 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극한의 시스템을 장착한 다양한 식물들을 만나며 감탄사만 터져 나옵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정확히 아는 똑똑한 식물입니다. 그저 조용한 식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치열하게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극한 식물의 세계>는 텍스트, 그림, 사진 자료가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어 보는 맛이 쏠쏠합니다. 전태형 일러스트레이터의 직관적인 일러스트는 컬러풀한 색감에 더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1초에 약 238m를 날아가는 마하 속도의 꽃가루를 방출하는 식물, 항공기 개발에 영향을 줄만큼 정교하게 설계되어 수백 미터를 날아가는 씨앗을 가진 식물 등 번식을 위한 식물의 다양한 전략도 만날 수 있습니다. 단 1g으로 성인 14명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강한 독을 품은 식물, 나무를 태운 연기만으로도 피부염과 실명을 일으키는 죽음의 나무,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주는 식물 등 독한 식물도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위험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다 있더라고요. 


공기 정화 식물로 한창 유행했던 틸란드시아는 착생 능력의 최강자이기도 합니다. 어디든 달라붙어 살아가는 이 식물의 비밀도 이 책에서 알게 됩니다. 식충식물 마니아들도 많을 텐데요, 양분이 부족한 습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도의 기술을 가진 형태로 진화한 식충식물에 대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12월 31일 밤 11시 58분 51초에 신석기 시대가 열리며 인류 문명이 시작된 사피엔스. 식물의 진화 역사와 비교해 보면 아주 짧습니다. 기후 위기에 대처해야 하는 인간은 어떤 방법으로 살아남아야 할지 그 심각성이 더 확 와닿습니다. 오늘날 지구 환경은 이 식물들에게 또 어떤 진화를 겪게 할까요. 현대의 빠른 환경 변화는 진화의 원동력이 아닌 멸종의 지름길이 되고 있다고 짚어줍니다. 경이로운 재주를 보여준 극한의 식물들조차 이제는 힘들어하지 않을까요. 생물 다양성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생존을 위한 이유 있는 식물의 진화를 보여준 <극한 식물의 세계>. 외국 식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식물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더 친근합니다. 끝내 진화하여 살아남고 마는 식물계의 끝판왕을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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