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도 왕따를 당해본 적이 있다. 중3 때 같이 놀던 무리가 있었는데 새로 전학을 온 아이가 우리 무리에 끼게 되었다.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 그 아인 내가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이들을 사주(?)해서 나와 말을 섞지도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게 했다. 소풍 날이던가,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던 친구들. 나는 당황했고 억울했고, 무엇보다 도대체 '무엇이' 원인이지 알고 싶었다. 수없이 쪽지를 보냈지만 돌아오는 건 묵묵부답뿐이었다.

 

나는 내 옆자리, 앞자리에 앉은 친구들과 너스레를 떨며 지냈지만, 체육시간에는 늘 혼자 운동장으로 향했다. 지금 같았으면 "나도 껴줘!"라고 말할 수 있었겠지만 그때 나에게 남은 건 누구에게도 먼저 손을 내밀지 않겠다는 자존심뿐이었다. 어리고 서투른 나에겐 그것이 최선이었다.

 

가면을 쓰고 굳은 얼굴 근육을 애써 움직이며 웃다가 돌아오면 나는 검정 싸인펜을 들고 엉엉 울면서 일기를 썼다. 검정 싸인펜은 마구 휘갈겨도 글이 부드럽게 잘 써졌다. 눈물로 얼룩진 노트를 보면서 또 꾹꾹 참았던 눈물이 터지곤 했던 날들.

 

그럭저럭 잘 버티다가 졸업할 때즈음, 나는 주동자를 뺀 나머지 친구들에게 전부 편지를 받았다. 미안했다고, 나는 글을 잘 쓰는 네가, 책 읽는 어른스러운 너에게 질투가 났다고도 써 있었다. 나는 기뻤다. 더는 회복할 수 없는 우정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나인 것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2.

대학교에 들어가 인터넷이란 걸 접하고 '다음'이라는 사이트에서 친구를 찾는 게 엄청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나는 과거를 돌아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메일이 한 통 왔다. 중학교 친구 C로부터였다.

 

약간 처진 눈망울을 하고 있던 착한 C와 나는 아주 친한 사이였다. 하지만 따돌림이 시작된 후 나의 연달은 쪽지 공세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건 C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같이 친하게 지내던 다른 반 친구가 아무리 C를 설득해도 C는 하룻밤 사이에 돌이 된 여인처럼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그 C가 메일을 보낸 것이다. 졸업을 하고도 늘 그 일이 자기를 따라다녔다고 했다. 그래서 그 일을 잊고 싶어서 부산으로 전학을 가서 살았는데, 그래도 아직도 마음에 남아서 이렇게 친구 찾기를 해서 너의 메일주소를 알았다고. 그때 정말 미안했다고, 그리고 너를 정말 좋아했다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충분히 괜찮았다. 미안하다는 편지를 받고 용서한 지가 오래이며, 나는 그때 우리가 어리고 용기가 없었다는 것을 안다. 너 역시 가해자이며 피해자였다는 걸 아는데, 나는 이제 웃으면서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너는 그토록 오랫동안 자책하면서 살았구나. 여리고 여린 너는 얼마나 너 자신을 미워하며 살았니.

 

 

3.

가끔 왕따를 다룬 드라마나 소설을 보면 나는 C가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프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휩쓸려서 했던 일이 나중에 얼마나 큰 상처로 남을지, 지금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를 따돌리고 있는 아이는 알까. 친구를 향했던 미움과 두려움이 이번에는 자신을 괴롭힐 수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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