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평점 :
품절



<모모>는 나에게 특별한 책이다.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편이 아닌데,

반복해서 읽는 몇 안 되는 책 중 하나다.



어린 시절에는

시간도둑과 모모의 모험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어른이 되고

엄마가 돼 읽는

<모모>는 또 달랐다. 



<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길동이가

어릴 땐 그렇게 밉더니,

어른이 돼 다시 본 둘리 속의 길동이가

너무 이해되는 것처럼,

정신없이 바쁜 삶에 갇혀버린

기기와 베포 할아버지와 같은 어른들의 이야기에

더욱 공감하게 된 것이다. 



가장 마음 아팠던 건

청소부 베포 할아버지.



베포 할아버지는 이렇게 얘기했다.

"얘, 모모야. 때론 우리 앞에 아주 긴 도로가 있어. 너무 길어.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지."

그러고는 한참 동안 묵묵히 앞만 바라보다가 다시 말했다.

"그러면 서두르게 되지. 그리고 점점 더 빨리 서두르는 거야. 

허리를 펴고 앞을 보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 같지. 

그러면 더욱 긴장되고 불안한 거야. 

나중에는 숨이 탁탁 막혀서 더 이상 비질을 할 수가 없어. 

앞에는 여전히 길이 아득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거야."

그러고는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그러고는 다시 말을 멈추고 한참 동안 생각을 한 다음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면 일을 하는 게 즐겁지. 그게 중요한 거야. 

그러면 일을 잘해낼 수 있어. 그래야 하는 거야."


-50~51p




일하는 순간순간의 행복을

즐기던 베포 할아버지가

모모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시간에 쫓겨

헐레벌떡 일을 해치우는

모습으로 변했을때,

그 모습이 남일 같지 않아서

마음이 아려왔다.



나는 아이에게 하루에 몇 번이나

"엄마 바빠."

"시간이 없어."

라는 말을 하는지.



진짜 시간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인데 말이다.



회색신사들이 가장 곤란하게 생각했던 대상은 

아이들이다.

온갖 상상력을 발휘해

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에게

시간을 빼앗아가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어른들을 회유해

아이들을 쓸모있는 인간으로 만든다는 명목으로

탁아소를 만들고,

아이들은 그 안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야 생활해야 했다.



지금 우리의 상황과 너무 비슷해 소름이 돋았다.

마음껏 뛰놀고 상상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 아이들이

정해준 배움과 놀이를 하면서,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현실.



예전에는 회색신사를 그냥 시간도둑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들의 정체는 현대문명, 시스템일 수도 있겠다 싶다.

정해진 루틴을 챗바퀴처럼 돌며

쓸모있는 인간으로서의 몫을 해내야

이 사회가 스무스하게 돌아갈 테니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몇 번을 읽어도

<모모>는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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