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수상한 서재 4
하승민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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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스릴러의 한 획을 당당히 긋고 있는 하승민 작가의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데뷔작 <콘크리트>를 읽고 나서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되는 작가라고 리뷰를 썼었는데, 역시 이번 신작 기대 이상입니다.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을 읽었을 때 느꼈던 두근거림을 이 책을 읽으면서도 만끽했습니다.


한 삽 한 삽 흙을 파고 있다가 정신을 차린 지아. 낯선 산에서 눈앞에 보이는 건 구덩이 속에 반쯤 파묻힌 젊은 여자의 시체입니다. 혼란스러운 이 상황 속에서 지아는 혜수의 이름을 떠올립니다. 이런 짓을 할 사람은 혜수뿐이니까요.


지아는 이중인격자입니다. 제목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은 거울로 보는 나의 모습입니다. 분명 거울에 비친 사람도 나인데도 악수할 수 없는 두 개의 자아를 의미합니다. 지아에게 다른 인격이 나타난 건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서 비롯합니다.


하승민 작가의 데뷔작 <콘크리트>에서는 한국 사회의 편견, 혐오,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은 5·18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안았습니다. 공수부대의 총탄을 피해 도망 온 사람을 숨겨주려다 잔인하게 학살된 엄마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지아. 그 지옥 같은 순간은 꼬리표처럼 삶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다 분노를 퍼붓는 다른 인격이 나타난 거죠. 구별하기 위해 다른 인격에게는 혜수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버릇없는 세입자인 혜수는 뒤처리를 하는 법이 없었다." - 책 속에서


스트레스가 한계를 넘어서면 등장하던 혜수. 혜수가 나타난 시간 동안의 일은 폭력적이거나 뒷감당 수습이 꽤나 복잡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은 최악입니다. 살인이라니요. 일단 상황을 수습하고(하던 일을 계속해 마저 묻어버립니다) 집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홀로 있던 아빠는 늙었고 새 가정을 꾸린 상태입니다. 지아가 정신을 잃은 시간은 무려 19년이었습니다. 스물여섯 때 실종되어 마흔다섯의 나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겁니다. 하루아침에 사십대가 된 지아는 19년의 공백을 알아내기 위해 새 동생과 함께 혜수가 있었던 것으로 예상하는 묵진으로 향합니다. 혜수의 과거를 알아내고 죽은 여자의 정체를 알아내고자 합니다.


혜수가 저지른 일 때문에 화려한 이력을 가진 지아의 사건을 맡았다가 실종된 바람에 흐지부지해진 사건을 기억하는, 전직 형사이자 현재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는 규식도 냄새를 맡습니다. 뭔가 사건이 될 만한 냄새를요. 그 역시 지아를 미행하며 묵진으로 갑니다.


묵진에서 마주한 혜수의 과거는 처참합니다. 혜수의 이름으로 살던 집은 피범벅이 된 살인 현장이었습니다. 아마도 산에 묻은 피해자가 그곳에서 죽은 모양입니다. 시체를 다시 처리하기 위해 산으로 갔지만, 그사이 시체는 사라져있습니다. 혜수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 걸까요.


퍼즐 조각을 맞춰나가는 지아와 규식 중 누가 먼저 진실에 접근할지 지켜보는 흥미진진함이 있습니다. 하승민 작가의 매력은 소설 속 인물이 지킬과 하이드처럼 선과 악으로 분명하게 나누어지지 않은 채 복잡한 인물들을 보여준다는 데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 연민이 들다가도 경악스러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인물들입니다.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영향을 받은 사람들과 개발 붐의 피해지가 되어 저물어가는 어촌에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뒤섞이며 묵직한 기운 속에서 이야기를 끌어나가고 있습니다.


하승민 작가의 또 다른 매력은 오감을 자극하는 묘사입니다. "묵진의 거리를 걷고 있으면 오래된 옷장 같은 냄새가 났다."처럼 소금기 머금은 묵진의 분위기가 절로 떠오릅니다. 지아가 혜수로부터 주도권을 빼앗겼을 때의 두려움을 보여주는 장면도 인상 깊습니다. 19년의 세월이 사라진다면 그다음엔 얼마큼 사라질지 모릅니다. 이중인격에 대한 소재는 살짝 뻔하다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다가 예상을 뒤엎는 후반부 덕분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찐 스릴감을 맛볼 수 있었던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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