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풍경들
이용한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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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작가로 유명한 이용한 작가의 신간 <사라져 가는 풍경들>에는 고양이가 딱 한 번만 등장해 이용한 작가님의 고양이 사진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서운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책, 정말 완소책이에요. 시인 출신의 면모를 드러내는 담백한 문장과 우리의 소중한 옛 정취를 담은 사진이 힐링을 안겨줍니다.


"이 세계는 무수한 사라짐 속에서 구축된 것이다." - 사라져 가는 풍경들


언젠가 우리 주변에 존재했던 것들이지만 이제는 만나기 힘든 것들의 이야기를 담은 <사라져 가는 풍경들>. 옛집 풍경, 자연과 어우러진 우리 문화, 명맥을 잇는 사람들, 살아있는 공동체 현장을 보여줍니다.


초가집은 민속촌이나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는 요즘. 우리 주거 문화를 대표했던 그 많던 초가집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1998년에 찍은 초가집도 2년 후엔 사라져있더라며 아쉬워하는 작가님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돕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소박함이 느껴지는 옛집. 1970년대 새마을운동 때 초가문화는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서민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였던 볏짚도 이제는 그 쓰임이 줄어들었습니다.





여러 옛집이 이 책에 소개되는데 저는 너와집에 반해버렸어요. 산간마을에선 농사를 짓기 힘드니 볏짚을 구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숲에서 나무를 쪼개어 만든 널을 지붕에 얹는 너와집을 짓게 됩니다. 톱이 아닌 도끼로 잘라야 나무 섬유질이 살아있어서 물이 새지 않는다니, 놀라운 과학입니다.


나무 대신 납작한 돌을 사용한 돌너와집도 신기했어요. 비늘처럼 이어 놓은 돌판 지붕 풍경이 예술작품과도 같았습니다. 지붕의 돌 무게만 4~5톤이라는데도 무너지지 않으니 입이 쩍 벌어지기만 합니다.


김장독은 무조건 땅에 묻는 줄로만 알았는데 김치광이라 불리는 신기한 물건이 있더라고요. 선사시대 움집의 미니 버전 같아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 외에도 그리운 것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술 건축물을 보는듯한 건물의 정체가 뒷간이라는 걸 알고는 또 깔깔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달팽이형 뒷간은 유생들의 뒷바라지를 하던 머슴들이 사용하던 화장실이라고 합니다.


전통문화 역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중국산이 판치고 기계화가 된 시장에서 대나무로 만든 물건들, 한지, 대장간 등 많은 것들의 명맥이 끊어질 위기입니다. 하지만 그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에 소중한 우리 문화가 명맥이 바스러질듯하면서도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시골길도 예전의 시골길이 아니지요. 도로가 되었습니다. 자연의 모든 흔적과 무수한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길'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지마을도 도시화의 바람을 비켜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도 없는 오지에서 비문명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어요.


우리의 무형문화재도 정작 우리는 너무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만 해도 풍물패는 정말 흔하게 볼 수 있었고, 정월대보름 문화도 동네잔치처럼 신났었는데 요즘은 TV에서만 어쩌다 만날 수 있는 우리 문화입니다. 위도 띠뱃놀이처럼 그런 게 있는 줄도 우리는 모르지만, 유럽 대학들의 인류학과에선 아시아 최고의 풍어제로 알려져 있다니 부끄러움이 솟아납니다.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발품을 팔며 우리 옛것을 찾아 떠돌아다닌 세월의 노고가 고스란히 담긴 <사라져 가는 풍경들>. 이제는 만나기 어려운 풍경들을 이렇게라도 접하게 되어 소중한 옛것에 대한 가치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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