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소설의 시대 1 백탑파 시리즈 5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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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설이라하니 20권으로 된 박경리 작가의 토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장편 소설 중 가장 긴 소설은 무엇일까요?

 

<대소설의 시대>에 언급되기도 한 『완월회맹연』는 단일작품으로 가장 긴 180권짜리 소설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이처럼 어마어마한 권수의 장편소설이 꽤 많았다고 합니다. 주로 대국을 배경으로 가문의 이야기를 그린 한글 소설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대소설은 작자 미상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작자 미상으로 남겨진 대소설은 누가 썼고 대소설의 시대를 이어간 것일까요. 그 의문과 해답이 김탁환 소설 조선왕조실록 <대소설의 시대>에 있습니다. 합리적 의심을 바탕으로 한 추측이라 공감될 겁니다.

 

 

 

셜록 홈즈 뺨치는 추리 능력을 갖춘 규장각 서리 김진과 추리 능력은 영 꽝인 소설을 즐기는 의금부도사 이명방 두 인물에 의해 진행되는 <대소설의 시대>. 김탁환 작가 소설 팬이라면 전작 소설에서 이미 등장한 인물들이라 반가울 겁니다.

 

<대소설의 시대> 속 대소설을 쓰는 작가는 23년째 『산해인연록』을 연재 중인 '이야기의 신' 임두 작가입니다. 두문불출한 임두 작가에 대한 소문만 무성한 상태였는데 애독자이자 소설가 지망생으로 임두 작가를 뵐 기회가 된 의금부도사 이명방.

 

집필실에 들어서자 등장인물들의 가계도와 배경 그림으로 도배된 벽에 압도됩니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이는 바로 노기등등한 노파! 평소 그의 소설을 읽으며 바위 같고 태산 같은 작가라며 감탄했는데, 성별은 생각한 것과 달랐지만 그 기세만은 대단한 작가여서 쩔쩔매다 나옵니다.

 

 

 

임두 작가를 만난 이후 대소설에 얽힌 비밀이 하나 둘 드러납니다. 의빈 마마와 궁녀들이 함께 필사하며 임두 작가의 소설을 한 권씩 세상에 내놓았는데, 문제는 나이가 든 임두 작가의 산해인연록 다음 권이 몇 개월째 소식이 없다는 겁니다. 정조의 어머니도 즐겨 읽으며 목 빼고 기다리던 처지라 다들 난리가 납니다.

 

그렇게 임두 작가를 만나 상황을 파악하는 임무를 맡은 의금부도사는 소설가로서의 임두와 본의 아니게 얽히게 됩니다. 건강이 염려되는 노파 작가에게서 200권이 나올 수 있을지... 미스터리한 범죄까지 엮이며 향방을 점칠 수 없습니다.

 

대국에서 들어온 소설이 아닌 우리의 대소설은 가문의 대소사를 중심에 둔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남자들만의 이야기와 전쟁 이야기는 오히려 드물다는 사실, 가문의 대소사를 가장 잘 아는 이는 바로 여인들이라는 것에 주목합니다.

 

소설을 짓고 필사하고 읽으며 소설을 즐겼던 조선의 여성들. 여자들은 학식과 경험 쌓기가 힘들었던 시대에 그토록 방대한 소설을 써 내려간 것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습니다.

 

 

 

소설에 대한 고민을 담은 임두 작가의 이야기는 이 시대 소설가들의 고민과 다를 바 없습니다. 소설의 마무리를 지을 방법을 두고 혼란스러워하는 작가의 모습이나 소설가로서의 삶을 통해 창작의 비밀을 엿볼 수도 있습니다.

 

밤을 지새우고 새벽을 맞은 날도 허다할 정도로 독자로서 소설에 대한 즐거움을 드러내는 장면도 많아 보는 이를 덩달아 설레게 합니다.

 

소설 쓰는 여인들과 대소설을 즐기는 여인들의 이야기는 당시 조선 여성들의 삶 이면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남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여자 작가과 독자들의 힘은 위대했습니다. 18세기 사대부 여인과 궁중 여인들에게 소설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보여준 <대소설의 시대>. 소설 애호가라면 본인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독서가들이 좋아할만한 소설이에요.

 

실제 역사적 인물인 박제가, 김홍도, 정약용 등이 등장하는 팩트를 바탕으로 고증이 탄탄한 김탁환 작가의 소설인 만큼 흥미진진한 스토리 속에 담긴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만나는 재미도 쏠쏠했던 소설입니다. 무엇보다 2권 분량을 순삭하게 만드는 김탁환 작가의 위트 있고 감칠맛 나는 문장력은 말할 것도 없고요.

 

조선의 대소설의 명맥을 이어 60권을 목표로 달리는 김탁환 작가의 대장정 '소설 조선왕조실록' 시리즈에서 조선판 홈즈와 왓슨 같은 재미를 선사하는 김진과 이명방의 브로맨스를 또다시 만날 날을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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