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스탕스 사형수들의 마지막 편지 - 2차 세계대전 당시, 인간성과 용기를 최후까지 지켜 낸 201인의 이야기
피에로 말베치.조반니 피렐리 엮음, 임희연 옮김 / 올드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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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배선공, 25살 주부, 38살 변호사, 42살 전기기계공, 54살 신문 가판대 주인, 61살 재단사 등 다양한 연령대와 사회계층에 속한 남성과 여성들 201명의 편지. 이 편지의 주인공들은 모두 사형당했습니다. 


직업을 막론하고 201명의 레지스탕스들의 생애 마지막 편지를 모은 <레지스탕스 사형수들의 마지막 편지>. 이 편지가 전해져 오고 있기에 이탈리아의 역사는 망각되지 않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조국의 영광과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 바친 역사가 있습니다. 1922년 국가 파시스트당의 무솔리니는 검은 셔츠단을 앞세운 쿠테타에 성공합니다. 파시스트당 독재 체제가 구축되었고,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일본과 손잡고 연합군에 맞섭니다.


이후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남부와 파시스트들이 장악한 북부 사이에 내전이 벌어집니다. 익숙한 패턴이지요. 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뉘어 싸우던 모습과 닮았습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이탈리아에서도 일어났던 겁니다. 이탈리아 레지스탕스는 외세에 대항한 싸움이 아니라, 내부의 적인 파시즘과의 투쟁이었습니다.


토리노를 중심으로 레지스탕스 투쟁이 전개되었고, 수많은 레지스탕스들이 나치와 파시스트들에게 체포돼 총살당합니다. <레지스탕스 사형수들의 마지막 편지>는 죽음을 앞둔 그들이 남긴 마지막 목소리입니다. 회사원, 대학생, 막노동자, 사서, 농민, 주부, 요리사, 문학가, 의사 심지어 중학생까지. 수많은 시민들이 게릴라전을 펼치며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저항을 택했던 그들은 평범한 민중들이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소중한 이에게 보낸 편지들. 그 누구도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진 않았습니다. 대신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남은 이들이 고통받게 될 것에 대해 위로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레지스탕스 사형수들의 마지막 편지>에 실린 편지들은 기록을 토대로 인적사항을 실었을 뿐, 그들의 행동을 판단하거나 별도의 주석을 덧붙인 건 전혀 없습니다. 더 꿈을 펼치지 못하게 된 그들이 남긴 편지에 우리는 그저 함께 울어 주면 됩니다. 한글번역판에서는 이탈리아 역사에 낯선 한국 독자를 위해 용어 주석은 있습니다.


당시 수천, 수만 명이 사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방식의 처형이 아니었습니다. 군대가 즉결심판소를 운영했고, 재판 없이 처형된 경우가 부지기수였습니다.


1943년 9월 8일~1945년 4월 25일까지 몇 시간 후 맞이하게 될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쓴 편지. 구타와 고문으로 건강이 악화된 상태에서 들것에 누운 채 재판받아 사형 선고를 받고, 9일 후 들것에 누운 채로 총살을 당한 19살 직공의 사연처럼 처절한 심정으로 읽게 되는 사연도 있고, 사연 하나하나가 가슴을 저릿저릿하게 만듭니다.


신원불명인 남자의 편지에서는 체포되어 사형되기까지 있었던 일을 꽤 상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무고한 이들이 파시스트에 맞서 싸우다 흘린 피의 대가를 그들에게 어떻게 되돌려 줄 수 있을지 당신이 고민해 주었으면 한다는 말과 함께 애국자로서의 자존심을 품고 살라고 당부합니다. 


누군가는 정치적 신념을 분명히 밝히고 있고, 누군가는 자기 방에 있는 그림 뒤에 돈이 조금 있으니 그 돈으로 추모 미사를 하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편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말은 바로 "용기를 잃지 마세요."입니다. 사형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에 빠질 이들을 오히려 위로합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생각하면 애틋한 마음뿐입니다.


파르티잔이라는 이유만으로 처형당한 민족 간의 살육전. 이탈리아 레지스탕스들의 마지막 편지를 읽다 보면 우리나라 독립운동가와 민주투사의 글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진한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헌신했던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레지스탕스 사형수들. 


마지막 순간까지 신념을 잃지 않은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이탈리아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레지스탕스 사형수들의 마지막 편지>는 그 시대를 살았던 대다수가 고인이 된 현재, 새로운 세대를 위해 재조명하고 역사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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