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대한 예의
권석천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JTBC 보도총괄 권석천의 에세이 <사람에 대한 예의>. 최근 핫한 인물이셔서 기대감 가득 안고 읽었어요. 딱딱한 저널리스트 분위기일 거라 생각하며 펼쳤다가 의외로 재미를 만끽했습니다. 말 그대로 감칠맛 나게! 재미있게 글을 쓰시더라고요.


각자도생의 시대에서 우리가 놓친 것들을 짚어주는 <사람에 대한 예의>. 저널리스트라면 이런 거 들려줘야지 공감하는 이슈들이 가득한 책입니다. 서른일곱 개의 이야기들은 개인, 조직, 사회에서 인간으로서 맞닥뜨리는 고민들입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로 시작하는 프롤로그부터 가슴을 붙잡습니다. 히말라야에서의 1주일을 보내며 관계와 권력에 대한 부끄러운 경험을 했던 저자는 뉴스에 나오는 갑질 사건만 갑질이 아니더라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나도 별 수 없다'는 그의 고백은... 당신은 어떠한지, 나에게 묻는 것만 같습니다.


"나는 얼마나 한심한 인간인가. 돈 몇 푼에 치사해지고, 팔은 안으로 굽고, 힘 있는 자에게 비굴한 얼굴이 되기 일쑤다. 아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곳에선 욕망의 관성에 따라, 감정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려 한다. 소심할 뿐인 성격을 착한 것으로 착각하고, 무책임함을 너그러움으로 포장하며, 무관심을 배려로, 간섭을 친절로 기만한다." - 사람에 대한 예의 





정치, 사회, 경제 분야 기자로서의 삶을 살아온 권석천 저자의 칼럼을 일부러 찾아 읽지는 않았었는데, 아는 분들은 다 아는 글쟁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사람에 대한 예의>에 실린 글의 다양한 스타일에 놀라워하기도 했습니다. 편지를 보내는 것처럼, 인터뷰하듯이, 소설을 쓰듯 지루할 틈 없는 변주의 연속입니다.


특히 첫 칼럼에 등장한 조커 이야기 신선했어요. 두려움에 부딪혔을 때 택하는 길 중 하나인 흑화. 판타지 라이트 노벨에서나 보던 '흑화' 단어를 여기서 만날 줄이야. 이야기 속 흑화가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저로서는 현실에서의 흑화가 생각보다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각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정치, 사회 이야기는 건조무미한 문체로 전개될 거란 편견을 깨뜨린 <사람에 대한 예의>. 무엇보다도 매 칼럼마다 소설, 드라마, 영화 등 여기저기 끌어와 주제와 연결하는 부분이 맘에 쏙 들었어요. 이런 책도 읽으시는 분이구나 싶을 정도로 정말 폭넓게 두루 접목시켰습니다.(읽다가 자꾸 놀란 이유가 그 세대 기자라면 이러이러할 거라는 제 편견 때문이겠죠?)


차별, 편견, 혐오 등 알게 모르게 개인들에게 스며든 악. 반인권적인 논리에 반기를 들려면 용기와 연대가 필요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찾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내가 지켜야 할 삶의 원칙들을 하나씩 만들어가며 자기 기준을 세우는 것은 사람이 보이는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합니다.


욕할 대상을 찾기만 했고, 무의식적으로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사람에 대한 예의>를 읽다 보면 스스로도 몰랐던 편견은 없었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싸가지 없다는 말을 보통 어떤 상황에서 쓰나요? 바른 말 하는데 싸가지 없다고 폄하하는 경우도 무척 흔합니다. 나와 다른 발언을 고집하면 싸가지 없다고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보게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게다가 싸가지 좀 없으면 안 되냐며 싸가지 없음 예찬론을 싸가지 있게 펼칩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스템 안에서 생각으로만 다양성을 추구하려 든다면 무슨 소용 있을까요. 싸가지 좀 있어도 될만한 인물들이 너무 정상적이어서 실망일 때가 많다고 하는 저자의 말에 빵 터졌습니다.


셀프 착취 시대에 내 존엄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나와 당신의 존엄을 타인에게서는 물론이고 스스로에게도 짓밟히지 말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모두가 행복한 '화양연화의 나라'를 꿈꾸는 저자의 글처럼 <사람에 대한 예의>는 개인과 사회의 모습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잘 보여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