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시한부를 선고받고 '버킷 리스트'를 실현해나가는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들을 보면서 나도 그래야지 생각했었다. 살겠다고 항암치료 받고 머리털 빠지면서 구질구질하게 생을 마감하지는 말아야지. 얼마든 전재산 탈탈 털어서 여행을 가든 먹고 마시든 신나게 쓰고 즐기다가 가야지, 라고.
아,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인가.
진짜 죽음을 앞둔 사람의 현실이란 제 몸조차 가누기 힘든 것은 물론, 숨쉬는 것조차 버겁고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걸 난 왜 몰랐던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친구의 병문안을 다녀온 신랑에게 무슨 암이냐, 어디가 어떻게 아픈거냐 물어도 대답을 못 하길래 갑갑하고 답답했더랬다. 근데 막상 병문안을 가보니 알겠더라. 겨우 숨만 쉬면서 진통제 맞아가며 잠이 들다 깨다를 반복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그 사람을 보며 한숨밖에 쉴 수 없는 가족들에게 어디가 아픈지 차마 물을 수가 없다는 것을. 실낱 같은 희망도 사치라는 것을.
기적이란 그렇게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보다.
소식을 듣고 5일 만에 그 친구는 세상을 떠났다. 좋은 날, 건강한 날엔 서로 바빠서 얼굴 보기조차 힘들었는데, 마지막 가는 5일 동안엔 대화는 못해도 잠든 그 친구의 얼굴을 실컷 보고는... 찌질하게 울지 말라고 그러고는 그 친구는 떠났다.
젊은 만큼 전이도 빨랐고, 본인도 가망이 없다는 걸 알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으리라 추측한다.
장례식장에 가서 지하1층에 그 친구 이름이 써 있는데,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계단을 걸어내려가 그의 영정사진을 보았다. 너무 젊고, 젊었다. 꿈인 것마냥 모든 게 현실감이 없었다.
삶은 이렇게 허망하고 어이없다. 깨달았을 땐 너무 늦다, 제길.
건강할 때, 행복할 때 서로 만나고 표현해야 한다는 단순하고 진부한 사실.
우리가 조금이나마 덜 후회하고 덜 아파하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는 듯하다.
그저 살아 있는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