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 그냥 지는 전쟁은 없다 임용한의 시간순삭 전쟁사 1
임용한.조현영 지음 / 레드리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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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TV에서 핫했던 토크멘터리 전쟁사(토전사)로 유명한 역사학자 임용한 저자. 이제는 시간순삭 전쟁사 시리즈로 책으로 만나봅니다. 토크멘터리 전쟁사에서도 병자호란을 다뤘지만 방송시간상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들이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입에 차마 담기 힘든 치욕의 전쟁 병자호란. 영화 남한산성에서 최명길과 김상헌의 혀로 싸우는 대립 장면이 무척 인상 깊었는데요, 그 장면을 조선의 시대적 배경과 함께 역사적 현장에 직접 있는듯한 생동감 넘치는 스토리텔링으로 접하니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병자호란 : 그냥 지는 전쟁은 없다>를 읽으면 병자호란과 관련해서는 초보 수준을 벗어날 수 있는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외교 전쟁 시대인 오늘날에도 일상에 스며든 은근한 전쟁은 이어집니다. 역사를 돌아봄으로써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짚어보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임진왜란으로 그 큰 고통을 받았음에도 조선은 무참히 패망하는 전쟁에 휩싸입니다. 치욕의 역사이자 우리 역사상 가장 교훈이 풍부한 사례가 된 병자호란은 어떻게 일어났을까요. 임진왜란이 진행되는 동안 북쪽에서도 치열한 전장이 펼쳐집니다. 여러 여진족 중 추장이었던 누르하치는 나머지 부족들을 격파, 합병하며 세력을 확장합니다. 중국통 허균은 일찌감치 누르하치의 침공을 경고하지만, 오랑캐일 뿐이라며 안이한 태도를 일삼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막강한 군대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진과 몽골의 기병에는 속수무책인 조선의 현실임에도 임진왜란을 겪고도 변한 게 하나도 없는 조선입니다.


이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가짜뉴스가 등장합니다. 광해군은 명과 후금의 전쟁에 조선군을 파병하는 것에 회의적이었는데, 패전한 전투를 두고 광해군에게 책임을 돌린 사건이 벌어집니다. 일부러 패하게 했다는 밀지론은 70~80년대까지 학계 정설로 여겨질 정도로 음모론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에게는 명과의 전쟁에서 이겨 중원으로 뜻을 펼치는 게 더 중요했지 조선은 당장 시급한 문제가 아닐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누르하치가 사망하고 후계자가 된 홍타이지는 조선 침공을 주장한 인물입니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조선의 정권이 바뀐 시대. 인조는 대놓고 친명정책을 펼쳤고, 결국 후금의 침공이 시작됩니다. 정묘호란입니다. 믿었던 의주에서부터 평양까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온 후금에게 조선은 고개를 숙입니다. 후금이 형이 되고 조선이 아우가 된다는 동맹의식이 거행됩니다.


정묘호란으로 드러난 조선의 문제점들은 어떻게 개선되었을까요. 허물어진 성은 수 년 간 방치되었고 북쪽을 실질적으로 포기하는 형상을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지노선을 든든히 세운 것도 아닙니다. 그 사이에 후금은 착착 준비를 합니다. 


후금은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 홍타이지는 황제가 됩니다. 본격적인 조선 침공이 눈앞에 닥쳤습니다. 폭풍전야인데도 조선은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청군이 침공했다는 임경업의 전갈은 3일이나 지난 후 창경궁에 도착했고, 청군 기병의 속도는 파죽지세입니다. 청은 북쪽에서부터 차근차근 부수며 내려오지 않고, 선봉대가 한성으로 무조건 직진하는 전략을 펼쳐 보인 겁니다.


부랴부랴 피란을 가려 하지만 오전 일찍 강화로 길을 나선 세자와 왕실, 대신들을 제외하고 인조는 오후가 되어서야 궁을 나서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청군 선봉대는 강화로 가는 도로를 차단한 상태가 되어버리니 인조 일행은 결국 남한산성으로 가게 됩니다. 청군의 침공 의도조차 사실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전란을 두 번이나 겪고도, 수십 년간 전쟁 준비를 말로만 해온 조선의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남한산성에서 이어지는 탁상공론은 더 기가 찹니다. 반정공신들로 이뤄진 신하 앞에서 인조는 리더임에도 책임을 회피하는 데만 치중합니다. 척화파와 주화파 모두 만족시키려 했고, 그러다 보니 중증 결정장애 모습만 번번이 보입니다. <병자호란 : 그냥 지는 전쟁은 없다>는 광해군과 인조를 통해 리더의 덕목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정묘호란에서부터 병자호란까지 조선은 과거에서 배운 게 분명 있었을 텐데도 실행한 게 없어 속빈 강정과 같았습니다. 전 과정에서 기막힌 참사가 속출합니다. 양반이라 옷 한 벌 든 배낭 못 멘다며, 말고삐를 잡아줄 하인이 없다며 길을 나서지 못해 발이 묶이질 않나. 긴박하게 이뤄져야 할 실질적인 전략은 도통 이끌어내지 못한 채 아마추어 제갈량들만 수두룩할 뿐. 군사작전에 정치 개입은 가뿐하게 기본 옵션인 그들의 행태가 못 봐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더 씁쓸한 병자호란입니다. 그 와중에도 조선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채 끝까지 애쓴 이들이 있었으니까요.


한국사 교과서와 영화에서 단 몇 줄, 일부 장면만으로 단편적으로만 알았던 인조반정,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소현세자와 인조의 관계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들. 역사적 배경과 사건의 진상, 시사점을 임용한의 시간순삭 전쟁사 <병자호란> 편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밀리터리 전문 출판사 레드리버의 책인 만큼 전쟁사 인포그래픽 자료가 빠질 수 없습니다.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세력 관계, 병력 및 물자 수치를 나타낸 자료, 병자호란 주차별 지도 등 한눈에 정리된 인포그래픽이 만족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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