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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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고 상, 네뷸러 상, 세계환상문학상을 모두 휩쓴 작가 켄 리우. SF 및 판타지 소설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사상 첫 3관왕에 오르게 한 단편소설 『종이 동물원』 을 포함해 켄 리우의 대표 단편소설 14편이 수록된 단편소설집 <종이 동물원>은 출간 후 로커스 상 최우수 선집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번 켄 리우 작가의 명성을 드높였습니다.

 

 

 

단편집 <종이 동물원>의 대표작 『종이 동물원』은 숨을 불어넣으면 생명을 얻어서 움직이는 엄마의 특별한 종이 동물들과의 추억을 그린 소설입니다. 호랑이, 염소, 사슴, 물소 등 포장지로 접은 종이 동물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나'. 테이프와 풀로 보수하며 수리한 흔적투성이가 된 종이 동물들은 세월이 흐른 만큼 '나'의 관심에서 멀어집니다.

 

중국에서 태어나 열한 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간 켄 리우 작가의 경험이 어우러진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종이 동물원>의 단편들은 이민자 출신의 아웃사이더로서의 감정이 묻어 나옵니다. 『종이 동물원』에서도 영어를 잘 못하는 엄마가 부끄럽고, 남들과 다른 모습을 가진 자신의 태생을 부끄러워하는 '나'가 나옵니다. 20여 페이지 남짓한 짧은 소설인데도 눈물샘 자극하며 아련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입니다.

 

켄 리우 작가는 태생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여우 요괴와 요괴 사냥꾼 이야기를 다룬 『즐거운 사냥을 하길』에서는 동양풍 판타지를, 한자로 파자점을 치는 노인과 그 아들과의 인연을 다룬 『파자점술사』 속에서는 2.28 학살이라는 중국의 아픈 역사를 끄집어냈고,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토목 공사 『태평양 횡단 터널 약사』에서는 강제 노역에 끌려간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종이 동물원>을 읽는 내내 한국 작가 중에서도 이런 명성을 거머쥘 작가가 나타나면 좋겠다는 부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SF 판타지 소설 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발돋움한 켄 리우 작가의 소설을 많은 이들이 읽을 테니까요. 자연스럽게 중국 역사를 전 세계에 알리고 있었습니다.

 

역사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는 까닭을 한 장면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과거는 기억이라는 형태로 계속 살아가게 마련이고, 그래서 권력을 쥔 자들은 언제나 과거를 지우고 침묵시키려 해." (『송사와 원숭이 왕』에서). 과거를 알게 되었다면 더 이상 무지한 방관자가 아니라며, 우리는 목격자가 된다고 말입니다.

 

동북아시아 현대사를 다룬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에서는 아시아의 아우슈비츠라 불린 핑팡 지역에서 벌어진 731부대의 참극을 다룹니다.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대로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기술을 접목해서 말이죠. 서양인들은 거의 모르는 731 부대 이야기를 켄 리우 작가는 이 소설로 우리를 목격자로 만든 셈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한국인 위안부 단어도 등장합니다. 

 

 

 

울화통 솟구칠만한 가슴 아픈 역사만을 다룬 것은 아닙니다. 영화 <컨택트> 원작소설인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떠올릴 만큼 우아한 SF 소설도 많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개인 비서 기술을 다룬 『천생연분』, 개개인의 영혼이 저마다의 물질로 형상화되어 그 물건을 소중히 지켜야만 하는 『상태 변화』, 노화 세포를 다스리는 바이러스 탄생 후 죽는 사람이 없어 식량과 에너지가 부족해 우주로 나간 개척단 이야기 『파』, 『모노노아와레』 등 물리학을 바탕으로 한 아름다우면서도 충격적인 SF 소설을 선보입니다.

 

 

중국 최초 휴고 상 수상작 류츠신 작가의 『삼체』를 영어로 번역한 번역가이기도 한 켄 리우. 변호사 출신 소설가여서 범죄소설이 어울릴 줄 알았는데 SF계를 장악해버렸군요. 철학적이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적잖이 있긴 했지만 ;; 전통적인 SF 소설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소재를 버무린 켄 리우의 소설들은 분명 매력적이었어요. 기억에서 잊힌 역사 속에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종이 동물원>에서는 그 사람들을 불러냈고, 역사는 진실과 기억의 문제라는 것을 일깨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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